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인 타이슨 퓨리 편은 이야기가 많아서 나눠서 올리겠습니다. 일단 상편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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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슨 퓨리
206cm/126kg
영국/ 스위치히터/ 1988년생
현재는 타이슨 퓨리라는 이름을 들으면 사진의 저 사람을 떠올립니다만, 대략 10년 전에 이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땐 가명인줄 았았습니다. 조금 웃기기도 했고요. 선수 이름이 ‘타이슨의 분노’?
간혹 재밌는 링네임 쓰는 선수들이 있죠
* 젊은 앤디 루이즈를 상대하는 흑인선수의 이름은 ‘토르 해머’
* 전 동양챔피언 '무하마드 타이슨' 고키. 뭘 섞은건지 아시겠죠? 재일교포인 일본선수.
그런데 타이슨 퓨리는 본명이고 사연도 있습니다.
지금은 2미터에 130키로에 육박하는 거대한 체구를 자랑하지만, 퓨리는 1988년 태어날 당시 예정보다 3달 일찍 세상에 나온 500g도 안나가는 조산아였고 생명이 위독했습니다. 복서였던 그의 아버지 존 퓨리는 이미 그 위의 딸들이 2명이나 조산아로 태어나 생명을 잃은 경험이 있기에, 아들이 죽음을 이겨내고 강하게 크길 바라는 마음에서 당시 세계헤비급 챔피언이자 자신이 좋아하던 복서 마이크 ‘타이슨’의 성을 따와 아이의 이름을 짓습니다.
이 아이가 결국 죽음을 이겨내고 생존했을 뿐만 아니라 장성한 후 이름에 걸맞는 업적을 이루게 된 것이죠.
퓨리의 유년시절은 굉장히 독특하고 그 배경에 대한 설명이 조금 필요합니다. 일단 영국 옆에는 아일랜드라는 국가가 있습니다. 긴 얘기 간단히 줄이면 아일랜드는 약 800년간 영국의 식민지였지만 결국 영국과 동화되진 못 했고 독립된 현재도 아일랜드 인들은 영국을 좋아하지 않고 영국인들도 아일랜드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퓨리의 가족은 'Irish traveler. 아이리쉬 트래블러’라는 유럽의 떠돌이 소수집단 출신으로, 이들은 아일랜드 인들과 혈통으론 차이가 없지만 그들만의 집단 안에서 생활하며 따로 사용하는 언어도 있고 혼인관계도 그들 안에서 맺는등 그 폐쇄적인 문화로 인해 유럽 전체에서 인종차별에 가까운 대우를 받는 집단입니다. 집시족과 행태가 비슷하고 실제로 혼용되어 불리기도 하지만(퓨리 본인부터 스스로를 Gypsy King'집시킹'이라고 부름) 정확히는 혈통이 집시족과 연관없고 아일랜드인과 똑같은데도 단순히 문화 때문에 차별을 받는 집단이죠.
https://blog.naver.com/s2ethan/221500122057
퓨리는 영국에서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는 완전한 아일랜드 혈통이라 이중국적이 가능했지만, 아버지 존 퓨리는 태어날 때 세례를 받지 않았고 당시 아이리쉬 트래블러들은 세례를 통해서만 출생을 기록했기에 공식 출생기록이 없어 훗날 퓨리 역시 이중 국적을 얻는데 문제가 생겨 고생한바 있습니다. 퓨리는 아마추어 유소년 시절 아일랜드와 영국 국가대표를 오가며 뛰었는데, 성인이 되어 올림픽에 나가고자 할 때 이 국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힙니다. 조금 이따 설명하겠습니다.
퓨리의 어머니는 14번 임신을 했지만, 대부분 유산을 하거나 태어난 얼마 후 죽고 살아남은 형제는 4명이 다 입니다. 이런 환경 안에서 퓨리가 9살 때 여동생이 태어나 며칠 만에 죽는 걸 목격했고 이는 어린 퓨리의 마음속에 한동안 남았다 합니다.
