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노인: (화단 쪽을 가리키며) 저기 심어 놓은 화초며 고추모가 도무지 자라질 않는단 말이야! 아까도 들여다 보니까 고추모에서 꽃이 핀 지는 벌써 오래전인데 열매가 열리지 않잖아! 이상하다 하고 생각을 해봤더니 저 멋없는 것이 좌우로 탁 들어 막아서 햇볕을 가렸으니 어디 자라날 재간이 있어야지! 이러다간 땅에서 풀도 안 나는 세상이 될 게다! ㉠말세야 말세!
이때 경재 제복을 차려 입고 책을 들고 나와서 신을 신다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는 깔깔대고 웃는다.
경재: 원 아버지두……
최노인: 이눔아 뭐가 우스워?
경재: 지금 세상에 남의 집 고추밭을 넘어다보며 집을 짓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최노인: ⓐ옛날엔 그렇지 않았어!
경재: 옛날 일이 오늘에 와서 무슨 소용이 있어요? 오늘은 오늘이지. ㉡(웅변 연사의 흉을 내며) 역사는 강처럼 쉴새 없이 흐르고 인생은 뜬구름처럼 변화무쌍하다는 이 엄연한 사실을, 이 역사적인 사실을 똑바로 볼 줄 아는 사람만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최소한도로 아셔야 할 것입니다! 에헴!
(중략)
경수: 여보 영감님! 여긴 종로 한복판입니다. 게다가 가게와 살림집이 붙었는데 그래 겨우 이백오십만 환이라구요? ⓑ그런 당치도 않은 거짓말은 공동묘지에서나 하시오.
복덕방: 뭐 뭐요? 공동묘지에서라고? 예끼 버릇없는 놈 같으니라구!
경수: 아니 이 영감님이……
복덕방: 그래 이눔아 너는 애비도 에미도 없는 놈이기에 나이 먹은 늙은이더러 공동묘지에 가라구? 이 천하에.
최노인: 여보 김첨지. 젊은 애들이 말버릇이 나빠서 그런 걸 가지고 탓할 게 뭐요?
복덕방: 그래 내가 집 거간이나 놓고 다니니까 뭐 사고무친한 외도토린 줄 아느냐? 이눔아! 나도 장성 같은 아들에다 딸이 육남매여!
경수: 아니 제가 뭐라고 했길래……
어머니: 넌 잠자코 있어! 용서하시우. 요즘 젊은 놈들이란 아무 생각 없이 말을 하니까요…… 게다가 술을 마셨다우.
복덕방: 음 이놈이 한낮부터 술 처먹고 어른에게 행패구나! 이눔아! 내가 그렇게 만만하니?
최노인: 김 첨지! 글쎄 진정하시라니까…… 내가 대신 이렇게 사죄하겠소 원!
복덕방: 그러고 이백오십만 환이 터무니 없는 값이라고? 이눔아 누군 돈이 바람 맞은 대추알이라던? 응? 그것도 잘 생각해서야! 음! 이런 분한 일이 있나!
최노인: 글쎄 참으시고 이리 앉으세요.
복덕방: 난 그만 가 보겠소이다. 이런 일도 기분 문제니까요! 다른 사람 골라서 공동묘지로 보내구려! 에잇.
최노인: 아 ㉢김 첨지! 김 선생! (하며 뒤를 쫓아 나간다.)
경수: 제길 무슨 놈의 영감이 저래?
어머니: 네가 잘못이지 뭐니……
경수: 집을 팔지 말라고 했는데……
이때 최 노인 쌔근거리면서 등장하자 이 말을 듣고는 성을 더 낸다.
최노인: 이눔아! ⓒ누가 이 집을 판다고 했어? 응?
경수: 아니 그럼 이 집을 파시는 게 아니면 뭣 하러 복덕방은……
최노인: 저런 쓸개 빠진 녀석 봤나! 아니 내가 뭣 때문에 이 집을 팔아? 응? 옳아 네놈 취직 자본을 대기 위해서? 응?
어머니: 아니 그럼 이백오십만 환이란 무슨 얘깁니까?
최노인: 네 따위 놈을 위해서 하나 남은 집마저 팔아야만 속이 시원하겠니? 전세로 육 개월만 내놓겠다는 거야!
경수: 예? 전세라구요?
㉣(어머니와 경운은 서로 얼굴을 바라본다.)
최노인: 왜 아주 안 파는 게 양에 안 차지? 이눔아! 이 애비가 집도 절도 없는 거지가 되어서 죽는 꼴이 그렇게도 보고프냐?
경수: (당황하며) 아버지 아니에요! 저는……
최노인: 아니면 껍질이냐?
어머니: ⓓ여보 그럼 집을 전세로 줘서 뭣 하시게요?
최노인: 글쎄 아까 어떤 친구 얘기가 요즘 그 실내에서 하는 그 뭐드라 ‘샤풀이뿔’이라든가……
경운: ‘샤뿔뽀오드*’ 말씀이에요?
최노인: 그래 ‘샤뿔뽀오드’ 말이다! 그건 차리는 데 돈도 안 들고 수입이 괜찮다고 하면서 4가에 적당한 집이 있다기에 그걸 해볼까 하고 이 집을 보였지. 그래 얘기가 거이 익어가는 판인데 글쎄 다 되어간 음식에 코 빠치기로 저 녀석이……
어머니: 아니 그럼 전세로 이백오십만 환이란 말인가요?
