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를 올려도 될까요? ^^;;;;
간만에 가슴 따뜻한 연극이 있어 공유하고자 합니다.
가을에 잘 어울리는 연극 리뷰 시작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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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
행복해보이는 위의 사진만봐도 저절로 웃음이 난다.
허나 속지 말아야 한다. 이 연극은.. 분명 비극이기 때문이다.
서울문화재단 무대공연 제작지원사업 선정작, 문예진흥기금 연극부문 창작황설화 사후지원 선정작, 거창국제 연극제 희곡상 수상작, 전문연 우수공연 선정 작품...
뭔가 전적이 화려하다. 입소문 또한 화려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는 말이 있듯 실망할 수도 있으니 그냥 기대하지 말자... 편히 보자... 다짐하고 공연장에 들어섰다.
향토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정감가는 무대와 친숙한 듯한 구전 동요(?)가 마음을 편안히 해준다.
플롯은 간단하다.
암에 걸린 자식을 둔 무식한 부모가 친척들의 도움으로 살다가 그들이 지쳐 나가떨어지자 벼랑끝에 선 무능력한 아버지가 자식을 위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식 사랑을 표현하는 이야기.
그 방법은 차차 얘기하도록 하자.
개인적으로 창작 뮤지컬이나 창작 연극을 좋아한다.
우리네 정서와 너무도 잘 맞기 때문이다. 명작에 대한 무게감이나 중압감이 없어 좋다.
이 작품 또한 우리에게 대중적으로 다가왔기에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작품은 캐릭터 플레이가 잘 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주인공인 아버지는 정신지체자인으로 무능력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대사가 별로 없다.
그래서 역할도 별로 없다. 하는 짓이라고는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거나 술을 마시거나 이들을 쳐다보는 게 다다.
말도 어눌해서 한마디 들을라치면 속이 다 터진다.
이렇게 역할이 없는 캐릭터가 주인공이라니...
클라이막스에서조차 그는 대사를 아낀다.
아버지... 딱 이 한마디다.
극작을 공부하면서 클라이막스에서는 말이 없다. 라고 배운 적이 있긴 하지만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허나.. 이 극을 보며 알았다.
아!!! 클라이막스는 말이 정말 없구나!!!
이 클라이막스를 보여주기 위해 주절주절 떠들며 라스트를 향해 달려왔던 것이구나.. 라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작가의 치밀한 계산이 아닐 수 없다.
무대를 휘젖고 다니는 엄마가 아닌 아빠가 주인공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무거운 주제일수록 분위기는 희극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관객들이 그것에 속아 비극적 결말을 지켜보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희극적인 역할을 여기서는 엄마인 김붙들이 한다.
이 배우.. 정말 연기 잘한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는 배우다.
배우 염혜란씨!
시종일관 무대 위를 휘젖고 다니며 김붙들보다 더 김붙들다운 완벽함을 보여줬다.
방방 뛰어다니며 사고를 치고, 사건을 만들고, 분란을 만들고....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너무도 사랑스러운 캐릭터임에 분명하다.
이 두 부부는 무식한데다가 까막눈이어서 아들 선호 없이는 글자도 못읽고 숫자고 못 센다.
또 아픈 선호를 돌보는데 있어서도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다.
정신적인 지주인 이모와 금전적인 지주인 형님네 부부.
허나 질퍽한 삶의 무게가 무겁기는 이들도 마찬가지. 결국 이들은 선호네 가족을 버리고 각자의 살길을 찾아 떠난다.
그래도 씩씩한 엄마는 아들 선호를 데리고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으로 향한다.
그것이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엄마의 최선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빠는 교회로 간다.
그리고는 가진 것 전부를 봉헌함에 넣는다. 평소 선호의 손톱을 깍아주던 사랑스런 손톱깍이마저도.
기도가 뭔지도 모르는 그이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전부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를 하려 하지만 얼굴만 일그러질 뿐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울부짓음 속에 우리는 알 수 있다. 그의 간절한 기도가 어떤 것인지를...
말로 하는 그 어떤 기도보다 더욱 간절하다는 것을...
극 중 여자 아이가가 중간중간 나와 이들 가족 곁을 맴돌며 노래하는 장면이 있다.
그녀는 바로 선호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간 선호 누나다.
고인의 물건을 태우지 않고 하나라도 가지고 있으면 영혼이 하늘나라로 못가고 인간세상을 떠돈다는 미신을 믿고 있는 아빠는 붙들네가 몰래 간직하고 있는 딸의 사진이 마음에 걸린다.
태워야 딸이 하늘나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말에 붙들네는 말한다.
선호병이 다 낳고 나면.. 그때 태우게 해달라고..
조상이 자손을 돌본다는 말이 있듯 우리 딸이 선호 곁에서 지켜줄거라는 말에 아빠는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붙들네와 선호를 병원에 보낸 후.. 교회에서 그는 딸의 사진을 태워버린다.
편히 쉬어라... 이제부터 내가 선호를 지킬테니...
살아있는 목숨인 선호만을 생각하는 엄마의 모성애보다 한층 깊은 부성애가 느껴지는 대사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터져나오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훌쩍이기에 바쁘다.
솔직히 이 클라이막스 전까진 좀 루즈한 감이 없지 않았다.
또 작은 공간에서 퉁탕거리며 싸우는 소리는 내 약한 고막을 자극했고,
그들 가족을 막장으로 몰고가는 과정이 징글징글한 삶과 연관이 되어져 답답함이 전해졌다.
그들 연기는 너무도 좋았지만... 질퍽한 삶의 무게에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허나 연극이 클라이막스에 도달하자 이 모든 건 씻은 듯 용서 되었다.
바로 이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 퉁탕거리며 달려온 것이다.
한방~~
단막의 한방을 제대로 보여준 연극이다.
클라이막스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고마운 연극.
첫댓글 한방~ 한방이면... 그 한방... 좋은 글입니다. 감사히 잘 읽었어요. ^^
연극 이야기방도 있어야 할 것 같아요. ^^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