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문학 기행문
1. 이동희 <삼향의 고장>
2. 김은숙 <꿈길을 따라서>
3. 양규창 <전국 문인과 함께 한 자리>
4. 권혜경 <문인이라는 여자의 외출>
*은행구좌 <농협> 1179-12-073476> (예금주: 이동희)
삼향(三鄕)의 고장
-<제5회 전국문인초청 전남문학기행>에 다녀와서
이동희
전남문인협회 이성관 회장의 의미 있는 환영사는 참석자들에게 전남의 본성, 그리고 전남문학의 심원한 맥을 생각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전남은 예향(藝鄕)으로서 풍류의 고장이며, 또한 의향(義鄕)으로서 정의로운 고장이며, 미향(味鄕)으로서 맛의 고장이라고 하였다.
생각해 보면 전라남도가 지니고 있는 이런 지역적인 특색은 곧 지역민들의 의식의 반영일 터이므로, 우리나라 역사가 이를 증명해 보이고도 남는 바가 있다. 이런 역사성은 지금이야 남도(南道)와 북도(北道)로 행정구역이 갈라져 있어서 구별하고자 하나, 굳이 따지자면 이런 특성은 고스란히 ‘전라(全羅)의 역사와 문화’로 전라남북도가 그 맥을 공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특성은 일찍이 충무공께서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라고 언급했던 사실에서 증명할 수 있다. 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를 지탱할 수 없었다는 증언은 임진년에 겪었던 7년 전쟁의 한시적인 특성만으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호남은 국가가 누란의 위기를 맞을 때마다 들불처럼 일어나서 경국(傾國)의 위기를 구해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전라를 의향이라 하는데 누가 이의를 달 수 있단 말인가? 의로움은 곧 살신성인하는 절의에서 비롯한다.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보다는 대의를 위해 자기를 던지는 정신이야말로 전라도 정신을 보여주는 가장 뚜렷한 징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특성은 전통 예술에서도 드러난다. 우리의 전통 예술 중에서 가장 뚜렷한 역사성을 지니고 있는 국악의 고장이라면 단연코 전라의 예맥을 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판소리의 동편제와 서편제가 모두 전라도의 맥을 반영하는 것이며, 그런 전통은 오늘날에도 조금도 변함이 없다.
오늘날 전라북도는 한식문화의 진흥을 위해 진력하고 있다. 한글, 한옥(韓屋), 한지(韓紙), 한복(韓服), 한식(韓食) 등 한식(韓式) 문화의 진흥을 새로운 문화 창달의 화두로 삼아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쌓이고 새로운 전통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전라도를 예향이라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에는 전국적으로 일반화되었지만 전라도 음식의 맛과 멋은 이미 정통성이 있는 바다. 남도의 중심인 광주의 음식도 매우 탄탄한 미각적 전통성을 지니고 있지만, 북도의 중심인 전주의 음식이 지니고 있는 맛과 멋의 전통성 또한 광주에 못지않다.
아마 전주라는 명칭이 전국적으로 쓰이는 예로 음식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전주뿐이 아니라 전국 어디에 가도 음식점 이름이라면 단연코 ‘전주’ 상호가 가장 높은 선호도를 보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것은 전라도 음식이 우리나라 맛과 멋을 대표하는 브랜드였음을 증명하는 사례하 할 것이다.
전남문인협회가 매년 전국의 문인들을 초청하는 주된 의도가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즉 한국 전통문화의 뿌리인 전남에 와서 그 원류의 맛과 멋을 음미해 보라는 의도일 것이다. 이런 의도에 걸맞게 전남문인협회는 일치된 기획의도를 알뜰하게 전개하며 방문하는 문인들을 흐믓하게 하였다.
덩달아 이웃사촌으로서의 정감을 가지고 참여한 전북문인협회의 일행들도 적잖은 자부심과 참여의 보람을 누렸다. 이런 상호 교류의 진폭을 늘려나감으로써 문인들에게는 창작의 근기를 다지는 계기도 뙬 뿐 아니라, 일일 생활권으로 좁아가는 현대의 생활 감각을 다지는 데에도 보람이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남해의 절경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모처럼 흐믓한 교류의 시간을 가진 것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우수영유스호스텔의 벽면에 붙어 있던 이순신 장군의 어록이 나의 의식에서 또렷하게 살아서 나를 놓아주지 않고 있다.