최노인: 그렇지! 저 가게만 해도 백만 환은 받을 수 있어!
어머니: 그런 걸 가지고 나는 괜히……
최노인: 뭐가 괜히야?
경운: ⓔ아버지께서 이 집을 팔으실 줄만 알았어요.
최노인: 흥! 너희들은 모두 한속이 되어서 어쩌든지 내 일을 안 되게 하고 이 집을 날려버릴 궁리들만 하고 있구나! 이 천하에 못된 것들! (하며 불쑥 일어선다.)
어머니: 그럴 리가 있겠어요! 다만……
최노인: 듣기 싫어! ( 화초밭으로 나오며) 이 집안에서는 되는 거라곤 하나도 없어! 흔한 햇볕도 안드는 집이 뭣이 된단 말이야! 뭣이 돼! (하며 화초밭을 함부로 작신작신 짓밟고 뽑아 헤친다.)
어머니: ㉤(맨발로 뛰어내리며) 여보! 이게 무슨 짓이오! 그렇게 정성을 들여서 가꾼 것들을…… 원…… 당신도……
최노인: 내가 정성을 안 들인게 뭐가 있어…… 나는 모든 일에 정성을 들였지만 안 되지 않아! 하나도 씨도 말야!
- 차범석, 「불모지」-
* 샤뿔뽀오드(shuffleboard) : 오락의 한 종류.
윗글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언어유희를 통해 인물 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② 장면의 전환을 통해 각 인물의 내면이 부각되고 있다.
③ 인물들의 복장을 통해 인물들의 심리를 드러내고 있다.
④ 인물의 등퇴장을 통해 인물의 성격 변화를 드러내고 있다.
⑤ 실제 지명의 노출을 통해 극중 상황에 사실감을 부여하고 있다.
㉠~㉤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주변 환경의 변화에 대한 ‘최노인’의 부정적 인식이 드러나 있다.
② ㉡: ‘경재’의 말에 주목하게 하는 효과를 드러내고 있다.
③ ㉢: 호칭을 달리하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최노인’의 노력이 드러나 있다.
④ ㉣: 두 인물이 ‘경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동시에 확인하고 있다.
⑤ ㉤: ‘어머니’의 다급한 심리를 행동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보기>와 ⓐ~ⓔ를 관련지어 윗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보기>
‘발견’이란 인물이 극의 전개 과정에서 사건의 숨겨진 측면을 알아차리는 계기를 드러내는 기법이다. ‘발견’의 대상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 물건이 될 수도 있고 몰랐던 사실이나 새로운 가치, 인물의 다른 면 등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발견’을 통해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바뀌기도 하고 인물들의 갈등 양상이 변모되기도 한다.
① ‘경재’는 ⓐ를 통해 ‘최노인’이 예전과 달라진 현실을 부정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최노인’에게 변화를 수용하는 태도가 필요함을 드러내는군.
② ‘복덕방’은 ⓑ를 통해 ‘경수’가 자신을 무시한다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최노인’과의 흥정을 중지하게 되는군.
③ ‘경수’는 ⓒ를 통해 ‘최노인’이 집을 팔 의도가 없다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최노인’에 대한 오해가 풀리게 되는군.
④ ‘최노인’은 ⓓ를 통해 자신의 계획을 ‘어머니’가 못마땅해한다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자신의 계획을 변경하게 되는군.
⑤ ‘최노인’은 ⓔ를 통해 집문제에 대한 자신의 의도를 ‘경운’이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가족들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군.
화초밭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경제적 안정에 대한 가족들의 희망이 드러나는 장소이다.
② 중심인물이 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장소이다.
③ 두 인물의 상반된 행동을 통해 인물 간의 갈등이 해소되는 장소이다.
④ 중심인물이 현재의 고통이 자신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자책하는 장소이다.
⑤ 자신의 노력이 결실을 맺지 못하여 허망해하는 중심인물의 감정이 드러나는 장소이다.
※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최노인] 경재란 놈은 어디 가던 제 밥벌이는 할거야(하며 만족한 웃음을 띠운다)
[어머니] 좀 경한 편이죠(경애에게) 웬 목욕이 그렇게 오래 걸리니?
[최노인] 그래도 밤낮 익모초 씹는 쌍판보다는 낫지! 이집에 오는 누구처럼---
(어머니와 경운은 뜻 품은 시선을 서로 던진다 경애 손톱에 손질을 하고 있다)
[최노인] 경수 녀석은 어제 밤에도 안 들어 왔었지?
[어머니] (변명하듯) 어디 친구네집에서나 잤겠죠---
[최노인] (성을내며) 제집과 남의 집 분간도 못하는 놈이 어디 있어?(하며 담배를 다시 피워 문다)
[어머니] 내버려 두시구려 어디 그애에게 그런 재미도 없어서야 되겠우?
[최노인] 재미? 지금 우리 형편이 재미를 보기 위해서 살아갈 팔자야
[어머니] 그렇지만 마음대로 안 되니까---
[최노인] 당신은 좀 잠자코 있어!(하고 소리를 버럭 지른다 경운은 빨래줄에다 빨래를 널며 눈치만 보고 경애는 재빨리 건너방으로 들어간다.)
