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기행의 시작은 나누기부터 시작된다. 누군가가 가져다놓은 떡,물,자두,영양갱으로 덕쌓기의 열서기가 이어진다. 그 줄은 오늘 답사기행의 차 운행에도 해당된다. 계림선생은 맨 앞줄에 선 차주에게 이만원을 나누어준다. 무엇이라도 주면 감사할 줄 아는 우리들이다.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는데 차주님도 봉사하는 마음으로 선뜻 차를 운행한다. 분황사에 모여 장항사지 ㅡ석탈해가 도착한 아진포 ㅡ봉포ㅡ대왕암 ㅡ이견대ㅡ감은사ㅡ골굴사ㅡ기림사를 거쳐 원점회귀하는 길이니 운전하는 자는 힘이 들 것이다. 그래도 차는 다섯대가 출발을 한다.
처음으로 장항리사지에 도착하면 낯이 익은 오층석탑이 멀리 건너다 보인다. 신라탑으로 5층석탑이 두개뿐이라고 계림선생님은 퀴즈를 낸다. 누군가 나원리오층석탑.장항리오층석탑이다,라고 답을 정확하게 한다. 늠비봉 5층석탑도 남산에 우뚝 솟아있지만 이것은 백제계열이다.
석탑이 서있는 곳이 장항리이기때문에 이름을 얻었을 뿐 정확한 절의 이름은 알 수 없다. 석굴암과 대왕암을 이으면 일직선상에 놓여진다고 한다. 릴리는 그런 지식은 이제 오른쪽 귀에서 왼쪽귀로 들어가지도 않는다. 그냥 타래난초나 보고 매미가 우는 소리가 더 좋아 적당한 크기로 놓여 있는 돌에 신발을 벗고 앉아 분위기를 잡고 친구도 불러 들인다. 그것을 곱게 보고 넘길 계림선생님이 아니다. 기어이 일으켜 세우며 탑의 조각을 감상하게 한다. 금강역사의 네면을 차근차근 돌며 설명을 한다. 기회만 있으면 딴 짓하는 릴리 찍힐가봐 걱정하지만 탑의 기단부에 가만히 걸터 앉는다. 그런데 옆에도 그늘을 찾아 나선 회원이 있다. 또 큰소리가 난다. 화들짝 놀란 회원들 금당터로 올라선다. 대죄석의 사자가 왼팔을 들고서 고소해한다. 멋진 사자다. 사자는 헤라클레스부터 시작되어 인도중국을 거쳐 신라땅에 불교문화의 한 모습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장항리 사자는 같이 간 회원이 와서 사자 제가 무서워 발이 안쪽으로 말려있다고 하고 계림선생은 숫사자일텐데 발에 심볼이 가려져 있다고 한다. 누가 옳은 지는 알 수 없지만 모두들 사진을 찍으며 예쁘다고 남발한다. 탑지는 햇살이 뜨겁다고 하며그늘진 계단에 함께한 스무명을 앉혀놓고 계림선생님은 화일집을 꺼내든다. 오래간만에 온 우리들의 뇌를 채워야겠다는 의지가 전해진다. 회원들은 평균연령이 예순이 넘을것 같은데 무슨 소용 있을려나!
또 다시 차를 타고 간 곳이 어디더라 자료집을 찾아서 보고 적어야겠네.
아! 생각이 난다. 석탈해가 배를 타고 도착했다는 아진포이다. 계림선생도 원전때문에 헷갈리는 모양이다. 입간판 30m를 두고서 유턴했다. 서연은 계림의 속타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식혜나 마시자고 제안한다. 절묘한 시간에 마시는 감로수다. 맛나기도 하고 시원하다.
석씨문중에서 지정해 비석을 세운 비를 보고 돌아서니 모감주나무가 열매를 봉긋하게 매달고 있었다. 조금 일찍왔더라면 노란 꽃을 봤을텐데.
봉표도 보고 인어상 사연도 듣고 간 기와집칼국수는 맛이 있었다. 부산에서 먼길오신 머리카락이 하이얀 멋진 신사분께서 파전을 선물하셨다. 베푼 그에게 삼십배육십배 더큰 복으로 갚아주실 것을 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또 자주 오셔서 맛있는 것 사 주세요.
대왕암에 가까이 가서 바다에 발도 못 담그고 돌아서고 이견대도 수리중이라 돌아섰다.
감은사탑에서는 한참을 놀았다.
존경하는 부처를 오른쪽에서 세번 도는 이유도 듣고 문무왕이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려는 유언도 들려오고 호국용이 되신 문무왕이 석재아래 다니시는 모습도 상상하고
탑을 수리하다가 병이 들어 몸을 다친 느티나무도 보며 애썩해 하고 고구마줄기를 삼천원에 산 야문 회원의 비닐봉지도 보며 그렇게그렇게 감은사를 떠났다.
