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스타, 그대들을 위하여≫
이향영∣ 문학의식∣ 2020
가히 트로트의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인 ‘내일은 미스트롯’의 열풍에 이어 ‘내일은 미스터트롯’의 광풍으로 한국 대중음악은 트로트의 절정에 도달하였다. 트로트라는 장르로 진행된 오디션에 참가자들이 보여준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숨겨진 명곡들이 터져 나오고 성악과 마술, 태권도와 에어로빅, 삼바춤과 폴댄스 등 다양한 장르와 접목하여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트롯맨들의 인기는 세대의 벽을 허물고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며 유튜브와 SNS 등 OTT를 선호하는 젊은 시청자들까지 텔레비전 앞에 앉게 하였다. 가슴을 후려치는 음색에 눈물을 흘리며 버라이어티한 무대를 선보이는 열정의 퍼포먼스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었다. 그들의 공연 무대는 매회 새로운 신화를 탄생시켰고 무엇보다 세계적 팬데믹 현상인 코로나를 견디게 만들었다. 왕관의 주인공이 정해지고 나서야 경연은 종지부를 찍었다.
한국인의 신명의 역사는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왔다. 천신을 섬기는 제천행사를 하면서부터 신명의 유전질을 춤과 음악으로 풀어내었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에도 우리 민족은 한번 놀기 시작하면 술 먹고 고기 먹고 춤추고 노래하며 사흘 밤낮을 보낸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한 흥취가 오늘날 대중음악과 접목되어 트로트라는 가장 한국적인 노래가 탄생된 것이다. 트로트 음악이 공동체 축제에는 풍류로 즐겼지만, 식민시대와 전쟁의 아픔을 겪으면서 눈물과 이별로 한恨을 달래주었다.
코로나팬데믹 시대인 지금은 어떤가. 마치 14세기 유럽을 휩쓴 흑사병의 대재앙이 떠오르는 불안한 날들이다. 당시 중세인들은 악을 버리고 선한 일을 하며 죄를 자백하는 종교적 믿음으로 전염병의 충격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이 어려운 시기에 대한민국은 뜻밖에도 트로트 음악이 국민들에게 위안과 용기를 주고 있다. 바로 그 중심에 ‘내일은 미스터 트롯’이 배출한 트롯맨과 그들의 노래가 있다.
흑사병의 초토화를 목격한 이탈리아 작가 보카치오는 당시의 고통 받는 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10일간의 이야기’라는 의미의 ≪데카메론≫을 집필했다. 그의 작품에서 인간은 불행을 맞닥뜨리게 되어도 체념하거나 굴하지 않으며, 맞서 싸워 지혜로 살아남는 개척자로서의 인간상을 그려내었다. 작가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 아닌가. 동시대의 흐름을 포착하여 언어의 지문을 찍어내는 일이 작가의 운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작가정신이 많은 문인으로 하여금 책상 앞에 앉게 만들었다. 복잡한 일상을 잠시 접어두고 신명나는 글판 속으로 환승할 수밖에 없다.
대중문화는 대중의 기호가 우선이다. 대중의 지지는 곧 인기와 연결되므로 대중의 위상 또한 강화되어 사회적 세력의 중추적 존재로 부상했다. 영화와 음악과 연극, 미술 등 심지어 비상업 분야인 학술 연구에까지 다양하게 대중문화가 접맥되고 있으며 문학 역시 자연스레 수용하게 된다. 문학이란 사회적 분위기를 외면할 수 없으므로 작가들은 대중을 의식하면서 창작활동을 이어가게 마련이다.
그 결과 현시대의 대세인 트로트가 문학적 변용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과묵하던 작가들도 스스로 ‘찐팬’이라 지칭하면서 여기저기 트로트를 소재로 한 글이 쏟아져 나온다. 작가들이 대중의 문화적 기호에 천착하게 되면서 트로트를 창작의 제재로 차용하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이향영 작가는 외아들을 잃은 아픔을 딛고 “아들에게 글을 쓰듯, 노래 가사와 시의 형식을 빌려 미스터트롯 7명에게 편지를 썼습니다.”라는 모성애적 응원을 담아 ≪미스터트롯, 그대들을 위하여≫를 상재했다. 아울러 각종 신문과 잡지에서도 지금까지 꾸준히 트로트를 소재로 한 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소녀팬이나 삼촌팬들이 아이돌 가수에게 보여준 맹목적인 이성적 우상론과는 구별된다. 스타를 추종하는 절대적인 환호와 열광의 수용자에서 벗어나 참여자로서의 변화를 시도한 것이다. 그동안 그림이나 웹툰, 블로그와 동영상 그리고 팬픽fanfic이라 부르는 소설 등으로써 팬덤문화가 생산되었지만, 작가의 참여는 문학과 트로트의 결합이라는 독창적인 팬덤 양식을 탄생시킨 것에 의의를 둘 수 있다.
작가들뿐만 아니라 방송사와 가수들도 문학판에 환승하게 되었다. 트롯맨들이 출연하는 한 방송사에서는 시청자들이 시, 시조, 수필 등 문학 작품으로 사연을 직접 편지로 쓰게 하는 ‘문학의 밤’을 마련하였고, 트로트 가수 주현미는 QR코드를 찍으면 책을 읽으면서 명곡들을 감상할 수 있게 한 음악 오디오와 글이 결합된 ≪추억으로 가는 당신≫을 발간하였다. 거슬러 오르면 신라 시대 사람들이 부른 향가 역시 대중가요와 다를 바 없고, 그 노랫말을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기록한 향찰 또한 기록 문학 작품이므로 문학과 대중가요와의 교접 역사는 음악의 기원부터 시작됨을 알 수 있다.
