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문화발전연구원에서 우리 카페를 찾아 와 '손님이 토박이에게' 방에 글을 남겨주었네요.
위우리 토박이들에게 안성맞춤인 연극을 안내해주었네요. 그런데 하필 중간고사를 코 앞에 둔 시점이네요.
그래도 끌리는 사람은 과감히 연극 관람에 나서보아요. *
안녕하세요, 인천문화발전연구원입니다.
이번 인천문화발전연구원에서는 인천시의 지원을 받아
1875년 일어났던 '운양호 사건'을 다룬 <아! 영종진>을 공연하게 되었습니다.
운양호 사건이란, 일본 군함 운양호가 1875년 9월 20일 조선 해안을 탐측 연구하기 위해 왔다는 핑계를 대고 강화도 앞바다에 불법으로 침투하여, 해안 경비를 서던 조선 수군의 방어적 공격을 받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함포공격을 가하고, 영종진에 상륙하여 조선수군을 공격하고 인적·물질적 피해를 입히고 퇴각한 사건입니다.
이날 근대화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의 기습 공격으로 우리 조선 수비군 35명이 장렬히 산화했으나
그들이 어떻게 싸우다가 쓰러져 갔는지에 대해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번 공연은, 역사 속에서 잊혀져가는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우리의 아픈 근대사를 통해
호국정신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박웅, 곽정희, 기정수 씨등 120명의 배우들이 출연하며,
인천의 숨겨진 역사를 보여주는 화려한 무대가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토박이 여러분들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더 많은 친구들과 함께 오셔도 좋습니다.
비보이와, 합창단이 출연하는 역사극으로 지루할 틈이 없을 거예요!
인천문화발전연구원
032 _761 _7166 안은혜
l 공 연 개 요 l
공 연 명 ∥ 역사창작극 아!영종진 (인천 공연)
공연일시 ∥ 2009년 9월 30일(수) ~ 10월 4일(일) ⇒ 총 6회 공연 ※ 10월 3일(토) 공연없음
공연시간 ∥ 9월 30일(수) 19:30 / 10월 1일(목) 15:00, 19:30 / 10월 2일(금) 15:00, 19:30 / 10월 4일(일) 15:00
티 켓 가 ∥ 아라석(VIP) 3만원, 해무석(R) 2만원, 너울석(S) 1만 5천원, 마루석(A) 1만원
공연문의 ∥ 032)761-7166, 8166
출연배우 ∥ 배우 김창준, 곽정희 외 40명 / 혼성합창단 30명 / 비보이 40명
공연장소 ∥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대 공연장
l 영종진 피격사건 l
근세에 들어와 강화수로는 외국선박들의 왕래와 내침 등으로 위치상 크게 부각이 되고 있었다.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근대화 개혁을 단행한 일본은 조선과의 교섭을 시도하였으나 흥선대원군의 오랑캐를 배척하는 양이정책으로 인해 실패하였다. 1873년 조선에서 대원군이 실각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조선과의 수교를 신속하게 하기 위해, 무력시위로 조선을 압박하여 그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다. 이러한 의도에서 일본은 계획적으로 '운양호 포격 사건'을 일으켰다.
1) 사건 개요
→ 영국산 근대식 군함인 '운양호'를 부산에 침투시킴. 조선 해안을 탐측 연구하기 위해 왔다는 핑계를 대고 동해안을 순항.
→ 남해안을 거쳐 서해안을 거슬러 강화도 난지도 앞에 도착 (1875.9.20)
→ 물을 구한다는 핑계로 강화도 초지진에 접근. 이에 해안고경비를 서던 조선 수군의 방어적 공격을 받자, 기다렸다는 듯이 함포공격을 가했으나 수심이 낮아 상륙 실패
→ 초지진 점령에 실패하자 영종진에 상륙하여 맹포격을 가하고, 인적·물질적 피해를 입힌 후 퇴각.
<일본 운양호의 이노우에 함장의 복명서 내용>
초지진을 완전히 파괴하였으나 점령하지 못한 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해 영종진을 점령하기로 결정 영종진에 맹포격을 가함. 진중이 환란에 빠지자 2척의 단정에 22명씩 분승시키고 상륙감행. 영종진에서 발사하는 포탄이 비 오듯 쏟아졌고, 상륙한 후에도 영종진에서 성문을 굳게 지켜 굴하지 않았으므로 병사를 북문, 서문, 동문으로 나누어 인솔, 돌격하여 진을 점령하였다.
2) 피해사항
- 35명의 전사와 포로 16명 (일본 측은 부상자2명, 1명은 항해 중 사망)
- 성내와 포대 등에서 대포 38문, 화승총 130여정, 창검, 기장, 군복, 병서, 악기 등 병기 와 군수품을 노획하여 포로에게 운반하게 한 후 포로 석방
- 성내에 불을 질러 관청과 민가를 완전히 소진시킴
3) 영종진 피격사건, 그 후
근대화된 무기로 무장된 일본의 계획적인 공격에 우리 수비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방어사령관이었던 이민덕 장군은 진을 지키지 못하고 도망(사실상 전술상 후퇴)을 쳤다는 이유로 장(杖) 백대를 맞고 풀려났다.
