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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강만 바로 북쪽에 호구산군립공원과 용문사가 있고, 앵강만 입구 좌측엔 설흘산이 우측에 금산이 우뚝.>
일시 : 2009년 3월 15일 07:50 - 21:00
참석자 : 김정곤(회장), 최수일*(총무), 설광룡(산행대장), 홍청곤, 최명해, 장경재, 이춘섭*, 이영덕, 이상원, 이근범, 이규용, 양지영, 성백운, 서경호, 배한수, 김태규, 김상현*, 강영녕* (* 부인 동반) 총 22명
일정 : 전철 연산동역 5번 출구 집결(07:50) - 부산 출발(08:10) - 남해 용문사 대형버스 주차장(11:00) - 산행 시작(11:10) - 호구산(623m) 정상, 중식(13:00) - 하산 시작(14:00) - 용문사(15:00) - 주차장(15:30) - 남해 출발(16:30) - 부산 도착(21:00)
<원래는 화살표와 같은 원점 회귀산행이었으나 호구산 남쪽 이정표에서 점선을 따라 곧장 염불암으로 하산.>
날씨가 추우니 ‘단디 챙기라’는 총무의 문자 메시지에 부피가 큰 산행용 방한 자켓까지 챙겨 넣고, 기온 변화에 대비해 얇은 자켓도 추가로 배낭 안에 쑤셔 넣으니 배낭 아랫도리가 빵빵하고, 혹시나 해서 아이젠까지 챙기니 완전 겨울산행 채비나 다름없네.
산악회(연산한솔산악회)에 편승해 산행을 떠나는지라 집결시간이 신경 쓰여 좀 일찍 집을 나서니 바깥 기온은 전혀 차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연산동역에 하나, 둘 도착하는 대원들 모습을 보니 겨울철 산행 반에 봄철 산행이 반이라, 총무의 독려가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신형진 동기가 고문으로 있는 연산한솔산악회는 연륜이 13년이나 되어 꽤 튼실한데, 오늘이 13주년 기념등반에다 시산제를 올리느라 많은 준비를 했다니 은근히 기대가 되는구나.
나눠주는 산행지도와 산악회 소식지(통권 제64호)를 보니 두 달간 매주 산행 계획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어 심심한 휴일에 따라나서면 괜찮은 산행을 즐길 것 같다.
김정곤, 이춘섭 대원은 도중에 고속도로에서 태우기로 하고 출발하니, 맛있게 생긴 아직도 온기가 있는 떡과 드링크제 한 병이 배급되고, 게다가 13주년 기념 선물이라며 장갑 한 켤레씩 나눠주니 감동에 또 감동.
이러면 이륙악 탈퇴하고 한솔산악회로 적을 옮기는 대원이 생길까 집행부는 전전긍긍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년 회비도 없고 2만원 회비 내고 선물까지 받으니 이 산악회 가입을 고려해 보겠다.”는 대원들의 농담성 발언에 한바탕 웃음이 자르르......
<호구산 기슭에서 내려다본 호수같은 앵강만. 앵강만 입구에 노도, 그 오른쪽에 설흘산릉>
톨게이트와 동김해 나들목 부근에서 김정곤 회장과 이춘섭 부부를 태우니 버스 뒤 22개 좌석이 꽉 차, 큰 배낭을 다리 사이에 놓고 좁은 좌석에 앉아 몇 시간을 여행할 생각에 몸이 절로 굳는다.
고속도로엔 승용차보다 대형 버스들이 더 많은 것 같아, 전면 차창으로 보이는 도로는 울긋불긋한 전세 차량들이 줄을 서 본격적인 봄꽃 관광철이 시작되는가 싶다.
남해고속도로 진교 나들목에서 국도로 바꿔 타니 물오른 능수버들이 한결 부드러운 색으로 치장하고 먼 산에 하얀 매화가 이미 봄이 와 있음을 알린다.
노량 가까이 오니 시원한 봄바다가 눈을 상쾌하게 하지만 열 수 없는 차창으론 바다 내음을 맡을 수 없어 아쉽다.
남해대교 아래는 썰물 때인지 마치 강물처럼 흐르는 물줄기를 볼 수 있어 그 치열했던 노량해전을 잠시 그려본다.
