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칼국수가 세계로 나갑니다”
‘시도하지 않는 자는 승리하지 못한다’ 1967년 ‘6일전쟁'의 영웅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전 총리의 명언이지만 (주)한미프랜 유명상 대표이사의 철학이기도 하다.
(주)한미프랜하면 다소 생소하다. 하지만 ‘명동칼국수’라고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미프랜은 ‘명동칼국수’ 상표권을 갖고 있는 프랜차이즈 본점명. 올해로 가맹점은 100개의 체인을 확보했고 자체 물류 시스템도 갖춘 내실 있는 업체다.
유 대표가 과거 동창회에 나가서 명함을 교환할 때면 “그냥 칼국수 장사한다”고 소개하면 넘어갔다. 그런데 이젠 동기동창에게 입소문이 완전히 퍼졌다.
친구들이 정년을 앞두고 창업을 생각할 나이인 때라서 더욱 그렇다. 최근 부쩍 친구들로부터 “나도 명동칼국수집 한 번 해보고 싶은데…”라는 상담이 늘었다.
창업 상담 갔다가 본부장 전격 발탁
유명상 대표가 한미프랜의 CEO를 맡게 된 것은 지난 2004년. 원래 유대표는 충남방적 무역부 직원을 거쳐 대일화학공업, 태아산업에서 기획 경리일에 잔뼈 굵은 관리 통이었다.
“초등학교부터 주판을 손에 잡고 살았는데 묘하게도 상업고를 졸업하고 대학도 상대를 나왔어요. 물론 직장도 마찬가지고요”
그가 1996년 한미프랜과 인연을 맺게 된 사연은 이채롭다. ‘칼국수 집이나 내보자’하는 생각에 찾아갔던 명동칼국수 본점에서 상담 중 그의 능력을 꿰뚫어 본 회사 측이 바로 본부장으로 전격 채용했다.
때마침 한미프랜은 오랜 기간 끝에 ‘명동칼국수’의 상표 등록 허가를 특허청으로부터 받아낸 시점이었다.
유 대표는 곧바로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사업을 전개했다. 전국에 100곳 넘게 무분별하게 사용되던 미등록 명동칼국수 간판은 내용증명을 보내 정리했다.
그 와중에 몇몇 업소는 가맹점으로 끌어들였다.
우후죽순 늘어나는 가짜 명동칼국수집을 방치했다가는 나중에 진짜 명동칼국수의 명성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개발하는 것보다 지켜내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죠. 명동칼국수의 원조 본점은 서울 종로구 종로서적 뒤편이었어요.
1972년부터 대통령은 무수히 바뀌었지만 명동칼국수는 그대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한미프랜의 자랑입니다”라고 유 대표는 강조했다.
그는 또 품질 경영을 내세웠다.
“명동칼국수는 34년 동안 한결같이 김치 한 품목으로 승부를 벌여왔어요. 많은 업종에서 가격파괴 현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지만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노하우는 품질에 있어요.”
칼국수는 60년대 배고픈 시절의 추억을 떠올린다. 칼국수 한 끼는 배고픈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서글품과 같다. 사리와 공기밥은 무료다.
남는 게 없다는 이유로 일부 칼국수 집은 공기밥 추가시 돈을 받았지만 명동칼국수 만큼은 공기밥 추가 제공이 무료라는 게 공식처럼 되어 버렸다.
또 밥이 고정적인 메뉴라면 면은 새참, 간식, 외식거리의 별미 메뉴다. 다른 음식의 경우 아침, 점심, 저녁으로 각각 몰리는 시간대가 한정되어 있지만 칼국수는 끼니를 넘겨도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 회전율이 높다.
또 다른 명동칼국수의 장점 중 하나가 남녀노소 누구나가 좋아한다는 점이다. 냉면처럼 계절을 타지도 않는다.
가맹점 문의로 찾아오는 예비 점주와 상담을 하다보면 직접 칼국수를 먹게 되는 경우가 많다. 상담도 부드러워지고 성사율도 높기 때문이다. 유 대표는 상담 손님과 직접 칼국수를 먹으며 상담하길 좋아한다.
“점심과 저녁 사이 동안 6그릇을 먹을 때도 있었죠. 다행히 상담은 모두 잘 끝났어요. 칼국수를 워낙에 좋아하니까 가능한일 아니겠습니까?”
지금도 하루에 한 끼는 칼국수로 해결한다. 명동칼국수 창업은 상권만 잘 확보하면 워낙 브랜드 인지도가 높기 때문에 그다지 손해 볼 이유가 없다.
