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모여라. 보고 싶은 병아리들아!
김형숙 헬레나
가만히 앉아 있으면, 등 뒤에서 갑자기 땀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안절부절 못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건들기도 무섭다는 갱년기가 나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이 증세가 나타나면 얼른 나는 부채를 들고 밖으로 뛰쳐나갑니다. 한참 뒤에야 진정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본래의 제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이 짓을 여려 번 해야 하루가 지나갑니다.
폐경이 육십이 넘어 늦게 찾아왔고 때늦은 나이에 갱년기라니, 미칠 노릇입니다.
주위의 가족들은 이런 나를 안타까워하며 절대 건드리지 않습니다.
우울하고 짜증도 많고 아파서 외로운 나를 가까이 하고 싶지만, 멀리서 가까운 듯 손을 잡아준 가족들 덕분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잡념과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주위의 친구들은 다들 손주 사랑에 미친 할머니가 되어서 사방천지 손주 사진입니다.
나는 결혼도 늦고 자식이 늦어 아이들은 모두 싱글입니다. 제 둥지를 찾아 모두 떠났고, 나는 외롭고 괴로워도
어찌 보면 지금이 가장 화려하고 행복한 시절일지도 모릅니다.
영원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그래서 이 순간을 즐기렵니다.
한때는 저에게 병아리 같은 자식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냉담 끝에 성당에 나오니 저보고 수녀님께서 교리교사를 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권하셨습니다. 그 당시 우리 아이들이 첫 영성체를 할 나이였기에, 아이들도 가르칠 겸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수녀님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습니다. 그 시간이 15년이 될 줄은 생각도 못하고, 무작정 교리교사의 순명의 길로
뛰어들었습니다. 불을 보고 달려드는 불나방처럼요.
한편 내가 힘들게 살고 있어서 도피처로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힘들고 어두운 터널 속에서도 살 수 있게
밝혀주신 작은 등불이며, 숨통을 터주는 바람이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나의 뒤를 졸졸 따르고, 미운 짓을 해도 미워할 수 없는 개구쟁이 아이들과 살면서,
그곳이 바로 천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림을 그려서 인형을 만들어 재미나는 강론도 하고, 미사 중에 바닥을 등으로 기어 다니는 개구쟁이 꼴통 친구들을 혼도 내고
했지만,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속이 상하고 화가 났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지고 그냥 웃음만 나왔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잘 혼내지 못해 동료 교사들의 질투와 미움을 받았습니다. 동료 교사들은 자기들만 혼내고 나는 아이들에게
착하게 하여 자기들만 나쁜 교리교사로 만든다고 싫어했지만, 선하고 예쁜 아이들의 눈을보면 혼을 낼래야 낼 수 없었습니다.
미사가 시작되면 자고 미사가 끝나면 일어나는 시계 같은 아이들을 보면서,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천진하고 순수한 아이들
속에 계셨고, 아이들은 나에게 사랑과 믿음을 자라게 해 주는 신앙의 어린 스승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 속에 숨어 계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너무 기쁘게, 많이 행복하게 교사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15년이란 오랜 세월이 지나 55세에 교리교사 생활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더 하고 싶었지만, 나이 많은 교사였기에
시대의 빠르게 변화하는 어린 아이들의 정서를 따라갈 수 없었고, 오히려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고 머리에 흰서리가 내리면서 할머니 선생이 되어버렸으니까요.
더 젊은 엄마들에게 양보할 때가 되어 서운했지만, 물러날 때가 된 것 같아 교사생활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처음 교사 생활을 시작할 때, 주님께 환갑 때까지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하였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았으며, 나 혼자만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바오로는 주중에 직장 다니고 주말에 농사일을 해야 했는데, 나는 토요일 하루를 교사한다고 성당에 가 있으니,
바오로 혼자 그 고된 일을 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젊었기에 성당에 있는 나를 응원해 주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내 힘이 필요하다고 여러 번 이야기 하였지만, 나는 무시하고 교사 일을 계속했으며, 환갑까지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었습니다.
어느 날, 투 잡 쓰리 잡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다보니, 과로로 코피를 흘리는 바오로를 그냥 볼 수만은 없기에,
환갑을 포기하고 중도 하차하였습니다.
그러나 작은 미련이 마음속에 잔잔히 흐르고 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나보다 더 유능한 대학생 교사와 엄마 교사들이
그 자리에서 아이들을 더 잘 돌보고 있기에, 내가 욕심을 부린 것 같아 오히려 더 미안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미사를 하면 온전한 마음으로 미사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자는 아이 깨우기, 뒤에 앉은 아이와 싸우는
아이 혼내기, 핸드폰 보는 아이 주의 주기,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조는 아이 넘어지지 않게 붙잡아 주기,
신부님의 분심을 잠재우려고 내 시선과 눈길은 아이들에게 있기에 미사가 아니지요.
교사를 그만 두고 부산스럽던 아이들과의 미사를 멀리하고, 교중 미사를 하면서 이게 정말 참 미사임을 느꼈습니다.
오롯이 아버지께 드리는 참 제사입니다. 그 시간 동안은 아버지 품속에 있는 듯 고요하고 정겹습니다.
"아버지 구불구불한 길을 돌아 이제야 돌아왔습니다.
어제까지는 아버지께서 돌보시는 어린 양들과 살았지만, 이제는 병들고 아픈 나이든 어르신 천사들과 살아보겠습니다.
많이 힘이 들것이라 짐작되지만, 아버지 도와 주실거죠. 이 나이든 천사들은 말을 안들을거예요. 또 고집도 아집도 세서
더 미울거예요. 저도 그중에 하나가 될거구요. 저에게 솜처럼 부드럽고 자유로운 마음을 주시고, 그들과 함께 당신 날개
그늘 밑에서 쉬게 하여 주세요.
아버지 지금도 성당 맨 뒷자리에서 미사 중에 열심히 부채질하는 헬레나를 자애로이 지켜주세요."
"모두 모여라. 보고 싶은 병아리들아!
내가 지금 참 미사를 드릴 수 있게 하여준 사람이 너희들이었구나!
이제는 모두 튼튼한 청소년이 되어있겠지. 아니 성인이 되어 있겠구나.
어린 너희들이 나를 주님 안에 살게 하고 오롯히 진심으로 미사를 드릴 수 있게 하였구나.
무슨 생각이 드느냐?
모두 모여라. 보고 싶은 병아리들아!
아니, 너희는 형제자매님이 되어있다.
나를 진정한 미사의 길로 이끌어 준 것이 너희들이니, 어릴 적 순수했던 것을 떠올려,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여
순수한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모여라. 보고 싶은 병아리들아!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는 어린아이와 같다 하시었다.
지금도 선생님과 함께 하였던 마음을 가지고 있지?
보고 싶은 병아리들아!
성당에 많이 나오려무나. 보고 싶다.
너희들이 앞으로의 대야성당의 반석이다."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 행복하여라. 그분께 피신하는 사람!
-시편 34장 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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