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발견된 HR6819 블랙홀이 지구로부터 1000광년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이 과학자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해왔던 것과 달리 태양계에서 무척 가까운 곳에 블랙홀이 존재할 수 있고,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가 아무런 사전 경고 없이 어느날 갑자기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인류를 비롯한 태양계 전체의 갑작스런 종말을 의미한다. 적어도 그 전에 인류가 태양계를 벗어나 새로운 곳에 안전한 서식지를 확보할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지 못한다면 말이다.
우주 안팎에는 이렇듯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현상들이 엄청나게 많이 존재하고 그 중에는 우리의 생존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공포스런 요소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이런 공포와 마주할 때면 우주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란 정말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미미한 존재이고, 이런 우주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마치 기적과도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온 우주가 나서서 방해를 한다.”
작년에 어렴풋이 조기은퇴를 결심하고 나서 세워 놓았던 올해의 모든 여행 계획이 코로나 사태 이후로 틀어지면서 머리속에 떠오른 말이다. 다음 달에 리스가 끝나면 가족과 함께 한국을 거점으로 동남아등 여러 은퇴 후보지를 돌아다니며 한 두달씩 살아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코로나 때문에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외국인의 입국을 아예 금지해 버리거나 강제시설격리를 단행했고, 한국에서도 4월부터 시행된 단기방문 외국인에 대한 14일간 강제시설격리 조치 때문에 무비자 입국하려는 계획은 변경이 불가피해졌다. 이로 인해 지난 몇 주간 예정에 없었던 F4 비자 신청을 모색하느라 골머리를 썩였다.
엘에이에 있는 총영사관에 2주 전에 어렵사리 예약을 하고 차로 두 시간여를 달려 도착했다. 평소보다 트래픽이 없다는 점이 메리트였다. 다행이 새롭게 추가된 건강 진단서는 병원을 직접 방문할 필요없이 온라인으로 쉽게 받을 수 있었다. 영사관 직원도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토를 달지 않았다.
하지만 60세 미만일 경우에 FBI 범죄 (무)경력 증명이 필요하다는 요구사항이 작년 하반기부터 추가되었고, 이 증명서에는 아포스티유 첨부가 필수라 하여서 결국 난관에 부딪쳤다. 다행이도 친절한 영사관 직원이 아포스티유가 올 때까지 서류를 보류해준다고 하였다. 덧붙여서 최근들어 F4 비자가 단수비자로 발급되기 시작했고, 비자 발급 후 90일 이내에 한국에 들어가서 거소신고를 해야만 비로소 복수비자로 전환해 준다고 조언했다.
샌디에고로 돌아와 미국무부로 급히 보낸 아포스티유 신청은 코로나 때문에 업무처리속도가 느려져서인지 2주가 지난 현재까지도 감감무소식이다. 범죄 경력 확인서가 발급된 후 90일 동안만 효력이 있다는 조항 때문에 아포스티유가 빨리 나오지 않으면 모든 일이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코로나 때문에 하루에도 여러번 손을 씻고 또 씻는 바람에 지문이 닳아버렸는지 온가족이 라이브 스캔을 이용한 지문 채취에 곤란을 겪고 있고, 이 때문에 F4 비자 신청 일정에 큰 차질이 빚어졌다.
이렇듯 비자발급을 위하여 사제 마스크를 쓰고 다니며 수 없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노출되어야 하는 지난한 준비 과정 끝에 어렵사리 F4 비자를 얻었다고 해도 일은 끝나지 않는다. 만 60세가 되기 전까지는 6개월 이상을 연속으로 외국에 체류했을 경우 2년 후 거소증을 갱신할 때 범죄 무경력 증명을 다시 제출해야 한다는 조항 때문이다. 이는 여러나라에서 연속으로 6개월 이상 한 두달 살기에 제약을 가한다.
미국 한 나라에서도 지문 찍고 범죄 무경력 증명서에 아포스티유 한 장 받기가 이렇게나 힘든데, 2년간 방문한 10개가 넘는 모든 나라에서 이를 받는다는 일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물론 6개월 안에 한국에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외국에서 6개월 이상 체류하게 될 수도 있기에 58세 이후에 거소증을 갱신해야 비로소 지문찍기와 아포스티유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 살아온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경험에 비춰볼 때, 이렇게 온 우주가 나서서 방해를 할 때마다 그 상황을 끝내 극복하고 이루어낸 일들이 오히려 인생의 전환기를 이끌어 냈다. 어쩌면 지금도 그런 기로에 서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막힌 길을 굳이 뚫고 앞으로만 전진하는 것 보다는 옆으로 돌아가는 것이 때론 현명한 일일 수도 있겠다.
요즘의 한국행이 그런 것 같다. 시설격리를 당하지 않고 온가족이 함께 한국에 무비자 입국하는 것이 마치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처럼 힘들다고 느껴진다. 천신만고 끝에 F4 비자를 받고 자가격리를 견뎌낸 후 거소증을 받는다고 해도 당초에 세웠던 한 두달 살기의 계획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이제는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마치 알렉산더 대왕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토막내 버렸듯이 말이다. 다행이도 유럽 국가들 중 몇몇이 이번 여름에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이들 중 오스트리아와 아이슬란드에서는 몇 시간안에 결과를 알 수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테스트만으로 외국인의 무비자 입국을 허용한다고 한다. 오스트리아는 검사 비용 $200 정도를 본인이 부담해야 하지만 아이슬란드는 무료란다.
