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인줄로만 알았던 이재명의 어머니가 쓰러진 것은 이후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수술비가 35만원이었는데 이후보 집안 형편으로는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우리 어머니 죽게되었다고 이재영 형이 엎드려서 친할아버지께
어머니 수술비 35만원 빌려달라고 했다.
친할아버지는 거절.
이재영 형은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피를 나누지 않은 삼촌에게 35만원 빌려달라고 했다.
그 삼촌이 35만원 빌려주었다.
그 삼촌은 사람의 마음이 어때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이후보는 경주로 수학여행 간것을 잊지못한다.
육성회비조차 제때 못내는 형편에 수학여행은 감히 생각해볼수 없는 이후보였다.
5학년 담임 선생님은 두시간 산길을 걸어 화전민들 위해 지은 소개집으로 찾아왔다.
5학년 학생 모두 수학여행 보내기 위해.
이후보 모친에게 수학여행 참가 동의서 받기 위해.
삼계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은 학교에 딸린 밭의 돌을 골라내는
일과 보리베는 일 하게했다. 당시 어른 일당 600원일때
일당 200원 쳐줬고 이후보는 그돈 모아 경주 수학여행비 1300원 마련했다.
또 교장선생님은 학교매점 운영을 학생들이 하고 수익금은
가난한 학생들에게 돌아가게 했다.
덕분에 5학년 학생 모두 경주에 수학여행 갈수 있었다.
이후보의 아버지는 이후보가 야간 고등공민학교에 가는걸 허락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물론 형들과 이후보까지 돈 벌었다.
3년만에 월세에서 200만원짜리 전세로 옮겼다.
8번째 이사였다.
아주냉동에는 이후보보다 훨씬 어려운 노동자들이 많았다.
도시락도 싸오지 못하는 또래의 소년공들이 여럿이었다.
이후보는 친구들 몫의 도시락을 1개 더 싸서 도시락 2개들고 아주냉동에 다녔다.
점심시간이면 슬그머니 자리 피하는 친구들 손목을 끌어당겨
같이 둘러앉아 나눠 먹었다.
학원비가 아까워 안주려는 이후보의 아버지 때문에
이후보는 아예 공부 때려치우려 했다.
이후보를 잡아준 것은 김창구 성일학원 원장.
이후보와 동생 재문이까지 돈내지 않고 성일학원에 다니게했다.
오리엔트 시계공장 다닐때인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중항쟁을 이후보는 언론보도대로
광주사태 또는 광주폭동으로 알았다.
1982년 중앙대학교에서 학업 중, 친구 이영진은 이후보에게
학생회관 전통예술반 동아리방에서
광주학살 현장 담은 비디오를 보여주었다.
그동안 전두환정권과 언론에 속은 것이 창피하고 분했다.
이영진은 이후보에게 부당한 현실과 불의한 정권에 맞서 싸우는
전통예술반에 들어와 함께 활동하자고 했다.
이후보는 미안하지만 지금은 같이하기 어렵다.
대신 사법고시 합격한 뒤 판검사 안하고 변호사로 함께 하겠다고 약속.
이후보는 1987년 3월 2일 사법연수원에 18기로 입소했다.
1987년 1월 14일
서울대학교 박종철 학생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당하다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치안본부 발표는
이후보에게 온몸이 떨리고 소름돋게 만들었다.
이 사건은 이후보의 삶에 커다란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이후보는 사법연수원생들 중 뜻맞는 연수생들과 <노동법학회>
모임 만들고 공부하며 상담봉사활동도 나갔다.
노태우는 천두환이 임명했던 김용철 대법원장 유임 추진.
서울 민사지방법원 판사 37명의 항의 성명에 전국 판사 430명
가세.
그러자 노태우는 김용철 후임으로 정기승을 대법원장으로 지명.
정기승은 군사정권과 야합해 새끼 정치 판사들 소굴로 불리는
서울 형사지방법원장에서 대법원 판사로 직행.
전국 모든 법원에서 김용철 대법원장 유임 반대 성명낼때 빠진
유일한 법원이 서울 형사지방법원.
국가안전기획부 직원이 법원에 상주하며 재판에 개입하는 일에 가장 앞장선 정기승!!
이후보는 문무일, 최원석과 함께 사법연수원생 290명 중 185명 서명받아
1988년 7월 1일
<사법부 독립에 관한 우리의 견해> 성명서 발표 주도.
