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8년 12월 17일자 제19호
한국교원대학교 교육연구원의 교육연구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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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원대학교 교육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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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 맛있게 먹기
전병호(한국동시문학회 회장)
“동시를 어떻게 먹어요?” 단번에 반응이 온다. “동시”와 “먹는다”의 결합은 낯설다 못해 엉뚱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이 글이 “동시를 정말로 먹을 수 있을까?” 하고 잠시나마 독자들의 호기심을 이끌어냈다면 필자로서는 일단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시를 먹는다는 말은 동시를 감상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 글에서 ‘먹는다’는 말은 시의 완전한 소화를 의미한다. 그렇다. 시를 읽으면 완전히 나의 것이 될 수 있도록 소화되어야 한다. 이럴 때는 ‘시 속의 사상이란 사과 속의 자양분과 같다’고 한 발레리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사과를 먹을 때 맛을 즐기려고 먹는가, 아니면 영양분을 섭취하려고 의도적으로 먹는가? 이 말은 시의 쾌락성과 교훈성을 묻는 질문이 된다. 사과 맛을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영양분도 섭취하게 되지 않겠는가? 시의 쾌락성을 살려야 한다는 말은 곧 동시 감상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는 말과 같다.
이 글은 동시 감상 활동에 대하여 “어떻게”를 중심으로 기술한 것이다. 사례 중심의 글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1. 시를 맛있게 먹기 위한 세 가지 전략
시는 형식이나 내적 조직에 의하여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에즈라 파운드는 음악시, 시각시, 언어시로 나누었고 이재철은 음악적인 동시, 회화적인 동시, 지적인 동시로 나누었으나 같은 분류라고 하겠다. 따라서 시의 특성에 따라 시 감상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일반적으로 시 지도 단계는 작품 전체에 접근하는 법→부분으로 접근하는 법→종합하는 과정으로 나누고 있는데1) 이때 각 단계마다 감상 방법을 다르게, 그리고 다양하게 적용하여야 할 것이다.
교과서에서는 시 감상 방법을 여러 가지로 제시하고 있으나 단편적인 방법 소개에 그치고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시 감상 방법을 체계적으로 분류, 정리하고 부족한 부분을 수정 보완하는 역할도 하게 된다.
가. 음악적인 동시 즐기기
시 지도의 처음 과정은 낭독으로 시작된다. 낭독은 시에 직접적으로 접근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시를 낭독하는 동안 시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고 리듬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또 시어의 구체성도 체득하게 된다. 낭독 자체가 작품에 대한 해석이라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간혹 자유시는 내재율로 되어 있다는 이유로 낭독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엄연한 잘못이다.
그럼에도 교과서에서는 시 낭독 방법을 어떻게 제시하고 있는가. 대개의 경우, ‘시를 읽어 봅시다’ 정도로 기술하는 데 그치고 있다. 목표 진술 용어가 너무 무난(?)하다. 이 외에 수업과정을 살펴봐도 별도로 낭독을 위한 방법 제시도 시간 배정도 없다. 물론 수업 설계는 교사의 재량이고 창의적으로 해야 하지만 시 낭독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지 않으면 간과하고 지나치게 된다. 그렇다면 교사용 지도서에는 어떤가? 시 낭독 방법으로 겨우 모범독, 개인독(지명독), 합독 등을 제시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하지 못하고 있다.
다음은 로버트 화이트 헤드의 『아동문학교육론』에 제시된 낭독 방법을 근간으로 필자가 실천해 본 것이다.
첫째, 모범독이다. 이것은 시인이나 부모, 또는 전문가의 목소리로 시를 들려주는 것이다. 어린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시 낭독에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유대감과 시적 분위기를 마음속에 간직하게 된다. 낭독을 흔히 저학년 어린이에게만 필요한 것으로 알기 쉬우나 꼭 그렇지 않다. 고학년 어린이들에게도 유효하다. 모범적인 낭독을 들음으로써 시를 향수하고자 하는 의욕을 고취시킨다.