[최노인] 사람이란 염치가 있어야 하는 법이야! 제 놈이 군대에 갔다 왔으면 왔지 놀고 먹으라는 법은 없어! 한 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내일 모래 30 고개를 바라보는 녀석이 취직이 안 된다 핑계치고 비슬비슬 놀고만 있으면 돼? 첫째로 경운이 미안해도 그럴 수는 없지!
[경운] 아이 아버지두--- 오빠인들 속조차 없겠어요? 아무리 일자리를 구할려고 해도 안 써주는 걸--- 사회가 나쁘지 오빠야 무슨 잘못이에요?
[어머니] 사실이에요---
[최노인] 뭐가 사실이야? 나이 어린 누이가 그 굴속 같은 인쇄공장에서 온종일 쭈구리고 앉아서 활자 줍는 노동으로 벌어드린 쥐꼬리만한 월급에만 의지하는 것이 사실이란 말이야? 나도 가게가 전과 같이 세가 난다면 이런 소리도 않지 허지만 골목 안 뚱개까지 신식만을 찾는 세상이라 사모관대나 원삼 쪽도리 따위는 이제 소꼽장난감으로 아니 장사가 돼야지! 지난 봄철만 하더라도 꼭 네 벌 장만한다면 또 모르지만
[최노인] (부엌 쪽에서 나오며) 아저 배라먹을 녀석들이 남의 집에다가 구정물을 버리다니 저 저런---
윗글로 미루어 알 수 없는 것은?
① 최 노인의 집은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다.
② 경운은 집안 살림에 경제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③ 어머니는 경수의 미래에 대해 크게 기대하고 있다.
④ 최 노인은 변해가는 세상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다.
⑤ 경애는 허황된 꿈에 들떠 현실적인 노력을 게을리한다.
윗글을 읽은 독자가 ‘경애’에게 편지를 쓴다고 가정할 때, 적절한 것은?
① 절대적인 우정이란 있을 수 없답니다. 우정에 큰 의미를 두지 마세요.
② 어차피 인생은 빈손입니다. 현실의 물질적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세요.
③ 종교에 귀의해야 합니다. 내세에 대한 관심을 통해 인간은 구원을 얻지요.
④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정당한 방법이 중요하지요.
⑤ 명예를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입신양명이 우리의 보편적인 삶의 목표입니다.
국어사전을 통해 ㉠과 관련된 말들을 검색해 보았다. <보기>의 활동을 통해 알아낸 내용으로 잘못된 것은?
<보기>
바람1ⓐ 공기의 움직임. ⓑ 공이나 튜브와 같이 속이 빈 곳에 넣는 공기. ⓒ 사회적으로 일어나는 일시적인 유행이나 분위기. ⓓ 들뜬 마음이나 일어난 생각. ⓔ 뒷말의 근거나 원인을 나타내는 말.
바람2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
바람3길이의 단위.
① 바람1, 바람2, 바람3은 동음이의어라고 할 수 있어.
② ㉠은 바람1의 ⓓ의 의미로 쓰이고 있어.
③ 바람2는 ‘바램’으로 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해.
④ ‘산들바람’은 ‘산들’에 바람1‘이 결합된 복합어라고 할 수 있어.
⑤ ‘배탈이 나는 바람에 학교에 결석했다.’에서 ‘바람’은 바람1에 해당해.
※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제1막
[무대] 번화한 상가에 자리 잡은 최 노인의 낡은 기와집. 정면에 유리문이 달리고 마루를 사이에 두고 방이 둘 있고 좌편으로 기역형으로 굽어서 부엌과 장독대 유리문 저쪽은 가게. 우편으로 대문을 끼고 헛간과 방 하나의 딴채가 서너 평이 못 넘는 좁은 뜰을 에워싸고 웅크리고 앉았다. 해묵은 지붕에는 푸른 이끼며 잡초까지 자라나서 오랜 풍상을 겪어 내려온 이 집의 역사를 말해 주는 듯하다. 배경으로 면목이 일신해져 가는 매끈한 고층 건물의 행렬이 엿보이고 좌우편에도 역시 삼사 층이나 되어 보이는 최신식 건물이 들어서서 이 낡은 기와집을 거의 폐가처럼 멸시하고 있다. 좌편 건물은 아직도 건축 공사가 진척 중에 있는지 통나무로 얽어맨 작업 보조대에 거적때기가 걸려서 건물은 반쯤 가려진 채로다. 이처럼 대척적인 주변의 장애로 말미암아 이 낡은 집 안팎에는 온종일 햇볕이 안 드는 탓인지 한층 어둡고 습하며 음산한 공기가 찬바람처럼 풍겨 나온다. 때는 초여름 어느 일요일 오전. 막이 오르면 질주하는 전차며 자동차의 소음이 잇따라 들려온다. 뜰가에서 경운이가 함석 통에 담겨진 빨래를 빨고 있고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 어머니의 초라한 모습이 보인다. 좌편 담 아래에 마련된 조그만 화단 앞엔 아까부터 최 노인이 쭈그리고 앉아서 화초며 푸성귀들을 손보고 있다. 입에 물린 파이프에서 이따금 뱉어지는 담배 연기가 한가롭다. 잠시 후 경재가 물지게를 지고 좁은 대문을 간신히 빠져나와 경운 앞에다 부려 놓는다.