일선 법원 판사들이 참여하면서 2차 사법파동.
결국 정기승 대법원장 지명 철회!!
판검사로 현직에서 6개월만 있다 나오면 전관예우 받으며
변호사 개업 할수 있었음에도
이후보는 개업자금 마련하기 위해 법률구조공단에 월급직원으로 들어갔다.
이후보가 무한히 존경했던 조형래 변호사 사무실로 연수원 변호사 시보생활 했다.
판검사 임용 포기한 25살 이후보의 용기와 딱한 사정을 가상히여긴
조영래 변호사가 거금 500만원을 빌려주었다.
이후보에게 공쩌로 학원 다니게 했던 김창구 성일학원 원장도
제대로 해보라며 500만원 빌려주었다.
이후보는 1천만원으로 연수원 동기 임상대 변호사와 함께
성남에서 변호사 사무실 개업했다.
노동상담소 열려고 준비하던 안양로 선생이 이후보에게 도와달라고 제안.
이후보는 광주, 여주, 이천 노동상담소 법률상담 맡아
매주 2회 이천으로 가서 상담활동.
성남 3공단에 있던 전자부품 제조하는
일본기업 에프코아코리아에 200여명 노동자가 일했다.
1989년 7월, 에프코아코리아는 갑자기 공장폐엽.
수주물량 감소는 구실이었고 노조활동 원천봉쇄 위해!!
에프코아코리아는 이미 3년간 수주물랼 확보했었다!!
노조꼴 보느니 공장 폐업하고 물량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리는 위장폐업!!
위장폐업은 노조간부를 선별적으로 탄압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전체를 내쫓는 가장 비열하고 과격한 노조탄압!!
머리띠 두르고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위장폐업에 맞서 싸운
노동자 대부분은 스무살 안팎의 여성이었다.
성남공단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이후보의 여동생 재옥이 또래의 여공들이었다.
이후보는 6개월 넘게 이들을 변호했고 결국 전원 복직하면서 체불임금도 받아냈다.
인천의 세창물산과 구로의 슈어프로덕츠와 더불어 위장폐업에
맞서 싸운 여성노동자들의 빛나는 승리!!
무료상담도 성심성의껏 상담하고 변호해서 사건 해결해줌으로써
이후보는 성남에서 '우리 변호사'가 되었다.
필리핀에서 온 에리엘 갈락은 불법체류자였다.
에리엘 갈락은 1992년 성남 공장에서 일하다 오른 팔이 절단 당했다.
불법체류자라 산재 인정받지 못했다.
이후보는 전례가 없는 불법체류자 산업재해 요양승인 받아내기
위해 분투했다.
노동부와 공단, 출입국관리사무소의 태도는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완강했다.
이후보는 강제출국 위기에 놓인 에리엘 갈락을 구출하기 위해
온갖 자료와 증거, 법리, 세계노동기구 권고조항까지 동원하며
노동부에 요양신청서 냈다.
노동부는 산업재해보상법상의
낙서장 왜 이재명 후보는 전과 4범이 되었나?? : 4355년 3월 1일; 화요일. URL 복사 통계 노동부는 산업재해보상법상의 요양신청을 끝내 불허. 에리엘 갈락은 오른팔을 한국에 남겨두고 보상도 못받은채 강제출국 당했다. 에리엘 갈락이 필리핀에 돌아간 뒤에도 1년여의 집요한 투쟁은 계속됐다. 기나긴 재심절차 거쳐 이후보는 기어코 에리엘 갈락의 요양신청을 받아냈다. 필리핀으로 간 에리엘 갈락은 요양을 받을수도 한국으로 돌아올수도 없었지만 산재보상은 받게 되었다. 시민 기본권인 집회와 시위, 언론, 출판, 결사의 자유로부터 배제된 노동자는 한국의 시민이 아니었다. 이후보가 성남과 이천에 법률사무소와 노동상담소를 연것은 시민권 없는 노동자들의 자구활동 위해서였다. 시민 기본권 박탈당하고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기본권 쟁취하기 위한 분투였다. 1990년대 중반 성남에서도 시민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노동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성남의 '우리 변호사'가 된 이후보의 역할도 자연스럽게 시민사회 영역으로 확장되었고 1995년 <성남 시민모임> 참여로 이어졌다. 