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직의 바른 예배관
권 정 희 목사(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 앞에 나온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개개인의 부르심에 따라 은사를 주셨고 그 은사에 따라 특별한 은혜를 허락하여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셨다. 그런데 은사가 다르고 섬기는 방편이 다르지만 통일된 것은 한 주요 한 하나님으로 예배드림이다.
일찍이 아브라함이 부름 받은 후 먼저 하나님께 단을 쌓고 제사(=예배)를 드렸고, 믿음의 조상들 모두가 예배 중심의 삶을 살았다. 신구약 성경 전체를 보아도 하나님께 예배드림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예배가 살아 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평강과 은혜를 체험했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중지되거나 형식적이었을 때에는 내외적인 시험과 불신으로 고통과 눈물과 저주의 결과를 초래했었다.
이 시대 교회들도 종교다원주의와 뉴에이지 사상과 개인주의와 물질주의로 기독교 예배관이 흔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바른 예배관이 회복되어야 교회가 바로 서고 성도가 복을 받는다. 성경적인 예배가 회복되는 길이 어떤 것인가를 조명해 보고자 한다.
제1장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
본문에서 하나님은 예배에 대하여 아주 분명한 교훈을 주시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찾고 계시는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일하는 자(worker)가 아니라 예배하는 자(worshipper)를 찾고 계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부르셔서 우리를 통해 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있다.
가.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요4: 23-24)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 사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교회를 부르신 목적이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성도가 이 땅에 살아가는 목적이 무엇인가? 제일 된 답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부르심의 첫 번째 목적인 것이다.
② 성도를 섬겨야 한다. -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두 번째 목적은 성도끼리 섬기기 위해서라고 하셨다. 그리스도의 지체인 성도가 서로 섬김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워 가도록 하신 것이다. 성도가 서로 연합하고 서로 사랑하며 섬김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 가는 일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두 번째 목적이다.
③ 세상을 섬겨야 한다. - 우리가 세상을 섬기지 않을 때 세상은 우리를 알지 못한다. 또한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다. 우리가 세상을 섬겨야 세상은 우리 안에 있는 소금의 맛과 빛의 능력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고 세상과 동화되거나 죄의 만찬상에 앉는다는 것이 아니라 구별된 삶을 통하여 자연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들을 교회로 인도하기 위한 섬김이 우리를 부르신 세 번째 목적인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에 가장 먼저 성도를 섬기라고 부르신 것도 아니고, 세상을 섬기라고 부르신 것도 아니고, 최우선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라고 부르신 것이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정하여 주신 포도원에서 일하는 일군은 귀하다.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나 하나님이 맡기신 직분을 잘 감당하는 일군은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먼저 찾으시는 사람은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교회에서 열심히 섬기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먼저 찾으시는 사람은 이들이 아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예배하는 사람(worshipper)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고,
(창1: 26-28)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그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사귐을 갖기를 원하셨다. 그리고 난 후 하나님이 지으신 온 세상을 우리에게 맡기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스리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맡기신 세상을 다스리는 일보다 먼저, 창조주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예배드리는 것이다. 우리 삶의 우선순위로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예배가 온전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나.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자를 찾으신다.
(벧전 2: 4-5)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본문을 보면 “산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라고 했다. 우리의 우선순위는 항상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고 한 것은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 즉, 예배를 드리는 자가 되어서 오직 주님 앞에 나아가 주님을 높여 드리는 것을 원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고 있다.
교회의 사명 중 첫째가 복음전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을 부르셔서 먼저 예배자가 되게 하시고 그 후에 일하는 자로 만드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고 있다.
행13장을 보면 안디옥교회가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하여 세계복음화의 첫 삽을 뜨는 장면이 나타난다.
