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답사(20) : 태백 <동백산역>/ 삼척 <도계역>
1. 그동안 날씨가 따뜻해 강원도의 겨울을 제대로 만날 수 없었다. 1.24(수) 답사는 아쉬었던 강원도의 겨울 진경을 만나게 해주었다. 영하 15도 이하로 떨어진 강추위와 온 세상을 눈으로 덮어버린 변화가 진짜 겨울을 맛볼 수 있게 해준 것이다. 동해선을 타고 이동하는 열차 밖 풍경은 차가운 공기 때문에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영월과 정선을 지날 때까지 추위가 창문을 서리로 가득 채웠지만 눈은 보이지 않았다. 창 문 밖에 풍경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한반도의 중심 태백산맥을 지나 태백에 도달하면서부터였다. 눈부신 백설이 청량한 태양빛에 겨울의 화려한 분위기를 반사하고 있었다. 겨울왕국에 들어온 것이다.
2. 태백의 <동백산역>은 눈으로 뒤덮여있었다. 거의 50cm가까이 쌓인 눈은 모든 것을 정지시켰다. 인도는 눈 때문에 이동하기 어려웠다. ‘동백산역’은 주변에 어떤 편의 시설도 없는 오로지 열차와 이용객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통리’ 쪽으로 방향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인도는 걷기 어려웠지만 차도는 지방정부에서 제설한 관계로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눈부시게 푸른 하늘이 강추위 속에서 더욱 처연하게 반짝였으며 모든 것을 정화시키는 듯 공기는 시원하게 가슴 속으로 스며들었다. 올해 처음으로 만나는 ‘겨울의 정석’이었다.
3. 길을 걷다보니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촬영한 <탄탄파크> 안내가 보였다. 특별하게 방문할 장소가 없어 그 쪽으로 이동했다. 파크의 입구 쪽에 들어서자 촬영에 사용한 헬기나 그밖에 병영 시설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파 때문에 입장료는 받지 않았다. 평소에는 8000원으로 제법 비쌌다. 특별한 기대 없이 찾은 드라마 촬영장이었지만, 이 곳은 매우 의미있는 공간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탄탄파크> 중심에 ‘기억을 품은 길’이라는 안내가 보였고 출입문을 들어서면 1km 이상의 길과 방이 연결되어 있었다. 바로 이 곳은 과거 탄광 지대를 리모텔링하여 테마시설로 조정한 것이다. 길은 어두웠고 끊임없이 탄광촌의 기억을 떠올리는 영상들이 빛과 함께 재현되었다. 혼자서 그 길을 걸으면서 특별한 느낌을 받았다. 사라진 것들과의 조우라 할까? 인위적인 공간이 아닌 탄광 갱도 속에서 맛보는 과거에 대한 이미지는 80년대 섣부른 치기 때문에 ‘탄광촌’을 기웃되는 시절을 소환시켰다. 결코 낭만적일 수 없는 막장에 대한 시도는 그만큼 우리의 삶이 어렵고 출구를 찾기 어려웠던 시간이었음을 기억하게 해주었다.
4. 삼척 <도계역>은 강원도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탄광 지역이었다. 이 곳에서는 서독 파견 광부들에 대한 교육이 있었고 주변 탄광에서 캔 석탄들을 실어 나른 중심 역이었다. 과거 ‘탄광촌’들은 색깔이 다르다. 짙은 어둠과 묘한 탁함이 도시를 감싸고 있는 것이다. 특히 ‘도계’는 강원랜드 때문에 상업적으로 변질된 <사북역>이나 <고한역>과는 다른 원래 탄광촌의 분위기를 여전히 품고 있었다. 과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결국 낭만적인 회고가 아니다. 그것은 발전하지 못하고 힘든 현재적 삶을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는 낡고 허름하였다. 공공시설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은 벽이 갈라지고 페인트가 벗겨진 채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상당히 큰 규모였고 제법 사람들도 많은 듯 했지만, 도시는 생기를 잃고 있었다. 과거 탄광촌의 형태 그대로 도시는 고정되어 있었다.
5. 도시의 쓸쓸함은 역 앞에 손님을 태우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택시들이 한 시간이 되어도 한 사람의 승객도 없이 돌아가던 장면에서 더 크게 느껴졌다. 추운 날씨때문인지는 몰라도 도시는 비웠고 냉기는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감기와 몸상태 때문에 한 잔의 술도 마시지 않았지만 정말 술 한잔 하고 싶은 풍경이자 공간이었다. 퇴락하고 있는 것들을 위로하고 연대하고 싶은 의미에서 따뜻한 청주가 생각났다. 하지만 2023년 연말부터 2024년 초까지 여러 행사 때문에 스스로 건강을 악화시켰다. 어쩔 수 없이 술 대신 따뜻한 차를 마시며 기차를 기다렸다. 이러저런 이유로 오늘의 답사는 강원도의 ‘겨울’을 만났다. 아름답고 쓸쓸한 강원도의 실체를 본 것이다.
첫댓글 - 기억을 품은 길! 강원도의 쓸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