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세의 도시에서 와인향기에 취하다.
부르고뉴(Bourgogne).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그 오묘하고도 이중적인 느낌에 매혹되고는 한다. 루비처럼 아름다운 선홍빛 컬러가 주는 여성적인 느낌과 과일향기 뒤편으로 숨어있는 야생의 향기... 그 매력의 원산지를 찾아서 부르고뉴의 와인 캐피탈, 중세의 고도 본(Beaune)으로 떠났다.
부르고뉴의 와인 생산 역사는 약 서기 300년경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로마시대부터 적극적인 진흥정책이 이루어져 이 지역 포도원은 급속히 발달하였다.
1789년 프랑스 혁명당시 반 카톨릭 지역이었던 보르도 지역은 귀족들이 자신의 성과 포도원을 지킬 수 있었지만 부르고뉴 지역의 포도원은 혁명군에 의해 농민들의 손에 나누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아주 작은 포도밭도 소유주는 여러 명이 되었는데 이 때문에 부르고뉴 지역에서는 네고시앙(Negociant)이라고 불리우는 와인 중개상들이 자체적인 생산시설을 갖추지 못한 농민들이 수확한 포도를 사들여 자신만의 기술로 와인을 생산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포도밭과 자신의 와인 생산시설을 갖춘 경우에는 와인 라벨에 도멘(Domaine)라는 표기를 함으로써 자신만의 독보적인 와인임을 증명하기도 한다.
대규모 네고시앙의 경우에는 결국에는 포도밭을 사들여 도멘으로 와인을 출하하는 경우도 있다. 부르고뉴 지역에서 역사와 품질을 인정받는 유명한 도멘은 루이 자도(Louis Jadot), 루이 라뚜르(Louis Latour), 조셉 드루앙(Joseph Drouhin), 부샤드 페레 앤 필스(Bouchard Pere & Fils) 등으로 와인 라벨이 이런 도멘이 쓰여 있다면 믿고 구입해도 된다.
머스타드와 까시스로 유명한 디종에서 본까지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이 버스가 바로 그 유명한 꼬뜨 드 뉘(Cote de Nuits)의 포도밭을 지나가기 때문이다. '꼬뜨'는 프랑스어로 '언덕'이라는 뜻으로 꼬뜨 드 뉘와 꼬뜨 드 본의 포도밭은 산기슭의 언덕에 포도밭이 가꾸어지고 있었다.
디종을 떠난 버스는 금새 앙상한 겨울 포도나무가 야트막한 언덕에 줄을 맞추어 늘어서 있다. 수확이 끝난 후 포도밭에는 농부들의 가지치기가 한창이다. 포도나무는 수확한 후에 하나의 가지만을 남기고 모든 가지를 쳐내버리는데 이것은 더 좋은 포도를 얻기 위한 것으로 단 하나의 가지에 모든 영양분이 모여 실한 포도를 맺게 하기 위한 것이다.
2. 그랑크뤼의 보고(寶庫), 즈브레 샹베르탱(Gevrey Chambertin)
피생(Fixin)을 지나자 즈브레 샹베르탱(Gevrey Chambertin)이 나타났다. 부르고뉴 와인은 자신만의 독특한 등급체계를 갖는데 최고의 부르고뉴산 와인의 등급은 그랑 크뤼(Grands Crus)이며 그 다음 등급으로 프리미어 크뤼(Premiers Crus)가 있다.
즈브레 샹베르탱은 9개의 그랑 크뤼를 생산하는 지역으로 대한항공 퍼스트 클래스에서 서비스하는 와인이기도 하다.
평소 무척이나 좋아했던 와인 생산지역에 오니 감회가 새로워서 도저히 버스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 즈브레 샹베르탱의 사진을 찍었다. 샹베르탱의 1st Crus는 또한 나폴레옹 황제가 특별히 사랑한 와인으로 유명한데 이 때문에 이 주변에는 나폴레옹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과 호텔도 있었다.
나폴레옹은 또한 와인에 얽힌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남겼는데 특히 전쟁을 떠나기 전에 꼭 샹파뉴 지방의 유명한 와이너리인 모에&샹동에 들러 돔페리뇽 샴페인의 목을 칼로 치는 의식을 치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폴레옹이 그의 전쟁 역사상 딱 한번 그 의식을 치루지 않고 나갔던 전투가 바로 워터루 전투였는데 그 전투가 나폴레옹이 처음으로 패한 전투였다.
