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광고는 아니고.. 동양 철학에 관심이 많아서 하나 사고 싶지만,, 너무 비싸서..^^;.. 혹시 열분들중에서 이 책 사시면 논평 부탁드립니다.
특히 앞으로 30년간 한반도 운명에 대한 예언이 부록으로 들어있다고 하더군요. 서점에서 어렵게 구경은 해보았습니다만, 3권이 밀봉되어 있어서 중요부분(?)만 볼 수는 없었습니다. 일단 책이 무지하게 두꺼워서(각권 동아대백과사전 크기) 일독하는데에도 몇년은 걸릴 분량입니다.
동양학의 명문 대유학당에서
5년여의 산고끝에 드디어 동양철학의 집대성이라 일컬어지는 황극경세를 출간했습니다.
황극경세는 송나라 초기 상수학의 대가 소강절선생의 역작으로,
음양 기운의 흐름에 바탕을 둔 역사서이자 운율서이자 성음서이자 수학서이자 철학서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우주공간의 거대한 음양의 흐름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물로서
그것은 성음적으로 수학적으로 운률적으로 증명이 됩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주의 원리를 꿰뚫을 수만 있다면 기운의 흐름에 따라 미래에 벌어질 일도 예견할 있는 것입니다.
그 원리를 집대성한 책이 바로 황극경세입니다.
입과 눈같이 움직이는 것은 가로로 구멍이 나있고,
코와 귀같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세로로 구멍이 나있는 것은 어째서일까?
동물은 머리부터 태어나고 식물은 뿌리부터 나며,
동물은 오히려 가로로 자라고, 식물은 세로로 자라는 것은 왜일까?
같은 유씨가 세운 서한과 동한은 각각 12대나 갔는데,
촉한은 2대밖에 못간 것은 왜일까?
하나라의 우임금은 리괘(履卦)를 만나 나라를 세웠고, 비괘(否卦)에 임금이 된 걸왕(桀王)은 나라를 빼앗긴 것은 왜일까? 등등
이 모든 자연현상과 역사적 사실을 이치적으로는 물론이고, 수리학적이나 상학적으로 상세히 풀어 놓았습니다.
두가대 요응회 등은 이 책을 얻어 앞날을 정확히 예견하였고,
정자 사마광 주자 등 최고의 석학들은 이 책을 학문적으로 귀하게 여겨 연구하며 그 심오함에 감탄하였다고 합니다.
역사책으로도 좋고, 음운학책으로도 좋으며, 수학책으로도 좋고, 의학책이나 격물치지 책으로도 좋으며, 주역의 괘풀이 책으로도 좋습니다.
또한 부록에 나오는 대로 대한민국 30년 대운을 미리 예견하거나, 자신의 운을 미리 점쳐볼 수도 있습니다.
현존하는 수많은 동양학관련 서적중에서 이처럼 다양한 철학적 접근을 총체적으로 집대성한 책이 드물었던 것을 상기하면,
이 책의 출간이 동양학연구에 한 획을 긋는 계기가 되리라 자부합니다.
힘겨운 과정을 거쳐 얻은 결과라 나름의 감회가 새롭지만은, 그보다
이 역서가 거칠고 혼란한 세상속의 굳건한 이정표가 되기를,
또한 공부하시는 분들께 한걸음 전진의 밑거름 되기를 고대합니다.
※ 출판사 : 대유학당
※ 저 자 : 윤상철
※ 4x6배판 장서용 호화장정
※ 분 량 : 총 2500쪽, 전3권(소,강,절)
※ 가 격 : 150,000원(세트 판매)
※ 문 의 : (02)959-8385
※ E-mail : www.daeyoudang.net
추천의 글
덕화당 한의원 원장 이웅정
소강절선생의 학문은 참으로 넓고도 심오하다. 위로는 복희씨의 학문으로부터 문왕 주공 공자로 이어지는 학통을 이어받았고, 아래로는 정자 주자 황기 왕식 등 천하에 이름높은 학자들이 그 학문을 배우고 익혔다. 사물의 이치를 넷으로 나누고 나누어서 그 끝간데까지를 궁구했고, 이것을 다시 응용하여 역사학적으로 율려학적으로 수리학적으로 의학적으로, 제자백가의 여러 학문에 고루 통용시키지 않은 바가 없었다.
