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일어나서 아침 먹고 학교 가라."
"....예."
오늘도 나의 똑같은 하루가 시작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왔다.
샤워를 했는데도 아직 멍한 기운이 남아 있었다.
"빨리 아침 먹고 학교가야지 그렇게 늦장을 부려서 어쩌려고 그러니."
매일 아침마다 듣는 소리라서 이제는 면역이 다 되었다.
이럴 땐 그냥 조용히 밥을 먹고 나가는 것이 정신건강에도 좋은걸 알기에 아무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를 닦고 내방에 들어와 mp3와 핸드폰을 교복에 잘 넣고 가방을 메고 현관문을 나섰다.
"인사는 하고 가야지."
"...다녀오겠습니다."
대충 대답하고 나는 mp3를 틀었다.
볼륨을 높인 뒤 버스정류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오늘도 한번에 타기는 글렀구나..."
버스정류장에는 많은 수의 학생들이 줄을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있었다.
"아.. 귀찮아.. "
매번 학교를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학교에 가는 것은 정말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학생들이 학교를 오고가는 시간은 낭비일 뿐이다.
차라리 인터넷으로 출석을 체크하고 수업을 듣는다면 그만큼 편하고 시간절약이 될 수 있을 텐데...
내가 매번 똑같은 생각을 하고있을 때쯤 멀리서 버스한대가 보였다.
유리창 안쪽이 까맣게 보이는걸 보니 오늘도 인간들이 많이 탄 것 같다.
나는 사람들이 버스에 다 타지 못할 것을 알고있었기에 의자에 앉아서 사람들을 봤다.
정장을 차려입고 어디인가로 가는 아저씨와 학교를 가기 위해 버스에 타고있는 학생들, 그리고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류인 향수를 진하게 뿌리고 타는 아줌마들과 스킨으로 세수를 한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들.
생긴 것과는 달리 후각이 상당히 예민한 나에겐 저 부류의 인간들이 버스에서 가장 싫어하는 부분이다.
버스는 반쯤 밀폐되어 있는 공간이다.
문이 열고 닫힐 때말고는 폐쇄 공간이기 때문에 향수냄새가 버스 전체에 진동을 한다.
끼이익 버스 한 대가 다시 정차했다.
앞 버스가 사람들을 모두 태웠기 때문에 이 버스는 사람들이 적다.
나는 버스 좌석에 거의 앉아 있지 않기 때문에 손잡이를 잡고 뒤편에 서있었다.
내가 타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로 두 정거장만 가면 학교에 도착한다.
한정거장을 가니 예상대로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버스에 탔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냄새를 맡아보았지만 역시나, 향수를 몸에다 부어버린 인간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크...젠장."
이럴 땐 나의 예민한 후각이 저주스러울 뿐이다.
그래도 한 정거장만 더가면 학교이니 이걸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 앞의 정류장에 내려서 제일먼저 한 것은 언제나 마찬가지로 숨쉬기였다.
콧속을 누비고 다니는 향수 냄새를 모두 배출시킨 뒤 나는 교실로 걸어갔다.
7:57분, 언제나 그렇지만 지각은 가까스로 면하는 시간이다.
나는 mp3의 볼륨을 조금 더 높인 뒤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했다.
8:05분이 되자 언제나처럼 담임이 들어왔다.
언제 봐도 보기 싫은 얼굴이다.
내 얼굴도 못생긴 편이지만, 정말 저 얼굴은 너무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게다가 하는 짓까지 왜 생겨먹은것과 닯았는지, 보는 것도 역겨울 정도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 반의 수업시간에는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조회와 종례시간에만 얼굴을 보는 고역을 당한다.
1교시는 한문이란다.
내가 싫어하는 시간이지만 다른 과목들에 비하면 선생도 양호하고 나쁘지 않은 시간이다.
고등학교 2학년인 내가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고있지만 하고 싶은 과목은 잘 듣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두 과목이 있는데, 영어A 시간과 일어 시간이다.
이유는 당연히 선생님들이 여자라는 것과 얼굴이 나쁘지 않다는 것이 이유이기도 했다.
또 내가 유일하게 공부하고있는 과목이 일어라서 일어시간은 재미있게 보낸다.
그럭저럭 시간을 때우고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왔다!
아~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3교시만 되면 속이 쓰린 관계로 빨리 4교시가 지나고 점심시간이 오기를 갈망하는 나에게 있어 점심식사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았다. 비록 급식이 맛이 없긴 하지만 말이다.
급식을 단 5분만에 먹어버리고 남은 40여분을 어떻게 보낼까 라고 생각하던 나에게 같은반으로 보이는 녀석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자고 제안을 했다.
나는 당연히 거절을 했다.
날도 더운데 일부러 땀빼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나에게 운동을 하자니...
아직 나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녀석 같았기에 나의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용서를 해주었다. 교실 한구석에서는 4명이서 포커를 하고있었다.
내 적성에도 맞는 것이기에 나도 같이 했다.
한판당 500원씩 걸고 1등이 다 가지기로 한 뒤 우리는 카드를 돌렸다.
난 조심스럽게 내 카드를 뒤집어 보았다.
녀석들도 카드를 보고나선 한마디씩 내뱉었다.
"젠장... 진 것 같군...원페어."
"우씌 나도 말렸다. 난 노멀이다."
"나도 원페어."
상민이 녀석이 "히히 그럼 내가 이긴 것 같은데?" 라며 카드를 뒤집어 보였다.
녀석의 카드는 4와j 두페어 였다.
"으... 또 돈 날렸다. 저게 차비였는데 오늘은 걸어가야 되겠네..."
한 녀석이 곡소리를 내며 엎어졌다.
상민이 녀석은 나를 무시하고 돈을 가져가려고 해서 나도 내 카드를 보였다.
"이런 젠장. 좋다가 말았네."
상민이 녀석이 내 쓰리페어를 보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무시하고 돈을 챙긴 뒤 일어났다.
"따고 그만 두는 게 어디 있어?" 라고 하길래 "여기 있다."라고 말해주었다.
