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값 오르는 술에 ‘술테크’ 등장
3000만원짜리가 9억원에 낙찰되기도
술 팔아 내 집 마련하는 사례도 나와
영국 잉글랜드 서머싯 톤턴에 사는 매튜 롭슨은 1993년부터 2020년까지 28년 동안 매년 생일에 아버지 피트 롭슨으로부터 18년산 맥캘란 위스키를 선물 받았습니다. 피트 롭슨이 28년 동안 아들에게 28병의 위스키를 선물하면서 쓴 돈은 모두 5000파운드(약 790만원) 정도라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위스키 몸값이 올랐고, 2020년 당시 매튜가 모은 28병의 맥캘란 18년 산의 가치는 4만파운드(약 6300만원)까지 올랐습니다. 28병의 위스키 몸값이 약 5000만원 정도 오른 셈입니다.
28년간 해마다 아들 매튜 롭슨(오른쪽)에게 생일 선물로 위스키를 사준 아버지 피트 롭슨. /BBC 방송화면 캡처
피트가 처음부터 투자를 생각하고 아들에게 위스키를 선물한 건 아니었습니다. 아들의 출생을 기념하려 한 것으로, 재미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해마다 18년 숙성 위스키를 생일에 한 병씩 사주면 아들이 18세가 될 때, 18년 숙성 위스키가 18병이 된다는 점이 재미있어 선물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아들에게 위스키를 선물로 주면서 “절대 따서 마시지 말라”는 엄한 지침을 내리기도 했는데요, 이것이 ‘신의 한 수’였던 것이죠. 술을 따서 마셨으면 차익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매튜는 당시 BBC와의 인터뷰에서 “조금은 이상한 생일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컸을 때는 병뚜껑을 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느라 힘들었다” 말했습니다. 당시 매튜는 28병의 맥캘란 컬렉션을 통째로 경매에 내놓고 첫 집을 구입하는 밑천으로 쓰겠다고 밝혔습니다. 아버지가 매년 잊지 않고 선물한 이색 선물이 재테크 수단으로 사용된 셈입니다.
당시 경매는 위스키 중개상인 마크 리틀러가 맡았습니다. 마크 리틀러는 매튜의 컬렉션을 보며 ‘완벽한 세트’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맥캘란 가치가 최근 5~10년 사이 엄청 올랐다”며 “또 1974년산부터 2002년산까지 한자리에 모은 컬렉션은 이 시대에 정말로 매혹적인 경매 품목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른바 ‘술테크(술+재테크)’로 내 집 마련의 꿈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게 된 셈입니다.
매튜 롭슨은 뜻밖의 술테크에 성공한 사례입니다. 어쨌든 최근 술이 재테크 수단으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영국의 컨설팅업체 나이트 프랭크(KNIGHT FRANK)가 ‘2021 부 보고서(The Wealth Report)’를 발표했는데요, 보고서를 보면 최근 10년 동안 고가 사치품 중 가장 가격이 오른 것이 바로 희귀 위스키(478%)와 와인(127%)이었습니다.
야마자키 55년. /산토리 제공
◇술 팔아 얻은 차익만 8억원 이상
일본산 위스키(Japanese whiskey)도 가격이 눈에 띄게 많이 오른 위스키 중 하나입니다. 재패니즈 위스키라 불리는 일본 위스키는 미국, 스코틀랜드, 캐나다, 아일랜드와 함께 세계 위스키 5대 생산국 반열에 오르면서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중 유명한 위스키는 산토리. 일본 주류 업체 산토리는 2020년 1월 ‘야마자키 55년’ 100개를 한정 판매했습니다. 야마자키 55년은 1964년 이전에 증류해 55년간 숙성시킨 몰트를 사용한 위스키입니다. 당시 가격은 2만7500달러(한화 약 3160만원)였습니다. 추첨을 통해 판매했기 때문에, 돈이 있어도 아무나 살 수 없는 한정판이었죠.
야마자키 55년은 출시된 해 8월 홍콩 경매장에 등장했습니다. 최종 낙찰가는 무려 79만5000달러였습니다. 한화로 따지면 약 9억원입니다. 판매자는 약 8억원 이상의 차익을 낸 셈입니다. 출시가가 비싸도 사람들이 한정판 주류를 구매하는 이유입니다. 해당 경매에는 산토리가 2011년에 출시한 ‘야마자키 50년’도 나왔는데요, 낙찰가는 3억5000만원이었습니다.
빈 술병도 인기입니다. 국내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꼬냑 레미마르탱 루이13세 빈병은 25만원에 거래가 되기도 했습니다. 루이 13세 꼬냑은 400만~500만원에 이르는 고급 술입니다. 위스키 로얄살루트 100캐스크 셀렉션 빈 병은 3만원, 일본 위스키 히비키 빈병은 1만원대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미국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온라인 경매 플랫폼 이베이에서는 일본 야마자키 25년 빈병이 1900달러(약 200만원)대에 올라와 있습니다.
고든 앤 맥페일 글렌리벳 제너레이션스 80년. /롯데백화점 제공
◇코로나19로 술 가치 올라가
이렇게 술의 가치가 올라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류 업계 관계자들은 코로나19 사태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초기 1∙2차 제조 생산업종은 소비 감소와 대면활동 감소로 매출에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에 인원을 감축하고 생산량을 줄일 수밖에 없었죠. 이후 코로나 백신이 개발되고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이때 억눌려있던 소비 심리가 폭발했고, 인원과 생산 설비를 줄였던 제조생산기업들이 소비 수요를 재빠르게 따라갈 수 없던 것입니다. 더불어 운송도 영향을 미쳤죠. 세계적인 물류 대란으로 주류를 들여올 선박 등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졌고 이에 운송비도 올랐습니다.
고가의 주류뿐 아니라 중저가 수입 주류 제품들도 조금씩 가격이 올랐습니다. 서울 중구 남대문 주류판매점에서 ‘글렌피딕 15년’은 요즘 8만원 선에 팔리고 있습니다. 2년 전만 해도 7만원 안팎에 팔리던 제품입니다.
또 코로나19로 국내 고가 주류 수요도 덩달아 증가했습니다. 그동안 대부분의 소비자는 면세
점이나 해외 현지에 나가 고가의 주류를 사 왔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어려워지면서 이 수요가 국내로 몰리게 된 것입니다.
2022년 2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위스키 ‘고든 앤 맥페일 글렌리벳 제너레이션스 80년(Gordon & MacPhail Glenlivet Generations 80 YO)’이 2억5000만원에 팔렸습니다. 이 제품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싱글몰트(한 증류소에서 100% 보리를 증류) 스카치 위스키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250병만 생산됐습니다. 앞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로마네 꽁띠(Romanee-Conti)’ 컬렉션도 9100만원에 팔리기도 했습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초고가 주류의 소장 가치가 커지면서 한국 자산가의 지갑이 열렸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