(행13 : 2-3)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에서 “주님을 섬긴다” 는 말은 ‘주님께 예배할 때’라는 뜻이다. 주를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 한 분만을 즐거워하면서 그분께 예배하는 삶을 말한다. 주님 앞에 나와서 예배하고 있는 안디옥교회에서 하나님께서는 세계복음화를 명령하셨다.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명령하셨다. 안디옥교회가 선교를 계획하고 이 일을 하나님께 어떻게 해 나갈까 하여 금식기도하며 모였던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하고 섬기면서 하나님께 나아갔다. 다른 생각은 버리고 온전히 하나님만 생각하고 기뻐 감사하며 나아가서, 하나님 한 분께만 집중할 때 그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의 역사가 나타났고, 시대적 사명과 교회적 사명을 허락하여 주셨던 것이다. 우리는 현재 이런저런 전략을 세워놓고 타교회의 성공사례를 열심히 연구한 후 그 전략과 계획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또한 어떤 성도가 성공했으면 그 방법을 알아낸 후 나도 그 방법을 동원해서 하나님께 간청하는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이런 류의 예배자가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만 예배하기 위해서 나아가는 삶이 우리 개인의 신앙생활에서나, 또 교회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핵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 중심의 삶이 되지 못할 때에 우리는 뿌리 없이 자란 나무와 같게 되어버린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도 잘하고 부유한 삶을 살고 자녀도 잘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께 뿌리내리지 못한 삶은 시간이 가면서 불평‧불만으로 살아가므로 쉽게 시들어 버리고 결국은 영적으로 메마르고 궁핍한 삶을 살게 된다.
(학1 :5-11)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볼지니라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볼지니라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내가 한 재를 불러 이 땅에, 산에, 곡물에, 새포도주에, 기름에, 땅의 모든 소산에, 사람에게, 육축에게,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느니라
우리의 영육의 삶에 궁핍함이 있다면 내 삶의 원칙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학개선지를 통해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예배하기 보다는 자신의 일에 분주했던 삶은 나 스스로를 어렵게 만들었고 궁핍케 해 버렸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에 우선권을 둔다면 하나님은 분명 영육간에 풍성한 삶으로 이끄실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만 바라보며 예배하는 삶에 전생애를 걸어야 하고 몸이든, 시간이든, 물질이든 예배드리는데 인색치 말고 전력하는 하나님 중심의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자를 찾으신다.
(요4: 23-24)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본문에 보면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할 때가 온다” 라고 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한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린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1) 신령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 성령으로 드리는 예배이다(worship in spirit) 성령으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① 성령의 능력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 “이는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슥4 : 6)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고 하였다. 예배는 성령의 능력으로 드리는 것이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예배하는 사람은 자기 힘으로 예배하는 사람과 다른 것이 있다. 자기 힘으로 예배하는 사람은 시간이 조금 길거나 자기 습관과 배경에 어긋나면 짜증이 나고 힘이 들거나 설교자도 못마땅하여 비평만 하게 된다. 은혜도 없고 축복도 없게 된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사람은 깊은 영적 체험을 받는 예배가 된다. 설교자가 목소리가 좋거나 인상이 좋거나 음악성이 뛰어나거나 예배 인도의 기교가 있는 것은 보탬은 되겠지만 깊은 영적교제와 은혜 충만함을 받는 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예배를 드리는 본인의 영적준비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 앞에 나와서 항상 성령으로 충만케 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②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목회자에게는 사실 예배를 드리거나 인도할 때에 어떻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예배를 드릴 것이냐 하는 것이 숙제이고 두려움이 앞서기도 한다.
이미 순서가 짜여져 있어서 어떻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순서가 짜여져 있어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순서가 짜여져 있어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한다면 성령께서 거기에 간섭하신다. 중요한 것은 성령께서 예배에 간섭하실 수 있도록 그 모든 것을 성령께 의탁해야 한다. 간섭하시도록 순서도 짜야하고 기도로 준비하며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맡겨야 할 것이다.
신령으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성령의 능력을 구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성령께서 이끄시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2)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무엇인가? 그것은 “진리 안에서” (in the truth)드리는 예배이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드리는 예배이다.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예배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이런 예배는 어느 개인의 의견에 따르거나, 어느 교파나 단체의 방법을 따르는 예배도 아니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드리는 예배이다.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할 것인가 하는 방법에 대하여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예배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자
①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하셨다. - 시145:21에 보면
“내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며 모든 육체가 그의 성호를 영영히 송축할찌로다.” 라고 한다. 내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라고 한다. 우리의 목소리로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한다.