띠리리리리
지겨운 7교시 수업이 끝나는 소리에 나는 약간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담임의 얼굴을 보고 난 뒤 다시 처참히 구겨져 버렸다.
"....이상, 반장 인사해라."
뭐라고 중얼거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학교에서 나갈 수 있기에 대충 인사를 하고 나는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하교 길의 버스도 학생들로 붐비기는 매한가지... 한낮의 기온과 사람들의 체온으로 버스는 찜통과 다름없었다.
버스에서 내린 뒤 나는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2000원도 벌었겠다 빵이나 사먹을 생각으로 들어간 것이다.
"손님, 2200원입니다."
난 2500원을 아르바이트생한테 주었다.
"거스름돈 여기 있습니다."
빵 3개와 우유 하나를 사서 가방에 넣은 뒤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제일 먼저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고 시원한 복장을 입고서 나는 미리 사온 빵과 우유를 꺼내들고 옥상으로 향했다.
우리 아파트의 좋은 점은 옥상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이다.
옥상에서 보이는 거라곤 아파트들과 한강줄기와 강 건너 보이는 차들뿐이었다.
나는 옥상에 앉아서 빵을 먹으며 지나가는 유람선을 바라보았다.
빵을 먹고 내려오려던 내게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휘익..휘익..휘익...
바람을 빨아들이는 소리처럼 들렸기에 나는 환풍기인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환풍기는 반대쪽에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무엇인가 보려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보았다.
"꿀꺽.. 이게 뭐지?"
내가 본 것은 맨홀 뚜껑만한 회오리 구멍이었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다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에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몸이 회오리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몸에 균형을 잡으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잠시 후에 멀리서 밝은 빛이 보여왔다.
빛이 가까워지자 나는 눈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빛은 멀리서 보던 것 보다 훨씬더 밝았기에 눈을 감아도 눈꺼풀을 통과하여
눈동자에 환하게 비추어 졌다.
그렇게 한참을 더 빛의 무리에 있던 내 몸이 갑자기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대로 떨어지면 죽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엄습해왔다.
나는 무엇이라도 잡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손에 잡히는 것이라곤 공기밖에 없었다.
"으아아아아아아"
그리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트라카니아 대륙에서의 여행
"으...머리야. 여긴 어디야?"
나는 두통기운이 있는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나는 황당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허...내가 꿈을 꾸나?"
나는 주위를 다시 한번 둘러보고 팔을 꼬집어보았다.
"씁...꿈은 아닌데..여긴 어디지?"
내가 있는 곳은 높은 천장과 창문 가득한 이상한 그림과 온통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바닥과 벽에 쓰여있는 동굴 안 이었다.
"허허..설마 진짜로 이루어질 줄이야...."
나는 깜짝 놀라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회색빛이 나는 모자와 옷을 입은 사람이 서있었다.
모자와 옷은 하나로 연결되어있었고 입과 코 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게 둘러싸고 있었지만
목소리로 미루어볼 때 노인의 목소리였다.
"누..누구세요?"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 보았다.
그 노인은 웃으며 대답했다.
"허허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아 일단 이쪽으로 와서 앉게나."
나는 노인이 가리키는 곳으로 가서 앉으며 다시 물어보았다.
"할아버지는 누구세요?"
내가 재차 물어보자 그제야 할아버지는
"허허 나는 네펜이라는 마법사란다."
"마..마법사요? 그런게 있나요? 이름도 좀 독특하시네요.."
"허허..흠..일단 사과부터 해야 되겠구먼.. 미안하게 됐네."
"예? 뭐가 미안하다는 겁니까?"
"자네를 이쪽으로 오게 한 것이 미안하다는 걸세."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지금 한가하게 대화나 하고있을 상황이 아닌걸 기억해 냈다.
"제가 어떻게 여기 있는 거죠? 전 옥상에서 이상한 회오리로 빨려들었었는데..."
"흠... 자네가 말하는 회오리 때문에 자네가 이곳으로 오게되었는데 그 회오리를 내가 만들었기에 사과를 하는 걸세."
"하..하하하... 그 회오리는 대체 왜 만드신 겁니까?"
"음.. 그게 내가 만든 마법약을 실험하다가 생겨난 거라서 나도 어떻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네.. 아무튼 사과하네 미안허이.."
그렇게 말하며 할아버지는 정말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이셨다.
"아뇨.. 괜찮아요 사과 그만하셔도 돼요."
"미안하네."
"흠.. 그런데 다시 돌아갈 방법은 없는 건가요?"
"그 방법은 나도 모르겠네. 이쪽으로 오게 된 것도 실수로 된 것이라서 어떻게 해야 돌아 갈수 있을지는 모르겠네. 미안하네.."
"사과는 그만하세요. 흠...정 그렇게 미안하시면 저한테 마법을 가르쳐 주시는 건 어때요?"
"마법을? 자네 마법을 배우고 싶은가?"
"그게.. 돌아갈 방법이 생길 때까진 이곳에서 살아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러니 마법이라도 배워 몸을 보호 해야죠."
"흠.. 그것도 그렇구먼. 좋네. 내가 자네에게 마법을 가르쳐 줌세."
"하하 고맙습니다. 앞으로 스승님이라고 부를까요?"
"하하 그렇게 하게. 그런데 자네 적응이 참 빠르구만?"
"어쩔 수 없자나요. 그리고 별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아요."
"허..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그래 자네 이름은 뭔가?"
"이름요? 장재혁이라고 하는데요?"
"흠..이곳의 이름과는 많이 다르구만.. 이왕 이곳에서 살꺼면 이름을 새로 하나 만드는게 어떻겠나?"
"새 이름이요?
"흠 뭐가 좋을까...그래 아리시우스 어떤가? 줄여서 아리라고 부르기로 하지."
"아리시우스라... 부드럽고 좋네요. 그거로 하죠."
"그래 그럼 앞으로 아리라고 부르겠네."
"네. 네펜 스승님."
"허허 정말이지 적응이 빠르구만."
이렇게 해서 나는 연고도 없는 이곳에서 첫 인연을 만들었다.
"그럼 이제 마법을 가르쳐 주세요."