대교를 건너 남해도로 들어서니 꽃놀이용 대형버스들이 줄지어 달리는 고속도로에 비해 한적하기 그지없고, 창밖으로 지나가는 주택들을 보니 새마을운동 당시의 슬레이트 지붕부터 최근의 전원주택까지 마치 주택전시장 견학을 온 것 같네.
정확하게 3시간 걸려 용문사 아래 주차장 입구에 당도하니 최근에 건축한 듯한 팬션형 건물들과 ‘아메리칸 빌리지’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남해군이 독일촌을 물건리 산동네에 조성하더니 이젠 미국촌까지 만들어서 어쩌자는 건고?
미국촌을 가로 질러 새로 조성한 대형버스 주차장에 닿으니 벌써 대여섯 대 버스들이 먼저 와 있어 오늘 산길이 시끌벅적 할 것 같은 예감이 드네.
<강영녕 부부의 다정한 산행길. 아마도 저 손은 산행 내내 꽉 붙어 있었을 것이다.>
두 대의 버스에서 내린 산꾼들은 간단한 준비운동과 산악회 측의 대장 훈시를 듣고 포근한 남도의 봄기운을 한껏 받으면서 호구산 기슭으로 줄지어 출발.
미리 자켓을 벗어 배낭에 넣는 꾼들이 많지만 아직은 바람이 제법 이는 탓에 일단 자켓을 입은 그대로 출발하는데 봄볕이 닿는 얼굴에 스치는 바람도 싫지가 않아 따뜻한 나라 남해도엔 벌써 봄기운을 느낄만하다.
자그마한 저수지 둑 위에도 쑥들이 제법 녹색잎을 내밀었고, 노란색 꽃을 활짝 벌린 산수유 한 그루가 산꾼들을 맞아준다.
임도를 따라 평탄한 길을 10여 분 걸으니 공동묘지 사이로 난 산길이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라며 등짝을 미네.
호구산 남사면을 오르는 산길은 숲길이지만 양지바른 사면이라 그리 경사가 센 것도 아닌데 이내 등판에 땀이 찰 정도로 더워지니 본격 산행을 위해선 한꺼풀 벗어야 될 터.
처음엔 세 팀으로 오르다가 이륙악에 처음 참여하는 김상현, 강영녕 부부를 포함한 팀을 남겨두고 두 팀은 벌써 내빼 꼬리도 보이질 않네.
김상현 사장 부인은 벌써 지치는지 중간 중간 쉬는 시간이 많아지고, 덕정은 부인의 손을 잡고 다정스런 모습으로 오르니 지친 모습도 절로 커버.
그 앞뒤로 이근범, 장경재, 이규용 대원이 보조를 맞춰 팀을 이끌거나 밀고 있어 50여 미터 앞 선 나도 거리를 유지하며 봄맞이 산행을 즐긴다.
<신입회원 김상현 부부도 다정이 병이 되어 결코 따로 떨어져 산길을 걸을 수 없었지러.>
산행시간이 3시간 30분 남짓이라니 긴 거리는 아닐 것이지만 그래도 섬인데도 해발고도가 600 미터를 넘어선 산인만큼 사면 경사는 만만치 않을 터.
30여분 오르니 짐작한 대로 경사가 약간 세어지고 결빙됐던 곳이 녹으면서 질척하고 미끄러운 부분이 나타난다.
무박산행에 나섰다는 안양에서 온 산꾼 일행이 하산하면서 윗 구간이 제법 미끄러우니 조심하라고 일러준다.
조금씩 험해지는 산길이지만 능선 산행 출발점 까지는 그런대로 바위도 딛고 오르고 훌륭한 조망처도 몇 곳 거쳐 가는 괜찮은 오름길이고, 잠시 쉬면서 내려다보는 남해 바다, 앵강만은 그대로 한 장 사진 같은데, 황사 탓인지 다소 흐린 시야가 유감이다.
거의 능선에 오르니 멀리 금산이 눈에 들어오는데, 특유의 토르 지형인 산정부가 남해 위로 솟아 있고 좌우로 거느린 능선이 남해를 막아섰다.
그 오른쪽 앵강만 한 켠에 서포의 한이 서린 노도가 방향 탓인지 자그마하게 물 위에 떠 있고, 그 뒤로 멀리 세존도인지 삼각형 섬이 흐릿하게 시야에 잡힌다.
