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마가복음 1:16~20)
저는 설교를 25분간 하는데 교회에서 30분을 하라고 하니 제 성격상 원고에도 없는 설교를 추가하자니 A4 4장 분량 정도를 준비했는데 두렵지만 주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첫째는 주님이 여러분을 사로잡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여러분이 사람을 사로잡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제자는 주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물처럼 낮은 곳으로 가셨고 어머니처럼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내어주셨습니다.
‘의심하고 끊고 확인하라.’ 는 보이스피싱 3단계 대처 방법도 있습니다.
보이스피싱을 당할 뻔하였던 한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저녁 한 전화가 옵니다.
통화 속의 남자는 굶고 험악한 목소리로 김〇〇씨죠?
라고 하면서 ‘당신의 딸이 나와 같이 있으니 내가 하는 대로 하시오.’ 라고 말을 하는데 멀리서 유리창이 깨지고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당신의 딸이 이쁘고 잘 생겼으니 잘 팔려 가겠다고 협박을 하길래 내 딸은 이쁘고 잘 생기지 않았다며 끊었다고 합니다,
본문 17절에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라는 말이 나옵니다.
낚시하면 부정적인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를 속이려고 하는 기사를 낚시성 기사라고 합니다.
물고기를 잡으려면 미끼를 끼어 낚시를 던집니다.
고기가 덥석 물면 바늘에 끼어 잡힙니다.
16절에 고기를 잡은 어부인 시몬과 안드레가 등장합니다.
어부라는 것은 취미로 낚시로 잡은 사람이 아니고 직업적으로 고기를 잡는 사람입니다.
17절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고 하신 말씀은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게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일에 부름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부정적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원문에서 사로잡은 어부들입니다.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사람을 사로잡은 어부들이라는 말입니다.
누가복음 5장에 1~11절은 처음으로 제자를 부르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밤새 동안 고기를 못 잡은 베드로에게 다가가서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으며 베드로는 던져서 많은 물고기를 잡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취하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하자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갑니다.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누가복음 5:10~11)
지금은 설교 준비하는데 개념설명, 신학적 교리 등 쉽게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는 산 채로 고기를 잡습니다.
사람을 낚아서 생명을 살리려고 잡습니다.
사람의 생각이나 마음을 온통 쏠리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집중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사로잡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2,000년 전에 제자들은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를 부르셨으며 지금 여러분은 어느 것에 사로 잡혀있습니까?
제자는 완성된 사람이 아니고 되어져 가는 사람입니다.
2,000년 전에 어부들처럼 여러분과 나도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한계를 직시할 줄 알지만 부르시고 맡기십니다.
한 사람을 부르지 않으시고 많은 사람을 부르십니다.
도토리 두알 –박노해-
산길에서 주워든 도토리 두 알 한 알은 작고 보잘것없는 도토리
한 알은 크고 윤나는 도토리 나는 손바닥의 도토리 두 알을 바라본다.
너희도 필사적으로 경쟁을 했는가? 내가 더 크고 더 빛나는 존재라고
땅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싸웠는가?
진정 무엇이 더 중요한가? 크고 윤나는 도토리가 되는 것은
청설모나 멧돼지에게나 중요한 일 삶에서 훨씬 더 중요한 건 참나무가 되는 것
나는 작고 보잘것없는 도토리를 멀리 빈 숲으로 힘껏 던져주었다.
울지 마라, 너는 묻혀서 참나무가 되리니
박노해 시인은 도토리 두 알을 통해서 도토리의 존재 목적은 숲이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청설모나 멧돼지들은 먹이로 생각하지만 중요한 것은 존재 목적인 참나무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바라보며 추구하고 살고 있습니까?
제자들은 그물을, 배와 일꾼들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들의 직업, 재산과 친척들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들은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따라갔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떠나지는 말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따르려면 하나님께 사로잡혀야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새로운 직업,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 사로잡혀서 사람을 사로잡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을 뒤로하고 예수님의 뒤에서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태복음 11:29)
코로나로 교회가 사람을 잡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세상 소리 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발길을 멈추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시기를 기도합니다.
한 걸음씩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참나무가 되고 숲을 이루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처럼 모든 것보다 소중한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심으로 그 부르심에 응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가 됩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누가복음 1:17~1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