또한 샹베르탱 와인에 남다른 감회를 갖는 이유는 언젠가 라트리시아 샹베르탱을 마시면서 너무나도 아름다운 주석산을 발견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까사 델 비노'에 근무하고 있는 김진규씨와 함께 마셨었는데 내가 와인 코르크를 모은다는 것을 알고 '이 코르크는 꼭 가져가야 하는 것'이라며 주길래 보았더니 코르크에 반짝반짝 수정처럼 빛나는 주석산이 맺혀있었다. 이론상으로만 보아오던 주석산을 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게다가 그 생김새가 너무나도 아름다워 와인 맛은 둘째 치고서 라도 너무나도 기억에 남는 와인이었다.
3. 금지된 왕국, 로마네 콩띠(Romanee-Conti)
샹베르탱에서 조금만 남쪽으로 내려오면 아름다운 성으로 유명한 부조(Vougeot)를 만나게 된다. 이 성은 현재는 박물관으로 쓰여지며 성 바로 뒤편으로 있는 작은 포도밭이 단 하나의 그랑 크뤼를 생산하는 포도밭이다.
부조와 샹볼 뮤지니(Chambolle Musigny)의 포도밭은 바로 붙어있는데 이 때문에 두 와인은 종종 비교되기도 한다. 샹볼 뮤지니는 무척이나 섬세하고 여성스러운 와인을 생산하는 포도밭으로 이 와인은 기품 있고 아름다운 숙녀에 비유되기도 한다.
찻길에서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모든 와인 애호가들의 꿈, 로마네 콩띠(Romanee-Conti)를 만나게 되었다. 축구장 만한 크기의 모노폴(Monopole-하나의 포도밭이라는 뜻. 오직 하나의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만으로 와인을 만들 경우 와인 라벨에 Monopole이라고 쓴다). 이 작은 곳에서 생산되는 와인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가격으로 '금지된 왕국'이라는 별명이 붙은 로마네 콩띠이다.
일본인으로 보이는 관광객들이 너무나도 좋아하며 조금은 소란스럽게 로마네 콩띠의 대리석 팻말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도 조금은 흥분되어 로마네 콩띠 포도밭의 작은 돌멩이 하나를 주워 누가 볼까 얼른 주머니에 넣었다.
그까짓 돌멩이가 무어 대수일까 싶겠지만 워낙에 유명한 포도밭이라 관광객들이 저마다 하나씩 돌멩이를 주워가서 포도밭에 자꾸 돌멩이가 줄어들어 더 이상 포도밭에 손대는 것을 금지한다고 한다.
이 돌멩이는 로마네 콩띠 포도밭의 토양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로 석회질이 풍부하여 하얀색을 띠고있다. 흙은 완전한 점토질로 찰흙처럼 찐득찐득하고 찰기가 넘치며 어두운 밤색을 띠었다. 비가 온 후라서 그런지 흙은 정성껏 치댄 수제비 반죽처럼 찰기가 넘쳤고 축축했다.
바로 자전거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길을 하나 사이에 두고 로마네 생 비방(Romanee-St.-Vivant)과 라 타쉐(La Tache) 포도밭이 이웃하고 있었는데 우습게도 그 와인의 가격은 열 배 이상 차이가 난다. 도대체 무엇이 그토록 로마네 콩띠를 독보적인 존재로 만들었는지 정말 알 수가 없다.
항상 와인 라벨에서만 보던 이름들을 이렇게 길 안내 표지판으로 만나게 되니 가슴이 설레고 뿌듯하다.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와인들이 바로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하니 정말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감회에 젖었다.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포도밭을 밟고 서 있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아직 마셔보지는 못했지만 로마네 콩띠를 밟고 서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었다.
4. 와인비즈니스의 중심, 본 (Beaune)
역시 훌륭한 그랑 크뤼 와인을 생산하는 알록스 코르통(Aloxe-Corton)을 지나자 드디어 본에 도착했다.
본의 마을 중심부는 순간 세월을 건너뛰어 다른 시대로 왔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중세시대의 성벽이 그대로 유지된 채 그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본은 중세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와인의 역사와 부르고뉴 지방의 역사의 중심지로 세계적인 관광지여서 마을 전체에 와인 관련 산업과 포도주 지하 저장고인 까브(Cave), 레스토랑과 관광객을 위한 숙박시설이 발달해 있다.
본과 와인을 이야기할 때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바로 자선병원(Hospice de Beaune)이다. 이 작은 마을이 세계적인 부르고뉴 와인 비즈니스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중세시대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갈 곳 없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고 치료하기 위해 이 지방의 재상이 오텔디외(Hostel-Dieu)라는 병원을 건립하게 되는데 그 후 나날이 늘어나는 환자들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병원 소유로 경작해온 포도밭에서 생산한 와인을 매년 11월 세 번째 일요일 저녁에 병원의 가장 큰 홀(지금은 박물관으로 운영됨)에서 경매에 붙이게 되었다.