내가 기대에 가득찬 눈으로 스승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허허 녀석. 그래 네가 살던 곳에는 마법이 존재했느냐?"
"아뇨. 제가 살던 곳은 과학의 발전만 있는 세계 였어요."
"과학? 흠.. 그렇다면 마법을 배우기가 조금은 힘들겠구나. 마나란 것을 알고 있느냐?"
"마나요? 마나는 주위에 퍼져있으며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것 아닌가요?"
"허허 대충은 아는 것 같구나. 마나에 대해 알고있으니 설명은 쉽겠구나."
내가 아무 대답없이 스승님을 쳐다보자 스승님은 말을 이었다.
"마법을 사용하는 법은 간단하고도 어렵단다."
나는 무슨 말인가 하고 물어보았다.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선 우선 몸 속에 마나를 모아두고 사용하고자하는 마법의 이미지를 떠올린 뒤 마나와 공명시키면 된단다."
"마나를 모아둔 뒤에는 쉬울 것 같은데요? 마나를 모으는 것이 어렵나요?"
"허허 마나는 꾸준히 수련해야 모아지는 것이란다. 마나가 어느 정도만 있어도 마법은 사용 할 수 있단다. 내가 어렵다고 말한 것은 이미지를 떠올리고 마나와 공명시키는데 많은 집중력이 필요하며 정신력 소모가 많다는 것이란다."
"흠.. 공부와 마찬가지로 집중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네요. 에혀.. 어렵겠다."
"허허 녀석 벌써부터 포기하려는 게냐?"
"음.. 일단 마나를 모으는 방법부터 가르쳐 주세요."
"그래 마나는 우리 주위에 언제나 존재하지. 마나를 모으는 방법은 마나의 흐름을 느낀 뒤 그 흐름에 따라 몸 속으로 끌어 모은다는 이미지를 떠올리면 된단다. 물론 마나를 모으는 방법에도 집중력이 필요하단다."
"에휴.. 한번 해보죠 머.."
이렇게 나는 네펜 스승님의 집에서 석 달간 마법을 배웠다.
"아리야...이제 어디 가서 애송이라는 소리는 안 들을 정도는 되었구나."
"쩝.. 그냥 칭찬을 해 주시는게 어떨까요. 스승님?"
"허허 녀석 이제 이 세계에 대한 지식도 쌓았겠다, 여행을 떠나보지 않으련?"
"여행이요? 정말요?"
나는 여행이란 말에 한껏 들떳다.
이 세계에 온 후로 3개월 동안 나는 이 동굴 안에서 마법 수련만 하였기 때문에,
바깥 세상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스승님께서 여행이라는 말을 꺼내셨으니, 이 어찌 기쁜 일이 아닐 수 있겠는가.
"허허 그래. 3개월 간 동굴 안에만 있었으니 네가 오죽 답답했겠느냐. 가끔씩 네가 동굴 밖을 넋 놓고 바라보는걸 보았단다."
나는 머쓱한 기분이 들어 괜한 머리만 글쩍였다.
"이제 여행을 떠나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몸조심 해야한다."
"네..."
나는 동굴 밖으로 나간다는 말에 기분이 들떠있었지만, 스승님의 말을 듣고는 기분이 가라앉았다.
이곳에서 있던 3개월 간 스승님은 날 손자처럼 대해 주셨고 나도 그런 스승님이 친할아버지처럼 느껴졌었다.
아직 정정하시지만 연세가 많으셔서 언제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내 기분이 가라앉은 모습을 보고 스승님은
"허.. 녀석. 여행 떠나는 놈이 그렇게 풀이 죽어서 어찌하느냐. 내 걱정은 말고 부디 몸조심
하거라."
"예..스승님."
"그래.. 그럼 여행을 떠날 채비를 하거라."
"예."
나는 대답을 한 뒤 내가 사용하고 있는 토굴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옷가지와 마법서 몇 권을 챙겨서 동굴 입구로 나갔다.
그곳에는 스승님이 조그마한 보자기와 지팡이로 보이는 것을 들고 서 계셨다.
"아리야, 이것들을 가지고 가거라. 여행경비와 마법 물품들이니 너를 도와줄 것이니라."
보자기 안에는 주먹만한 보석 두 개와 검은색의 목걸이와 붉은색, 푸른색, 녹색, 황갈색, 하얀색의 반지와 은빛을 내는 주먹 두 개만한 크기의 돌이 들어있었다.
"이 목걸이는 너의 마력을 증폭시켜주는 효능이 있고, 큐어의 주문이 걸려있어 아주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이 반지들은 각각 속성 마법들이 담겨있단다. 그리고 이 팔찌는 텔레포트의 주문이 걸려있는데 위급한 상황에 외치기만 하면 텔레포트가 가능할 것이다."
"감사합니다..스승님."
"허허 녀석. 하나밖에 없는 제자가 여행을 떠난다는데 이 정도 밖에 못 주는 내가 더 미안하구나."
스승님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며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말을 이으셨다.
"그리고 이 은빛이 나는 돌은 사람들 눈에 보이지 말고 주머니에 넣고 다니거라."
"무슨 돌인데요?"
나는 저 돌이 무엇인데 스승님이 저렇게 당부하시는지 궁금해졌다.
"이 돌이 미스릴을 제련해서 만든 마법석이란다."
"미..미스릴로 만든 마법석이요?"
나는 당황하여 물었다.
지난 석 달간 나는 스승님에게 이 트라카니아대륙에 대한 정보와 이름난 마법물품들과 마법석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구하기도 어렵고 제련하기는 더욱 어려운 몇 가지 금속들에 대한 기억이 났다.
그중 최상급 금속은 오리하르콘이라는 금속이며 미스릴이 순간적으로 고온 고압을 받아 생성된다고 들었다.
그 다음이 미스릴인데 미스릴은 은이 고온 고압을 받아 생겨난다고 하는데, 미스릴은 자체적으로 마력을 머금고있어 마법 물품으로 널리 애용되며 그 희소성 때문에 구하기가 매우 힘들고 이름난 드워프의 장인들이나 고위 마법사들이 아니면 제련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들었다.