“광우병도 조류독감도, 돼지콜레라도 피해갈수 있는 아이템입니다. 불황에도 잘 되는 아이템이구요”
가맹점 창업 후 폐업률은 2~3%안팎이다. 폐업률이 0%는 아니지만 다른 업종과 비교해서 매우 안정적인 수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유 대표에게 한 가지 고민꺼리가 생겼다. 칼국수 집은 남들처럼 고생은 똑같이 하지만 칼국수만 팔아서 얼마나 남겠느냐는 상담 손님의 걱정이 그것이다.
간판 바꿔 저녁 매출 상승 원래 명동칼국수의 메뉴에는 보쌈과 샤브샤브가 있다. ‘원할머니보쌈’ ‘놀부보쌈’보다 먼저 생겼다.
맛도 좋다. 그런데 워낙 칼국수에 치중되어 있던 상황. 칼국수 외에 저녁 술 손님을 끌어들이는 방법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그는 과감하게 간판 명을 ‘명동칼국수 보쌈 샤브샤브’로 바꾸는 시도를 감행했다.
결과는 대성공. 과거에 점심 매출과 저녁 매출이 60대 40이었다면 상황이 역전되어 버린 것이다.
전체 매출 중 점심 매출이 40%로 줄고 저녁 매출이 60%로 증가했다.
명동칼국수는 부자 동네에서도 성공하는 아이템이다. 서울 강남의 명동칼국수 도곡점이 대표적인 사례다.
도곡점은 타워팰리스가 옆에 위치한 부유촌으로 유명하다.
명동칼국수 도곡점주는 30평으로 시작해 7년 만에 10억을 벌고 인근 100평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민의 식단으로만 인식된 칼국수가 부유촌에서 먹힌 것이다. 부자들이 소박한 음식을 찾는 면도 없지 않지만
높은 품질에서 승부를 봤다는 것이 도곡점의 성공 포인트이다.
작년에 예상치 못한 위기가 찾아왔다. 중국산 김치에서 회충 알이 나왔다는 보도가 나온 후 그 김치를 사용한 업체 중 명동칼국수가 언론에 거론됐다.
유 대표가 다급히 확인해본 결과 문제의 진원지는 명동칼국수와 전혀 관계가 없는 다른 곳이었다. 대구의 명동식품에서 운영하는 ‘명동명칼국수’로 밝혀졌다.
명동칼국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비슷한 업체명이지만 식약청에서 잘못 발표하여 명동칼국수로 오해를 받고도 남을 상황이었다.
이에 유 대표는 언론에 반박 기사를 내면서 즉각 대응하여 불을 껐다. 그리고 오히려 이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명동칼국수는 국내산 김치를 사용하고 품질이 뛰어남’을 역으로 강조했다.
그는 회사가 높은 성장률을 보이자 해외 쪽으로도 눈을 돌렸다. 먼저 중국에 3개 점포를 오픈했다.
한국교민이 많이 살고 있는 천진, 베이징, 연변엔 이미 한국 손님이 80% 나머지 20%는 중국손님이 찾아오고 있다.
곧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 시에도 진출한다. 미국 동부 쪽에 사는 교민들의 향수를 달래주는 식단으로 기대가 높다.
이와 동시에 일본에서도 신주쿠에 오픈을 희망하는 사람과 계약을 진행 중이다. 물가 높은 일본에서 저렴한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를 본다면 역시 해볼 만한 장사인 셈이다.
유대표의 성공 창업에 대한 신념은 남다른 면이 있다. 오죽하면 유대표의 외아들(28)도 명동칼국수 부평점의 가맹점주다. 아버지는 프랜차이즈 본사 CEO, 아들은 가맹점주인 셈이다.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이 있기 때문에 앞날이 창창한 아들에게 선뜻 가맹점 운영을 허락한 것이다.
명동칼국수를 창업하는데 30평 기준 약 1억5천~2억원이 소요된다. 물론 입지 선정에 있어서는 본사 측에서 철저하게 검증에 나선다.
유 대표는 “가맹점주가 열심히만 뛰어 준다면 투자 대비 월 4부 이자는 나온다”고 장담했다.
한미프랜에 대한 유 대표의 비전은 지금 보다 훨씬 높다. 성공한 CEO가 아니라 이제 시작이란다.
“20% 쯤 왔다고 봅니다. 전국에 가맹점 400개, 해외에 100개가 목표입니다”
* 약력 72년 광신 상업고 졸 72년 건국대 상대 경영학과 76년 R.O.T.C 제 14기 소위 임관 86년 연세대 경영대학원 수료 78년 충남방적 무역부 96년 (주)한미프랜 입사 2004년 (주)한미프랜 대표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