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곳에서든 중생들의 고통스러운 음성을 듣고 그것을 소멸시켜 준다는 자비의 화신인 관음보살. 이 관음보살이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를 모은 시기는 임진왜란이 끝난 17, 18세기란 주장이 새롭게 나왔다.
부산경남사학회(회장 윤용출·부산대 역사교육과 교수)가 17일 동의대 정보공학관 3층에서 '예술사를 통해 본 종교, 사상읽기' 주제로 올해 첫 기획발표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김미경(동아대 강사) 씨가 '17·18세기 관음보살도의 도상(圖像)과 신앙'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임진왜란(1592~1598년)과 이어진 병자호란(1636~1637년) 등으로 민심이 극도로 피폐되고 전 국토가 황폐화된 상황에서 조선사회의 불교신앙은 상층사회에서 기반을 잃고 민중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대중불교의 형태를 나타내며 회화에서 상당한 변화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다음은 김 씨의 발표 요약이다.
17세기는 전쟁으로 인한 복구작업이 활발해지는 가운데 사원의 중창불사가 본격화되면서 가장 먼저 재건된 것이 중심 불전인 주불전(主佛殿)이다. 주불전은 그곳에 봉안된 주불과 회화를 통해 당대의 신앙 경향이 가장 두드러지게 표현되는 곳이다. 주목되는 것은 17세기에 재건된 주불전의 후불벽이면(불상 뒤 건물 벽 바탕)에 주불과는 상관없는 관음보살이 벽화로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16세기에는 한점도 없는 관음보살 벽화가 17세기에 범어사 대웅전의 백의관음상 등 8점이나 나타난다. 18세기에는 벽화 형식이 병존하면서 독립된 관음전이 생겨나고 관음 벽화는 이동이 가능한 족자 형태의 후불탱화로 본존의 후불벽에 걸린다. 따라서 18세기에는 통도사 영산전의 백의관음삼존상 등 벽화 6점과 경남 양산군 흥국사 원통전의 관음탱 등 후불탱화 7점이 그려진다. 19세기가 되면 신앙의 분화 등이 이루어지면서 관음벽화는 2점밖에 표출되지 않는다.
또 불교서적 중 관음관련 진언·다라니경류가 가장 많이 간행되는데, 17세기에 21본, 18세기에 31본이나 나온다. 불화는 경전의 내용을 이미지로 설명하기 위한 것이기에 경전과 불화의 관련성은 아주 긴밀하다. 이러한 관음보살도와 불교 서적의 유행은 당시 상처받은 기층 민중들이 스스로 상처를 위무하기 위해 누구든 명호(입으로 부르기)만 하면 고난을 없애고 복을 가져다 준다는 관음보살에 깊이 의지했음을 보여주는 사회상인 것이다.
17세기에는 바다 가운데 피어난 연꽃에 앉은 백의관음도가 강조된다. 18세기가 되면 관음보살도에는 새로운 인물로 해상용왕이 등장하며 맞은 편의 선재동자는 남순동자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즉 중생의 모습인 남순동자를 통해 관음보살과 민중은 단절된 신분계층이 아니라 언젠가는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동등한 관계를 설정한 것이다.
발표자 김 씨는 "17·18세기는 임란 이후 고통에 신음하던 기층민들에게 자비의 실천적인 관음신앙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다는 사실을 불화를 통해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발표회에서는 조규희(서울대 강사) 씨의 '조선 유학의 도통의식과 구곡도', 구하원(서울대 강사) 씨의 '무갈제국의 회화에 나타난 이슬람 군주상의 변화', 주경미(부산대 강사) 씨의 '오월왕 전홍숙의 불사리신앙과 장엄', 송혜영(영남대 강사) 씨의 '프란치스코회와 그리스도교 미술:13~14세기의 이탈리아' 등의 논문도 소개되었다. 011-595-7982
<국제신문> 조해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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