또한 일본은 다시 강화도 앞바다에 나타나 무력시위를 하며 이 사건의 책임을 조선에 물으며 공식적인 사과와 수교통상을 강요하였다. 6척의 군함과 운송선 그리고 400여명의 병력과 함께 전권대표단을 파견, '강화도 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였다. (1876.2.26)
강화도 조약은 국제법상 양국 간에 이뤄진 최초의 외교 행위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불평등 조약이었던 것이다.
l 공 연 소 개 l
역사를 망각하는 국민이 융성한 적이 없다!
역사를 바로알고 호국정신의 참 의미를 찾는다!
영종진 피격사건 이후 조정에서는 전몰 장정들에게 급료와 위문금을 내리고 장사를
지내게 하였고, 그 후에 첨절제사 양주성이 부임하면서 돌팍제 토성 밑에 제사 사당을 지어 주민들이 희생된 전몰 장정들의 영혼을 달래는 위령제를 지내왔으나 한일합병으로 인해 폐지되었다. 사라진 위령제는 인천문화발전연구원이 2001년부터 자료수집과 연구를 통해 ‘영종진 피격사건 전몰 영령 추모제’로 부활시켜 2005년 1회를 시작으로 현재 까지 진행되고 있다. '영종진 피격사건 전몰 영령 추모제’는 영종진에서 일본의 침략에 맞선 35명의 순국선열들에게 올리는 기념 추모제로 선조들의 넋을 기리기 위함이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게 실정이었다. 이에 따라 역사적 사실을 시민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방안을 모색하던 중 연극이라는 문화예술을 만나게 되었고 인천시의 지원으로 역사창작극 <아! 영종진>을 제작하게 되었다.
적어도 모르고 있던 역사에 대한 사실을 국민들이 보고, 듣고 깨닫게 된다면, 그보다 더 큰 수확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영종진 피격사건은 이노우에 함장에 의해 2번 재보고 되며 역사가 왜곡되어 졌는데. 역사창작극 <아! 영종진>을 통하여 시민들이 올바른 역사를 알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된다면 왜곡된 채로 지나온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아 후세에게 참된 역사와 진정한 호국정신을 전할 것이다.
l 공 연 소 개 l
역사는 우리의 정체성과 자존심!
숨겨지고 왜곡된 역사를 살아있는 역사로 바로 세우다!
왜곡보다 더 나쁜 것은 역사를 망각하는 것이다.
영종진 피격사건은 뒤틀리고 왜곡되어 진 채 오욕의 사건, 망각된 역사로 사람들로
부터 잊혀졌다.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바로 알고 역사의 진실을 통해 올바른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영종진 피격사건을 일본이 아닌 한국인의 시선으로, 결과의 역사가 아닌 과정의 역사로 재조명한다.
난세(亂世), 영웅을 말하다!
전사한 35인의 무명 병사와 퇴각한 장군을 재조명한다!
35명의 전사와 포로 16명, 일본군에 의해 영종진 함락!
이것이 우리가 기억하는 영종진 피격사건의 전부다. 하지만 역사는 단 한 컷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근대화 무기로 무장된 일본군과 무방비 상태로 공격당한 우리 군사의 전투는 시작부터 승패가 예측된 싸움이었다. 그러나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았다. 근대화 무기로 중무장한 일본 군함에 대항하여 끝까지 싸운 병사들의 고군
분투, 무방비 상태에서 공격당한 전열을 가다듬기 위해 후퇴를 감행한 이민덕장군
의 용단과 갈등에 초점을 맞춰 영종진 피격사건을 재조명해 보고자 한다.
l 공 연 소 개 l
대한민국의 첫 관문!
세계와 만나는 영종도의 의미를 되살리다!
영종진 피격사건 재조명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세계를 잇는 통로이자 관문인 영종도의 역사와 문화는 대한민국의 첫 인상을 좌우한다. 따라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 정신이 응집되어 있는 역사 창작극 <아! 영종진>을 통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호국정신을 이어온 한국인의 자부심, 정체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웰 메이드 창작극의 힘 소프트 경쟁력으로 인천이 주목받는다!
월 메이드 창작극이 만드는 인천의 문화혁명!
감성과 문화를 기반으로 한 서비스 산업 인 소프트 산업이 21세기를 이끌어갈 미래의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뮤지컬로 대표되는 공연산업은 소프트 산업의 블루오션으로 지목받으며 각광받고 있다. 특히 한국적 소재를 세계화한 뮤지컬 <명성황후>와 넌버벌 퍼포먼스 <점프>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크게 각광받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월 메이드 창작극 <아! 영종진>은 한국을 대표하는 소프트산업 브랜드로 자리매김하여 인천을 세계인이 주목하는 문화도시, 공연의 메카로 만들어 나갈 것이다.