경재: 어유. 오늘은 웬 사람이 그리도 많아……. 공동 수도엔 난장판인걸! (하며 항아리에다 물을 붓는다.)
경운: (여전히 빨래를 하며) 비가 개니까 집집마다 빨래하느라고 그렇겠지…….
경재: 아버지 우리도 다음엔 제발 물 흔한 집으로 옮깁시다. 물만 길다가 내년 봄엔 낙제하게 생겼는걸요! 하루 이틀이 아니구…….
최 노인: ㉠(돌아보지도 않고) 그래…….
경운: 애도 속없는 소리 잘하긴 경애 언니 닮았나 봐! 누가 이따위 골목 구석에서 살고 싶어 살고 있니?
경재: 살기 싫으면 딴 데로 옮기면 될 걸 왜 이런 게딱지 굴속에서 산다는 거요?
최 노인: (눈을 크게 부릅뜨며) 무슨 소리냐? 이 집이 어때서?
경재: 아버지나 좋아하시지 우리 식구 중에서 이 집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최 노인: 싫은 놈은 언제건 나가라지! 절간이 미우면 중이 나가는 법이야.
경재: (남은 물통을 비우며) 중도 없는 절을 뭣에 쓰게요? 도깨비나 날걸…….
최 노인: (약간 핏대를 올리며) 도깨비가 나건 노다지가 나건 제집 지니고 산다는 걸 다행으로 알아, 이놈아!
경재: ㉡(못마땅한 낯으로) 다행으로 알 건덕지가 있어야죠.
최 노인: (휙 돌아서며) 뭐 뭐야?
경운: ㉢(재빨리 공기를 수습하려 들며) 경재야, 한 번만 더 길어 와! 물이 끊어지면 어떡하려구…….
경재: 또야? 나 시간 약속이 있는데…….
경운: (흘겨보며) 너 그러면 나와 약속한 일 국물도 없다!
경재: (짜증을 내며) 정식이하고 도서관에서 공부하기로 했는걸……. 9시 40분까지 가야 돼요.
어머니: ㉣(설거지통을 들고 부엌에서 나오며) 바쁘면 어서 가려무나, 설거지가 끝나면 내가 길을 테니…….
경재: (펄쩍 뛰며) 엄마가 제일야! 우리 엄마가 넘버원이지! 그 대신 내일 아침엔 식전에 다섯 지게 길을게요, 어머니!
어머니: (웃으며) 그럼 물 항아리를 더 사 놔야겠구나……. (하며 수챗구멍에다 물을 버린다.)
경운: 깍쟁이! (빨래를 짜며) 어머니가 어떻게 물을 길으신다구 그러세요! 아직도 허리를 쓰시기가 거북하시다면서……. (방 안에서 휘파람 소리가 흘러온다.)
어머니: 괜찮아…….
최 노인: 참 그 고약은 다 붙였어?
어머니: 예. (허리를 가볍게 치며) 이제 훨씬 부드러워졌어요.
최 노인: 뭐니 뭐니 해도 그 강 약방의 처방이 제일이야! 내 청이라면 친형제 일보다 더 알심 있게 약을 써주거든!
어머니: 하기야 이 동리에서 옛부터 사귀어 온 집은 이제 그 강 약방하구 우리 집뿐인걸요.
최 노인: 그래, 우리가 (과거를 회상하며) 이 집에서 산 지가 꼭 사십칠 년이고 그 강 약방이 사십 년이 되니까……. 그러고 보면 나도 무던히 오래 살았어……. 이 종로 바닥에서 자라서 장가들어 자식 낳고 길러서 이제는 환갑을 맞게 되었으니…….
어머니: (마루 끝에 앉으며) 정말……. 근 오십 년 동안에 이웃 얼굴 바뀌고 저렇게 집이 들어서는 걸 보면 세상 변해 가는 모양이 환하게 보이는 것 같아요. 제가 당신에게 시집왔을 때만 하더라도 어디 우리 이웃에 우리 집 담을 넘어서는 집이 있었던가요?
최 노인: 사실이야! 빌어먹을 것! ㉤(좌우의 높은 집들을 쏘아보며) 무슨 집들이 저따위가 있어! 게다가 저것들 등쌀에 우린 일 년 열두 달 햇볕 구경이라곤 못하게 되었지! 당신도 알겠지만 옛날에 우리 집이 어디 이랬소?
경운: (웃으며) 아버지두……. 세상이 밤낮으로 변해 가는 시대인데요…….
최 노인: 변하는 것도 좋구 둔갑하는 것도 상관하지 않지만 글쎄 염치들이 있어야지 염치가!
경운: 왜요?
최 노인: 제깟 놈들이 돈을 벌었으면 벌었지 온 장안 사람들에게 내보라는 듯이 저따위로 층층이 쌓아 올릴 줄만 알고 이웃이 어떻게 피해를 입고 있다는 걸 모르니 말이다!
경운: 피해라뇨?