상유십이(尙有十二) 미신불사(微臣不死)
아직도 배가 열 두 척이나 남았고, 미약하지만 신도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이런 정신과 패기로 오늘을 살아간다면, 우리를 가로막는 어떤 운명의 훼방꾼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전남문인협회의 전북문인초청대회에 다녀온 보람이 무궁한 의미도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동희(李東熙)--<심상>신인상. 문학박사. 전주대사범대겸임교수. 전북시인협회장, 표현문학회장 역임.
-현재 전북문인협회장,
-시집『빛더듬이』『사랑도 지나치면 죄가 되는가』『은행나무 등불』『벤자민은 클래식을 좋아해』
-저서『숨쉬는 문화 숨죽인 문화』『우리 시대의 글쓰기』 『문학의 즐거움 삶의 슬기로움』
-시해설집『누군가 내게 시를 보내고 싶었나봐』
-수상 <전북문학상> <전주시예술상> <표현문학상> <목정문학상> 수상
꿈길 따라서 / 김은숙
내 생애 두 번째의 해남 여행이다. 첫 번째 여행에서 느낀 각별한 포근함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으므로, 그 이름을 들었을 때 잠자고 있던 감성이 파닥이며 살아났다. 해남이라고 부르는 순간 내 앞으로 푸른 바다가 두루마리처럼 펼쳐진 것이다.
내 꿈속의 한 가운데서 만나곤 하던 그 바다에 가서 나에게로 달려오는 파도를 보리라. 그리고 천 번을 꿈꾸어서 진도 대교를 세우고 마침내 뭍에 오른 그 섬의 아리랑을 들어 보리라.
그러나 나의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듯, 아침 뉴스 시간의 예쁜 일기예보 아가씨가 상냥하게 웃으며 겁을 주었다. 천둥을 동반한 비바람이 전국을 몰아 칠거라고.
승용차를 가져가기로 약속한 나에게는 여간 걱정스러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마음이 약간은 무거웠다. 할 수만 있다면 길 떠나기를 취소하고도 싶었다.
셋이서 길을 가면 그 중에 반드시 스승이 있다고 선인들이 일렀다. 동행하게 된 사람들이 모두 스승들이라면 그 말을 바꾸어 넷이서 길을 가면 셋은 스승이라고 해야 옳을 터였다.
해남 길의 동행이 그랬다. 좋은 문우들과 1박 2일을 여행하는 기쁨을 그 무엇과 견줄 수 있을까. 또 목적지에 가면 전국에서 많은 문인들이 와 있을 것이니 만남을 향한 기대감도 컸다.
비바람이 친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어느새 싹 가시고 없었다. 우리는 따뜻하게 웃으며 서로의 생각을 격려하며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렸다.
우수영 리조트에는 거센 바람이 먼저 와 있다가 우릴 반겼다. 반기는 그 몸짓이 지나치리만큼 거칠어서 머리카락이며 옷자락을 성가시게 자꾸 헝클어뜨리고 몸을 가누기도 힘들게 했다.
일찍 도착하여 시간이 아주 넉넉했으므로 우린 울돌목으로 자릴 옮겼다. 무엇이라도 집어 삼킬 것 같은 파도가 진도대교 밑을 소용돌이치며 흐르고 있었다.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무찌르던 때도 그랬으리라. 깃발이 거세게 휘날렸다. 저 기상으로 왜적들의 혼을 제압 했을 것이다.
바로 그곳 후미진 곳에서 특별한 기술로 고기를 잡는 사람들을 만났다. 뜰채로 숭어를 잡는 방법이다. 우두커니 서서 숭어가 물살에 떠밀려오기를 기다렸다가 재빨리 건져 올리면 되었다. 언젠가 TV에 소개 된 적이 있어서 우린 기대감을 가지고 숨을 죽였다. 그러나 숭어는 잡히는 모습을 우리에게 끝내 보여주기 싫은 모양이었다. 기척도 없었다.