세계속에 우뚝선 자랑스러운 K-방역 시스템이 이번에도 한번 더 빛을 발하여 유럽국가들처럼 신속한 테스트 결과만으로 입국여부를 결정하는 시스템으로 격리조치를 대체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만일 5월이 다 가도록 외국인 단기 체류 입국자에 대한 격리조치가 해제되지 않는다면 한국행은 당분간 접어두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해 닥친 조기 은퇴 후 여행 계획의 블랙홀은 멀찌감치 돌아가는 것이 순리인 듯 하다. 어쩌면 이번 여름에 부산 대신 아이슬란드에 가게 되면, 비크에서 은하수가 쏟아지는 시원한 밤하늘을 마주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좀 춥겠지만 혹시 가을이나 겨울에 다시 갈 수 있다면 요쿨살론 빙하호수에서 오로라의 장관도 꼭 한 번 감상해보고 싶어진다. 지구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기 전에 말이다.
첫댓글 Myst님은 어째 저의 동선을 따라 다니실려고 하십니까?
아님 이심전심인지...
아이슬랜드도 그렇고(오로라는 9월부터 시작이 되어서 저는 9월에 해놓았습니다)
11월 2일부터 6일까지는 부산 해운대로 숙소도 예약해 놓았습니다.
동선이 비슷하다보면 언젠가 지구상 한쪽끝에서 단독번개를 할날도...^^
윤샘님과 저와의 염화시중의 미소이리라 생각해봅니다. ㅎㅎ
오로라를 꼭 보게 되시길...
그렇죠, 이러다가 언젠가는 마주칠 날도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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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나마 즐거우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피치트리님도 우주가 도우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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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보다 좋은 반퇴를 즐기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자식농사 잘 지으신 에어컨님이 부럽습니다. ^^
인생 여정에서 블랙홀 같은 뜻밖의 미스터리들을 만나게 되지만
covid-19 pandemic은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시련을 마주치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저의 은퇴 계획은 모두 엉망진창 진흙탕 속으로 빠져 버렸고
과연 언제쯤 그 구덩이에서 탈출 해 나올수 있을지 가늠조차 못하겠네요...
조금은 자리를 맴돌고 있지만
Myst님의 모든 계획들이 순차적으로 풀려 나가길 기대합니다~
덕담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이 시련을 이겨내리라 믿습니다.
길동무님도 계획하시는 일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길 기원합니다~
먹고 사는 일을 이제 끝내고 좀 놀아보려는데 온 우주가 나서서 방해를 하는군요 ㅎㅎ
먹고 사는 일도 아닌데 급할 거 있나요 셤셤 느긋하게 하세요.
미스트님 앞길에 블랙홀이 아니라 래빗홀을 통한 원더랜드가 펼쳐지길 기원하겠습니다.
그러게요. 팔자에 고생이 끼었는지... ㅎㅎ
빙세기님 말씀처럼 느긋하게 하려 합니다.
덕분에 고바우 식당에서 보쌈 투고해서 맛나게 먹었습니다.
언젠가 원더랜드에서 만나게 되길 기원합니다.
@Myst 앗! 엘에이 방문때 배가고파 우연히 고바우에 들어가서 보쌈을 시켜 먹었는데 엄청 맛있더군요..
@진진돌이 그러게요. 다음에 또 가게 되면 불고기도 한 번 시도해 볼 작정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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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독사님도 힘내시고 원하시는 시기에 은퇴하시게 되길 바랍니다.^^
저랑 같은 나이에 은퇴하셨네요!! 50에 은퇴를 했더니 이제 돈도 바닥이 나고 너무 지루해서 이 늙은 나이에 다시 산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니 막막합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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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일단은 건강이 가장 중요한 듯 합니다.
선인장님처럼 우주를 향해 기도라도 하고 싶네요. ^^
건강 유지하시고 한국에서 만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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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와 기원 감사드립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힘든 분들에 비하면 엄청 행복한 고민을 했습니다. ㅎ
이민와서 35년째 스트레스 받으며 죽어라 일만 하다가, 어느날 건강에 적신호가 켜져 워라밸을 실천하니 회사에서 알아서 고만 나오라데요. ㅎㅎ
bosnobo님도 거소증 꼭 제대로 쓰시게 되길...
F4 비자의 블랙홀이란 글 참 잘 읽고 갑니다. 한국행이 무산되게 되었지만 다른 여름 여행지로 좋은 곳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다른 해외 여행지도 코로나 때문에 선뜻 내키지는 않으니, 일단은 미국내에서 돌아다녀야 할 듯...
거소증 블랙홀입니다. 3년전에 발급 받아놓고 요번에 사용하면서 귀국해서 연장하려는데 자식들이 난리라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