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성모병원은 하느님의 자비를 잊었는가?
만일 노동자가 궁핍 때문에 강요되거나 더 큰 악이 두려워서 더욱 힘든 조건들을 받아들인다면, 또 원하지도 않는데 고용주와 기업주가 부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면, 그것은 폭력을 당하는 것이며, 이에 정의가 항의하는 것이다.(노동헌장 32항)
최근 빚어진 서울 강남성모병원 사태는 세상 안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살아야 하는 교회의 신실성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입니다. 교회가 자신이 선포한대로 모든 삶의 영역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먼저 선포하신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강남성모병원의 간호부 파견직 노동자들은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벌인지 벌써 63일째가 되었으며, 병원 로비농성을 시작한지 23일째 됩니다. 이들은 그동안 병원측에 대화를 줄곧 요청해 왔지만 번번이 병원측의 거부로 좌절감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노동자들과 사업주와 소통이 단절된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대화란 항상 힘 있는 자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요구는 헛된 울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이 병원로비에서 농성하는 것은 병원측의 불성실한 반응에 대한 어쩔 수 없는 항변이라고 여겨집니다. 병원측 관리자들은 무력한 자로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를 기억해야 합니다.
오히려 교회를 대변하는 병원측이 외부 용역업체 직원들과 내부 관리자들을 동원해 8차례나 농성장을 훼손하고, 조합원들를 상대로 ‘점유 및 사용방해금지가처분’ 신청을 낸 것은 궁여지책이라해도 만사를 힘으로 해결하려는 비복음적 태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난 11월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임으로써 ‘현재 농성중인 조합원 6명은 건물에서 퇴거하고, 천막농성과 로비농성을 철거하야 하고, 벽보, 선전지 등 광고물을 부착하거나 현수막과 피켓을 부착해서는 안되며, 구호를 외치거나 피켓시위를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또한 이 명령을 어길 경우 위반일수 1일당 100만원씩, 위반행위 1회당 50만원씩 병원에 지불해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법은 강자의 편입니다. 법원은 병원측의 가처분 신청을 거의 대부분 수용하면서도 “강남성모병원에서 해고된 조합원들의 업무가 파견법이 규정한 ‘절대금지업무’로 보이고,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직접고용의 의무가 있다고 할 여지가 많다.”고 판결함으로써 강남성모병원이 불법파견근로를 해왔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병원측은 법에 따라 직접고용을 하지 않더라도 행정처분에 불과한 ‘과태료’만 물면 그만입니다.
강남성모병원은 본래 정규직이 담당해온 간호보조업무를 2004년부터 계약직 노동자에게 맡기고, 2006년에는 파견직으로 전환시켰습니다. 그러다가 2008년 10월부터는 파견근로계약 2년이 만료된 노동자들을 차례로 계약해지하여 해고시킴으로써 이윤을 위해 파견근로자들의 정당한 정규직화를 피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노동관계법상의 최소한의 책임마저 회피하는 병원의 처사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습니다.
교회는 “자본가들과 고용주들이 대체로 명심해야 할 원칙은 자신의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곤궁한 자들과 불쌍한 자들을 억압하고 이웃의 비참을 이용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신법과 실정법이 모두 금한다는 사실”(노동헌장 14항)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내년에 서울성모병원 개원을 앞두고 소요되는 비용이 천문학적 숫자라는 점을 감암할 때에도 자신을 위한 투자를 위해서 가난한 노동자들의 처지를 돌보지 않는다는 것은 복음이 반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는 보잘 것 없는 아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셨던 예수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은 몸소 모범을 보이시어 “부요하셨지만 가난하게 되셨고”(2고린 8,9),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지만 노동자의 가문에서 출생하여 목수의 작업대에서 생애의 대부분을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처럼 가난한 노동자들과 자신을 한 운명처럼 여기지 않는 한 교회가 선포한 복음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병원을 설립한 근본적인 취지는 단순히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의료선교를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강남성모병원은 초심으로 돌아가 먼저 화해를 청하여 사업장의 평화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먼저 불법파견의 소지가 있는 파견노동자의 직접 고용의무를 회피하려고 진행하고 있는 계약해지 사태를 중단하고, 파견직으로 전환한 65명의 노동자들을 우선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농성노동자들에 대하여 어떤 폭력도 가해서도 안 되며, 고소고발, 손배 가압류, 공권력 투입 등 사태를 악화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고용주가 노동자들을 돌보려고 하지 않는다면 어떤 노동자들도 사심없이 일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곧 대림절이 다가옵니다. 세상에 빛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면서 이 차디찬 겨울 초입에 고용불안에 떨고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CMC 관계자들과 교회 장상들이 나서서 사태를 수습해 주시길 바랍니다. 교회는 만인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선포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믿는 까닭입니다.
따라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은 그동안 병원의 현명한 문제해결을 위해 기도하며 지켜보고 있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가혹한 처사가 계속적으로 진행된다면 사회복음화와 교회쇄신의 정신으로 고통당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연대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행동으로 실천할 것임을 밝히는 바입니다.
2008월 11월 20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