시132:9 에서도 “주의 제사장들은 의를 입고 주의 성도들은 즐거이 외칠지어다” 라고 했고 16절에서도 “내가 그 제사장들에게 구원으로 입히리니 그 성도들은 즐거움으로 외치리로다” 라고 했다. 이 말씀에서도 우리 목소리로 하나님께 찬양하라고 했고 즐거이 외치라고 하셨다. 우리는 나의 목소리로 찬양하며 즐거이 외쳐 주님을 전심으로 예배해야 한다.
② 악기로 예배드리라고 하셨다. - 시 150:3-5을 보면 “나팔소리 찬양하라, 비파와 수금 으로 찬양하라, 소고 치며 찬양하라, 현악과 퉁소로 찬양하라,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라,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라”고 하였다. 악기들은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데 아주 중요한 도구이다. 진리로 예배하라는 말씀은 말씀 속에 계시된 방법을 따라서 예배하라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나팔, 비파, 수금, 퉁소등을 동원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성경적이라는 것이다.
가장 찬양이 활발했던 시대가 다윗왕 시대였다. 다윗왕 시대에 역 6천명의 찬양대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삼하 6:5에 보면 다윗왕은 온 이스라엘로 하여금 여러 가지 악기를 만들어서 하나님의 역사, 성품, 영광을 찬양했던 것을 볼 수 있다.
③ 손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셨다. - 시 47:1 에 보면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 라고 하였다. 시134:2 을 보면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했고 애가 3:41절을 보면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고 한 것을 보면 손을 들고 찬양하라고 하신다.
④ 일어서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하셨다(시134:1).
⑤ 엎드리거나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하셨다(시149:5. 95:6).
⑥ 춤추며 찬양하는 것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한 방법이다(시149:3, 150:4, 삼하6:14)
지금까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예배를 드리기를 원하시는지 살펴보았다.
예배드리는 방법을 보면 목소리로, 손으로, 몸으로 주를 찬양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언제나, 즉 날마다 찬양하라고 하셨다. 근심이 있을 때도, 답답할 때도, 고통이 있을때 에도, 기쁨이 있을 때에도 찬양하는 삶이 하나님을 경배한 삶인 것이다.
제2장 내 전체를 드리는 것이 예배이다(창 22: 1-5).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창 22:5하)
하나님께 경배한다는 단어가 나와 있다. 예배가 무엇인가? 아브라함은 3일길 이었지만 아들이삭과 종들을 데리고 같이 왔다. 산 아래 왔을 때 종을 그 아래에 두고 모든 장작더미를 이삭의 어깨위에 짊어지게 했다. 그리고 종들에게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고 했다. 이 때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뜻으로 자기가 가장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표현했다.
예배는 받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우리 성도들이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를 받는 시간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예배의 가장 첫째 되는 의미는 나의 가장 귀한 것, 내가 가장 아끼는 그것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다. 예배는 우리의 있는 전부를 드리는 것이며 헌신하는 것이다.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다.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히13:5절을 보면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예배를 제사로 표현한 것은 희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마치 모리아산에서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을 드리는 것과 같다. 예배는 희생을 드리는 제사이다.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이 예배이므로 그 예배를 찬미의 제사를 드린다고 말한 것이다.
예배는 그러므로 받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이다.(롬12:1)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는 예배는 어떤 것일까?
(1)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한다.
(2) 우리의 찬양을 드려야 한다.
(3) 우리의 물질을 드려야 한다.
(4) 전도(선교)하는 것이다.
결론
내가 하나님 앞에 서는 것 그 자체가 예배의 근본이다.
하나님을 섬기고, 성도를 섬기고, 세상을 섬기는 것 모두가 예배이다.
예배는 지식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예배하는 사람을 찾으신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사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전심으로 하나님께 향하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 나의 삶이 하나님께 드려져서 귀한 예배가 되는 길이 열리도록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