퓨리의 아버지는 맨주먹 복서(베어너클 복서)로 이후 프로복서로도 활동하지만 크게 두각을 보이진 못 합니다. 퓨리의 친척들 역시 복서들이 많았습니다. 퓨리는 10살 때부터 복싱을 시작했고, 11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가족들과 도로포장 노동일을 해 살아가며 운동을 합니다. 훗날 회고하길 주변의 모든 사람이 거친 일을 하는데다 복싱 집안이었기에 정말 어릴 때부터 그의 유일한 인생의 목표는 복싱 세계챔피언으로 정해져 있었다 합니다. 퓨리의 코치는 대부분 가족과 친척들이었습니다. 아버지인 존이 퓨리에게 복싱을 가르쳐오다가, 존과 사이가 나빴던 다른 트레블러의 눈을 실명시켜 (한쪽눈을 파버렸다고..) 수감이 된 후론 삼촌 휴이로부터 훈련을 받습니다. 몇 년 후 삼촌이 돌아가신 후론 또다른 친척 피터를 코치로 삼죠.
* 젊은 시절 타이슨 퓨리와 아버지 존 퓨리
퓨리는 복싱 체육관 몇군데를 돌아다니며 훈련을 하였고 어릴 적부터 아일랜드와 영국을 오가면서 슈퍼헤비급 아마추어 선수로 복싱을 합니다. 2006년 세계 주니어 선수권에선 아일랜드 국적으로 동메달을 획득하고 2007년 유럽연합 주니어 선수권에선 영국대표로 금메달을 땁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생각하고 있었으나, 영국팀에는 데이빗 프라이스라는 선수가 대표로 뽑히게 됩니다. 이게 퓨리 입장에선 약간 말이 나오는게, 퓨리와 프라이스는 올림픽 2년 전인 2006년에 영국 내셔널 챔피언쉽에서 붙어 프라이스가 이긴바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EOCU2pNeWs&t=598s
* 십대의 퓨리는 지금과 비교하면 움직임도 적고 본인강점을 잘 못 살리는 모습. 2006년 당시엔 확실히 프라이스가 한수 위였습니다.
퓨리는 2008년 열리는 올림픽을 위해 2007년에 대표선발전에 참여해서 프라이스와 다시 상대하길 바라고 있었고 그해 유럽 주니어 선수권에서 우승하는 등 한창 기량이 올라오며 기대주로 평가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2007년 내셔널 챔피언쉽은 열리지 않았고, 당시까지의 성적과 경험을 고려해 프라이스가 영국대표로 확정되어 버립니다. 이에 퓨리는 이전에 뛴바 있는 아일랜드 대표로 참여해 올림픽에 가고자 했으나 당시 아일랜드 아마추어 헤비급 챔피언(올림픽 아일랜드 대표선발이 유력한)이 운동하던 체육관에서 퓨리가 아일랜드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항의문을 협회에 제출해 아일랜드 대표 선발전을 뛸 기회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유소년 때는 가능했는데 왜 지금은 안되냐 이것도 논란거리로 볼 수 있겠네요.
실망한 퓨리는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던 당해, 성인부로 영국 내셔널 챔피언쉽에 출전해 우승합니다. 마치 자신의 진가를 몰라주고 기회조차 주지 않은 두 나라에 항의를 하듯 결승에선 무려 19대 1이라는 점수차로 이기며 훌륭한 기량을 증명합니다. 이후 다음 올림픽까지 기다리지 않고, 그해 그의 나이 스무살에 미련없이 프로로 전향합니다. 훗날 말하길 당시 아마추어 복싱에 환멸을 느꼈다고 하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4-Il-ziH49Q
* 당시 영국 대표 프라이스는 베이징 올림픽 슈퍼헤비급에서 동메달을 따고 프로로 오지만 큰 빛을 보진 못 합니다. 약한 맷집이 발목을 잡았죠.