전국에서 모여든 문인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인사를 나누고 전화번호를 교환하면서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함께 부른 진도 아리랑이 흥을 돋우었다. 저 달이 떴다 지도록 놀다가 가잔다.
두분 강사님의 특별한 문학 강연이 내게 아주 유익했다. 오랜만에 공부다운 공부를 한 셈이다.
손님을 초대하고 대접을 하는 일이 얼마나 번거롭고 큰일인지를 알기에 한국문협 전남 지회장님과 회원님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컸다. 귀한 자리에 참가했는데 돌아 올 때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와서 못내 아쉬웠다. (끝)
*김은숙-199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한국문협 전북지회 부지회장, 전북여류문학회장 역임.
전북 문학상, 새천년 한국 문학상 수상
저서(수필집) -그 여자의 이미지-, -길 위의 편지-
시집)- 세상의 모든 길- 이 있음
주소)560-824, 전주시 완산구 삼천동 1가 705-5
우성고층 아파트 101동 110호
전국 문인과 함께 한 자리 / 전북문인협회 양 규창
전남문인협회(회장 이성관)가 주최하는 ‘제5회 전국문인초청 전남기행’이 세계 해전사의 기적 명량대첩 현장에서 4월29일부터 30일까지 양일간 200여 문인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우수영유스호스텔에서 개막된 이 행사는 이보영 시인의 황금찬시 ‘어머님의 아리랑’ 낭송으로 막이 올랐다. 지역예술인들의 식전공연으로 성수풀이,남원산성,까투리타령,뱃노래,꽃노래 등으로 흥을 돋우며 진도아리랑을 한 소절씩 따라 배우기도 했다.
문주환 해남문협 회장의 개회에 이어 전남문협 이성관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해남의 역사와문화의 현장기행을 통해 여러분의 발길이 오가는 길마다 우리지역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작품으로 재탄생되어 ,태백산맥의 배경이 되는 벌교나, 서편제로 널리 알려진 완도의 청산도처럼 두고두고 만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문학의 현장으로 거듭나기를 소망하며, 경향각지의 문학인들끼리 머리와 가슴을 맞대고 정담을 나누며 두고두고 잊지 못할 아름답고 뜻 깊은 시간들이 함께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진 초청강연에서 손광은 전남대명예교수는 “고산과 영랑시의 향토 성 검출’을 주제로 하여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았던 대개의 모든 문학작품이 개성적인 향토문학이고 가장 지역적인 시간과 공간이었다. 특히 노벨상 수상작품은 타 지역에서 찾을 수 없는 자기 고향만이 갖고 있는 신변 고백이거나 체험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고산과 영랑시의 시어를 분석해 보면 향토 성 있는 특색들은 자연과 인간이 서로 교감되는 생활공간에서 배태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며 “그 두 분이 이룩해놓은 시혼과 시정신의 발상법과 전개 과정은 특수하게 남도 시문학권을 형성해왔던 맥락을 규명하는데 실증적인 모델이 되었다.” 고 강조했다. 함께 초청된 경기대 이지엽 교수는“현대시의 리듬과 공간미학” 이라는 주제로 오늘날 일반인들이 현대시를 반갑게 생각하고 색다른 활력을 주는 바람직한 존재로 인식하게 하는 획기적인 방법으로 노래와 가장 가까운 시의 리듬활용을 들었다. 특히 고영민의 ‘계란한판’과 복효근의 ‘개장수 다녀가다’를 인용해 가며 엮음과 열거, 반복 등의 수법들을 효과적으로 잘 활용하는 예를 들었다. 또한 본인의 자작시 ‘해남에서 온 편지’의 예를 들어 사투리의 적절한 구사로 재미 성을 얹으면서 공간적 구성을 최대한 열어주는 것이 장르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면서도 효율적으로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초청강연을 마친 참가자들은 만찬 후 이어진 문학인의 밤을 통해 함께 정담을 나눈 후 거나한 취기와 함께 빠른 물길이 암초와 부딪쳐 튕겨져 나오는 바다소리가 20리 밖까지도 들린다는 ‘울돌목’의 밤을 맞았다.
