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서커스 ‘루치아’를 보았다.
황지은
429hwang@daum.net
서울 사는 여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서커스 ‘루치아’를 보겠느냐고 물었다. 망설이지 않고 ‘좋아‘ 라고 대답했다. 잠시 후, 핸드폰으로 설날을 한 주 앞둔 공연 티켓과 기차표를 보내왔다. 공연 장소는 부산이었다. 동생은, 기차표가 매진되었다며 비행기로 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 서커스를 꼭 보고 싶었는가 싶었다. 어떤 서커스이기에?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를 검색했다. 공연회사는 캐나다에서 창립한 거대 공연기업으로 연 매출 10억 달러까지 올린 서커스의 대명사라고 했다. 각각 다른 이름으로 개발한 44개의 프로덕션을 갖고 있으면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연하고 있었다. ‘루치아’는 그중 하나로 멕시코 관광청이 자국의 문화와 관광을 홍보하기 위해 제안하고 제작비를 지원해 만든 작품이라고 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중심에는 ‘태양의 서커스. 쇼’를 공연하는 상설 극장이 있다. 최고 경영자가 서술한 <균형잡기의 기술>이라는 책까지 출간되었다. 관람을 앞두고 호기심이 일었다. 구해서 읽었다.
서두에 ‘기업가든 회사의 임원이든 어느 분야의 전문가든 창조성을 우선시하지 않는다면 그건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라고 했다. 창조성 대목에서 나의 수필 쓰기를 생각했다. 다음 장은 회사가 파산보호 신청했던 얘기였다. 그 유명한 회사가 단 며칠 만에 전면 중단되어 수입원이 끊겼다니 궁금했다. 원인은 코로나19였다. 쇼 공연을 모두 중단시켜야 했다. 매출이 아예 없어졌다. 그 무렵 세계 13개국 도시에서 공연하던 출연진과 스태프 모두를, 총 30개 국가에 이르는 각자의 고향으로 즉시 돌려보내야만 했다. 각각의 투어 프로덕션에 필요한 엄청난 양의 장비를 보관할 창고를 구하는 일도 난제였다. 쇼 하나의 장비만 해도 대형 컨테이너 50개에 이른다니 그 엄청난 규모가 상상되었다. 나라마다 국경을 닫아걸고 비행기 표마저 구하기도 힘든 실정이었다. 엄청난 비용을 감수하면서 겨우 마무리는 했다. 수입은 없는데 다시 시작하기까지 회사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지키는 일이 큰 난관이었다. 직원 5천 명 가운데 최소한의 인원만 남기고 해고하는 아픔을 겪었다. 힘은 들었지만 모두 건강보험만은 유지토록 했다. 단원들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다른 일을 하면서도 회사를 믿고 창조적인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파산보호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다행히 투자자들이 나섰다. 부동산 담보물 하나 없는 ‘태양의 서커스’ 브랜드 이름을 믿었다. 투자자들은 거금을 들여서 채권자들로부터 회사를 인수했다. 사업가의 윤리와 책임감은 투자자의 마음을 움직였고 끝내 예술공연을 지켰다.
백신이 개발되고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 ‘태양의 서커스’도 세계 곳곳에서 공연을 재개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공연을 성황리에 마치고, 부산에서 센텀 시티 야외주차장에 빅 탑을 설치해 3주간 모두 31회 열렸다. 관람객 중 절반은 외지에서 왔다. 동생은 손자를 데리고 와서 우리와 함께 해운대에서 묵었다. 호텔에 빈방이 없을 정도로 그 지역 일대는 호황이었다. 서커스 공연장은 객석이 가득 차 영하의 날씨에도 열기로 훈훈했다. 좌석은 무대를 중심으로 원형의 계단으로 배치되어 시야가 훤했다. 무대는, 멕시코를 상징하는 거대한 태양을 뒤편에 두고 석양 아래 그림자가 드리운 선인장, 거대한 용설란, 마야 정글을 배경으로 곡예사가 공중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줄거리에 맞게 그때그때 배경이 바뀌었다.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묘기와 화려하고 세련된 의상으로 연기를 펼쳐 몰입하게 되었다. 높은 천정에서 만 리터나 되는 물이 쏟아져 비와 폭포를 연상시켰다. 워터 커튼에 환상적인 장면이 나타나고 무희가 물를 맞으며 멋진 춤을 추면서 막을 내렸다. 물은 바닥에 닿는 대로 순식간에 사라지는데 연결된 배수로에 모이면 정수해서 다시 사용한다고 했다. 곡예, 춤, 음악 그리고 연극적인 스토리텔링과 다양한 분야를 결합한 종합 예술적인 아트 서커스였다. 그림으로 치면, 액자에 넣었을 때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느 한 곳 허술한 부분이 없이 아름답다고 하겠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싱크로나이즈, 서커스, 수영, 발레 등 여러 장르가 조합되어 하나의 완벽한 쇼로 구성된 ‘태양의 서커스. <오>쇼’를 본 적이 있다. 그때는 보는 순간만을 즐겼다. ‘엄청나다’ 라는 것 말고는 특별히 남은 기억이 없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이번에는 책을 읽어 자세한 내용을 알고 보니 이해가 되었다. 작품 하나를 창조하여 무대에 올리기까지 3년이나 걸린다니 그들은 얼만 큼의 땀을 쏟았을까? 노고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부산에서 2030년까지 정기 공연계획을 예정하고 있다. 언젠가는 우리나라 문화를 바탕으로 한 ‘태양의 서커스 쇼’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소망도 가져보았다.
동생은 명절 선물로 서커스를 보여주고 손자에게는 나에게 세배를 하라고 했다. 여덟 살 된 동생의 손자는 어리게만 보았는데 태도가 의젓하여 무척 대견했다. 아이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어 어른을 감탄하게 한다. 좋은 추억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고 관심과 노력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동생의 따뜻한 마음을 새삼 느꼈다. 나도 기회를 만들어 기억에 오래 남을 아름다운 추억 한 편으로 남기고 싶다.
첫댓글 황지은 수필가님의 작품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를 보았다>.를
잘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관심 갖고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황지은 수필가님의 수필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잘 읽었 습니다
카페를 방문하시고
또 좋은 작품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 부족하여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