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9일(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교회
그저께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축일 행사와 미사가 끝나고 교육관에서 간단하게 먹고 마시며 웃고 떠들었다. 필리핀 교우들이 함께해서 이 작은 마을에서도 국제화 시대를 실감했다. 다과를 마무리하고 나왔는데 낯선 외국인 노동자 두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툰 한국말이었지만 목포 가는 버스가 끊겨서 모텔에서 자야 하는데, 도와달라는 거였다. 한 교우가 나서서 그들을 근처 모텔에 데려다주었다. 어제 얘기를 들어보니 그들은 모텔비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저녁 사 먹이고 모텔비와 버스비까지 다 챙겨줬단다. 그 형제는 그들을 풀코스로 대접했다고 했다. 그들 중 하나는 교우였단다. 아마 그래서 그가 성당을 찾아가자고 했었나 보다. 거기 가면 살길이 있을 거라고. 성모님이 우리에게 애덕을 실천할 기회를 만들어 주신 게 분명하다.
어제는 오후에 모르는 이에게 전화를 받았다. 그는 성당으로 전화를 걸었다. 힘든 대화 끝에 그가 도움을 청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성당으로 오라고 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은 눈치였다. 밥 사 먹게 돈을 좀 줄 수 있냐고 어렵게 청했다. 요즘 이상한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의심이 들었지만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그 젊은이는 그날 복음에서 만난 자존감이 완전히 떨어진 나병환자 같았다(마태 8,2). 직접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살길을 함께 찾을 수 있을 거다.
6월 마지막 주간, 이 작은 성당은 전례력이 온통 빨간색인 거처럼 참으로 뜨겁게 보내고 있다. 주간 첫날부터 사흘간 온 교우가 나서서 안타까운 장례를 치르고, 바로 그다음 날은 이주민들과 함께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축일 행사하고, 도움을 청하러 성당을 찾아온 낯선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리고 주간 마지막 날인 오늘은 교회의 두 기둥인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 대축일 미사를 봉헌한다. 1987년 오늘 629선언이 있었다.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게 됐다. 그리고 8월 15일 광복절은 성모승천 대축일이다. 믿는 이에게 이 사실은 우연일 수 없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표징이다. 하느님이 불의한 세상과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안 하시는 거 같지만, 그분은 당신 정의를 실현하신다.
교회는 사는 길을 안다. 사람은 여기서 살길을 찾을 수 있다. 위로받고, 쉬고, 하늘나라를 발견한다. 느려터지고, 서로 다투고 미워하는 죄인들의 교회지만 하느님은 이런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 주님은 이런 교회를 통해서 일하신다. 예수님은 교회를 믿고 하늘나라 열쇠를 맡기셨다.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9).” 이 철부지 어린이 같은 우리들을 안에서, 우리들을 통해서, 우리들과 함께 일하신다. 하느님이 세상을 사랑하심을 드러내신다.
예수님, 주님은 제가 주님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지 않음을 잘 아십니다. 저는 떠나지 않습니다. 주님을 사랑해서도, 믿음이 깊어서도 아닙니다. 이 안에 제가 살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 6,68).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그 허다한 잘못과 죄에도 제가 이렇게 여기에 남아있는 건 어머니가 여기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