앵강만을 건너 오른쪽(방위로 보면 서쪽)에 낮은 키의 설흘산릉이 역시 남해를 막아 서 있어 앵강만의 만입 정도를 더욱 깊게 느끼도록 하네.
<남해도 섬 속의 섬 창선도가 바다 건너 멀리 보이고 남해도와 사이에 좁은 바다가 조금 보이네.>
첩첩겹겹 산으로 둘러싸인 내륙의 산행은 기암괴봉이나 깊은 골이 있으면 모를까 정상에 올라도 산 너머 또 산 밖에 볼 것이 없으니 좀은 답답한 느낌이지만, 섬이나 해안을 끼고 있는 산은 내내 바다와 섬 그리고 끝없이 뻗은 수평선을 볼 수 있어 가슴이 절로 탁 터지는 시원함을 맛볼 수 있으므로 산과 바다를 아우르는 멋진 산행이 된다.
남해도가 바로 그런 곳이요, 부산의 해운대 장산, 영도 봉래산 역시 그런 맛을 느끼러 가는 곳일 게다.
업이 그렇기도 하겠지만 등산로를 오르다보면 절로 눈에 들어오는 게 암석이라, 당연히 눈길을 한 번 더 주는 것이 직업상의 도리(?)이고 자세가 아니겠는가.
남해 금산을 다녀왔다면 금산이 이 땅에 가장 흔한 암석 중 하나인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남해도 전체가 화강암으로 구성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하면 큰 오산이니, 이참에 오늘 오르는 이 호구산(虎丘山, 일명 납산 또는 猿山)을 좀 살펴보자.
산길 중간 중간에 막아선 암석이나 암벽을 들여다보면 크고 작은 암석편들이 박혀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퇴적암의 한 종류인 역암의 역(자갈)과 달리 격렬한 화산 분화 때 터져 나온 파편이 화산재와 함께 굳은 것이다.
이런 암석 파편들은 화산 분화 이전에 존재했던 암석들의 파편이거나 선행했던 화산활동의 결과 생성된 화산암의 파편 또는 화산 분화 당시 대기로 솟아올랐던 액체용암의 일부가 굳은 것이다.
호구산을 이루고 있는 암석은 백악기 말의 격렬했던 화산 분출로 다량의 화산재와 암편들이 낙하해서 지상에 쌓여 굳은 화산암으로, 성분으로 볼 때 안산암 조성을 나타낸다.
금정산을 제외한 부산의 대부분 산들이 성분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런 화산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호구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화산암. 크고 작은 암편들이 화산재와 함께 굳어 만들어진 화산쇄설암이다.>
1억 4천만년~1억년 이전엔 이 지역이 물 아래에 놓여 있었는데, 호구산 기슭의 용문사에 이르는 도로변에 노출된 퇴적암과 남해도에서 나타나는 백악기 퇴적암들이 그 증거이다.
이들 퇴적암이 만들어진 이후에 한반도의 남부 지역에 격렬한 화산활동이 약 6천만 년 전까지 일어나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에 그 결과 만들어진 다양한 암석들이 많이 노출되어 있다.
특히 이런 암석은 용암 분출보다는 화산쇄설물(화산재, 암편 등 파편 물질)이 쌓여 굳은 화산쇄설암인데, 암석에 박혀 있는 크고 작은 암편들이 바로 화산쇄설물이고 그것은 곧 엄청난 폭발적인 화산분화를 지시하는 것이다.
이런 화산활동 이후 지하에 마그마가 뚫고 들어와 굳은 것이 바로 금산을 이루고 있는 화강암 같은 것이고, 이 호구산 아래에도 그런 화강암이 들어앉아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금산이나 설흘산 그리고 이 호구산을 오르노라면 단지 더워서라기보다 수천만 년 전의 그런 마그마의 열기가 뜨끈뜨끈하게 발바닥에 느껴져야 옳은 일이 아니겠는가.
<호구산 정상 동남쪽 550고지에서 내려다 본 거쳐온 산릉. 멀리 금산의 봉우리와 산릉이 보인다.>
몇 차례 바위를 타고 올라 이윽고 능선에 올라서니 조망이 기가 차네.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며 왼쪽으로 남해에 연한 육지가 동쪽으로 통영으로 이어져 달리고, 바다 건너 남해도의 섬인 창선도가 길게 남쪽으로 뻗어 형뻘인 남해도 본섬과 키재기를 하고 있다.