다음날로 이어진 일정은 임진왜란 3대수군대첩지의 한곳인 우수영 관광단지를 출발 세계최초로 익룡, 공룡, 새발자국이 동일 지층에서 발견된 우황리 공룡박물관, 시조문학의 최고봉인 고산 윤선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녹우당’, 초의선사 축제가 함께 열리고 있는 ‘대흥사’를 지나며 전국문인초청 전남기행의 절정을 이뤘다. 예향, 의향, 그리고 곪 삭은 남도의 미향 고장에서 이루어진 이번행사는 다음 해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마무리 지어졌다.
<양규창> ․전북문인협회 사무국장/ ․한국예총전북연합회 감사/ ․한국농촌문학회 사무처장/ ․한국문학신문 편집국장 양규창 전북문협 사무국장
문인이라는 여자의 외출
권혜경(전북문인협회 사무과장, 전북사랑더하기 대표)
세상을 바쁘게 살다보니 내가 작품 활동을 하는 문인이 맞는지 부끄러운 마음을 걷을 수 없다. 문단 선배들의 배려로 문단사회에서 작은 봉사를 하게 됨에 나름 사명감을 가져왔다. 제5회 전국문인초청 전남기행 행사 참가권유를 받고 참가결정을 하기가 퍽 힘들었다. 가정주부로 생업에 종사하다보니 이틀이라는 행사일정은 너무 무리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전국문인 전남기행이라는 행사의미와 문학단체 구성원으로 책임을 들어 무리하지만 전남기행의 길을 따라 나섰다. 전북문협을 새롭게 이끄는 문협 회장님과 어려운 형편을 초월해가며 많은 역할을 해내는 사무국장님, 그리고 항상 밝게 희망을 주시는 여류선배님과 일정이 촉박하지 않게 서둘러 땅 끝 해남으로 향했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 임진왜란에 이순신장군의 명랑대첩으로 유명한 울돌목 부근의 우수영 유스호스텔에 당도했다. 여유 있게 도착이 되어 일행은 늦은 점심을 위해 진도대교를 배경으로 멋지게 자리 잡은 식당을 찾았다.
그 식당에는 전직대통령을 배출한 지역민답게 전직대통령이 다녀간 자리에 ‘영광의 자리’라는 패를 만들어 기리고 있었다. 손님의 입장에서도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행사시간이 되어 등록을 마친 후 강당에 함께한 많은 문인들을 보니 가슴이 설렜다. 특이한 일은 까만 콧수염이 인상적인 박달제라는 시인이 우리 일행을 반겨주는 일이었다. 고향이 어떻다는 등 하며 아는 체를 하며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전남문협 회원들께서 수고해 준비하신 행사가 시낭송과 진도소리 한마당이 펼쳐지고 문학 강연 등이 이어졌는데 강사님들의 지역 특유의 사투리가 정겨웠다. 강의를 마치고 만찬을 기다리는데 우수영의 저녁노을이 문인이라는 나의 외출을 시기하듯 붉어가고 있었다. 아니, 아침부터 출발준비를 하며 이번행사를 통해 좋은 글 쓰는 일에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한 나를 반겨주는 것 이었다. 고마운 일이다. 당분간 내 창작 공간에 우수영의 추억이 함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힘든 출발이었지만 이번행사 참여로 새로운 자세로 가다듬는 게기가 되었다. 다함께 기념촬영을 할 때 얼른 달려가 맨 앞줄 가운데서 이곳에 내가 왔어요. 하며 드러내듯 김치! 를 해댔다. 그동안 선배님들만 가득한 틈에 실수할까 부족한 작품에 마음 졸여 뒷전을 배회했던 내가 작지만 당차고 신비로운 매력을 가진 작가로 거듭날 것이다. 행사참여를 추천해주신 회장님, 그리고 결국 참석하도록 설득해주신 사무국장님, 그리고 함께해주신 선배님과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전남기행 책자를 멋지게 발간하여 우송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