2008년 프로에 데뷔한 퓨리는 2015년까지 7년간 24연승을 달립니다. 이 시합들을 쭉 보고 있으면 퓨리의 실력이 계속 일취월장하는 게 느껴집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EsfjLdXjKs&t=258s
* 거구임에도 빠르고 임팩트 있는건 같지만 연타와 유연함은 없는, 또 조금은 경직되어 보이는 퓨리의 데뷔전.
https://www.youtube.com/watch?v=CWqGW_zlPQE
* 유명한 짤인 셀프 어퍼컷. 이 짤 주인공이 퓨리입니다. 이런 굴욕의 순간도 있었죠.
https://www.youtube.com/watch?v=x2m2et7rFiQ
* 7년후 세계타이틀 도전자 결정전. 페인팅, 머리움직임, 연타 등 이전보다 훨씬 발전한 퓨리의 모습.
- 퓨리의 복싱 스타일 -
퓨리는 '복싱'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다 잘 이용합니다. 원래 아웃복싱과 인파이팅 둘다 잘 했던 퓨리는 완성형에 가까워질 수록 두 스타일 모두에서 다채로워집니다. 아우터로 갈땐 잽과 들어갈 듯 말듯하는 페인트가 상당히 좋고 연타도 생겼습니다.
인파이팅으로 갈땐 강한 펀치로 상대에게 부담을 주고, 본인보다 키가 작은 상대가 밑에서 때리는 펀치를 경계해 유연한 허리를 바탕으로 위빙과 덕킹을 섞어 피하거나 껴안습니다. 그리고 힘과 체중을 바탕으로 한 클린치로 상대를 눌러버리죠.
https://www.youtube.com/watch?v=YqWs-Ty4on0
* 초창기와 비교해 모든면이 발전했지만 그 중 특히 두드러지는 건 상체움직임입니다. 스웨이 더킹 위빙등이 정말 놀라울 정도로 빨라졌고 주먹도 엄청 빠르죠, 심지어 어느순간부터 스탠스까지 자유자재로 바꿉니다. 오른손 왼손잡이 스탠스를 본인 필요에 따라 바꿔가며 쓰죠.
누군가 과학적 통계를 낸건 아니지만, 오른손잡이가 왼손스탠스로 쓰면 앞손 잽이 왼손잡이보다 쎄다는 말 정석으로 통합니다.
* 오른손잡이지만 왼손잡이 스탠스로 싸우는 KBF 복싱 한국 미들급 챔피언 김동수. 킥복싱 세계단체(WKN) 챔피언 출신 으로 잽과 앞손이 굉장히 무겁습니다.
* 슈퍼라이트급을 정복하고 웰터급을 먹어가고 있는 버드 크로포드. 퓨리처럼 스탠스가 상황에 따라 왔다갔다 함.
자 지금까지 말한 이 모든 것들에다가 206센티에 120키로라는 신체조건을 더해서 봐보세요. 그런 체구에서 나오기 힘든 스피드 역시 정말 큰 강점입니다. 제 3자인 우리가 TV로 볼 때도 빠르게 움직인다고 느낀다면 아마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정말 당황스럽고 무섭지 않을까요?
* 중간의 흑인선수는 UFC 헤비급 월트 해리스. 퓨리와 스파링 할 당시 이야기를 들어보면 움직임을 보고 감탄해서 스파링 중인걸 잊고 멍 때리다가 한 대 맞았다고..
* 킥복싱 세계최대 단체 글로리의 헤비급 챔피언 리코 베르후번과
클리츠코 전 훈련 당시 캠프를 독일 근방에 차렸는데 스파링 파트너가 변변치 않았고 그 소식을 어찌 들은 킥복서들이 세계 탑클래스 복서에게 배울 기회라고 스파링 상대로 자원했다고 합니다. 훗날 리코의 말에 따르면 진짜 아무것도 못하고 엄청나게 맞았다네요. 본인과 다니엘 기타라는 킥복서가 번갈아가며 주기적으로 스파링을 했는데 나중에 다니엘 기타는 빠져버리고 본인만 주기적으로 와서 계속 얻어맞으며 배웠다고 합니다.(챔피언인건 이유가 있는듯..)
* 계속 친하게 지내는 퓨리와 리코.
애니웨이, 제 생각엔 이 당시의 퓨리도 완성형이라기보단 계속 발전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발전한 모습을 클리츠코와의 세계타이틀전에서 보여주게 되죠.