그 오른쪽으로 좁은 수로를 건너 남해 금산 산릉이 동서로 길게 늘어섰고, 호수 같은 앵강만을 건너 설흘산릉이 낮지만 폼새 있게 역시 동서로 큰 형 금산을 흉내 내고 섰다.
눈을 능선으로 돌려 올려다보니 거의 수직 암벽에 가까운 칼로 깎아낸 것 같은 절벽으로 이루어진 뾰쪽한 암봉이 아찔하게 서 있는 게 아마도 오늘 등정지인 호구산 정상인 모양이다.
거리는 손닿을 듯이 지척이지만 접근하는 산릉 일부가 암릉 구간이라 보행이 아니라 사지로 기어올라야 할 만만찮은 구간이 숨어 있음을 예고하는 듯하다.
뒤에 오르는 팀은 아직 모습이 보이지 않아 봄 하늘 아래 펼쳐진 풍광을 실컷 감상한 후 본격적인 능선 산행 출발.
바위를 타고 넘어서자 두리뭉실한 산릉인가 싶더니 이내 마치 성을 쌓듯 돌을 쌓아 만든 폭 0.5 미터 길이 3 미터 정도의 좁은 길이 위태롭게 큰 바위 사이를 연결하고 있는데 큰 돌이 아니고 작은 돌을 쌓은 것이라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 구간을 지나 암릉에 서서 뒤를 내려다보니 이제사 마지막 팀인 일곱 명이 능선에 올라서는 모습이 보여 카메라를 꺼내 한 장 그려볼까 했더니 줌업을 해도 멀어서 포기.
<늦게 정상에 오른 일곱 대원이 주먹밥 등으로 점심 식사. 먹거리는 제대로 준비 하셨네요.>
암릉길이 급하게 떨어지더니 안부에 닿고 능선의 바람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아늑한 곳이다.
중년의 산꾼들이 둘러앉아 점심을 맛있게 먹는 걸 보니 오후 1시가 다 되어 가는구나.
오후 1시에 시산제를 올린다고 했으니 이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데 안부를 지나 오름길로 접어드니 암벽에서 떨어져 나온 칼날 같은 바위 덩어리들이 길을 메우고 키보다 높은 암벽들이 가로 막는다.
스틱이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두 손을 번갈아가며 바위를 타고 넘어서니 제법 평평한 곳에 한 무리의 산꾼들이 배를 채우느라 정신이 없고, 마침 이정표가 있어 살펴보니 정상으로 오르는 길과 용문사로 내려서는 갈림길이다.
이제 정상은 바로 머리 위에 있는 모양인데 로프잡이를 해야 하는 암벽이라.
그리 높지도 않고 발 디딜 곳도 충분해 하산하는 꾼들을 기다렸다가 올라서니 거기가 바로 정상이요 선착한 우리 동포들의 오찬장이었다.
바람이 꽤나 불어대는 데도 주린 배를 어쩌지는 못하는 모양이라, 여기저기서 오라고는 하지만 이미 반 이상 도시락을 다 비운 동포들이라.
뒤에 오르는 마지막 팀은 언제 당도할지 모르니 주섬주섬 요기 거리를 꺼내고 물부터 두어 잔 마시니 갈증으로 갑갑했던 목이 뻥 뚫리는 것 같다.
<호구산 정상의 표지석. 호구산 대신에 납산, 즉 잔나비산이란 의미로 원숭이 원자를 써 猿山이라고도 표기.>
이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 봉수대 석벽을 병풍삼아 한솔산악회의 시산제 준비가 한창이고, 제상 중앙엔 고사용 돼지머리가 히죽히죽 웃는 모습으로 산꾼들 사이로 보이는데, 하이갸 저걸 메고 정상에 오른 정성인지라 하늘도 움직이겠다.
이 호구산 봉수대는 동남쪽의 금산의 봉수를 받아 내륙으로 전하는 역할을 했던 것 같은데, 복원해 놓은 모습은 돌을 쌓아 기단을 높다랗게 축조하고 그 위에 둥근 돌탑 모양의 봉수대를 세웠다.
식사 중에 제를 올린다는 소릴 들으니 점심을 펼쳐놓고 제를 지내러 갈 수는 없어 회장, 총무, 대장 그리고 식사를 끝낸 몇몇이 시산제 참석차 출장.
