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키모스의 모략으로 유다와 니카노르가 갈라지다
니카노르와 유다가 서로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안 알키모스는 그들이 맺은 조약서를 들고 데메트리오스 임금에게 가서, 니카노르가 나라의 반역자인 유다를 후계자로 삼았으니 국책에 반대되는 일을 꾸민 것이라고 말하였다. 임금은 화가 났다. 이 간악한 자의 중상모략에 넘어가 흥분한 그는 니카노르에게 편지를 보내어, 그 조약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서 마카베오를 결박하여 안티오키아로 즉시 보내라고 명령하였다. 이 명령이 니카노르에게 전해지자, 그는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사람과 맺은 협약을 무효로 하게 된 데에 당황하고 슬퍼하였다. 그러나 임금을 거역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어떤 계략을 써서 그 명령을 이행할 기회를 엿보았다. 그런데 마카베오는 니카노르가 자기를 전보다 냉정하게 대하고 일상의 만남에서도 전보다 거칠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서, 그렇게 냉정한 태도에는 별로 좋지 않은 까닭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적지 않은 수의 군사들을 모아서 니카노르를 피하여 숨어 버렸다.
마카베오가 자기를 감쪽같이 속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니카노르는 거룩한 대성전에 가서, 일상의 제물을 바치고 있는 사제들에게 유다를 넘기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사제들은 맹세를 하며 니카노르가 찾고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하였다. 그러자 니카노르는 성전을 향하여 오른손을 쳐들고 이렇게 맹세하였다. "너희가 유다를 결박하여 넘기지 않으면, 나는 이 하느님의 성역을 땅바닥까지 무너뜨리고 제단을 허문 다음, 여기에 디오니소스를 위하여 찬란한 신전을 짓겠다." 이러한 말을 하고 그는 떠났다. 그러자 사제들은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쳐들고, 우리 민족의 항구하신 보호자께 탄원하였다. "주님, 당신께서는 아무것도 필요 없는 분이신데도, 당신께서 머무르실 성전이 저희 가운데에 있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거룩하신 분, 모든 거룩함의 근원이신 주님, 정화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집이 영원히 더럽혀지지 않도록 지켜 주십시오."
라지스가 유다교를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다
예루살렘의 원로들 가운데 라지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니카노르에게 고발 되었다. 그는 동족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평판이 아주 좋고 인정이 많아 '유다인들의 아버지' 라고 불렸다. 전에 항쟁이 일어났을 때, 그는 유다교를 고수한다는 고발을 당하였다. 그는 신변과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유다교에 모든 열성을 바쳤던 것이다. 니카노르는 유다인들에 대한 적개심을 분명히 보여 주려고, 오백 명이 넘는 군사를 보내어 그를 체포하게 하였다. 그를 체포하면 유다인들이 타격을 받으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탑을 막 점령하려고 할 즈음 병사들은 안뜰 문을 밀치면서, 불을 가져다가 그 집 문들을 태워 버리라고 소리 쳤다. 이렇게 사방으로 포위당하자 라지스는 자기 칼 위로 엎어졌다. 악한들의 손에 넘어가 자기의 고귀한 혈통에 합당하지 않은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고귀하게 죽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라지스는 전투의 열기 때문에 급소를 맞추지 못하였다. 그때에 여러 문에서 군사들이 밀려들자, 그는 용감히 벽으로 뛰어 올라가 군사들 위로 대담하게 몸을 던졌다. 그들이 재빨리 물러서는 바람에 공간이 생겨, 라지스는 그 빈자리 한복판에 떨어졌다. 그런데도 죽지 않고 분노로 불타서 몸을 일으켰다. 피가 솟아나고 상처가 심한데도, 군사들을 헤치고 달려가 가파른 바위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피가 다 쏟아지자, 자기 창자를 뽑아내어 양손에 움켜쥐고 군사들에게 내던지며, 생명과 목숨의 주인이신 분께 그것을 돌려주십사고 탄원하였다. 그는 이렇게 죽어 갔다.
니카노르가 하느님을 모독하다
니카노르는 유다와 그의 군사들이 사마리아 지방에 있다는 보고를 받고, 가장 안전하게 그들을 안식일에 공격하리라고 결심하였다. 그때에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라다니던 유다인들이 말하였다. "그렇게 잔인하고 야만스러운 학살은 절대로 하지 마십시오. 만물을 지켜보시는 분께서 다른 날보다 명예롭고 거룩하게 하신 그날을 존중하십시오." 그러자 그 악독한 자는 안식일을 지내라고 지시한 지배자가 과연 하늘에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일곱째 날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분은 살아 계시는 주님, 하늘에 계신 지배자 바로 그분이십니다." 하고 선언하였다. 그러자 니카노르가 말하였다. "지상에서는 나도 지배자다.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무기를 들고 임금님의 일을 이행하라고 지시한다." 그러나 니카노르는 자기의 흉악한 계획을 이행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였다.
유다가 부하들을 격려하고 꿈에 본 영상을 설명하다
극도의 교만으로 거들먹거리는 니카노르는 유다와 그의 군사들에 대한 공공 승전비를 세우겠다고 결정하였다. 그러나 마카베오는 주님께 도움을 받으리라는 큰 희망과 항구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 군사들에게, 전에 하늘에서 내린 도우심을 명심하여 이민족들의 공격을 겁내지 말고, 이번에도 전능하신 분께서 그들에게 승리를 주실 것으로 기대하라고 격려하였다. 그는 율법서와 예언서의 말씀으로 그들의 용기를 북돋우고, 또 지금까지 이겨 온 전투들을 상기시켜 그들의 사기를 드높였다. 이렇게 유다는 사기를 북돋아 주고 나서, 지시를 내림과 동시에 이교도들의 배신과 서약 위반을 지적하였다. 이렇게 그는 군사 하나하나를 방패와 창보다는 훌륭한 격려의 말로 무장시켰다. 그리고 아주 믿을 만한 꿈을 이야기해 주어 그들을 모두 기쁘게 하였다.