최 노인: (화단 쪽을 가리키며) 저기 심어 놓은 화초며 고추 모가 도무지 자라질 않는단 말이야! 아까도 들여다보니까 고추 모에서 꽃이 핀 지는 벌써 오래전인데 열매가 열리지 않잖아! 이상하다 하고 생각을 해봤더니 저 멋없는 것이 좌우로 탁 들어 막아서 햇볕을 가렸으니 어디 자라날 재간이 있어야지! 이러다간 땅에서 풀도 안 나는 세상이 될 게다, 말세야 말세! (이때 경재 제복을 차려입고 책을 들고 나와서 신을 신다가 아버지의 얘기를 듣고는 깔깔대고 웃는다.)
경재: 원 아버지두…….
최 노인: 이놈아, 뭐가 우스워?
경재: 지금 세상에 남의 집 고추밭을 넘어다보며 집을 짓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최 노인: 옛날엔 그렇지 않았어!
윗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소도구를 사용하여 인물의 태도 변화를 암시하고 있다.
② 대사를 통해 인물 간의 의견이 대립하는 쟁점을 제시하고 있다.
③ 인물의 특정 행동을 반복적으로 제시하여 주제를 표현하고 있다.
④ 극 중 시간의 흐름을 전환하여 과거의 사건을 구체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⑤ 무대의 신속한 전환을 통해 공간이 변화하는 과정을 압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윗글을 토대로 공연을 준비할 때, ㉠~㉤에서 연출자가 배우들에게 요구할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상대방의 요구에 대해 관심이 없는 태도를 드러내야 하니, 건성으로 대답하세요.
② ㉡: 상대방의 말에 대한 반대 의견을 표현해야 하니, 불만이 가득한 어조로 말하세요.
③ ㉢: 분위기 전환을 위해 화제를 바꾸는 대목이니,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러워하는 태도를 보이세요.
④ ㉣: 이기적인 상대방에 대한 냉소적 태도를 표현해야 하니, 빈정대는 말투로 말하세요.
⑤ ㉤: 주변의 건물에 대한 못마땅함을 드러내야 하니, 화난 기색이 부각되도록 하세요.
<보기>에 근거하여 윗글의 무대에 대해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불모지」의 무대는 근대화, 도시화의 흐름에서 소외된 최 노인의 낡은 기와집을 중심으로 현실모사적인 전경을 보이는 가운데, 무대 안의 장치들끼리 충돌하고 있거나, 무대 밖 공간과 대립하고 있거나, 무대와 연결되어 있는 잠재적인 공간(명시적으로 무대에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말에 의해 구성되고 환기되는 부재의 공간)과 서로 충돌하고 있다는 특징을 보인다.
① 최 노인의 ‘낡은 기와집’과 이를 좌우편으로 에워싼 ‘삼사 층이나 되어 보이는 최신식 건물’은 서로 충돌하는 관계에 놓인 무대 안의 장치들로 기능하고 있다.
② 배경으로 엿보이는 ‘면목이 일신해져 가는 매끈한 고층 건물의 행렬’은 도시화가 진행된 무대 밖 공간의 성격을 보여 주면서, 무대 밖 공간이 ‘낡은 기와집’과 대립되는 공간임을 드러내고 있다.
③ ‘아직도 건축 공사가 진척 중’인 ‘좌편 건물’은 ‘반쯤 가려진 채’인 공간으로 설정되어 최 노인의 고집으로 유지되는 ‘낡은 기와집’의 폐쇄성과 유사한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④ ‘질주하는 전차며 자동차의 소음’은 무대와 연결되는 잠재적인 공간의 도시성을 드러내면서, 매일 물을 긷는 일상으로 채워지는 ‘낡은 기와집’이 도시 속에서 소외된 장소임을 강조하고 있다.
⑤ ‘도무지 자라질 않는’ 것으로 언급되는 ‘화초며 푸성귀들’은 ‘낡은 기와집’이 도시적 공간과의 충돌로 생명력을 잃어 가고 있음을 드러내는 무대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기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둘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찐 젖가슴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A]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
제1막
[무대] 변화한 상가에 자리 잡은 최 노인의 낡은 기와집.정면에 유리문이 달리고 마루를 사이에 두고 방이 둘 있고 좌편으로 기역형으로 굽어서 부엌과 장독대 유리문 저쪽은 가게. 우편으로 대문을 끼고 헛간과 방 하나의 딴채가 서너 평이 못 넘는 좁은 뜰을 에워싸고 웅크리고 앉았다. ⓐ해묵은 지붕에는 푸른 이끼며 잡초까지 자라나서 오랜 풍상을 겪어 내려온 이 집의 역사를 말해 주는 듯하다. 배경으로 면목이 일신해져 가는 매끈한 고층 건물의 행렬이 엿보이고 좌우편에도 역시 삼사 층이나 되어 보이는 최신식 건물이 들어서서 이 낡은 기와집을 거의 폐가처럼 멸시하고 있다. 좌편 건물은 아직도 건축 공사가 진척 중에 있는지 통나무로 얽어맨 작업 보조대에 거적때기가 걸려서 건물은 반쯤 가려진 채로다. 이처럼 대척적인 주변의 장애로 말미암아 이 낡은 집 안팎에는 온종일 햇볕이 안 드는 탓인지 한층 어둡고 습하며 음산한 공기가 찬바람처럼 풍겨 나온다. 때는 초여름 어느 일요일 오전. 막이 오르면 질주하는 전차며 자동차의 소음이 잇따라 들려온다. 뜰가에서 경운이가 함석 통에 담겨진 빨래를 빨고 있고 부엌에서 설거지하는 어머니의 초라한 모습이 보인다. 좌편 담 아래에 마련된 조그만 화단 앞엔 아까부터 최 노인이 쭈그리고 앉아서 ⓑ화초며 푸성귀들을 손보고 있다. 입에 물린 파이프에서 이따금 뱉어지는 담배 연기가 한가롭다. 잠시 후 경재가 물지게를 지고 좁은 대문을 간신히 빠져나와 경운 앞에다 부려 놓는다.
