브로드웨이 뮤지컬은 대개 많은 자본이 쏟아부어 지면서 그 화려함으로도 명성이 높다.(브로드웨이라이온킹-연중무휴 뮤지컬이 열리는 브로드웨이, 김병종, 30×40㎝, 종이에 혼합재료, 2019)
맨해튼의 브로드웨이 거리(왼쪽)와 맘마미아 공연 장면.
브로드웨이, 뮤지컬 제국의 신화
뉴욕 버킷리스트에서 빠질 수 없는 것 중의 하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이야
이상도 하지.
타임스스퀘어의 전광판은
시간을 잘게 쪼개 분초마다 그 시간으로
엄청나게 벌어들이는데
그 동네의 극장들은
지상의 모든 사람들을
다 빨아들이고 나서야
막을 내리겠다는 뜻
서두르는 법 없이
시간을 한없이 늘려버리니 말이야.
둘 다
시간을 파는
밤의 자본이지만
하나는 쪼개서 팔고
하나는 늘려서 팔아
오년 전 왔을 때의 프로가
그대로 걸려있기 예사고
심지어는 십년 전, 십오년 전 게
그대로 돌아가는 경우까지 있어.
그래서 가끔은
시간의 덫에 걸린 기분.
여기에 오면
시간은
흐르거나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출구 없는 방처럼
빙빙 도는 거지
브로드웨이의 마법에 걸린 거야.
그런데 이상한 일은 또 있어
뉴욕의 여행자라면
이 도심의 어디선가에서 울리는
‘라이온킹’의 포효에 끌려
배낭의 청춘과 함께 왔다가
귀밑머리 희끗해질 때쯤 어김없이 유령에 끌리듯
이 거리의
‘팬덤오브디오페라’를 찾아
다시 오게 된다니까.
그러고 나서야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뭔가 빠트리고 온 느낌이 드는 것이야
떠났던 사람을 다시 오게 한다는 것은
공간이동을 하고서도
아직 브로드웨이 시간의 덫을
다 못 벗어났다는 이야기
뮤지컬 속 환상과 현실이 뒤엉켜 있다는 이야기지.
맨해튼을 비스듬히 가로지르는
웨스트 42번가에서 53번가까지의
이 길은
시간의 기울기로 된 거리야.
지평선 아닌 시평선(時平線)을 이룬 거지
잘 달구어진 쇠로 ‘시간’의 앞 뒷문 창살을 달구어 버린 거라 할까
갑자기 소리 없이 떠나가버린 과거와, 이쪽으로
걸어오는 미래의 발걸음 소리가
딱 이 지점 어딘가에서
우연처럼
만나게 되어 있다니까.
시간의 들숨과 날숨이
이 브로드웨이 거리에서는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이야.
환상과 현실이 하나로 합쳐지는 지점이야.
째깍째깍, 힘겹고 지루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무의미한 삶, 옥죄어오는 나날들의
현실에서 멈춰 서서 천천히
푸르고 검은
휘장을 걷고
무대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정말이야. 거기서는
떠나간 과거도
오지 않은 미래도
동시에 소환할 수 있어.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더는 아무것으로부터도 도망치지 않은 내가 보여.
이 매직을 모르는 자들은
왜 ‘캣츠’며 ‘알라딘’과
‘맘마미아’를 굳이 여기까지 와서 보아야 하는지를
자신도 잘 모르는 거지.
그저 화려한 의상과 무대장치에 홀렸나 보다
생각이 들겠지만
확실히 이 타임스스퀘어
브로드웨이는
시간을 빙빙 돌게 하는
매직이 있어.
과거와 현재를 한꺼번에 만져 볼 수 있는 매직 말이야.
⑥ 뉴욕 브로드웨이
배낭 멘 청춘 땐 ‘라이온킹’
귀밑머리 희끗해질 때쯤엔
‘오페라의 유령’ 보러 찾는 곳
떠나간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
동시 소환해 판타지 즐긴 관객
극장 밖 표정엔 안도와 행복이
브로드웨이라는 이름은 어느덧 세계인의 뇌리에 거리 이름이기보다는 연극·영화, 뮤지컬의 명품백화점 비슷하게 자리매김돼 있다. 하나의 공연이 일단 머제스틱 극장(Majestic theatre) 같은 데서 장기 공연을 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세계 각지로 팔려나가는 것이다. 내 기억에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브로드웨이 공연팀이 그대로 와서 서울과 지방 도시들까지 순회하기를 여러 번씩 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같은 극단의 단원들이 모두 그대로 오는 데도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이나 연극은 그곳에서 봐야만 맛이 난다.
굳이 예매하고 비행기를 타고 먼 길을 긴 시간 걸려서 봐야 비로소 제대로 본 것 같은 느낌. 일테면 똑같은 인상파 미술 전시를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이 아닌 서울에서 봤을 때의 밍밍한 느낌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연전에 본 뮤지컬 ‘캣츠’만 하더라도 남산의 국립극장에서 브로드웨이 공연팀의 공연을 그대로 만난 훌륭한 공연이었지만, 뭐라 꼭 집어 형언할 수 없는 아쉬움이 남겨졌다. 그 아쉬움의 정체는 뭘까 공연장 바깥으로까지 연결되는 브로드웨이 거리의 숨소리와 타오르는 불길 같은 생생함이 빠져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웨스트 42번가에서 53번가에 이르기까지의 극장지구(theather distirct)에서 40여 개의 극장과 거기서 쏟아져나오는 관객들의 그 일체감과 뜨거운 열기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타임스스퀘어의 극장들이 그토록 오랜 세월 그 자리에서 세계의 관객들을 흡인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열기와 숨소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거기다 엄청나게 퍼부어댄 자본의 힘으로 꽃피운 황홀한 판타지가 그 거리에는 가득했던 것이다. 하나의 공연을 보면서 다른 많은 공연이 달려드는 것 같은 느낌인 것이다.
인간은 너 나 없이 땅 위에 발 딛고 하늘을 보며 사는 존재이다. 땅의 삶은 고달파도 밤하늘의 별들을 보며 땅의 고달픔을 잊는 것이다. 늘 여기 아닌 저곳을 꿈꾸는 인간의 삶. 무대 위의 한바탕 희로애락의 시간이 그래서 보는 이에게는 자기 삶의 일생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투사와 판타지가 이뤄지는 곳이 브로드웨이이다. 공연이 끝나고 밤 열 시 무렵 쏟아져 나온 이 지구별 여행자들의 얼굴은 너나없이 안도와 행복의 빛으로 빛난다. 그 힘으로 다시 만난 현실의 발 위로 성큼 한 발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
김병종 화가·서울대 명예교수
Broadway Musical
맨해튼서 장기 공연 성공하면 세계 각지로 퍼져
뉴욕의 맨해튼을 가로지르는 길로 타임스스퀘어 거리에 자리한 유명 극장들과 공연들로 인해 뮤지컬과 연극·영화의 거리 혹은 그 장르 자체를 이르는 대명사로 쓰이고 있다.
이 공연의 거리에서는 ‘캣츠’ ‘라이온킹’ ‘맘마미아’ ‘팬덤오브오페라’ 등 세계적 명성의 공연들이 수년간씩 장기 공연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고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각지에서 관객들이 모여들고 있다.
엄청난 경비와 인력이 투입되는 미국형 블록버스터 뮤지컬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다른 한쪽에서는 ‘오프브로드웨이’ 운동이 일어나 소규모와 단기 중심의 실험극이나 뮤지컬 등이 제작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