골굴암을 올라가니 한무리의 외국인들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템플스테이를 하며 선무도를 익힐 것이다.
선무도로 유명한 골굴암은 원효스님께서 열반하신 혈사로 추정되는 곳이다.
가파르게 깎아지른 곳에서 만나는 부처님의 얼굴은 선하다. 어깨 아래 부분이 마모가 되고 백호가 사라졌지만 존상은 아름답다.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정시한의 산중일기도 기억해낸다. 몇년전 이곳에 왔을때 조선시대 정시한이 다녀가며 남긴 글이 있다고 하여 사본 책이다. 기억하기로 한자로 된글을 번역하여 읽기가 힘들었다는 생각뿐 그 내용은 흔적도 없다.
기림사의 경내에 들어서면 몇년 전 태풍으로 쓰러진 염주나무앞에 눈길이 먼저간다. 이염주나무는 우리나라에는 보리수라고 알려져 있지만 인도의 보리수와는 다른 수종이다. 인도여행 갔을 때 떨어지는 보리수 잎를 주워서 순례객에게 팔던 인도인도 생각이 난다. 그 나무도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가 아니라 스리랑카에서 이식해 온 나무였지만 그 의미가 귀한것이기 때문이었다. 유한한 생명이지만 자손을 통하여 영원할 수 있을 것이다.
차문화 시원을 알 수 있는 벽화를 보고 세 인물에 대한 긴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설명은 누구에게서도 들을 수 없다. 계림선생님께서 중앙무대에서 크게 쓰임 바되기를 빌어 본다.
만파식적 부분을 떼서 물에 담그니 용이되어 날아갔다는 용연을 향하여 걸었다. 일기예보상 비올 확률 40%가 100%로 바뀐 곳이었다. 용이야기를 대왕암에서부터 하고 다니니 기어이 이적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비는 초목을 싱싱하게 만들고 계림역사기행의 회원들에게 추억을 만들 것이다.
돌아보면 참좋은 하루였지만 옥의 티가 있었다. 올바른 종교인의 자세는 어떻게 해야할까,를 생각케하는 오후 시간이었다.
첫댓글 영숙누님 후기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원효의 혈사라는 주장은 골굴사측의 일방적 주장일 뿐 전혀 아니라고 말했는데...
정반대로 컥컥컥 숨막혀~~~
헤라클레스에서 유래한 건 사자가 아니고 인왕역사!!
ㅋ
사자는 헤라클레스가 취한 힘센 놈이라서요. 금강역사와 같은 의미이지요. 그리고 골굴사의 주장도 그냥 들어주고싶은 릴리의 입장입니다. 신화나 전설도 이렇게 해서 전승되는 것이라 ~~~
역사왜곡
역사왜곡은 또다른 역사왜곡을 낳습니다.
비근한 예로 서북남산의 박씨왕릉 지정은
이곳이 경주 박씨들의 근거지였다는 또다른 역사왜곡을 낳았지요.
경계해야할 일입니다.
@계림 2월 남산답사 때 이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오릉을 비롯하여 일성왕릉, 지마왕릉 삼릉 경애왕릉 등 박씨왕릉이라고 왜곡하여 지정되었는데
이를 또 왜곡하여 남산 서북쪽지역이 경주 박씨들의 근거지였다는 새로운 논문이 발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럼 이 논문은 또 다른 역사왜곡의 근거가 됩니다.
정말 답답합니다.
이러지 마세요.
그뿐 아니라
왜곡된 왕릉 지정으로 인하여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남산지구로 인하여 가짜 왕릉은 세계유산으로
진짜 왕릉인 성덕왕릉을 비롯한 많은 왕릉들은 세계유산 등재에서 빠지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어요.
이처럼 역사왜곡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답니다.
내가 돈 안되는 역사기행을 이렇게 하는 까닭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데 미미한 힘이라도 보태고자 하는 마음 때문인데...
제발 낭만에 젖어들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누에고치 잎에서 실이 줄줄 나오듯이 어쩜 이리 잼나는 글이 줄줄 나오는지....
릴리님 능력이 많이 많이 부럽습니다 .
다녀온곳이 다시 쭉~~~~생각나게 하는 글입니다.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생생한 느낌 그대로입니다. 주옥 같은 표현능력 훌륭합니다.
션생님 혈사때문에 혼나셨지만 내공의 깊이가 느껴지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새하얀 머리가 저였습니다
역사기행 참여하신 분들 맘이 정감으로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