이렇게 전체적으로 몇 번 시를 낭독한 다음에는 시의 음악성을 끄집어내기 위한 활동으로 한 음절로 읽기, 한 가지 모음으로 낭독하기 등의 활동을 한다. 어린이들의 수업 참여도가 높아지면서 상당히 흥미 있어 했다.
둘째, 합창독이다. 합창독은 다시 4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한 어린이가 시의 본문을 읽는 동안 다른 어린이는 후렴구를 읽든지 아니면 따라 읽는 것이다. 둘째, 한 어린이(또는 한 그룹)가 시의 1행이나 1연을 읽고 그 다음 구절이나 행을 다른 어린이(다른 그룹)가 읽는 방법이다. 셋째, 목소리가 다른 두 그룹으로 나누어 시를 낭송한다. 예를 들어 목소리가 굵은 소년과 가냘픈 소년, 또는 남자 어린이와 여자 어린이로 나누어 낭송한다. 질문과 대답 형식을 취할 수도 있고 대화 형식을 취할 수도 있다. 2부, 혹은 3부 합창 하듯이 할 수도 있고 메아리가 답하는 형식으로 할 수도 있다. 넷째, 학급 전체 어린이들이 한 목소리로 다 함께 시를 낭송하는 것이다.
시 낭독 지도를 해본 결과를 종합해보면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낭독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었다. 어린이들에게 일단 새로운 낭독 방법을 가르쳐주면 상당히 낯설어하면서도 흥미를 갖고 열심히 참여한다. 예를 들면 시의 행을 첫 음절로 읽는 활동 같은 것이다. 시의 음악성을 깨닫도록 리듬 악기를 함께 이용하기도 했는데 어린이들이 처음에는 낯설다는 듯 많이 웃었지만 한편으로는 몹시 재미있어 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어린이들이 시 낭송 활동에 몰입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로소 “아, 시를 이렇게 여러 방법으로도 낭독할 수 있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것 같았다. 이 단계를 넘어서면 어린이들이 자발적으로 시 낭송 활동을 좋아하게 되는 것 같다. 한 번은 어린이들에게 자신들만의 새로운 낭송 방법을 적용하도록 했는데 “랩 버전”으로 낭독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듣는데 어린이들이 자신들의 눈높이에 맞는 방법을 고안해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어린이들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 회화적인 동시 즐기기
이미지를 거칠게 정의하면 과거에 인상적으로 경험한 어떤 사물을 감각적으로 정신 속에 재생시킨 상(象)이다. 현대에 와서 이미지의 중요성을 강조해서 시는 곧 이미지라고 말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이미지가 떠오르느냐, 안 떠오르느냐” 또는 “이미지가 선명한가, 선명하지 않은가”에 따라 시의 형상화 정도를 평가하기도 한다. 시 감상 활동에서는 이 이미지를 여러 가지 회화적인 방법을 활용하여 재현하는 것이 핵심이다.
일반적으로는 수업 시간에 시를 읽고 떠오르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라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이 너무 추상적이지 않은가? 어린이들에게는 구체적으로 활동을 제시해야 한다. 어린이들은 시의 이미지를 도화지 한 장이 꽉 차게 그리는 것을 무척 힘들어 한다. 이때는 8절지를 반으로 나누든가, 아니면 더 작게 나누어서 능력에 맞게 선택하도록 한다. 또 많은 어린이들은 만화 그리기를 무척 좋아하는데, 이때 만화 그리기 기법을 활용해도 시의 이미지를 매우 다양하게 재표현 할 수 있다. 만화는 대개 1, 2, 4컷 등 연이나 장면을 단위로 나누어 그리게 한다. 동화적 상상력을 발휘하거나 이야기를 담은 시가 장면을 구성하기 좋다.
이외에도 이미지 중심의 시 감상 활동은 시 카드, 시 병풍 만들기 이외에 시 책받침, 시 엽서 등 얼마든지 다양한 작품을 창의적으로 전개할 수 있다.