그렇게 종합해서 집대성한 것이 황극경세이고 보면, 非人不傳의 이 참학문을 많은 학자가 우러르고 배우고 싶어한 것은 자명한 일이다. 선생이 태어나신지 어느덧 천년! 그 높은 학문을 배우고 싶어도 그 경지를 아지 못하고 자료가 없어서 근접을 못했으나, 오늘 대유학당에서 발간된 황극경세를 보고는 강절선생의 가르침을 직접 받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음은 왜일까?
강절선생의 황극경세를 모두 번역함은 물론, 정자 소백온 주자 장민 장행성 황기 왕식 등등 철학사에 길이 남을 석학들의 주석을 함께 볼 수 있는 기쁨! 여기에 윤상철 대유연구소 소장께서 꼼꼼히 주석하고 도표화한 12만 9600년의 역사, 그리고 그 안에서 쉼없이 움직이는 하늘땅을 비롯한 만물의 조화로운 하모니! 이 모든 것에 대한 설명! 즉 “왜 그때 태어나서, 왜 그렇게 움직이고, 왜 그렇게 삶을 마감하였는가? 그 원리는 무엇이고, 그 수리적 이치는 무엇인가?”
그런 이치를 얻을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이 한번에 능하거든 나는 열번을 하고, 다른 사람이 열번에 능하거든 나는 천번을 한다”는 중용의 말씀을 실천해 볼만한 책이 아니던가? 우리 한의사들이 소중히 여겨 반드시 연구해 보아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2003년 1월호 학보에 실은 황극경세의 내력에 대한 글입니다. 학보를 신청하시지 않은 분도 참고로 볼만한 내용이라고 생각되어 게재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에 만들어진 황극경세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나라 이래로 끊어졌던 선천의 학문을 발명하였고, 더 나아가 강절역학이라고 할 정도로 특이한 4분법적인 사고를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절선생의 역학만 배운다면, 세상의 이치를 모두 깨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학자들을 더욱 속끓이게 하였다.
소강절선생이 누구인가? 사계절의 변화에 초연하여 항시 도인 차림으로 산속에서 고고하게 지내며, 어떤 질문이든지 조금의 주저없이 답하고, 특히 앞날에 대해서 예견하는 능력은 아무도 따를 수 없는 달인이었다. 자치통감을 지은 사람으로 유명한 사마광, 주역의 심오한 이치를 다 꿰뚫었다는 정이천선생 등, 쟁쟁한 학자들이 앞다투어 사귀기를 원했던 사람. 학문으로나 술수로나, 아니 술수의 단계를 넘어 직관과 영감만으로 세상의 일에 부물통지한 사람. 그 신비의 학문을 한 권의 책에 담아놓았다는 황극경세의 경지는 어떤 것일까? 조금이라도 배워보았으면, 아니, 한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강절선생의 맏아들인 소백온은 누가 뭐라해도 황극경세를 이어받을 사람은 자신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강절선생으로부터 특별한 사랑과 관심속에 주역을 배워 세상일에 무불통지하다고 생각했고, 당대의 뛰어난 학자인 사마광 정이천 등이 인정해주는 석학이었으며, 무엇보다도 강절선생의 맏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깨너머로 틈틈히 황극경세를 배웠고, 그것이 오래되어 어느새 그 대체는 알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강절선생께 “아버님. 정식으로 황극경세를 배우고 싶습니다.”하고 청을 넣었다. 그러나 강절선생은 당신의 아들에게 그 학통을 이어주지 않으셨다. 이유는 단 하나, 황극경세를 배우기에 합당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수학도 잘하고, 상학도 잘하며, 점학도 잘했던 백온! 뿐만 아니라 이치 풀이에도 상당한 경지를 자랑했던 아들! 옆에 두고 자식으로 제자로 사랑을 듬뿍주며 키워왔던 아들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거절이었다.
소강절선생에게는 또 다른 애제자가 있었다. 비록 나이는 어렸으나, 심지가 굳고 덕성바른 장민이라는 제자였다. 수년동안 옆에 두고 관찰한 결과 학문으로 대성할 자질이 보인 제자였다. 그래서 그에게 자신이 심혈을 기우려 만든 황극경세를 은근히 가르쳤다. 아니, 책을 주고 연구하라고 하였다.