그런 미스릴을 이렇게 많이 가지고 계셨다는 건 스승님이 고위 마법사라는 사실을 대변해 주는 것이기도 했다.
"햐.. 이렇게 귀한걸 어떻게 가지고 계셨어요?"
"허허. 드워프족에 친구가 한 명 있는데, 그 친구가 내 생일 때 준 것이란다."
"드워프가 미스릴을, 그것도 이 정도 크기나 돼는 것을 선물로 줬다면 상당히 친한가봐요?"
"여행하다 만난 친구였는데 생사고락을 함께 했었단다."
"그렇군요."
내가 마법석을 살펴보자, 스승님께서 말을 이으셨다.
"그러니 안 들키게 조심하거라. 미스릴은 지니고만 있어도 네가 마법을 사용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니라. 그리고 나중에 그 미스릴로 다른 마법물품을 만들 수도 있으니 소중히 간직하거라."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몸조심해서 다녀 오거라."
"예... 몸 건강히 잘 지내십시오."
나는 그렇게 스승님에게 큰절을 올리고 동굴을 벗어나 산 아래로 향하였다.
산을 내려오며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맑은 공기와 즐겁게 지저귀는 새들, 그리고 풀벌레들의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느긋한 걸음으로 산 아래의 마을로 걸어갔다.
#아스타르테여신의 신전
내가 도착한 마을은 수도 쥬크와 마법도시 미라노, 검의도시 네오스가 접해있는 이프노라는 마을이다.
나는 마을로 들어서자마자 보석상을 제일 먼저 찾아갔다.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스승님께 받은 보석 중하나를 팔 생각으로 간 것이다.
"이 보석 좀 봐주세요."
"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뚱뚱한 보석상점의 주인은 흰색 실크로 만든 손수건으로 내가 내놓은 보석을 살펴보았다.
"흠...상질의 오팔이로군요. 보관상태도 양호하고, 꽤 비싼 가격에 팔리겠군요."
"얼마쯤 받을 수 있습니까?"
"30골덴쯤이면 어떻겠습니까?"
"흠.. 가격을 좀더 주실 수 없습니까?"
"흠.. 좋습니다. 품질도 좋은 것이니 3골덴 더 드려서 33골덴에 사죠."
"쓰신김에 조금만 더 쓰시는게 어떠신지요?"
주인이 잠시 눈을 찌푸린 뒤에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 좋습니다. 35골덴 드리지요. 그 이상은 안됩니다!"
"하하 좋습니다. 35골덴으로 하죠."
주인은 기다리라는 말을 한 뒤 보석을 가지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짤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가죽 주머니를 가지고 돌아왔다.
"35골덴이 맞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나는 탁자 위에 주머니를 뒤집어 보았다.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동전 35개를 확인한 뒤 나는 그 가게를 나왔다.
[흐흐.. 에누리 없는 장사는 없는 법! 묵직한게 기분 좋은걸?]
나는 돈주머니를 옆구리에 차고 이 마을에서 제일 좋은 여관을 찾아 나섰다.
"아스타르테의 쉼터" 라는 이름의 여관은 밖에서 보기에도 상당히 좋아 보였다.
여관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간 나는, 한쪽 구석의 테이블에 가서 앉았다.
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를 들고 종업원이 다가왔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종업원은 화사한 미소가 잘 어울리는 마음씨 좋아 보이는 여자였다.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이 집에서 가장 자신 있는 요리가 뭐에요, 누나?"
내가 미소를 지으며 물어보자, 종업원 누나는 환하게 웃으며,
"우리 여관에서는 양고기 요리와 신선한 야채샐러드를 추천하고 있단다."
"그럼 그렇게 주세요."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렴."
누나가 웃으며 뛰어가는 모습을 보고 나는 불안한 느낌에 주문표를 들여보았다.
다행히도 그리 비싼 음식은 아니었기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가게 내부를 찬찬히 돌아보았다.
하얀색의 벽과 나무로 되어있는 식기들, 그리고 환하게 비추고 있는 등불이, 전체적으로 따뜻한 느낌을 주는 여관이었다.
나는 아직 김이 피어 나오는 차를 한 모금 마셔보았다.
녹색의 차는 약간 쓴맛이 났지만, 몸을 따뜻하게 해주어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식사 전에 쓴맛이 나는 차를 마시면 식욕을 돋우어 준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았기에 나는 그 차를 남김 없이 마셨다.
내가 차를 다 마시자 주문한 요리가 왔다.
나는 맛있는 냄새가 나는 양고기요리와 보기만 해도 침이 나오는 샐러드를 보며 종업원 누나에게 물었다.
"이건 무슨 재료로 만든 거에요?"
내가 물어보자 종업원 누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타임잎을 뿌린 새끼 양 갈비찜과 직접 재배한 채소와 과일로 만든 샐러드에 페퍼민트를 잘게 썰어 넣은 샐러드란다."
나는 양고기를 한 입 베어 물고 맛을 음미했다.
"와~ 정말 맛있는데요? 고기가 씹히는 맛과 육즙이 굉장히 맛있어요."
종업원 누나는 내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호호. 그렇게 맛있니?"
"예. 지금까지 먹어본 음식 중에 제일 맛있어요."
"호호호. 그래 체하지 않게 조심해서 먹으렴."
종업원 누나는 그렇게 말하며 테이블에 앉아 내가 다 먹을 때까지 바라보았다.
"맛있게 잘 먹었니?"
내가 양고기와 샐러드를 다 먹고 나자 누나가 말을 걸었다.
"네. 정말 맛있게 먹었어요."
나는 주저 없이 말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산 속 동굴에서 먹은 음식이 맛있으면 얼마나 맛이 있었겠는가!
"호호 그래. 차림을 보니 여행 중인가봐? 혼자 여행하는 중이니?"
"네. 얼마 전까진 스승님하고 같이 살았는데 스승님이 여행을 떠나 보라고 하셔서 여행 중이에요."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난 포만감과 친절한 누나로 인해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그래? 차림을 보니 마법사 같은데.. 맞아?"
"네. 스승님께 마법을 배웠어요."