화려한 일급 스펙터클, 장르를 총 망라한 역사 창작극
넌버벌 퍼포먼스와 노래, 창작 무용으로 승화되는 영종진의 역사
창작 역사극의 새로운 장을 열어갈 역사창작극 <아! 영종진>은 화려한 볼거리, 탄탄한 구성, 역동적 공연으로 세대와 국적을 뛰어넘는 감동은 선사한다. 최신식 근대화 무기에 맞선 불굴의 정신이 넌버벌 퍼포먼스로 승화된다. 영종진 전투의 의미를 어린아이들도 쉽게 느낄 수 있도록 어렵고 딱딱한 대사 대신 넌버벌 퍼포먼스로 표현한다. 화려한 볼거리와 비장미 넘치는 리듬, 그리고 눈앞에서 펼쳐지는 생생한 리얼 액션은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을 것이다.
l 공 연 소 개 l
역사를 연극으로 바꾸는 힘!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들을 한 무대에서 만끽하다!
▶ 백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 왜곡되고 망각되어버린 인천의 역사, 그 인천의 올바른 역사를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들이 뭉쳤다. 대학로 연극계를 주름잡는 거장 연극배우 공호석, 그리고 영화와 드라마,연극 등의 다양한 작품을 통해서 만나왔던 연극배우 기정수, 영화와 연극무대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 배우 이용녀, 그리고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만나볼 수 있었던 배우 곽정희,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 온 배우 이주화, 코미디언에서
이젠 연기자로 완벽하게 탈바꿈한 개그맨 김창준 까지.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통해 만나던 배우들이 역사창작극 <아! 영종진>과 함께한다. 한 자리에서는 만나기 어려울 것 같던 배우들은 인천 시민들에게 왜곡된 인천의 역사를 바로 잡아주고, 시간 속에 묻혀 잊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뭉쳤다. 배우들의 열정적인 연기를 통해 왜곡된 역사 속에 진실을 찾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스타 배우들 외에도 대한민국 연극계의 실력파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이름만으로도 기대와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배우들이 대거 역사창작극 <아! 영종진>과 함께하여 역사창작극 <아! 영종진>의 특별함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열정과 명성이 만들어내는 최고의 공연이다.
공연도보고 다양한 볼거리도 즐기고!
공연 속에 문화를 즐기는 역사창작극<아! 영종진> 문화축제
▶ 잊혀진 인천의 역사를 다시 일깨워주는 역사창작극<아! 영종진>은 공연 외에도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공연 당일 공연장 로비에서는 출연 배우들의 연습기간을 담은 사진과 스타배우들의 케리커쳐가 전시된다. 연습부터 리허설까지 공연의 제작과 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진 전시회와, 스타배우들의 케리커쳐 전시회는 공연을 보러온 시민들에게 공연 외에도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또한 공연 기간 중에는 성공적인 공연을 기원하는 스타들의 방문 및 사인회가 예정 되어있어 시민들에게 스타를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 외에도 공연 전 부대행사로 공연의 미리보기라고 할 수 있는 거리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거리 퍼포먼스는 인천시내 각지에서 플레쉬몹 형태의 게릴라성 깜짝 공연으로 펼쳐지며 작품의 출연 배우들의 깜짝 출연이 예정되어있어 시민들에게 더 큰 즐거움을 전달한다.
l 줄 거 리 l
▶ 낡은 성곽, 옛 조상들의 영령을 모시는 해안의 작은 마을 영종도.
흐르는 비트 위에서 청년들은 자유를 갈망하며 역사적 아픔을 그들의 힘찬 몸짓과 랩소리로 시작한다. 그들이 몸을 맡길 때, 그들의 영혼은 하늘을 난다. 그리고 그때 영종진에서의 전투로 인해 희생된 35명의 수군과 이민덕 장군의 유령이 등장한다.
때는 대원군의 실각 후 조선에 대해 개항을 강요하던 일본은 1875년 9월, 물을 구한다는 핑계로 영종진 월미도 앞에 정박하였다. 일본군은 영문과 포대 앞을 지나면서 공격을 유도 하였고 때마침 초지진에서 포격을 가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에게 맹포격을 하였다. 왜국의 화포는 너무도 강 하였고 감히 대적할 수도 없는, 손조차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본군의 무참한 공격에 조선 수비군은 이민덕 장군을 중심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싸웠지만 일본군의 철저한 계획과 근대화 된 무기에 조선수비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고 35명의 조선 수군이 희생되었고 대포 38을 비롯한 군수품을 약탈당하게 되었다. 결국 이민덕 장군은 작전상 후퇴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몇몇 간신들의 수작으로 작전상 후퇴였던 싸움을 이민덕 장군이 간계하여 도망쳤다는 이유로 책임을 묻고 그는 억울함에 오열한다. 장군의 오열은 한이 되어 세상을 떠나지 못하고 영종을 맴돌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