명해공 제공 ‘하얀 병 속의 노란 물약’을 한 모금 하니 캬, 물약이 쓰다 쓰.
제사떡이 돌고 祭酒 생탁이 배급되니 덕분에 이륙악우들도 금년 한 해 무탈 안전 산행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점심을 끝내니 이제사 마지막 팀이 당도하고, 먼저 끝낸 대원 몇몇은 먼저 출석부 그려놓고 하산을 한다나 뭐라나...
뒤늦게 도착한 일곱이 둘러앉아 점심을 먹는 동안 디저트로 제사떡을, 제주를 정상주로 주고받으니 배도 빵빵하고, 챙겨온 노란 감기약을 푸니 독한 맛이 싫지 않은 모양인지 금방 물약이 바닥났네.
금번에 제작해 처음 산행에 동참한 이륙산악회 현수막이 첫 선을 보이고, 청색 바탕에 ‘이륙’과 ‘산악회’ 중간에 붉은색으로 ‘岳’을 새겨 넣은 2 미터 남짓 되는, 우리의 심벌인 셈이다.
일부가 이미 하산을 했는지라 오늘 산행 참석자 전원이 함께 출석부를 새기지 못하니 아쉽네.
<호구산 정상에 복원 축조된 봉수대. 이곳에서 멀리 앵강만 너머 남동쪽의 금산 봉수가 잘 보였을 것이라.>
시산제도 중식도 모두 마친 상태라 더 이상 산정에 남아 있을 일이 없어 맨 마지막으로 하산을 하는데, 원래는 계속 능선을 따라 가다가 호구산 서쪽 안부에서 용문사 계곡으로 내려서는 것인데 산길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하니 정상 암벽 아래 용문사 갈림길까지 되돌아가서 염불암을 거쳐 용문사로 가는 코스로 변경.
호구산 곳곳에 약간 규모를 달리하는 너덜(테일러스)이 많은데, 하산길에도 군데군데 이런 너덜이나 너덜겅에서 흐른 크고 작은 바위들이 널려 있어 살짝 살짝 내려서는데도 무릎에 꽤 충격이 전해진다.
이제는 된오름길을 오를지언정 내림길은 순탄한 길을 걸어야 하는데, 용문사로 연결되는 이 길은 제법 피로를 느끼게 할 정도라, 역으로 이 길로 오르는 경우에도 땀께나 흘러야 할 듯.
오후 2시가 넘은 시각에도 간간이 정상으로 오르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꽤 힘들어 하는 모습들이다.
사면엔 온통 활엽수뿐이고 우리 산에 그 흔한 소나무 한 그루도 보이질 않아 가을엔 채색된 나뭇잎들의 형색이 어떨지 궁금타.
양쪽 지능선엔 짙은 색의 소나무가 많이 보이건만 제법 넓은 계곡 사면엔 앙상한 가지들만 보일뿐, 그야말로 단색의 황량한 풍경이다.
내림길의 후미엔 오름길과 마찬가지로 일곱 대원이 섰고 서너 명씩 무리를 지어 긴 대열로 하산하니 1시간이 채 안되어 염불암에 당도.
<용문사 대웅전과 이 절집의 품위를 한층 업그레이드 시켜준 매화. 전각 위에 오래된 고목같은 홍매는 아직...>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절집 배치에다 돌계단 위에 축조된 법당이며 그 아래의 요사채, 게다가 마당 끝자락의 수조 등이 영락없이 문경 주흘산 기슭의 해국사 절집 모습이네.
두 절집 모두 사면에 건축된 것이라 전망 좋은 곳에 앉은 모습이 대체로 비슷할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겠지만, 그 규모와 배치가 절묘하게 일치하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부속 암자에 닿았으니 큰 절집 용문사는 얼마 되지 않을 것이란 짐작은 당연할 터.
게다가 승용차 한 대가 암자 마당에 서 있어 용문사에 이르는 길이 차도가 분명하니 산행도 끝이라는 기분이 드네.
염불암 마당을 한 단 내려서니 큰 마당 한 켠에 줄지어 선 방문이 달린 요사채가 길게 섰는데, 이미 폐허처럼 변해 버린 것이지만 한 때는 공부하는 대중들이 꽤 됐음을 짐작케 한다.