"와~ 너처럼 어린 마법사는 처음 봐. 무슨 마법을 주로 사용해?"
"그냥 속성별로 고르게 사용하고 있어요."
"와~ 다른 마법사들도 두 가지 이상 다른 속성마법은 힘들어서 사용 못 한다던데 너 굉장하구나?"
"에이~ 뭘요. 겨우 몸을 보호하는 수준인걸요 뭐."
"호호 그래.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종업원 누나는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곧, 차 한잔을 들고 나왔다.
"허브차야. 정신을 맑게 해줄 꺼야."
"고마워요 누나.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요, 여관 이름에 있는 아스타르테가 무슨 뜻이에요?"
"아~ 이 마을에서 모시는 여신의 이름이야. 저기 언덕에 아스타르테님의 신전도 있어."
"신전이라.. 나중에 구경가봐야지."
"호호. 그 신전의 중앙에는 무릎쯤 오는 바위에 뽑히지 않는 검이 한 자루 박혀있는데, 아스타르테여신이 사용했던 검이라고 불리고 있어서 여행객들이 한 두 번씩 뽑아보려고 노력한단다."
"여신이 사용했던 검이면 성검이란 말인가요?"
"그런 건 잘 모르겠는걸? 그냥 아스타르테여신이 사용했다고 얘기로만 전해지고 있어."
"그렇군요... 히히 나도 한번 뽑아 볼까나?"
"호호 그래보렴."
그렇게 나와 종업원 누나는 소화가 다 될 때까지 떠들었다.
"누나, 저 피곤해서 좀 자야겠어요."
"어머, 내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구나. 2층에 가서 오른쪽에서 2번째 방에 가서 쉬면 된단다."
"고마워요 누나. 내일 아침에 봐요."
"호호. 그래 잘 자렴~"
오랜만에 하는 얘기라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었다.
나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몸을 날렸다.
푹신푹신한 침대에 얼굴을 묻고, 나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 나는 모처럼 늦잠을 잤다.
몸을 일으켜 세수만 간단히 하고 늦은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내려 왔다.
"늦게 일어났네?"
종업원 누나가 내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랜만에 침대에서 자서 그런지 늦잠을 잤네요."
"호호. 아침 식사는 뭐로 할래?"
"어제처럼 누나가 추천해주세요."
"호호. 그러면...건포도를 넣은 호밀빵과 쇠고기스튜, 그리고 특제 샐러드를 먹어볼래?"
"그걸로 주세요. 누나가 추천하는 건데 맛있겠죠."
"호호 잠시만 기다리렴."
나는 누나가 음식을 가지고 올 동안 창 밖의 신전을 바라보았다.
신전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는데, 그 크기와 모습은 이 마을 사람들의 신앙심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자~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자~ 그럼 잘먹겠습니다~"
내가 누나의 말투를 따라하자 누나는 즐거운 듯 웃어 보였다.
"아침 먹고있어. 조금 있다가 올게."
"알았어요 누나."
누나는 식당 일을 거들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스튜와 달콤한 호밀빵과 신선한 샐러드는 뱃속을 채워줄 뿐만 아니라, 나의 영혼까지 채워 주는 느낌을 주었다.
내가 얼마 남지 않은 빵을 먹고 있을 때 누나가 와서 말했다.
"오늘 신전 보러 갈 꺼니?"
"예 한번 가 보려구요."
"그래? 그럼 내가 같이 가줄까?"
"누나가 같이 가준다면 저야 영광이죠."
"녀석 짓궂기는."
그렇게 말하는 누나의 얼굴은 잘 익은 홍시처럼 되어있었다.
그럼 저는 이 근처에서 마법물품좀 사고 올께요."
"그래. 잘 다녀와."
역시, 사람은 칭찬을 듣는 것에 약해. 여자들은 예쁘다는 말에 특히 약하구 말이야.
하긴 못생겼으면 내가 이쁘다고 하지도 않지만 말이야.
나는 식당을 나와 근처에 있는 마법물품점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뭐 찾는 물건이라도 있으십니까?"
마법물품점 주인이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음.. 마법물품좀 구경하게요."
"이쪽으로 와서 구경해보세요."
주인은 나를 한쪽 벽면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엔 여러 가지 마법물품이 종류별로 진열되어 있었다.
목걸이, 반지, 귀걸이, 팔찌, 마법망토, 완드, 스태프, 스틱 등등, 많은 수의 물품들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수정귀걸이 한 쌍과 보라색망토를 하나 샀다.
수정은 순수한 마력을 모으는 보석이기 때문에 많은 마법사들이 애용하는 보석이다.
그리고 내가 산 망토는 물리적 보호력은 미약하지만 마법내성과 자체 재생능력을 지니고있어 손상이 되어도 원래대로 복구가 되며 두꺼워서 모포대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모두 합쳐 4골덴 입니다."
"흠.. 아저씨, 좀 깎아주시면 안될까요?"
내가 불쌍한 표정을 짓고 말하자 가게주인이 웃으며 물었다.
"하하 얼마쯤 깎아줄까?"
"2골덴 50실링 정도요.."
"녀석.. 날강도가 따로 없구만. 에이 기분이다. 2골덴50실링에 파마."
"하하 고맙습니다 아저씨."
"하하 잘 가라."
"아저씨도 많이 파세요."
오늘도 물건값을 1골덴 50실링이나 깎은 나의 장사수완은 보통이 넘는 것 같다니까.
나는 수정귀걸이를 귀에 걸고 망토를 두른 뒤 시장으로 향했다.
어디를 가나 시장은 활기가 넘치는 모습이다.
이곳 이프노는 3도시와 근접해 있어서 그런지 많은 상인들이 보였다.
나는 시장을 거닐며 물건들을 구경하였다.
스승님이 한 말씀 중에 가끔씩 봉인되어 있어서 그 존재를 잘 느낄 수 없는 마법물품들이 시장같은 곳에서 돌아 다닐테니 어느 마을이건 시장은 한번씩 가보라고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스승님의 말을 생각하며 마법 물품처럼 보이는 것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문득 어느 가게 앞에서 불안정한 마나가 흐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가게로 들어가 보았다.