그가 본 영상은 이러하였다. 대사제였던 오니아스가 나타나 두 손을 쳐들고 유다인들의 온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었다. 그는 고귀하고 선량한 사람으로서, 행동이 점잖고 태도가 온유하며 언변이 뛰어날 뿐 아니라 어릴때부터 모든 덕을 열심히 실천해 온 사람이었다. 이어서 위엄에 찬 백발 노인이 같은 방식으로 나타났는데, 놀랍고 아주 장엄한 품위가 그를 감싸고 있었다. 그때에 오니아스가 이렇게 말하였다. "동족을 사랑하시는 이분은 하느님의 예언자 예레미야로서, 백성과 거룩한 도성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해 주시는 분이시다." 예레미야는 오른손을 내밀어 유다에게 금 칼을 주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하느님의 선물인 이 거룩한 칼을 받아라. 그리고 이 칼로 적들을 물리 쳐라."
유다인들이 니카노르를 쳐 이기다
유다의 말은 매우 고귀하고 강렬하여, 젊은이들의 용기를 불러일으키고 마음을 용감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말에 힘이 솟은 그들은 전열을 갖추어 싸우는 대신에 용감히 돌진하여 아주 용맹한 백병전으로 결판을 내리라고 작정하였다. 도성과 거룩한 기물들과 성전이 위험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여자들과 아이들, 그리고 형제들과 친척들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별된 성전에 대한 걱정이 가장 크고 또 으뜸가는 것이었다. 도성에 남아 있던 이들도 들판에서 벌어질 전투를 염려하며 매우 불안해 하였다.
사람들은 모두 다가오는 결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적군이 이미 가까이 다가와 병사들은 전열을 갖추고, 코끼리들은 유리한 지점에, 또 기병들은 양쪽으로 배치되었다. 눈앞의 대군과 갖가지 무장과 사나운 코끼리들을 본 마카베오는,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쳐들고 기적을 일으키시는 주님께 탄원하였다. 승리는 그분의 결정에 따라 합당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이지 무기로 얻는 것이 아님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렇게 탄원하였다. "주님, 당신께서는 유다 임금 히즈키야 때에 당신의 천사를 보내시어, 산헤립의 군대에서 십팔만 오천 명가량을 죽이셨습니다. 하늘의 지배자님, 이제 다시 선한 천사를 보내시어 저희 앞에 서서 공포와 전율을 일으키게 해 주십시오. 당신을 모독하며 당신의 거룩한 백성에게 다가오는 자들을 당신의 위대하신 팔로 무찔러 주십시오." 이러한 말로 그는 기도를 마쳤다. 니카노르와 그의 군사들은 나팔을 불고 전투가를 부르며 진격해 왔다. 그러나 유다와 그의 군사들은 하느님께 탄원하고 기도하면서 적군에게 맞서 싸웠다. 손으로는 싸우고 마음으로는 하느님께 기도하며, 그들은 삼만 오천 명이 넘는 적군을 쓰러뜨렸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이렇게 당신 모습을 드러내 주신 것을 크게 기뻐하였다.
전투가 끝난 다음, 기쁜 마음으로 돌아오던 유다인들은 니카노르가 갑옷을 다 입은 채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환성을 지르고 기뻐 뛰며 조상들의 언어로 지배자이신 주님을 찬양하였다. 몸과 마음을 다하여 겨레 수호에 앞장서고 젊은 시절부터 동족에게 애정을 지녀 온 유다는, 니카노르의 머리와 한쪽 팔을 어깨까지 잘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라고 명령하였다. 이곳에 도착한 그는 동족을 불러 모으고 사제들을 제단 앞에 세운 다음, 사람들을 보내어 성채에 있는 자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 부정한 니카노르의 머리와 하느님을 모독하던 그 손을 보여 주었다. 그자는 전능하신 분의 거룩한 집을 거슬러 그 손을 뻗치며 거만을 떨었던 것이다. 유다는 그 사악한 니카노르의 혀를 잘라 낸 다음, 그것을 조각내어 새들에게 주고 그가 저지른 어리석음의 대가를 성전 맞은쪽에 매달아 놓으라고 일렀다. 사람들은 모두 하늘을 우러러 당신을 드러내신 주님을 이렇게 찬양하였다. "당신의 거처가 더럽혀지지 않도록 지켜 주신 분께서는 찬양받으소서!" 유다는 니카노르의 머리를 성채에 매달아,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도우심을 드러내는 확실하고 분명한 표징이 되게 하였다. 그들은 모두 이날을 결코 그냥 지나치지 말고 기념일로 지내자고 공적인 결의에 따라 정하였다. 그날은 열두 번째 달, 아람 말고는 아다르 달 열사흗날이며 모르도카이의 날 하루 전 날이었다.
맺음말
니카노르에 관한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그리고 그때부터 히브리인들이 이 도성을 장악하게 되었다. 나도 여기에서 이야기를 마치려고 한다. 이 글이 좋고 훌륭하게 되었으면 내가 바라던 것이고, 보잘것없이 변변치 않게 되었더라도 나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다. 포도주만 마시는 것이 해롭듯이 물만 마시는 것도 해롭다. 그러나 물을 섞은 포도주는 달콤한 기쁨을 자아낸다. 이와 마찬가지로 잘 짜여진 이야기는 그 글을 읽는 이들의 귀를 즐겁게 한다. 여기가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