시 감상 활동으로 다양한 종류의 시화를 제작하면 전시회를 갖는 것이 좋다. 일단 자신의 작품이 게시가 되면 시에 관심이 적었던 어린이들도 뒤늦게 큰 관심을 보이는데 이것이 시 수업에 큰 원동력이 된다. 필자의 경우 다달이 주제를 정해 시화를 그리고 작은 전시회를 했더니 점차 소문이 나서 일부러 구경하러 오는 학부모도 생겼고 나중에는 어린이 신문 1면에 크게 소개되기도 했다.
다. 지적인 동시 즐기기
이 유형의 시는 이미지보다 메시지 전달을 중요시한다. 따라서 시적 감동을 훼손하지 않고 생생하게 전달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 유형의 시는 사물과 세상에 대한 깊은 이해와 생활 속에서 얻은 깨달음을 담고 있어 인성 교육면에 매우 유용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시에 대하여 갖고 있는 보편적인 생각은 정신시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즉, 시는 곧 사람이다. “시에는 시인의 인격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라는 입장이다. 시경 삼백 편을 한 마디로 말하면 “생각함에 사악함이 없다”고 한 공자의 말씀도 여기에 해당된다. 따라서 이 유형의 시는 주로 편지, 일기, 쪽지 등 다양한 형태의 글로 변용하여 시에 담겨있는 깨달음과 진실을 생생하게 되살려내는 활동을 하게 된다.
2. 시 감상 활동의 예와 정리
이상과 같이 시의 유형별 분류에 따른 감상법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소개한 방법은 시 감상 활동을 위한 기초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시 수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시적 감동을 생생하게 되살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욕한 친구와 싸웠다고/ 선생님께 불려나왔다.// 똑같은 사람 된다고/ 꾸중 들었지만/ 분한 마음 나도 모르게/ 자꾸만 식식거렸다.// 정 그렇다면/ 똑같은 뜻을 가진 다른 말로/ 욕해도 좋다/ 선생님 말씀// 눈에 힘주어 바라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강아지!"/ "강아지!"// 친구 얼굴 보다가/ 그만 킥킥킥 웃고 말았다.
- 전병호, 「욕」 전문
「욕」을 예로 들어 보자. 욕한 친구와 싸우다가 선생님께 불려나가 벌을 받게 되었는데 똑같은 뜻을 가진 다른 말로 욕해도 좋다고 한 선생님의 기지가 빛난다. 학생들을 야단치지 않고 감동, 감화시켜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한 선생님 덕분에 어린이들은 누구도 상처 받지 않고 웃음으로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수정하게 되었다.
이 시의 내용을 편지 쓰기로 했다고 하자. 대개의 경우 시 전체 내용에 대한 느낌을 간단하게 써서 발표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는 답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때 편지를 쓸 대상이 사적화자인 나뿐인가? 그렇지 않다. 우선 시적화자 이외에 욕한 친구와 선생님이 있다. 둘러보면 옆자리와 뒷자리에 앉은 친구들도 있다. 이들은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친구들과 싸우지 말라고 가르치는 어머니도 있다. 또 아빠도 있고 누나와 동생도 있다. 이 모든 사람의 입장에서 편지를 쓸 수 있다. 그럼으로써 여러 사람의 눈에 비친 “나”를 보게 된다.
그런데 이 시를 한두 명이 느낌을 발표하는 것으로 감상 활동을 끝냈다고 하면 어떨까? 애초에 시 감상 활동으로 얻고자 했던 시적 감동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어린이들과 시 감상 활동을 할 때는 직, 간접적으로 많은 체험 활동을 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필자가 강력하게 권하는 것이 역할극이다. 현장에서 숱하게 경험하는 일이지만 어린이들은 역할극을 상당히 좋아한다. 참여도가 높고 또한 상당히 재미있어 한다. 어린이들에게 시의 유형별 분류에 따른 감상 활동을 다양하게 적용하여 역할극을 하도록 하면 어린이들이 즐거워하면서 활기차게 움직인다. 그 이외에도 무언극, 좌담회, 토론회. 시 광고하기, 동시 암송대회, 시적 상황 재연하기, 모의 인터뷰, 인형극 등 창의적으로 얼마든지 다양하게 활동할 수 있다.
1)구인환 외, 『문학교육론』(서울, 삼지원, 2007), p.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