그 가게는 대장간과 무기상을 겸하고 있었는데 대장간 쪽에서 마나가 느껴졌다.
나는 대장간으로 가서 마나가 흘러나오는 물건을 찾아보았다.
새로 태어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녹슨 검들 사이에서 단검 한 자루를 찾아냈다.
미세하지만 그 단검에서는 끈임 없이 마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대장간 주인에게 이 단검을 사겠다고 하자, 주인은 쓸모 없는 쇠붙이니 그냥 가져가라고 말해서 뜻밖의 횡재를 할수 있었다.
최소한 마나가 흘러나올 정도의 검이면 아무리 질 나쁜 검이라도 5골덴 정도는 하기 때문에 대단한 이익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시장을 좀더 돌아다니다가 한 악세사리가게 앞에서 멈추어 섰다.
이 가게에서도 아주 미세하게 마나가 흘러나오고 있었기에 들어가 보았다.
그곳에서 찾은 것은 에메랄드 귀걸이 한 쌍 이었는데, 척 봐도 그리 대단한 마력은 깃들어있지 않아 보였지만, 종업원 누나한테 줄 생각으로 20실링이라는 거금을 들여 사서 나왔다.
물건을 다 산 뒤, 여관으로 돌아온 나는 점심식사 전에 이 단검의 봉인을 풀기 위해 내방으로 향했다.
방에 도착하여 봉인해제의 마법진을 그린 뒤 그곳에다가 단검을 넣은 나는, 봉인해제의 마법주문을 외웠다.
주문을 외우고 나자, 단검에선 새하얀 수준기 같은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잠시 밝은 빛을 뿜어내던 단검의 빛이 수그러든 뒤 내 눈앞에는 더 이상 녹슨 단검이 아닌
은빛 검날에 붉은 기운이 어리는 망고슈가 있었다.
사람을 홀릴 정도로 아름다운 빛을 내뿜고 있는 망고슈를 집어 들고 나는 탄성을 지었다.
"와... 이 단검, 생각보다 대단한걸?"
망고슈의 검신은 량의 아다만티움과 소량의 미스릴로 만들어져 있었고, 손잡이 부분은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상당히 단단하였고, 미스릴을 넣었기 때문에 마법력도 증폭시켜 주고 있었기에, 뜻밖의 횡재가 아닐 수 없었다.
"오늘 수지 맞았는걸?"
나는 너무 나 기쁜 나머지 망고슈를 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이거, 오랜만에 주인이 생겼는데 꼬맹이라니...]
"엥? 이게 무슨 소리지? 잘못 들었나?"
[잘못 들은 게 아니다. 일단은 내 소개부터 하지. 나는 350년쯤 봉인되어 있었던 "아슈탈" 이란 단검이지.]
"허억... 이.. 단검 상위 마법검인 건가?"
[나를 그런 조잡한 검들과 동급으로 취급을 하다니... 나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나?]
나는 전혀 미안하다는 생각 없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미안하지만 전~혀 아는 게 없는걸 어째?"
[이런 무식한 녀석을 봤나.. 마법사녀석이 내 이름도 모른다니. 350년 전에 살던 놈들이 죽기 전에 책도 안 써 놓았나?]
사실, 아슈탈이란 이름의 단검은 옛날부터 유명한 성검이었다.
여신 아스타르테가 사용했었던 검으로, 왠 만한 마법사들 이상의 지식과 마법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아슈탈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스승님에게서 말씀해주신 내용 중에는 마법물품을 구별하는 방법은 있었지만 마법검의 명칭이나 능력은 알려주지 않았다.
[아무튼 널 내 주인으로 인정한다.]
"당연히 내가 네 주인인대 무슨 인정을 한다는 말이야?"
[나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끔 해준다는 말이다.]
"아.. 그런 거였군."
나는 망고슈를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한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뭔데?"
[너 정말 마법사 맞냐?]
"그건 또 무슨 소리냐? 네가 아까 말하다시피 마법사 아니면 뭐로 보이는데?"
[흠.. 마나가 있는 것을 보면 마법사가 분명한데, 이 많은 양의 기는 대체 무엇이지?
"기? 그건 사람들 몸에 전부 있는 것 이자나."
[내 말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기의 양이 많다는 것을 말한다. 수련을 쌓은 상위 기사들도 이 정도의 기를 몸 안에 가지고 있지는 않다.]
"특이체질인 건가?"
[흠.. 너 마검사가 되고 싶은 생각 없냐?]
"마검사?"
[그렇다. 이 대륙에는 수많은 마검사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거의 모든 녀석들이 검은 베기동작 정도와 마법은 잘 봐줘야 중급정도 실력밖에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너라면 최고라는 칭호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호.. 재미있겠는걸? 근데 마검사가 되려면 검술을 배워야 하는데 난 아는 사람이 없다."
[검술은 나에게 배우면 된다. 하지만...]
"하지만?"
[너의 몸을 살펴보니 검사로써의 수련을 받아도 힘이 부족해서 제대로 된 검사는 되기 힘들 것 같다.]
"뭐? 그럼 지금까지 말한 건 뭐야?"
[흠.. 너는 힘이 부족한 반면에 민첩함과 유연성, 어느 정도의 체력이 뒷받침되니 마도적이 되는 것은 어떠냐?]
"마도적? 이름 한번 생소하네. 잘못 들으면 완전히 말도둑 이네?"
[마(馬)도적이 아니지 않나.]
"어쨋든 억양이 안 좋아. 마검사는 몰라도 마도적은 안 할래."
[어리석은 녀석. 그깟 명칭 때문에 안 한다는 건 어리석은 짓일 뿐이다. 이 세상에는 마검사나 마도적이 되고 싶어도 실력이 안되기 때문에 포기하는 녀석들이 바닷가의 모래만큼이나 많다. 그런데 너는 그 사람들이 질투를 느낄 정도의 실력이 되는데도 고작 명칭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만으로 포기하려하다니, 그런 짓은 바보천치들이나 하는 짓이다.]
"..... 너 말 진짜 잘하는구나. 그래도 억양이 안 좋은 건 안 좋은 거야!"
