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김정택 대표팀 감독(상무)은 경기 전부터 극도로 흥분해 있었다. 오더교환을 놓고 벌인 어처구니 없는 미국의 행태 때문이었다. 스포츠맨십을 생명처럼 중시하고 야구의 종주국임을 자부하는 미국이 출장자 명단(오더)을 교환하면서 있을 수 없는 장난을 친 것이다.
미국 측의 이의제기로 경기 전 덕아웃 접근이 금지 됐던 한국 기자들은 자초지종을 알 수 없어 설마 했다. 경기 후에도 여전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는 김 감독의 주장을 한국 기자들은 미국에 0-11로 대패한 뒤라 곧이곧대로 받아 들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튿날인 10일 대만의 스포츠 전문지인 <민생보>에 실린 한장의 사진은 미국의 비도덕성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기에 충분했다.
아마추어 국제 경기는 세계 야구연맹(IBAF)의 룰을 따른다. IBAF룰에 따르면 5장의 오더를 작성해 경기 개시 30분 전(전광판이 있는 경우에는 작동 준비를 위해 관례적으로 1시간 전. 자이구장은 출장자 이름이 나오는 전광판이 없음)에 경기 운영을 책임진 기술위원에게 양 팀이 2장의 오더를 제출하고 경기 개시 직전에 심판이 지켜보는 가운데 3장의 오더를 서로 교환하게끔 되어 있다.
30분 전에 제출한 것은 기록이나 전광판 작업의 편의를 위한 것이라 변경 불가의 최종 오더는 아니다. 불가피하게 부상자가 생기거나 피치못할 사정이 있을 경우 출장자를 고쳐서 낼 수는 있다.
그러나 9일 경기에서 미국의 테리 프랑코나 감독이 한 행위는 불가피하게 선수를 바꾼 것이 아니라 김정택 감독이 제출한 오더를 먼저 보고 좌투수 이혜천이 선발임을 확인한 뒤 좌투수용(상대적으로 우타자가 많은) 오더를 내민 것이다.
<민생보>에 실린 사진에서 프랑코나 감독은 분명하게 두 장의 오더를 손에 쥔 채 한국의 라인업을 확인하고 있다.
미국은 경기 30분 전 제출한 오더도 좌ㆍ우 투수용 두 가지였음이 기자들에게 배포된 출장자 명단에 그대로 드러났다. 이 복사물의 맨 왼쪽은 좌투수용, 가운데는 우투수용 미국의 라인업이며 맨 오른쪽은 한국의 라인업이다. (윗쪽 사진:3장짜리 비정상인 오더)
우투수용 라인업에는 5회 이대환에게 투런홈런을 뽑아냈던 디어도프가 빠져 있었다. 이 유인물은 야구 룰에 어두운 아르바이트생들이 세 장의 오더 모두를 복사, 배포함으로써 알려졌다. 대회 본부는 경기 개시 후 우투수용이 사라진 새로운 오더를 급히 복사, 배포했다. (아래 사진:2장짜리 정상적인 오더)
프랑코나 감독은 오더 교환 전부터 한국 덕아웃을 찾아와 김 감독에게 선발 투수가 좌투수 인지 우투수 인지를 묻는 관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 소란을 일으킨 바 있다.
룰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한 미국의 비도덕성은 10일 경기기술위원이 김정택 감독에게 재발 방지를 약속함에 따라 뒤늦게나마 사실로 입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