당시 헤비급 프로복싱계는 클리츠코 형제가 10년 넘는 기간동안 지배하던 상황이었고 이름이 조금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몽땅 다 불러올려 꺾었기에 도전자의 씨가 마른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습니다. 67전의 프로 전적을 가진 블라디미르 클리츠코는 여전히 건재했으며 타이틀 이동 자체가 10년간 아예 멈춰있는 상황이었죠. 떠오르던 신성이었던 퓨리는 본인이 잘해서 + 도전자의 씨가 거의 말라버린 덕에 세계타이틀전의 기회를 잡게 되었고, 당시 예상은 아무리 퓨리가 탑컨텐더라고 해도 클리츠코를 이길거라곤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HmMz5L3AGo&t=1742s
그러나 결과적으로, 퓨리는 클리츠코를 완벽하게 압도합니다.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들어가는 공격, 변칙적이고 빠른 움직임과 유연한 몸놀림을 이용한 회피에 클리츠코는 제대로 때리지도, 움직임을 쫓아가지도 못 하며 완벽하게 게임이 말리며 패합니다.
우식편에서 경험이 많고 수싸움을 잘하는 복서를 만나는 상대는 제 기량 발휘를 못 하고 초보처럼 보인다고 말씀드렸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에 프로복싱의 제왕인 그 클리츠코가 이 시합에선 정말 못 하는 복서로 보일 정도로 완벽하게 제압당합니다.
누가 봐도 퓨리의 명백한 승리였지만 시합장소가 클리츠코의 홈이나 다름없는 독일이었기에 엄한 결과가 나올까 다들 긴장했습니다.
실제로 클리츠코 스스로도 분명 자신이 진 시합했다는 걸 알았을 건데 결과 발표 전까지 손을 올리고 ‘그래도 혹시나..’하고 기대하는 표정이었죠. 다행히 공정한 결과가 나오며, 타이슨 퓨리는 클리츠코의 10년 통치에 종지부를 찍습니다. 턱이 약한 클리츠코는 잘못 맞아서 KO패 한 적은 있지만, 정말 운영 및 실력으로 이렇게까지 탈탈탈 털린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퓨리에게는 어릴때부터 인생의 목표로 삼아온 꿈을 이룬 순간이었고 세계헤비급 복싱계는 새로운 제왕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 승리 후 인터뷰하다가 울어버리는 퓨리
그리고 이 승리 이후는 다음편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퓨리는 아예 태어날 때부터 세계챔피언의 이름을 가지고 태어났고 복서 집안이었으며 거친 유년기 속에서 학교도 그만두고 복싱에 매진해 왔습니다. 정말 어렸을때부터 세계챔피언이 유일한 목표라고 했었죠. 근데 어떻게 본인이 그걸 원하게 된건지 기억이나 날까요? 그걸 이룬다면 그 이후는 무엇이 있을지 생각은 해봤을까요?
이걸 묻는 이유는 퓨리가 클리츠코를 이기면서 세계최정상에 오른 그 감격에 찬 찬란한 순간이 그의 인생 중 가장 어두운 시기의 시작이었고, 이를 극복하기까지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이고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퓨리는 챔피언이 된 그 순간부터 스스로를 파괴하기 시작합니다. 다음편에서..
첫댓글 감사합니다 다음 편도 기다리겠습니다
와!!대박. 다음편 빨리 올려주세요.
영화로 나와야되는 인물
정말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글을 진짜 잘 쓰시네요
정말 잘정리해주셧네요...헤비급을 몇년전부터 찾아보는데 제 생각과 거의 비슷하시네요...우식이 하고 수싸움하면 누가앞설지 기대됩니다
다음편 빨리 올려주세요.현기증(?)난단말이예요..
저짤의 주인공이 퓨리라니 ㅋㅋㅋ 글 퀄이 넘 좋습니다!
글이 술술 잘읽힙니다 ㄷㄷ 다음편 써주세요 현기증 난단말이에요
영화 시나리오 보는 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