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당일 날 전화를 받고 몸을 움직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지난 금요일(11월 11일), 빼빼로데이 날이었다. 서부교회 조동환 장로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상주교회 조양남 목사님 사모님의 졸업작품전에 다녀오자고 했다. 지난 주 조 장로님과 점심 식사를 함께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 중, 조만간에 상주교회 한 번 가자는 말이 채 식기도 전에 받은 전화여서 가부를 결정하는 데 그렇게 어려움이 따르지 않았다.
시간에 맞춰 조 장로님 아파트 주차장으로 가니 벌써 마당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 차를 주차하고 조 장로님 차로 가자는 것을 그럴 필요가 없다며 내 차에 타시라고 했다. 아파트 밑 꽃집에 들려 주문해 놓은 축화 난을 차에 실었다. 분홍색 리본에는 '졸업작품전을 축하합니다.', '서부교회 조동환 장로'라고 씌어 있었다. 그는 이 난이 넘어져 혹시 꽃이라도 훼손될까봐 두 손으로 정성껏 모시고(?) 갔다. 상주 교회에 도착하니 조 목사님이 입구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상주교회 목양실은 들어갈 때마다 환한 느낌을 받는다. 아마 미적 감각을 소지하고 있는 사모님의 안목이 많이 작용한 분위기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잠깐 커피를 들면서 환담을 나누었다. 여러 가지 말들이 오갔지만 우리의 이야기 중심은 늘 하나님이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더 잘 섬길 수 있을지, 또 그분의 뜻에 따라 이웃을 더 잘 사랑할 수 있을지가 중요한 대화의 주제가 된다. 전시회장은 문경시민문화회관이라고 했다. 출발하면서 조 목사님은 나에게 책을 한 권 선물로 주었다. <2012년 성결교회 설교핸드북>이었다.
내 차는 두고 상주교회 승합차에 몸을 실었다. 그 교회 성도님들 몇 분도 동행했다. 이런 전시회엔 인사치레의 생각만으론 가기 어렵다. 예술, 미술, 도예에 대한 평소의 관심과 심미안(審美眼)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걸음 할 수 있는 행사이다. 입구에서 방정용 사모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전시회 첫날, 개막식이 있는 날이어선지 관람객들로 붐볐다. 나는 입구에 비치되어 있는 방명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제11회 문경대학교 도자기공예과 졸업작품전을 축하합니다. 김천덕천교회 李明在 牧師" 난 이런 곳에 오면 이상한 병이 발동한다. 내 이름과 '목사'라는 직함을 한자(漢字)로 쓰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것도 예술을 향한 몸짓으로 생각하기라도 하듯.
졸업전시회에는 다양한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흙으로 만든 각종 작품들이 주인공들의 2년 노력의 결정(結晶)이라고 생각하니 눈이 더 오래 머물게 되었다. 십자가 상, 기도하는 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성경전서 등의 작품들은 목회자인 내게 특별히 관심이 가는 것들이었다. 이 중 '성경전서'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우리의 호스트가 되는 상주교회 방정용 사모님의 작품이었다. 이런 데 오면 이상하다. 처음 보면 얼굴도 그렇게 친근할 수가 없는 것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오랜 지기들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되어서 개막식이 열렸다. 차려 놓은 다과상을 중심으로 주객(主客)이 하나 되어 모였다. 전면에는 교수들이 자리해 섰고, 졸업 예정자들은 맞은 편 앞자리에, 그리고 관람객들은 좌우와 뒷면에 죽 자리를 잡았다. 총장 인사말과 격려사가 있었다. 그가 여러 말을 했을 터이나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밀레니엄 빼빼로데이에 졸업작품전을 열게 되어 의미가 크다'는 말이다. 이어 그는 '밀레니엄 빼빼로데이는 천 년 만에 한 번 돌아오는 날'이라고 했다. 숫자 '11'이 세 번 겹쳐 있는 날이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이어 지도교수인 유태근 교수의 인사와 담당 교수 소개가 있었다. 문경대학교에 도자기공예과가 있다는 것도 나는 처음 알았고, 그 과에 도자뿐만 아니라 사군자, 핸드페인팅, 생활 골프, 물레성형, 다도 심지어는 풍수지리라는 과목까지 개설되어 있는 데 놀랐다. 전통 도요지(陶窯址)가 많은 문경의 지리적 특성을 살려 도예를 실용 및 연구의 영역까지 감당해 간다면 이 방면에 기여하는 면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해 보았다.
상주교회 조양남 목사님의 건배사 후 우리는 준비된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간식용으로 장만한 음식들이었지만 조 장로님과 나는 저녁 식사까지 겸해서 비교적 음식에 젓가락을 자주 갖다 댔다. 김밥, 떡, 빵, 홍어회, 과일에 전통 다도로 뽑은 '차'까지 우리의 구미를 돋우는 식물(食物)들로 가득했다. 그 중 한 중년 여성분은 자신이 직접 만든 홍어회라며 특별히 권하는 바람에 손가락으로 ‘넘버 원’을 그려 보이며 맞장구를 쳐 주었다. 주고받는 얘기들이 정감이 넘쳐 좋았다.
그날 개막식 사회는 상주교회 방정용 사모님이 맡았다. 매끄럽게 진행하는 말솜씨에 조 장로님과 나는 엄지손가락을 치켜 보이며 '사회 짱'임을 표시해 주었다. 조 장로님은 교회 사모님들은 보고 듣는 것이 많기 때문에 행사의 사회도 잘 본다며 덕담을 아까지 않았다. 방 사모님은 만학(晩學) 중 만학으로 졸업생 중 제일 연장자라고 했고, 따라서 이번 졸업 전시회에 총괄을 맡아 진두지휘로 책임을 맡아 행사를 잘 준비해왔다고 한다. 문경대 총장은 신영국이란 분이다. 문경에서 교직 생활을 했던 조 장로님은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국회의원을 지낸 바가 있고 지금은 대학 총장으로서 경영 일선에서 학교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오후 5시 쯤 개막식을 했으니 우리가 전시회장에 머문 시간은 2시간 가까이 되어 갔다. 그 사이 몇 명의 아는 목회자들을 만났다. 그들도 상주교회 사모님의 졸업전을 축하하기 위해 발걸음을 한 사람들이다. 간식을 충분히 들이켰기 때문에 저녁 식사 생각이 별로 없어서 그냥 돌아오려 하다가 상주의 한 굴밥 집에 들려 식사를 했다. 그야말로 식탁 교제이다. 상주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한 저녁 식사여서 더 신선했다.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엔 식탁 교제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예수님도 3년 공생애 기간 동안 이 방법을 애용하셔서 많은 무리를 교회시키셨다.
만학은 분명 힘든 일이다. 하지만 힘든 만큼 의미가 결코 적지 않다. 목회의 조력자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면서 겸하여 공부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런 속에서도 묵묵히 참아내며 젊은 사람들과 함께 공부해서 졸업을 하게 되는 방정용 사모님에게 축하를 보낸다. 그리고 외조를 아까지 않은 조양남 목사님에게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만학의 기쁨을 누리는 데는 상주교회 성도님들의 보이지 않는 도움도 있었을 것이다. 도예가로서의 달란트를 살려 하나님의 일을 살찌우게 되기를 바란다. 다시 한 번 졸업전시회를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