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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사업가 김원근(金元根, 1886~1965)이 일제강점기에 참의(參議)로 있을 때 구휼 자선사업을 베푼 것을 기리는 선행비이다. 강서파출소 옆 도로변 공원에 있는 8기의 비석 중 왼쪽에서 네 번째 비이다. 비는 높이 117㎝, 폭 44㎝, 두께 20㎝규모의 오석(烏石)으로 된 비신(碑身) 위에 지붕처럼 생긴 가첨석(加檐石)을 얹은 모양이다. 비의 전면에는 ‘참의김공원근시혜비(參議金公元根施惠碑)’라고 새겨져 있으며 비문은 정광모(鄭光模)가 지었다.
김원근은 서당에서 한문을 배운 뒤 1898년부터 행상으로 생활하다 1905년 김원근상회를 창업, 신용을 바탕으로 상재(商材)를 발휘하며 돈을 모았다. 1908년 조치원 좌사접장(左社接長, 지금의 상공회의소장)에 당선되었고, 1916년에는 연청학원(燕淸學院)을 설치, 운영하며 교육사업을 시작하였다. 1924년 대성보통학교를 창립하면서 본격적인 교육활동을 전개하여, 1935년 청주상업학교(현, 대성고등학교), 1944년 청주여자상업학교(현, 대성여자상업고등학교), 광복 이후에는 청주상과대학(현, 청주대학교)을 설립하였다. 1946년에는 국민일보사와 충북산업주식회사의 대표가 되었고 1959년에는 대성여자중학교, 1960년에는 대성여자상업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구휼·자선사업에도 자산을 희사하여 청주시 강서동, 청원군 가덕면, 남일면, 문의면, 미원면 등 7개소에 구제비와 진휼비가 세워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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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첩경 3권에 나온 김원근옹 의 시혜비입니다.
3권 -187문
甲 己 戊 丙
戌 巳 戌 戌
19c 분이라 대운수를 못적겠네용.. ^^ 제 만세력에는 20c 초 부터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