파크뷰 특혜사건은 2000년 5월, 성남시가 분당의 백궁, 정자지구 상업, 업무용 토지를 주상복합아파트 지을수 있는 주거용으로 용도변경하고 정,관계 유력인사들에게 특혜분양한 권력형 비리. 파크뷰 특혜사건은 아파트 지을수 없어 포스코개발이 281억원 위약금 물면서 포기한 땅을 소규모 건설업자 홍모씨가 100억원 계약금 내고 매입한 다음 용도변경 추진하면서 시작. 성남시민모임 집행위원장인 이후보는 1999년 말부터 백궁. 정자지구 용도변경 부당성 주장하며 반대운동에 나섰다. 하지만 성남시는 백궁, 정자지구 상업, 업무용 토지를 주거용으로 용도변경했다. 이땅 매입한 홍모씨는 (주)SK 보증으로 1100억원 확보하고 1조원 규모의 엄청난 이권사업 독식했다. 용도변경 최종 인허가권은 김병량 성남시장!! 파크뷰 특혜사건 배후에 토건업자와 정관계, 검찰, 언론으로 엮어진 막강하고 부패한 기득권 세력이 있었다. 이후보가 지역 노동자와 시민을 위한 정직한 언론 만들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토건자본은 20억원을 투자하겠다 제안. 조건은 파크뷰 특혜분양비리사건에서 빠져달라는 것. 이후보 거부!! 그러자 기득권세력은 이후보를 죽이겠다 협박. 눈하나 깜짝하지 않은 이후보!! 협박이 안통하자 이들은 새벽 2시에 이후보 집에 전화해 김혜경 여사에게 아이들 다니는 초등학교 이름과 반까지 대면서 좋지 않을거라며 조심하라고 협박. 이후보가 경찰에 신고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그 경찰의 간부도 파크뷰 특혜사건에 연루됐기 때문. 이후보는 6연발 가스총 소지로 대응!! 파크뷰 특혜사건 일부가 드러난 것은 김은성 전 국정원 2차장 폭로 때문. 백궁, 정자지구에 지은 파크뷰를 고위공무원과 국정원 간부, 판사 검사 등 130여명에게 특혜분양했다는 김은성의 폭로는 검찰조사 결과 사실로 확인됐다. 무려 449세대를 정관게, 법조계, 언론계 유력자들에게 사전분양한 사실이 드러났고. 용도변경 받은 홍모 회장과 경기도, 성남시 관계자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이후보는 파크뷰 특혜분양 몸통 추적하는 KBS <추적 60분>팀 취재와 인터뷰에 응했다. 이후보와 인터뷰하던 도중 KBS 피디에게 김병량 성남시장이 전화했다. KBS 피디는 자기가 파크뷰 담당검사라며 솔직하게 대답해야 잘 처리해줄수 있다며 파크뷰 사건에 대해 물었다. 피디를 진짜 검사로 여긴 김병량은 파크뷰 특혜사건 내막을 털어놓았다. KBS에서 <추적 60분>이 방송됐다. 이후보는 2002년 5월, 지자체장 선거를 앞두고 KBS 피디로부터 녹취파일 원본을 받아 기자회견장에서 확 틀어버렸다. 파크뷰 대상토지 3만 9천평 용도변경해주고 건축허가까지 내준 김병량은 이후보와 KBS 피디 고소. 이후보 맞고소!! 검찰은 KBS 피디가 검사 사칭하고 전화하는 것을 이후보가 옆에서 지켜보았다는 이유로 이후보를 검사사칭 공동정범으로 기소후, KBS 피디와 이후보에게 벌금 150만원 약식 기소. 진실이 알려질때까지 경찰 추적망 피해 강원도 등지로 피해다니다가 성남 검찰청에 자수. 2002년 7월, 대법원에서 150만원 벌금형 받고 구속 11일만에 풀려났다. 이후보 전과 1범!! 성남에서 가장 큰 성남병원과 인하병원이 잇따라 폐업. 50만명 넘는 성남 구도심 주민이 이용하는 응급의료기관인 두 병원의 폐업은 성남 시민들에게 중대사태. 시민들은 스스로 성남시립병원 설립추진에 나서 성남시립병원설립 범시민추진위회를 만들었다. 이후보는 대표가 됐다. 시립병원 만들려면 시의회에서 근거조례 재정해야했다. 이후보는 대한민국 최초로 주민발의 조례재정에 나섰다. 