황극경세는 심오하면서도 재미있는 책이었다. 여태껏 공부를 했어도, 이보다 흥미있는 책은 없었다. 파고들면 들수록 하나의 이치로 꿰어지는 즐거움! 세상의 일을 나누면 넷이고, 모으면 하나였다. 새가 나무위에 둥지를 트는 이유, 들짐승이 숲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이유, 심장이 거꾸로 매달려 있는 이유, 하나라의 걸왕이 나라를 빼앗긴 이유, 한나라 고조가 500년 왕업을 이룬 이유…. 그저 책을 보고 연구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나 너무 심취했던 것이 탈이었다. 책을 받아 연구한지 수년이 못되어서 그만 죽고 말았다. 과로사였다. 소강절선생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다. 왕예라 하는 주역에 정통한 노인이 있었다. 주역으로서는 더 이상 연구할 것이 없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이 심오한 학문을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제자를 물색하기로 한 왕예에게 소강절을 추천하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한번 찾아가서 됨됨이를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한 왕예는 먼길을 마다않고 소강절을 찾아나섰다. 고생은 헛되지 않아 서로 만나게 되었고, 3일 밤낮을 마주앉아 토론하며 묻고 답한 결과, 이럴 수가! 차원이 다른 학문이었다. 그 오묘하고 깊고도 넓은 학문의 세상 앞에 이제껏 알아왔던 자신의 학문은 한낱 먼지에 불과하였다. 그래서 무릎을 꿇고 제자되기를 간청하였다. 사랑하는 애제자 장민을 잃은 소강절선생은 다시 한번 제자를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역시 황극경세를 주고 혼자 공부하라고 하였다.
두문불출하면서 보고 또 보고, 아무리 연구하고 또 연구해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세상의 일이 수리면 수리, 상학이면 상학, 이치면 이치, 그 무엇으로도 설명이 가능했고 자연스러워서 인위적인 가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참으로 심오한 학문이었다. 그러나 왕예도 죽었다. 역시 과로사였다.
왕예는 죽으면서 유언하였다. “내 이 책을 죽어서도 연구하리라. 내 무덤속에 같이 넣어주기를 바란다. 목침속에 넣어주면 베고 자면서 연구하리라”
중국이란 나라는 전란이 많은 나라였다. 미처 100년이 못되어 도적들에 의해 도굴의 환난을 맞게 되었다. 왕예에게는 불행이었지만, 황극경세가 세상에 나왔다는 소식은 도를 닦으며 세월을 보내던 두가대에게는 그야말로 복음이었다. 전재산을 다 주고 황극경세를 얻은 두가대는 뛸 듯이 기뻤다. “내 다 알지는 못해도 미래를 예견하는 대목은 반드시 깨우쳐야겠다”고 결심한 두가대가 황극경세를 공부한지 10여년만에 미래를 손바닥 보듯이 잘 예견하는 도사로 소문나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두가대도 죽을 날이 다가옴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어렵게 얻은 학문을 전수할 제자를 구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황극경세로 계산해 보니, 촉땅에 군복무를 하러 온 요응회라는 인물이 적임자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부랴부랴 촉땅으로 가서 마침 강을 건너는 요응회를 불러세웠다. 낯선 노인이 자신의 이름까지 아는 것을 이상히 여긴 요응회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포기하고 노인을 따라갔고, 결국 두가대로부터 선천역수를 전수받게 되었다. 훗날 요응회는 팽복에게 이 학문을 전수하였고, 그래서 강절선생의 심학은 일부분이나마 명맥을 잇게 되었다.
이상의 내용은 송원학안(宋元學案)과 역학원류(易學源流) 등을 참조하여 구성한 것입니다. 황극경세 광고문에 “1000년을 무덤속에서 잠자던 책”이라는 문구를 물어오는 독자분이 있어서 그 대답을 위의 글로 대신합니다. 왕예의 무덤속에 있었던 책이고, 또 1000년 동안 그 내용이 제대로 연구되지 못했다는 뜻도 들어있습니다.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