[명칭은 네가 마음대로 해도 되지 않는가? 도법사.. 이건 아니군... 매지션로그나 로그매지션같은 것으로 정하면 되지 않는가.]
"듣고 보니 그렇네. 흠 좋아. 까짓 한번 해보지 뭐. 앞으로 로그매지션이라고 불러줘."
[좋다. 그럼 수련은 내가 지시를 내리면 네가 그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
"시키면 시키는 데로 하라는 말로 들리는걸?"
[그럼 아닌가? 네가 검사나 도적의 수련 방법을 알고있다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고만 있겠다.]
"큭.. 알았다. 너 상당히 예리한 놈이구나."
[나는 검이다. 그러니 예리할 수밖에 없다. 멍청한 마법사녀석.]
나는 침대위로 쓰러지듯 누웠다. 내 인생이 비참하게 느껴졌다.
명색이 마법사가 아무리 성검이라곤 해도 고작 단검에게 말빨로 밀리고 멍청하다는 소리를 듣게 되다니.
[그러면 오늘은 일단 쉬도록 해라. 내 봉인을 푸느라 많이 피곤했나보다.]
"피곤 하긴 하지.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았으니..."
[왜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지?]
"....몰라도 돼!"
잠시 후, 떠날 채비를 마친 나는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식당 안은 매우 분주했다.
내가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종업원누나가 다가왔다.
"점심 먹을 꺼니?"
"예."
"뭘 먹을래?"
"누나가 추천해주세요."
"호호 그래. 잠시만 기다려."
누나가 부엌으로 간 뒤, 나는 아슈탈을 꺼내들었다.
"야, 식사 나오기 전까지 그 수련법 좀 말해 주라."
[음 배우려는 자세가 되어있군. 일단은 체력을 기르는 것부터 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몸의 민첩성을 향상시키는 훈련을 한 뒤, 여러 무기들에 대한 지식과 사용 방법에 대해 알려주겠다.]
"별로 어려운 것 같지는 않은데?"
[내가 도와주는데 어려울 것은 전혀 없을 수밖에 없지.]
"캬~날씨 좋다."
나는 아슈탈의 말을 무시하고 누나가 가지고 오는 식사를 보았다.
"자 맛있게 먹으렴."
"잘 먹을 께요."
"그런데 미안해서 어쩌지? 조금 있다가 수도에 가야 돼서 신전에는 같이 못갈것 같아..."
"흐응.. 괜찮아요. 저 혼자 가보면 되죠 머."
"정말 미안해."
누나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사과를 했다.
나는 누나에게 웃어준 뒤, 시장에서 사뒀던 에메랄드 귀걸이를 내밀었다.
누나는 내가 내민 귀걸이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누나 주려고 산 거에요. 나중에 주려고 했는데 지금 줄께요."
"정말 나주려고 산 거야? 와~ 너무 이쁘다. 고마워."
귀걸이를 하면서 웃는 누나의 모습에 미소를 지어 보인 뒤 나는 기분 좋게 식사를 했다.
[여자를 상당히 밝히는 녀석이구나.]
나는 아슈탈의 말을 무시하고 식사를 마친 뒤, 카운터에 가서 누나를 불렀다.
"누나~ 여기 얼마에요?"
"괜찮아. 귀걸이도 선물 받았는데, 공짜로 해줄게."
"예? 정말이에요?"
"그럼~"
"고마워요 누나."
"그래. 여행 잘해~"
"잘 있으세요."
나는 기분 좋게 여관을 나왔다.
보통 여관의 숙박비가 하루에 40~50실링을 하는데, 20실링 귀걸이 하나로 숙박비를 대신 하게 되었으니 20실링 정도가 절약된 것이다.
나는 기분 좋게 신전 쪽으로 향했다.
[여자를 밝히는 것에다가 지독한 구두쇠 녀석이 내 주인이라니.. 앞날이 훤~하군.]
"네 녀석은 처음에는 무게감 있는 괜찮은 녀석인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수다만 떠는 수다검으로 보인다."
[....]
녀석은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기에 나는 조용히 신전으로 향할 수 있었다.
이 녀석, 삐진거 아냐?
#두가지 신검
나는 지금 신전의 입구에 도착해 있다.
신전까지 오면서 삐진줄 알았던 아슈탈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아스타르테여신의 신전에 있는 검은 자신의 본체이며 지금의 단검은 원래 마법검 이었는데, 자신에게 적합한 주인을 찾기 위해 단검에 들어왔다고 한다.
[내 본체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신검이다. 검신은 소량의 오리하르콘을 넣어 만든 미스릴 검신에 손잡이는 골드드래곤의 드래곤본으로 만들어 졌기 때문에, 검 자체의 능력만으로도 대단하기 때문에 그 모습으로는 제대로 된 주인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에 이 단검의 모습으로 세상을 돌아다닌 것이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넌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신검이네?"
[그렇지. 하지만 불행히도 나와 비슷한 능력을 지닌 마검이 한 자루 만들어져 있다.]
"너와 비슷한 능력의 마검?"
[그래. 녀석의 이름은 이루스. 검신은 레드드래곤으로, 손잡이는 블랙드래곤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녀석의 정신체는 레드드래곤으로 성격이 아주 사납지.]
"응? 말이 좀 이상하다? 검신은 레드드래곤이고 손잡이는 블랙드래곤? 이게 무슨말이야?"
[말 그대로다. 검신은 레드드래곤으로 손잡이는 블랙드래곤으로 만들었다는 말이다.]
"네 말대로 하면 검신과 손잡이에 각각 레드와 블랙드래곤을 통째로 넣었다는 말 이자나?"
[그래. 그 말이 맞다. 나를 만든 아스타르테님과 적대관계인 악신 디비가 이루스를 만들 때,
레드드래곤을 이루스의 검신에, 죽은 블랙드래곤의 몸체를 손잡이에 봉인하여 만든 검이다.]
"네 말을 듣고 보니 왜 마검이 되었는지 알겠다."
