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재구성」과「효자동 이발사」
![]() 확률 낮은 패를 든 채 벌이는 무모한 도박 「스팅」의 완벽한 매트릭스는 체제까지 속이는 완전범죄가 아니라 철저히 상대를 속이는 것만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일이 끝난 후의 수배생활을 미리 준비하는 폴 뉴먼). 하지만 「범죄의 재구성」에서 고독한 '도꼬다이' 최창혁이 벌이는 사기극은, 확률 낮은 패를 들고 벌이는 무모한 '도박'에 가까워보인다. 그가 벌이는 사기극은 그 움직임을 예측할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통제할 수는 없는 패거리들과 함께, 또는 그 패거리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팅」에서의 마지막 총격씬이 각본대로 이루어진 '연극'이라면, 「범죄의 재구성」의 마지막 총격씬은 근본적으로 우발적인 '사고'이다. 최창혁의 체제까지 속이는 완전범죄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우연'에 의해서이다. 자기완결적인 완벽한 매트릭스의 구축이라는 기준에서 보자면, 「범죄의 재구성」은 실패한 영화 쪽에 가깝다. 그런데 정작 이 영화가 흥미로워지는 대목은 바로 그 '실패'의 순간이다. 한국적 '리얼 사기극' 장르에 대한 매혹에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어느 순간 그 매혹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난다. 장르의 재창조에 대한 욕망이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실제의 사기꾼들에 대한 매혹으로 전환되는 순간, 이 영화는 한국적인 '리얼 사기극'으로서의 생동감을 지니게 된다. 이 영화의 최대 매력은 실제 사기꾼들과 2년여에 걸쳐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구성된 캐릭터들의 생생한 행태와 '말'에 있다. 특히, 주로 의료계와 영화판의 전문용어를 차용해서 이루어지는 그들의 언어의 향연에는 감칠맛 나는 '재미'와 가볍지 않은 '의미'가 담겨 있다. 그 언어들은 자신을 감추는 '보안용'이면서, 그 세계의 언어에 약해질 수밖에 없는 세태를 겨냥한 효과적인 '심리전 무기'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 언어에는 말로나마 자신을 속여보는 혹은 위로하는 루저(loser)들의 서글픈 욕망이 담겨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범죄의 재구성」은 속도감 있는 편집과 함께 그 생생한 캐릭터와 대사로 관객인 우리에게 기분좋게 속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관객인 우리가 잃을 것은 결국 7천원의 돈과 2시간 정도의 시간에 불과하다. 감독이 인터뷰한 실제 사기꾼들은 제작자인 차승재의 주변 인물들이었다고 한다. 「범죄의 재구성」은 아주 강한 의미에서 또 한편의 '차승재표 영화'인 셈이다. 70년대를 소환하는 시대물 「효자동 이발사」 임찬상 감독의 「효자동 이발사」는 다시 한번 70년대를 소환하는 시대물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시대를 바라보는 감독의 독특한 태도와 시선이다. 이 영화는 비슷한 또래의 다른 감독들이 만든 많은 복고영화들과는 달리 애써 외상적인 '거리의 기억'을 회피하지 않는다. 또 한편 이 영화는 그 '거리의 기억'에서 태동할 법한 낭만적이고 비극적인 영웅 또는 반영웅의 서사와도 거리를 둔다. 그 시선은 그 동안의 시대물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제3의 시선'인 셈이다. 그러한 태도와 시선이 가능했던 것은, 이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소년'의 시점을 빌려 그 시대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낙안'이는 갓난 아기에서 20살 청년으로 성장하지만, 이야기의 전개는 연령 미상의 '소년'인 그의 보이스오버(voice over) 내레이션을 통해 이루어진다. '비사실적'인 동화풍의 우화 ![]() 영화는 그 우화적 화법을 통해 때로는 체제의 어리석은 폭력성을 풍자하기도 하고, 그 어리석은 체제를 살아내야 했던 소시민들의 애환을 따뜻한 태도로 위로하기도 한다. 현재의 한국영화(또는 한국사회)가 그러한 시선과 태도를 허용할 만큼 여유롭고 넉넉한지는 의문이지만, 1.21사태의 무장공비들이 '설사' 때문에 작전에 실패한다는 그 엉뚱하고 기발한 상상력은 「실미도」의 과도한 낭만성에 대한 애교있는 논평처럼 보이기도 한다. 차기작이 기다려지는 반가운 존재들 흥미로운 것은, '장르'에 대한 매혹에서 출발한 「범죄의 재구성」이 이 땅의 현실에 발을 붙이면서 '리얼'해지는 반면, 한국현대사라는 엄연한 현실에서 출발한 「효자동 이발사」는 비현실적 우화로 변신하면서 새로운 시선과 태도의 '장르화'를 예감케 한다는 사실이다. 감독 최동훈과 임찬상은 모두 60년대 말 70년대 초 태생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이기도 하다. 2003년,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과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가 보여주었던 그 세대들의 영화적 욕망과 능력이 새롭게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이 보여주는 영화적 취향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다양한 차이가 있고, 시각에 따라 그만큼의 다양한 평가와 호불호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한국대중영화의 최대 장점이라고 일컬어지는 그 '다양성'의 내실화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한몫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보인다. 모두 차기작이 기다려지는 반가운 존재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