단 3주만에 주민발의자 1만 8595명 모아 '주민발의 조례'를 성남시에 접수. 2004년 3월 24일 오후, '지방공사 성남의료원 설립 및 운영 조례안'을 성남시 의회에 상정. 단 47초만에 부결!! 겨우내 한파에 뛰어다닌 시민들의 노고가 단 47초만에 짓밟힌 것!! 조례안 발의한 1만 8595명 시민과 지지서명한 20만명을 개돼지로 취급한 처사!! 분노한 시민들은 회의장으로 들어가 항의했고 시 의원들은 모두 도망!! 도망간 시의원들은 조례안 날치기 폐기에 항의한 시민들과 이후보를 특수공무집행방해로 고발. 이후보는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벌금 500만원 냈다. 이후보 전과 2범!! 이대엽 성남시장 친인척 비리 보도한 권모기자의 기사 내용 '새누리당 소속 이대엽 성남시장이 농협에 시 금고 맡기는 댓가로 이대엽 조카가 수십억원 가량의 엔화를 농협으로부터 부정대출 받았다.' 이대엽은 보도내용이 모두 허위사실이라며 부정대출 사건 폭로한 권기자를 명예훼손혐의로 검찰에 고소. 검찰은 곧장 권기자를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억울한 권기자는 이후보를 찾아갔다. 이후보는 사실관계를 파악해 권기자의 폭로가 사실임을 알고는 무료변론에 나섰다. 이후보는 재판부에 요청해 농협의 금융거래 자료를 제출받았다. 이대엽이 농협을 성남시 금고로 지정한 날과 이대엽 조카가 농협으로부터 대출받은 날짜가 같았다. 이후보는 이대엽 조카가 수십억원에 달하는 엔화를 시중금리보다 터무니없게 낮은 금리로 대출받은 사실을 밝혀냈다. 또 개인으로는 빌릴수 없는 거액을 대출받기 위해 이대엽 조카는 사업자로 대출받았는데 사업자등록증은 위조된 것. 증인으로 출석한 관련 공무원상대로 심문한 결과 범죄자는 권기자가 아니라 이대엽과 그의 조카임이 드러났다. 이대엽은 강제구인 하루전날 고소 취하함으로써 재판은 끝났다. 권기자를 억울한 전과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사실관계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시장 측근 박무창의 도움이 절실했다. 도움 청한 이후보에게 며칠을 주저한 박무창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막상 만나서는 또 주저하다가 그냥 헤어졌다. 헤어질 때 이후보는 억울한 전과자가 될 사람을 한번만 더 생각해달라고 했다. 헤어졌던 박무창으로부터 다시 만나자는 전화가 온것은 이후보가 집에 돌아와 막 옷을 갈아입으려던 찰라였다. 이후보는 깊이 생각할 틈도 없이 대리운전해서 타고 들어왔던 차를 끌고 약속장소로 달려갔다. 가다가 음주단속에 걸렸다. 벌금 150만원. 이후보 전과 3범!! 2004년 말,선거법과 정치자금법 개정. 말로하는 선거운동은 풀고 돈쓰는 선거운동은 제한하는 개정 법령이었다. 득표율 15%만 넘으면 후보자가 지출한 선거비용 전액 돌려주는 조항도 생겼다. 이후보가 2006년 성남시장에 출마한 이유는 단 47초만에 페기된 성남시립병원설립 조례안 되살리는 것과 기본과 원칙 지키는 공정한 시정 펼치기 위함. 하지만 낙선. 이후보는 2010년 성남시장에 재도전. 이재명 선거운동본부의 합법적인 선거운동을 사사건건 트집잡던 선거관리위원회는 꼬투리를 찾다찾다 못찾자 이후보가 '지하철에 연결돤 지하 횡단보도에서 명함 배포했다'는 이유로 고발. 새누리당 후보는 지하철 역사 안은 물론이고 지하철 타고 명함 배포해도 불문 아니면 경고로 끝났다. 검찰은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했고 결과는 벌금 50만원. 이후보 전과 4범!! 이재명 후보는 2010년 6월 2일, 성남시장에 당선되었다. 2022년 3월 9일, 이재명 후보가 압도적인 지지율로 대통령이 되시길!! 민중과 함께 공정사회로 대동세상 이루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