[레드드래곤 녀석은 어릴 때 봉인되었으니 그 분노가 상당했지. 그래서 파괴만 일삼다 보니 마검이라고 불리게 되었고, 주인의 정신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 때문에 마검이라고 불린 것이다.]
"혹시 너도 내 정신을 지배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못 할건 없지만 하고싶지가 않다. 뭐에 쓰라고 네 녀석의 몸뚱이를 조종하냐?]
"말하는걸 보면 완전히 마검 이라니까."
[객관적인 사실을 말할 뿐이다. 그리고 신전에 있는 검을 뽑으면 그곳에 조그마한 문자가 쓰여진 돌멩이가 보일 것이다. 그 돌멩이를 잘 챙겨둬라.]
"돌멩이? 그건 어디다 쓰게?"
[그 돌멩이는 소환석이라고 부른다.]
"그건 어디다 쓰는 건데?"
[소환석은 이 세상에 널리 퍼져있다. 소환석은 소환수를 봉인해 둔 돌멩이로 소환석을 가지고 있으면 그 소환석에 봉인되어있는 소환수를 부릴 수 있는 것으로, 고대의 마법사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마법사들이 만들었다고? 뭐 하러 그런걸 만들었대?"
[마법사들이 소환석을 만든 계기는 정령을 보고 만든 것이다.]
"정령을?"
[그래. 정령은 정령과의 친화력이 없으면 소환할 수가 없다. 특히, 마법사들에게는 정령과의 친화력이 거의 없기 때문에 정령과 계약을 할 수 있는 마법사가 드물기 때문에 정령마법사와의 승부에서는 거의 패배를 하기 때문에 소환수를 만든 것이지.]
"그렇구나. 그럼 소환수는 어떻게 부르는 거야?"
[일반적으로, 소환석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소환서가 필요하다. 가지고 있는 소환석을 소환서에 집어넣으면 그 소환석에 봉인된 소환수의 모습과 능력이 표시되지. 그 다음부터는 소환서에 표시된 소환수는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소환할 수 있게된다.]
"그러면 소환석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소환서라는 것을 가지고 있어야 되자나? 난 소환서가 없는데 어떻게 하지?"
[그건 걱정하지 마라. 내 본체가 소환서의 능력을 대신할 수 있으니까.]
"네 본체는 못하는 것이 없는 것 같다?"
[당연하지. 나는 최강의 신검이지 않나.]
"아무튼 칭찬한번 해주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군."
[한가지 더 말해 줄게 있다. 고위 마법사들은 소환석을 만들 수도 있고, 상급 소환수는 사용자의 몸에 맞추어 변형시켜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면 오크도 소환수로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야?"
[사용할 수는 있지만 오크 따위를 소환석으로 만드는 정신나간 마법사는 없다.]
"그러면 드래곤을 소환수로 만들 수도 있는 거야?"
[드래곤을 소환수로 만들만한 실력을 가진 마법사는 본적이 없다.]
"그러면 나도 소환석을 만들 수 있을까?"
[네 녀석은 고위 마법사의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만들고 싶은 몬스터가 있으면 말해라. 내가 만들어 줄 수 있으니까.]
"아슈탈, 네가 존경스러울 때도 있구나."
[난 항상 존경받아 마땅한 존재이다.]
"그래그래. 아무렴 어때. 빨리 가서 네 본체나 찾자."
나는 신전의 중앙부로 가보았다.
그곳에는 정말 검이 한 자루 보였는데, 바라보기만 해도 황홀한 빛을 내뿐고 있었다.
[빨리 가서 저 검을 뽑아. 그 다음에, 소환석을 챙겨라.]
"그래."
나는 아슈탈의 본체인 신검을 뽑아 들었다.
뽑히지 않는 검이라고 들었는데 의외로 쉽게 뽑히자 나는 이게 정말 그 검인가 하고 바라보았다.
[내가 있기 때문에 뽑힌 것이다. 내가 없으면 네 녀석이 몇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로 뽑히지 않는 검이다.]
"예예 알아모시겠습니다. 이제 네 본체로 들어 가는게 어때?"
[두 검을 겹쳐라.]
나는 아슈탈의 정신이 들어있는 단검과 본체인 신검을 겹치며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잠시 후, 두 검에선 은은한 빛이 나오다가 사라졌다.
"벌써 끝난 거야?"
[그래. 이제 그 단검은 보통의 마법검이다.]
"시시하게 끝났네."
[잔말말고 소환석이나 내 검신에 대라.]
내가 위대하신 신검의 말에 따라 소환석을 검신에 대자, 소환석은 검신으로 스며들었다.
"이제 된 거야?"
[음.. 이 녀석은 가이아라고 하는 대지의 상급 소환수이다. 착용할 시의 능력은 대지의 기운을 머금고 있는 "대지의 갑옷"으로 그 강도는 풀 플레이트 아머 5개를 겹쳐 입은 것보다 강하다.]
아슈탈의 검신이 빛을 뿜자 가이아가 나왔다.
가이아는 귀여운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갈색의 긴 창과 단단한 갑옷을 입고 있었다.
가이아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나에게 말하였다.
"당신을 저의 주인으로 인정합니다. 저의 주인이 되시겠습니까?"
소녀의 모습을 한 가이아를 보며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가이아."
가이아는 미소를 지어 보인 뒤, 아슈탈의 검신으로 들어갔다.
"첫 번째 소환수가 상급 소환수인 가이아라니 운이 좋은걸?"
[멍청하긴. 가이아는 아스타르테님이 가지고 계시던 7가지 최상급 소환수중의 하나이다.]
"7가지 최상급 소환수? 그건 뭐야?"
[빛, 어둠, 혼돈, 불, 물, 바람, 땅. 이렇게 7가지의 최상급 소환수중 하나란 것이다.]
"아무렴 어때? 중요한건 가이아가 귀여운 소녀의 모습이라는 것이지. 우히히"
[정말 여자를 너무 밝히는 녀석이군."
"자~ 이제 어디로 간다?"
[일단은 수도로 가자. 그곳에서 정보를 얻고 여행장비를 구입하고 본격적인 여행을 하자.]
"좋아좋아. 그럼 수도로 가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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