경재: 어유. 오늘은 웬 사람이 그리고 많아……. 공동 수도엔 난장판인걸! (하며 항아리에다 물을 붓는다.)
경운: (여전히 빨래를 하며) 비가 개니까 집집마다 빨래하느라고 그렇겠지…….
경재: 아버지 우리도 다음엔 제발 물 흔한 집으로 옮깁시다. 물만 길다가 내년 봄엔 낙제하게 생겼는걸요! 하루 이틀이 아니구…….
최 노인: (돌아보지도 않고) 그래…….
경운: 애도 속없는 소리 잘하긴 경애 언니 닮았나 봐! 누가 이따위 골목 구석에서 살고 싶어 살고 있니?
경재: 살기 싫으면 딴 데로 옮기면 될 걸 왜 이런 게딱지 굴속에서 산다는 거요?
최 노인: (눈을 크게 부릅뜨며) 무슨 소리냐? 이 집이 어때서?
경재: 아버지나 좋아하시지 우리 식구 중에서 이 집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최 노인: ⓒ싫은 놈은 언제건 나가라지!절간이 미우면 중이 나가는 법이야.
<중간 줄거리> 가족들은 모두 은근히 최 노인을 원망하며 집을 팔자고 종용한다. 가족들의 성화에 못 이긴 최 노인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집을 세놓기로 하지만, 큰아들 경수의 오해로 인해 세를 놓는 데 실패한다. 이에 모든 불화의 원인이 돈에 있다고 생각한 경수는 대낮에 총을 들고 나가 강도질을 하려다 경찰에 붙들린다.
형사: (소리만) ⓓ빨리 들어가지 못해.아니 이 자식이. 왜 안 들어가 응? (하면 잠시 비비적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대문이 열리며 경수가 들어선다. 그의 손엔 수갑이 채워졌다. 경수는 가족들을 보자 재빠르게 얼굴을 돌리며 선다. 형사는 밖에서 몰려드는 사람을 몰아낸다.) 그만 들어가지 못해. 왜 이렇게 졸졸 따라 다녀? 어서! (형사의 호령에 왁자지껄하며 사람들이 몰려가는 소리 난다. 형사는 대문을 닫고 들어선다.)
최 노인, 어머니, 경재는 감전된 사람처럼 형사와 경수를 바라 보고있다. 무서운 침묵이 흐른다.
형사: (형식적인 인사를 던지며) 영감님이 이집의…….
최 노인: (일부러 태연하게) 예. 이 사람이 주인인데요. ⓔ어디서 오셨는지?
형사: (신분증을 내보이며) 저 수사계에 있습니다. 잠깐 조사할 일이 있어서요. (경수를 가리키며) 아드님이신가요?
최 노인: 예, 제 큰애입니다.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나요?
형사: (그 말에는 대답도 안 하고) 방이 어딥니까? 좀 들어가 볼까요?
경재: (아랫방을 가리키며) 여기에요.
형사: 응. (들어가려다 말고 경수에게) 도망치면 재미없어. 알았지? (가족들에게) 가족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하고는 방으로 들어간다)
어머니: (경수에게로 바싹 붙으며) 속 시원히 말 좀 해라. 그렇지 않아도 경재와 경운이가 너를 찾아다녔는데. 어디서 무엇을 했기에 이런. (하며 수갑을 내려다본다. 그러나 경수는 여전히 말이 없다.)
[B]
경재: 형님, 권총을 뭣하러 가지고 나갔어요? (권총 말이 나오자 경수의 얼굴에 한 줄기 긴장이 스쳐간다.) 죽는다고 만사가 해결되나요? 바보같이 죽기는 왜 죽어요? 자살미수라고 신문에 나면 무슨 창피예요?
최 노인: (그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노기를 폭발시키며) 왜 말 못해? 아가리는 언제 쓰라는 아가리야! 이 천하에 못돼먹은 자식! (하며 경수의 뺨을 친다. 그래도 경수는 입술을 깨물 뿐 반응이 없다.)
<차범석, ‘불모지’>
[A]와 [B]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A]는 다양한 색채어를 활용하여 화자의 기쁜 내면을 환기하고 있다.
② [B]는 독백을 통해 다른 인물에 대한 대결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③ [A]에는 화자와 다른 대상과의 조화가, [B]에는 인물과 다른 인물과의 불화가 두드러진다.
④ [A]에는 역설적 표현을 통해 현재 상황에 대한 비애를, [B]는 의문문의 반복을 통해 다른 인물에 대한 질책을 드러내고 있다.