이 역사가 지금까지도 이어져 매년 이맘때에는 본 시내에서 큰 와인 축제가 열리고 전 세계에서 몰려든 와인 생산자들에 의해 세계적인 와인 비즈니스의 장이 열린다.
지금까지도 이 자선병원의 도멘을 붙인 와인이 생산되며 그 취지는 물론 맛과 향이 우수하여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다. 처음 이 병원의 마크가 그려진 와인을 보고 이 도멘이 크냐고 물었다가 아주 무식한 사람 취급을 받았을 정도로 이 와인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사랑과 자부심은 대단하다.
이 지역 사람들이 와인을 얼마나 사랑하며 또한 자신의 와인에 긍지를 갖는지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본의 와인 박물관이다. 규모는 작지만 크고 작은 오크통들, 와인병과 와인잔의 변천사, 포도밭을 일구는 쟁기며 삽, 농부들이 입었던 옷까지 꼼꼼하게 챙겨 역사적인 사료로 활용하고 있는 와인 박물관을 보면 부르고뉴 와인의 자부심을 읽게 된다.
5. 따스트뱅에 녹아 내린 루비
본은 그 도시 지하 전체가 까브로 이루어졌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많은 와이너리가 있다. 본에서 까브의 규모가 가장 크다는 네고시앙인 Patriarche을 방문하였는데 어찌나
내부가 복잡하게 미로처럼 이루어져 있는지 길을 잃게 되면 살아서 나가기는 힘들 것 같았다.
본에서 까브를 투어할 때에는 입장할 때 그 네고시앙의 문양이 새겨진 작은 타스트뱅을 주는데 이것은 까브 내에서 와인을 시음할 때 쓰다가 기념으로 갖는 것이었다. 항상 와인 글래스로만 시음하다가 타스트뱅으로 시음하는 것은 처음이어서 무척 흥미로웠다.
프랑스 속담에 '부르고뉴 와인은 여행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부르고뉴 와인이 워낙에 섬세하고 민감해서 몇날 며칠을 두고 흔들리고 덜컹거리며 높은 온도에서 시달리며 다른 지역으로 수출이 될 때에는 그 고유의 맛과 향이 변질되기 쉽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나 역시 항상 서울에서 부르고뉴 와인을 마실 때에는 뭔가 부족하고 비어있는 느낌을 받았었기 때문에 부르고뉴의 지하 까브에서 테이스팅 하는 것에 무척 기대를 많이 갖게 되었다
주량이 얼마 되지 않아서 시음하도록 열어놓은 모든 와인을 다 시음할 수는 없었고 그중 알록스 코르통, 샹볼 뮤지니, 포마르, 본느 로마네, 즈브레 샹베르탱, 뉘 상 조르쥬 등 그랑 크뤼급의 와인들만 조금씩 시음하였다.
확실히 현지에서 마시는 와인, 게다가 운치 있는 지하 까브에서 타스트뱅에 시음하는 와인은 더 풍부한 향과 맛으로 나를 감동시켰다.
까브 내부는 어두웠지만 시음을 위해 군데군데 촛불을 밝혀 두었는데 은빛 타스트뱅에 담긴 채 촛불에 비춰진 와인은 루비를 녹여놓은 것처럼 아름다웠고 맑고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피곤한 기색이 전혀 없이 살아 숨쉬는 와인들은 살짝 매콤하면서도 톡톡 튀는 산도를 가졌고 뒷맛에서 달짝지근한 피니쉬를 남겼다. 역시 와인을 찾아 떠나는 여행의 백미는 현지에서 생생한 와인을 마시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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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까브에는 세월의 숨결을 간직한 채 언젠가 와인을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시음될 날을 기다리며 잠자고 있는 와인병들이 두꺼운 먼지를 옷처럼 입은 채 쌓여 있었고 아직 병입 되지 않은 퀴베(Cuvee-포도즙 상태)들은 오크통 속에서 저마다의 향기를 만들기 위해 숨쉬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와인을 마시며 발그레한 얼굴로 저마다의 느낌을 주고받고 있었고 어느새 국적과 나이를 초월하여 와인을 화두로 즐거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어두운 까브에서 투어를 마치고 나오자 중세의 고도 본에는 가는 빗줄기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고 비는 꼭 안개처럼 본 시내를 뿌옇게 채우고 있었다. 조용하면서도 아름다운 본의 밤거리에서 와인의 향기에 취해 걷고 있으니 마치 시간을 뛰어넘어 다른 시대로 온 것처럼 느껴졌다. 여행이란 이렇게 자동차와 엘리베이터의 틈에서 벗어나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여유로움에 한껏 취해보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