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박물관 머릿돌 이토 히로부미 휘호가
민족은행의 효시 한성은행 설립은 1897년
상수도는 1884년 일본인이 부산 대현동배수지를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옛 조선은행 본점) 머릿돌에는 이토 히로부미 휘호가 새겨져 있다
일본 시즈오카현 하마마츠시 시립중앙도서관과 하마마츠시 문화유산 디지털 아카이브에는 ‘명치 42년(1909년) 7월 11일 공작 이등박문 정초’라는 이토히로부미가 조선은행 본점 정초식을 위해 휘호를 썼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은행은 1876년 3월 일본의 실업가와 당시 제일국립은행(일본)의 은행장이 공동출자하여 부산에서 자본금 5만원으로 설립한 사설은행이나 2년 후인 1878년 제일은행 부산지점이 인수받아 영업을 시작했다.
제일은행은 원산(1880년),인천(1883년),서울(1888년)에 출장소와 지점을 개설했다.
1889년에는 일본의 나가사키 가 본점인 제18은행이 부산과 군산, 1890년에는 인천에 지점을 설치했다. 1892년에는 일본 대판에 본점을 둔 제58은행도 인천에 지점을 개설하고 부산(1893년),서울(1895년)에 지점을 설치했다.
홍콩 상하이은행도 인천에 대리점을 설치하기도 했다.(인천에는 제18은행,제58은행,제일은행,홍콩 상하이 은행등 서울보다 많은 은행이 설립되었다.1910년대의 인구를 상수도급수인구로 보면 서울 12만,인천 7만,평양 6만,부산 5만5천명,진남포 2만2천명,원산 2만명, 군산 1만명)
갑신정변 이후 일본으로 망명한 박영효는 1888년 고종에게 은행설립을 제안했다.
우리나라 민족은행은 1896년 심상훈,김종한,이완용,이채연,이근배,윤규섭,이승업,안형수등 8명이 발기하여 주금모집을 시작했으며 96년 6월 조선은행 창립소 광고문을 독립신문에 게재하면서 주금모집을 본격화 한다.
창립사무소는 독립협회 사무소가 있는 정동으로 이전하고 1897년 2월 정부의 인가를 받아 초대 은행장에 안형수가 취임한다.
당시 한성은행(발기인 김존한,민영찬,조재명,한치주,이승업,김영모,이규정,김태진,권석영등 9명)이 조선은행보다 먼저 인가를 받아 민족은행 2개가 탄생했다.
1897년 2월19일은 우리나라 민족은행의 효시로 한성은행이 설립되었다는 기록이 조흥은행 100년사에 기록되어 있다.
◼상수도는 고종 21년(1884년) 부산의 일본 거류민단이 경영한 보수천 상류에 집수정을 설치하고 자연 여과방식으로 대현동 배수지를 설치한 것이 최초이다.
1902년에는 일본 거류민을 위해 구덕산 계곡에 1일 생산능력 2천㎥의 완속여과지를 설치한 구덕수원지이다. 서울은 12만 인구를 위한 상수도가 1908년 8월, 7만 인구의 인천은 1910년10월, 6만 인구의 평양은 1910년5월, 2만2천명의 진남포는 1915년3월, 5만5천명의 부산은 1910년6월, 5천명의 목포는 1910년6월, 1만명의 군산은 1912년4월,2만명의 원산은 1915년경(추정)에 정수장이 준공되어 통수하기 시작했다.
(환경경영신문,환경국제전략연구소 김동환소장/수도100년사 기획,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