⑤ [A]와 [B]는 모두 과거와의 대비를 통해 현재 상황의 비극성을 부각하고 있다.
<보기>를 바탕으로 (가), (나)를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것은?
<보기>
시에서의 공간과 극에서의 공간은 그 기능이 다르다. 화자의 내면을 드러내는 문학 갈래인 시의 공간은 화자의 정서가 드러나는 배경으로, 갈등을 보여주는 문학 갈래인 극의 공간은 인물 간의 대립이 구체화되는 배경으로 기능한다. 또한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해 공간을 그려낼 수 있는 시와 달리 무대 상연을 전제로 하는 극은 현실적 제약 속에서 공간을 만들어 나간다.
① (가)의 ‘들’은 현재 상황에 대한 화자의 다양한 심정이 표출되는 공간이군.
② (가)의 ‘어깨춤’을 추고 흐르는 ‘도랑’은 자유로운 상상력이 반영된 것이겠군.
③ (나)의 ‘집 안팎’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무대 상연이라는 목적과 밀접한 관련이 있겠군
④ (나)의 ‘방’은 ‘경수’가 저지른 일에 대한 ‘최 노인’과 ‘어머니’의 찬반이 대립하는 공간이군.
⑤ (나)의 ‘고층 건물’과 ‘낡은 기와집’의 대비는 새로운 세대와 과거 세대의 대립을 암시하는군.
(나)가 무대에서 상연된다고 가정할 때, ⓐ~ⓔ에 대한 연출가의 메모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전통적 아름다움을 간직한 모습을 잘 보여줄 수 있게 지붕을 제작해야겠군.
② ⓑ: 초여름이라는 계절에 어울리게 햇볕을 받아 잘 자란 화초를 준비해야겠군.
③ ⓒ: 실제 본심과 다른 반어적인 대사라는 사실을 최 노인 역을 맡은 배우에게 상기시켜야겠군.
④ ⓓ: 음향 담당자에게 무대 밖에서 나는 소리로 처리하라고 지시해야겠군.
⑤ ⓔ: 자식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초조한 마음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연기를 주문해야겠군.
(나)의 등장인물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것은?
① ‘경운’은 이사 가기 힘든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② ‘형사’는 ‘경수’의 가족들에게 깍듯하게 예의를 차리고 있다.
③ ‘경재’는 ‘경수’가 강도질을 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④ ‘어머니’는 예상치 못한 ‘경수’의 모습에 걱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⑤ ‘경수’는 자신의 범죄 사실을 가족들이 알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경재: 어유, 오늘은 웬 사람이 그리도 많아……. 공동 수도엔 난장판인걸! (하며 항아리에다 물을 붓는다.)
경운: (여전히 빨래를 하며) 비가 개니까 집집마다 빨래하느라고 그렇겠지…….
경재: 아버지, 우리도 다음엔 제발 물 흔한 집으로 옮깁시다. 물만 긷다가 내년 봄엔 낙제하게 생겼는걸요! 하루 이틀이 아니구…….
최 노인: (돌아보지도 않고) 그래…….
경운: 애도 속없는 소리 잘 하긴 경애 언니 닮았나봐! 누가 이따위 골목 구석에서 살고 싶어 살고 있니?
경재: 살기 싫으면 딴 데로 옮기면 될 걸 왜 이런 게딱지 굴 속에서 산다는 거요?
최 노인: (눈을 크게 부릅뜨며) 무슨 소리냐? 이 집이 어때서?
경재: 아버지나 좋아하시지 우리 식구 중에서 이 집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최 노인: 싫은 놈은 언제건 나가라지! 절간이 미우면 중이 나가는 법이야.
(중략)
경재: 염려 마세요. 다녀오겠습니다. (나가려다 말고) 아버지!
최 노인: 왜?
경재: 절 보기 싫으면 중이 나가죠?
최 노인: 그래……. 왜 그건 또 묻는 거냐?
경재: (좌우 고층 건물을 가리키며) 저게 뵈기 싫으니 우리가 떠나야죠!
[A]
최 노인: 뭐, 뭐라구?
경재: 시외로 가면 후생 주택1)이 얼마든지 있대요. 집 값도 싸고 무엇보다도 터전이 넓어서 화초며 채소는 얼마든지 심어 낼 수가 있을 거예요. 공기 좋고 조용하고 집집마다 맑은 우물이 있고 아주 멋지게 살 수 있대요.
어머니: 참, 창용이네도 지금 들어 있는 집을 팔고 그 후생 주택으로 옮긴답데다.
최 노인: 그렇게 가고 싶걸랑 따라가 살구려! 난 이 집에서 났으니 이 집에서 죽을 테니까!
경재: (일부러 과장된 표정으로) 원자탄 고집 폭발이다! 다녀오겠습니다!
(중략)
최 노인: (부엌 쪽에서 나오며) 아 저 배라먹을 녀석들이 남의 집에다가 구정물을 버리다니. 저, 저런…….
어머니: 누가요?
최 노인: (좌편 건물을 가리키며) 저 이층 다방에서 버린 물이 뒤안 나무 밑에 흥건히 고였어! 이층에서 내리는 수채통이 터졌나 보군! 망할 자식들! 돈 벌 줄만 알았지 남의 집 망치는 줄은 모르는 모양이지……. 도대체 요즘 녀석들은 염치가 없다니까!
