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검찰청 바로 옆에 있는 식당에서 먹었다. 가정집인데 생콩으로 만든 된장국이 일품이다. 장소가 협소해서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도 11시 이전에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예약을 받지 않는다.
자, 이제 점심도 맛있게 먹고, 근무시간까지는 30여 분 남았으니 몇 줄 끼적거려 볼까. 미리 양해를 구하건 데, 오늘 글은 그냥 그렇고 그런 글이다. 구태여 생각해서 읽을 필요도 없다.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면 된다. 그런 까닭에 나도 정성을 들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붓 가는 대로 썼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긴 하다.
그게 바로 수필(隨筆)이라고 말이다.
지난 월요일 아침이었다. 직원들이 서로 추석을 잘 지냈느냐며 인사를 나눈다. 나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직원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어떤 직원한테는 미소를 보내기도 했다. A 계장이 내게로 왔다. 그가 나한테 잘 지냈느냐며 인사를 건넨다. 나는 웃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런데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아무래도 좀 더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는 게 나을 것 같다.
"성묘는 다녀왔습니까?"
"성묘가 다 뭡니까. 배가 아파 죽겠는데요."
그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음식을 잘못 먹어서 배탈이 난 걸까. 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그가 이내 씩 웃었다. 아프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럼 다행이다. 그렇다면 뭘까. 내가 궁금한 표정을 짓자 그가 입을 열었다.
"인근 김해 지역에서 로또 1등이 나왔다지 않습니까."
"그래요?"
"당첨금이 무려 53억 원이랍니다."
"그 사람, 한방에 인생을 역전시켰구먼."
"거기가 어디냐면 말이지요. 0단독 B실무관 집 앞 가게에서 나왔답니다. 지금 그 가게 앞에는 로또를 사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답니다."
"거참…. 세상에는 요행을 바라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에구, 배 아파. 53억, 53억…."
그가 부러 찡그리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의 표정이 우스꽝스러웠다. 그는 평소 로또 같은 사행성 산업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우스꽝스럽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그때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재판을 하고 있었는데, 당사자들이 출석을 하지 않아서 10분 정도 휴정을 했다. 판사가 잠시 법정을 나섰다. 법정에 방청객은 없었다. 재판에 참여한 사람들만 법정에 남아 있었다. 검사가 심심했던지 바로 옆에 앉은 속기사에게 말을 건넸다.
"세상에는 별 희한한 사건이 다 있습니다."
그러나 속기사는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전방만 주시하고 있었다. 검사가 무안해 할 것 같아 내가 그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순간 검사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자기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크게 고무된 것 같았다.
"○단독에서 재판을 할 때였습니다. 무고사건인데 증인으로 나온 사람이 얼마나 화가 났던지 피고인을 가리키며 마구 욕을 퍼부어 대는 것이었습니다. 사연인즉 이렇습니다. 증인은 로또에서 1등으로 당첨이 되었는데요. 갑자기 부자가 된 그는 이내 방탕생활에 빠졌습니다. 결국 얼마 못 가서 상금을 모두 탕진하고 남의 물건을 훔치다가 붙잡혀 실형을 선고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 번의 불행이 그에게 닥쳤습니다. ○○교도소에서 수형생활을 하고 있는데, 생면부지의 사람한테 횡령죄로 고소를 당한 겁니다. 고소 내용은 자기가 당첨금을 횡령했다는 겁니다. 고소인이 그에게 로또를 사 주었는데 그게 당첨이 되었고 마땅히 절반씩 나눠야 하는데 혼자 독차지했다는 겁니다. 결국 사실무근으로 밝혀졌고 고소인은 무고죄로 구속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건 증인으로 나오게 된 것이고요."
나는 그때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구나 하면서 많이 웃었었다. 로또, 상당히 매력적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사행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인생역전을 위해 한방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걸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이 복권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나라들보다 당첨률이 형편없이 낫다는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복권을 산다. 경제불황기에는 더욱 그렇다.
나는 로또가 뭔지 잘 모른다. 한 번도 사본 적이 없다. 그래서 네이버에서 '로또'를 검색해보았다. 나는 놀랐다. 로또와 관련된 카페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로또리치, 로또박사, 로또일보, 마이고로또, 베스트로또….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희망이 자꾸만 쪼그라드는 사회이다 보니 사람들이 ‘로또’ 같은 사행성에 빠져드는 것 같다. 로또 공화국, 나는 지금 민주공화국이 아닌 로또 공화국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이다. 물론 그것 말고도 이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