‘트롯맨’이라는 타이틀은 이제 명실공히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전무후무한 경연 무대를 가진 참가자들 덕분이다. 같은 곡도 트롯맨이 부르면 인기곡이 되고, 묻혔던 곡도 그들이 노래하면 명곡으로 재탄생된다. 저마다의 개성과 매력을 가진 트롯맨들이 시청자들을 압도한다. 방송사마다 트로트 음악을 다채롭게 풀이해 내며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을 선보인다. 트롯맨들의 무대는 뉴스와 광고, 예능과 콘서트 등으로 확장되어 대중문화 콘텐츠를 확장시켜나가고 있다.
전 국민을 상대로 신청곡을 불러주는 프로그램만 보더라도 수천 통의 전화가 걸려 오고, 전국 투어 콘서트 예매는 발매 시작과 함께 전석 매진을 기록하는 놀라운 티켓파워를 보여주었다. 출연 영상 조회수가 수직상승하며 관련 기사의 응원 댓글은 봇물을 터트렸다. 트롯맨들은 음악 장르와 함께 팬덤 문화까지도 긍정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경쟁 가수를 비방하기보다는 박수를 보내고 자신의 가수에게 더 열광하는 것으로 응원 풍토도 변모했다. 스타를 위하여 전염병 기부금을 내고 팬 이름으로 다양한 봉사를 한다. 오직 노력으로 지금의 자리를 이루어낸 그들의 열정에 진정으로 감동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트로트의 예술적 품격은 편협하게 판단되어져 왔다. 신파적이고 촌스러운 중년 음악이라는 선입견을 가졌거나, 왜색적이며 천박하다고 여겨 일명 ‘뽕짝’으로 비하했다. 끊임없이 대중의 취향을 의식하며 변화와 발전을 거듭했지만 가요계의 지각 변동을 일으키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한 트로트가 기성세대층이 즐기는 소수성에서 벗어나 전 국민이 몰입하는 다원성을 지니게 되었다. 이제 보통사람이 즐기는 ‘대중음악Popular Music’으로서 당당히 자리 잡은 것이다.
스타의 골수팬들이 포털사이트에 하트를 날리며 인기투표를 하고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을 하듯이, 각 문예지마다 작가들이 트롯맨들을 위한 헌시로서의 글이 쏟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통의 삶을 견딘 작가들 스스로에게도 트로트라는 대중문화가 회복과 재생의 시간이 된 까닭이다.
문학이란 자아와 대상과의 교접을 통해 서사를 재구성해나가게 된다. 대중문화 시대에 대중의 활용과 기호에 맞게 트로트가 변천하듯이 문학 역시 위계적이고 권위적인 문화를 넘어 자율적인 융합으로 지평의 확장이 필요하다. 다만, 무조건적으로 저급한 대중문화에 편입되거나 진지한 모색 없이 추종한다면 문학의 본질이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작가 스스로 탄탄한 문학성과 심층적인 작가의식을 갖고 대중문화를 선별 수용할 때 문학으로서 소통과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 김정화 리뷰에세이 ≪말 이상의 말, 글 이상의 글≫에서
첫댓글 저 역시 트로트를 아주 좋아하는 편입니다. 혼자서도 가끔 흥얼거리기도 하는데 확실히 리듬도 그렇고 노랫말도 그렇고 많은 위로가 되더군요. 청년세대가 트로트를 멋지게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론 대견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뭐든지 대세라는 이름 뒤에는 부작용도 있을 겁니다. 언제 그랬냐 싶게 기세가 꺾일 수도 있겠고요. 뭣보다 노랫말에 담긴 시대적 삶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라서 그런지 기교나 가창력에선 나무랄 데 없는데 깊이 면에서는 좀 아쉽기도 하더군요. 그런 아쉬움이 들던 차에 불과 25세에 불과한 조명섭이라는 청년이 부르는 걸 보고 정말 깜놀했었네요. 이것 그야말로 트로트를 따라 부르는 게 아니라 숫제 그 시대로 돌아간 느낌...ㅎ
저는 개인적으로 남인수나 이난영 특유의 음색을 가장 좋아합니다. 마치 선술집의 찌그러진 라디오에서나 흘러나올 법한 그런 구슬프고 애달픈 목소리죠. 그런 곡을 볼륨을 줄이고 듣고 있으면 때로는 시상이 떠오를 때도 있고요. 그러고 보면 트로트는 흘러간 노래가 아니라 흘러온 노래일 겁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foIXNY73VI&t=2s
PLAY
"트로트는 흘러간 노래가 아니라 흘러온 노래일 겁니다."라는 글귀에 진하게 공감합니다. 저도 트로트는 한 가락 합니다~~~ㅎㅎ
남편이 유달리 트로트를 좋아합니다. 저또한 어깨너머로 한 곡조, 두 곡조 듣다보니 순간 필이 꽂히는 노래가 있더군요. 조명섭 가수도 그 중의 한 명입니다. 약관의 나이에 저렇게 트로트의 감성과 묘미를 살릴 수 있을까 매번 감탄합니다.
정말 트로트 팬덤시대입니다. 유명 트로트 가수의 행사비를 보고 깜놀했습니다. 그 엄청난 경쟁을 뚫었지만 그래도 괴리가 드는 액수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목련님도 트로트를 좋아하시는군요.
요즘 젊은 트롯맨들, 참으로 매력적이지요.
몸값도 꽤 올랐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