어머니: 설마 알고야 그랬겠어요?
최 노인: 아따 속이 넓기는 동해 바다 이상이군! (소리를 지르며) 그래 내 집이 다 썩어 가도 설마야?
어머니: 허지만 이웃들이 집터를 높이 돋구어서 집들을 지으니까 우리 집이 낮아서 물줄기가 일로 모여드는 거지 누가 일부러…….
최 노인: 아니 이이가……. 그래 우리가 잘못이란 말이오?
어머니: (고소2)를 뱉으며) 누가 잘 하고 못 하고 있어요……. 우리 집터를 옆집보다 더 높이든지 하지 않은 다음에야…….
최 노인: 돈, 돈이 있어? 돈이 어디 있어? 장사가 안 되어 가게문을 닫고 세금도 못 내는 판국인데 그래 내 돈 들여서 집터를 돋아 올리자구?
어머니: 누가 그렇게 하자구나 했길래 이리 성화시우?
최 노인: 그럼 뭐야?
어머니: 낸들 알겠수, 여편네 얘기라면 ㉠ …….
최 노인: (넋두리 외듯이) 나 원……. 일이 이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비틀어지다니 정말 집을 옮기든지 해야지……. 자식 놈이라고 벌어대기를 하는가, 장사가 제대로 되는가……. 나 원……. 게다가 가게문을 닫은 지가 두 달이나 되었는데 무슨 놈의 세금은 세금이야! 설상가상으로 저 빌어먹을 낮도깨비 때문에 화초밭이 망쳐지는 것은 고사하고 집 기둥까지 썩게 되었으니……. 에잇 참!
어머니: ㉡ 여보, 영감…….
최 노인: 뭐요?
어머니: 내 생각 같아서는……. (사이)
최 노인: 뭣이 어쨌어?
어머니: 다른 집으로 갈아잡는 게 상책일 것 같으오만…….
최 노인: (말없이 눈만 부릅뜬다.)
어머니: 애들하고는 여러 번 의논도 했어요.
최 노인: 아까 경재 얘기 말이오?
어머니: 예.
최 노인: 내가 싫다면 안 되는 일이야…….
어머니: 그러니까 여태 말을 못 꺼냈죠.
최 노인: 이건 내 집이라는 걸 알아야 돼!
차범석, <불모지>
[어휘 풀이] 1) 후생 주택(厚生住宅) :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의 하나로 일반 서민들이 어렵지 아니하게 구입할 수 있도록 지은 주택. 2) 고소(苦笑) : 쓴웃음.
위 글에 대한 설명으로 바르지 않은 것은?
갈등의 요인
갈등의 당사자
①
힘겨운 가사 노동
경운과 경재
②
후생 주택의 효용성 여부
경재와 최 노인
③
집을 팔고 이사 가는 일
최 노인과 가족들
④
가정의 실질적인 주도권 확보
최 노인과 어머니
⑤
이웃들의 염치없는 태도
이웃 사람들과 최 노인
‘최 노인’과 <보기>의 ‘조부’가 지닌 공통점으로 알맞은 것은?
<보기>
덕기는 안마루에서, 내일 가지고 갈 새 금침을 아범을 시켜서 꾸리게 하고 축대 위에 섰으려니까, 사랑에서 조부가 뒷짐을 지고 들어오며 덕기를 보고,
“얘, 누가 찾아왔나 보다. 그 누그냐? 대가리꼴 하고…….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하는 거야. 친구라고 찾아온다는 것이 왜 모두 그 따위뿐이냐?”
“당치 않은! 삼동주1)이불이 다 뭐냐? 주속2)이란 내 낫세나 되어야 몸에 걸치는 거야. 가외 저런 것을, 공부하는 애가 외국으로 끌고 나가서 더럽혀 버릴 테란 말이냐? 사람이 지각머리가…….”
하며, 부엌 속에 쪽치고 섰는 손주며느리를 쏘아본다.
염상섭, 「三代」
[어휘 풀이] 1) 삼동주 : 겨우살이 비단. 2) 주속(紬屬) : 비단붙이
① 뛰어난 말솜씨를 바탕으로 주위 사람들과의 대화를 주도하고 있다.
② 이해 타산에 대한 판단이 정확하며 매우 현실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③ 자기 주장을 내세우면서 주변 사람들의 태도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
④ 활달하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자신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⑤ 주위의 도움 없이 자수성가한 인물로 금전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여 주고 있다.
<보기>의 대화가 [A]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때, 밑줄 친 부분에 들어갈 말로 가장 적절한 것은?
<보기>
아들 : 아빠! 아까 인터넷에서 봤는데, 서해안에도 좋은 해수욕장이 무척 많이 있대요. 해수욕장 주변 경치도 아름답고 무엇보다도 서해안이면 우리집에서 거리도 가까워서 가기도 쉽잖아요. 물도 맑고 오토 캠핑 시설도 잘 되어 있으니 이번 여름에는 아주 멋진 휴가가 될 것 같아요.
딸 : 그래요, 아빠! 서해안으로 가요.
아빠 : 그렇게 서해안으로 가고 싶으면 너희들끼 다녀오렴. 난 동해안이 좋으니 동해안 해수욕장으로 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