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장소가 좋았다. 숙소가 좋고 음식은 잘 나온다. 강원랜드다. 저녁 시간엔 아래층 카지노에 갈 수도 있었다. 실제로 몇몇 동료들은 입장했다. 괜스레 설렌다. 돈을 딸 수 있다는 예감 같지 않은 예감도 생겼다. 입장료라도 벌어볼까? 음료수나 흠뻑 마셔야지. 입구에서는 신분증을 검사하고 있었다. 아뿔싸, 없었다. 세미나 교재를 지참하느라 가져오지 않았다. 새삼스레 신분증을 재발급받아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어릴 적부터 너무 많이 들었던 도박에 대한 중독 우려다.
쩨쩨함이 좋다. 이후 세계적으로 큰 곳들을 구경할 기회들이 여러 번 있었지만, 한 번도 자리에 앉아 배팅하지는 못했다. 소심했지만 함정에 빠질 위험이었다고 스스로 위안한다. 대범한 스타일도 좋지만, 우려가 있을 땐 소심함이 한결 좋다. 잘못된 길은 누구나 빠져들기 원하지 않는다. 중독은 언감생심. 탐닉 정도도 빠져들지 않겠다고 하는 생각은 당연하다. 일상의 지루함이나 스트레스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마음은 같다. 쾌락이나 고통을 완화하는 경험 정도는 즐길 수 있다고 여긴다.
보상이다. 사실 이러한 경험은 초기다. 약할 때 다루지 않았다가 문제 발생기가 된다면 아찔해진다. 같은 만족을 얻으려면 더 세져야 한다. 시간도 길어진다. 만약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황홀경이 중단된다면 불쾌해진다. 금단 증상은 참아내기 어려울 정도다. 계속되는 내성은 중독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만족을 느끼려는 작은 시도는 엄청난 나비효과를 부른다. 깊게 빠져들기 싫은 이유다. 소심함이 더 좋은 선택이다.
몰입되고 싶은 일도 있다. 일상에서 흔해진 게임, 알코올, 도박중독이 아니다. 3P 바인더다. 일벌레 공붓벌레처럼, 다이어리를 잘 쓰는 벌레가 되고 싶지만, 바인더벌레는 쉽게 되지 않는다. 노력해도 되지 않는다. 일정관리를 쓰는 대부분 사람은 기꺼이 수첩과 하나되기를 원할 터. 하지만 잘 기록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맞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 맞지 않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노력하면 되지요. 미래는 비전입니다” 이는 알맞지 않은 권유다.
적성이 크다. 타고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적성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바인더를 사용하고 싶지만, 소장으로 만족하는 분이 많다. 이를 두고 습관화되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는 적성의 영향이 더 크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올림픽 하이다이빙 선수가 바둑에서 최정상을 노림과 같다. 대학입시에서 적성에 맞는 학과를 찾는 일과 자신이 선택하고자 하는 전공은 다르다. 바인더북의 빈칸마다 채우지 못한다고 힘들어하지 말자. 편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