차도를 따라 내려서니 이내 용문사인데, 염불암 아래로 조성된 녹색 차밭이 꽤 넓게 펼쳐져 있고 이태 전에 방문했을 때 모습에서 많이 변해 있어 새 전각들이 들어앉아 널찍하게 보였던 절집 마당이 좁아 보이고 갑갑한 느낌이다.
그나마 마당 한 쪽에 제법 오래된 매화 한 그루가 고찰 용문사의 운치를 살려주는가 싶다.
고운 자태의 매화를 몇 컷 담고 감로수 한 모금 마신 후 ‘虎丘山龍門寺’ 편액이 걸린 일주문을 나선다.
저 아래 주차장이 보이니 이 때 시각이 오후 3시를 넘어섰으니 오늘 산행의 종지부를 찍는 시간.
<산행 후 주차장에 마련된 뒤풀이. 쇠고기 국밥 한그릇에 쇠주와 막걸리 그리고 수육으로 속을 꽉 채웠으니....>
주차장 한 켠엔 먼저 내려온 대원들이 널찍한 자리 위에 둘러앉아 한솔산악회에서 제공하는 쇠고기 국밥에다 돼지고기 수육을 안주삼아 쇠주와 막걸리로 하산주를 주거니 받거니......
이 모습을 보니 산악회 살림을 꾸리는 일도 예사 일이 아닐 것 같은데, 주위의 다른 산악회 모습도 별로 다르지 않네.
예전의 잔치집 풍경 같은 분위기에 대형 막걸리통을 곁에 두고 마시니 오늘따라 막걸리 맛이 일품이고 맑은 소주까지 무한 공급되니 주당들은 그야말로 大ㅅ吉이네.
4시 30분에 출발하여 부산으로 향하는 길은 오전의 남해도 들어오는 길과 달리 삼천포 쪽으로 연육교를 거쳐 가는 모양인지 창선도 사이의 좁은 바다에 설치된 죽방렴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물때가 썰물인지 긴 갯벌이 드러나 있어 문을 열면 갯내음이 물씬 풍길 것 같다.
삼천포 쪽으로 건너기 전에 널찍한 휴게소 광장에 잠시 정차하여 볼 일도 보고 차내에서 즐길 소주파티용 안주도 확보.
이미 용문사를 뜨기 전에 오락전용 차량을 따로 배정하여 승객을 구분 승차시켰건만 가무만 없을 뿐 우리 전용 차량도 알콜 기운으로 달리고 있는지 몰러.
<우리 폼이 괘안나. 이규용 사장이 혹시나 납치될까봐 모두들 걱정이 많았제. 옷도 함부로 벗지 말라고 했던가.>
진주로 접어드니 고속도로엔 서행하는 차량들이 줄지어 있어 도로 사정이 만만찮음을 짐작하고도 남음이라, 오전의 운행시간보다 족히 1.5배는 잡아야 할 듯.
한솔산악회 회장과 고문 신공까지 원정와 벌어진 주판은 이윽고 혀가 꼬부라질 듯 말 듯 할 때까지, 자는 사람까지 깨워 기어이 한 모금씩 하게 만들었으니 장하다 설공, 신공 그리고 춘섭공이여.
웃고 떠들고 하는 새 버스는 부산으로 들어서 9시가 조금 못된 시각에 원위치 하니 그냥 헤어질 수 없어 해운대 방면 몇이 먼저 귀가하고 나머지 15명은 인근 횟집으로 이동.
봄도다리 맛을 즐기며 상현공의 입회 축하식을 거행한 후에사 자리를 털고 일어나니 어느 덧 빼빼로 시각에 육박.
해산과 동시에 해운대 팀에 납치되었는지 임의 동행을 했는지 택시에 타는 모습을 본 후로 설공의 행방이 묘연하였으니 아무래도 낮 산행이 좀 미진했던 모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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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봤습니다. 남쪽 바다의 봄냄새가 여기까지 풍기네요.. 글 올리신 시각이 03:50분.. 감사합니다.
젤 먼저 찾아 들봐다 보시니 감사. 언제 함 내려오소. 같이 산행을...
읽고 있는 이 몸이 같이 잔나비산을 다녀온 느낌이 드오. 남해에 금산과 설흘산만 있는줄 알았는데 호구산도 있었구랴.다들 고생 많았소. 이몸은 같은 시각 성지곡 뒤 백양산 줄기를 돌며 부산 앞바다와 낙동강을 먼 발치서 조망하며 26악이 발 디디고 있을 남해 호구산을 생각했었다오.
하필 원정 갈 때 부산을 방문했구랴. 섭섭..
이교수님 가는 길은 저도 못 보았습니다... 혼수상태로 귀가하는 관계로 ㅎㅎㅎㅎㅎㅎ.. 또보입시다.
서울산케 초창기 모습이 생각나오. 너무나 오랫만에 만나 너무나 반가워서...배낭메고 집에 오니 조간신문이 반기더라.^^
아니 그럼 설공한테 납치를 당한 거요? ㅋㅋ
우리 부부가 정이 많아 손을 꼭 잡고 다니지요(?ㅎㅎㅎ) 산행 중에 이런 바위의 얘기들을 들었으면 좀 찬찬히 들여다 보며 공부를 할것을,..다음엔 일행을 세워놓고 공부시키주이소..멋진 후기 잘 봤습니다.
내내 그렇게 손을 다정하게 잡고 다니세요. 산에선 특히 보기가 좋데요. 젊은이들 보다 더. ㅎ
등산피로와 다음날의 酒毒(정보에 의하면)도 다 풀리지 않았을 터인데 새벽에 등산후기를 올려준 이박사께 무한감사!!! 일있어 함께하진 못했지만 후기읽는 동안 소인은 호구산을 타고 있었습니다.
ㅎㅎ 다 암시롱.. 후기가 너무 늦어질까봐 밤에 올리다 보니 시간이 좀...
산행후기를 읽고 보니, 엊그제일이 생생하게 재현되네요..이젠 정상에 오르거는 산상토론도 1-20분 갖도록 합시다. 이제 마그마가 무었인지?,지구역사를 째금 알겠네요... 월사금 톡톡히 내 터이니 지학 현장 교육 자주 부탁하오
아이고, 무신 월사금까지... 산상 건강 특강도 괜찮은디요.
돌아와 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이교수의 세세한 산행기를 읽어보니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구료 애많이 썼소이다
다음엔 홍사장이 함 쓰실 기회를 드리 터이니 해 보시면 어떨꼬...
사람살려
역시 이교수의 후기는 일품이여. 한번 더 호구산 갔다왔네^^ 근디 염불암과 용문사 근처의 푸른 식물은 녹차나무가 아니라 남해의 특산인 치자나무란 말이 있던데...
에그, 그런가요? 절집엔 으례 차나무인 줄 알았더니...... 치자나무의 키가 그렇게 낮습니꺼?
이박사님 등산의 가치를 후기를보면서 더 느끼도록 하신것이라,,정말 고맙다오,,,,,,컴을 처음 접해서 조금 글이 서툴어도 이해 해주시길,,,,, 어려운 시기에 등산 회원님들의 답글을 적어 주신분들 너무 감사합니다....
와~이륙악 회장의 댓글 참여가 참으로 보기좋소. 서울산케는 산행기에 댓글을 달아야만 산행이 끝난다네...깊은 밤 늦게까지 수고한 주필에 대한 예의겠지요.
첨부터, 첫날밤부터 잘하는 부부가 어디 있던가? 해보면 다 잘하고 자꾸 하고 싶어한다니까...
아이고, 회장님께서 방문하셨으니 회원들이 너도 나도 뛰어 오겠심더. 고맙슴다.
서울산케들은 왕년에 봄소풍 산행으로 가족동반하여,1박2일로 금산과 설흘산을 2번 다녀왔었소. 새샘교수는 꽃강의를,허사비교수는 돌강의를 곁들이니 민초가 배우는 것이 많네. 사진으로 본 내고향 남쪽바다가 정겹고...안 가고도 간 듯한,안 보고도 본 듯한 시산제후기 즐감했소.
그러게요. 몇 년 전 산케 가족들의 설흘산 산행이 부럽더니만......
한 편의 장편 서사시를 읽는 듯한 감동이 있소. 같이 하지 못했지만 같이 한 듯한 감정이 밀려오오. 건강 찬고 친구들 우정도 깊어가는 산행이 누군들 아니 부럽겠소. 항상 수고하시는 님에게 수 만 점의 우러럼이 있오. 3/22일 보기요.
용서하이소. 22일은 년중 계약된 날이라 틈을 찾을 여력이 없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