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2일(화) 모임 후기
참석자 : 김훤누리, 김지은, 이정희, 이재란, 신의, 한남경, 홍경심
[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획 ]
- 책, 마법의 시간 여행
<세월호 이야기> 한뼘작가들 지음
<금요일엔 돌아오렴> 416세월호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지음
<내릴 수 없는 배> 우석훈 지음
<다시 봄이 올거예요>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국민의 안전권을 묻다
1. 세월호의 기억을 지우려는 사람들
한국방송(KBS)는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에 대해 제작 중단을 결정했다, KBS 사측이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4월에 방송할 수 없다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중략) 대신 6월 이후에 다른 재난과 엮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시리즈로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2024년 설 명절을 앞두고 세월호 참사 피해자 사찰로 징역2년 형을 선고받은 김대열, 지영관 전 기무사 참모장들과 세월호 참사 때 대통령 보고 시간을 조작하고, 국가위기관리지침을 무단 변개했던 김진관, 김기춘 등 청와대 인사들에 대한 특별사면이 단행됐다.
2. 반드시 기억해야 할 세월호 참사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은 지금,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희생자 가족을 비롯한 많은 사람은 아직도 세월호 참사를 잊지 못한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이제 그만하면 됐다’, ‘언제까지나 세월호에 매달려야 되겠느냐’며 잊기를 강요한다.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기억이 있는 사람에게 누군가 위로해 준다며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 아마 상처가 낫기는커녕 더 깊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상처난 사람의 마음을 회복시켜주는 것은 상대에 대한 공감, 그리고 그 상처가 나을 때까지 지켜보며 기다려 주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개인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상처를 입은 경우는 어떨까? 세월호 참사는 희생자와 가족들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세월호 사건의 뒤로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수많은 비리가 있었고, 그 가운데 국민의 안전을 내팽개쳐져 있었다. 많은 사람이 세월호 참사를 보며 언제라도 자신에게 닥칠 수 잇는 일이라 인식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노란 리본을 달고, 촛불 시위에 나섰던 건 이 때문이었다.
3. 하멜른처럼 기억하기
1284년 6월 26일에 독일의 하멜른이란 도시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어린이들의 실종사건을 기반으로 한 전설이 있다. 바로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이야기다.
(중략)
그 뒤로 하멜른에서는 아이들이 사라진 길을 ‘가무금지로’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길에서는 음악을 연주하며 교회로 향하던 신부 일행도 음악을 멈추고 조용히 지나가야 했다. 또 이 사건을 하멜른시의 문서고에 기록되었고, 그 뒤부터 하멜른에서는 날짜를 헤아릴 때 아이들이 실종된 날을 기점으로 헤아리게 되었다고 한다. (중략)
이 뿐이 아니다. 1572년에 시장은 이 이야기를 제목과 함께 교회 창문에 그림으로 그려 넣게 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사라졌던 그 길은 18세가 중반까지도 여전히 가무금지로라 불렸다고 한다. 1284년 일어난 아이들 실종 사건을 하멜른에서는 수백년이 지나도록 기억하려 애썼다는 뜻이다.
본래 하멜른의 관리들은 들끓는 쥐떼에 대한 대책도 없고, 피리 부는 사나이와의 약속은 헌신짝처럼 저버리는 파렴치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들은 아이들의 실종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말이다.
4. 기억해야 할 것, 국민의 안전권
국가는 국민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고, 국민은 안전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서 헌법은 소용없었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지 못했고, 위험에서 국민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
그리고 2022년 10월 29일 또다시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핼러윈 축제를 즐기려 갔던 아이들이 이태원 골목길에서 처참하게 압사했다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이 엄청난 재난 앞에서 이번에도 역시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놀러 갔다 사고가 났다며 개인의 탓으로 치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늘 사고의 위험이 있기 마련이고, 국가와 지자체는 안전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게 당연한데 그걸 모르는 것처럼 떠들었다. 모든 것이 세월호 때와 똑 닮아 있었다.
독일에서 유대인 학살에 대해 반성하고 기억하는 자세
한국에서는 참사가 반복되고 있는 역사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내부구조 임의 변경과 부실공사, 무리한 증축 등의 원인으로 무너진 삼풍백화점, 2017년 건물 자체의 문제와 안전불감증으로 빚어진 제천 스포츠 센터 화재 사건.
* < 세월호 책으로 마주하기 >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 유가영 지음
참사 이후 9년 간의 일기에 담아낸 ‘생존자의 생존기’다. 세월호 생존자가 직접 책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고 딩일 친구와 함께 기울어진 배의 미끄러운 바닥을 기어 위로 올라간 끝에 갑판으로 나올 수 있었다. 커다란 배는 이미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겨우 헬기에 올라 인근 섬에 착륙했다. 마을회관 밖에서 다른 친구들을 기다렸지만 수 많은 친구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TV에서는 생방송으로 ‘전원구조’라는 자막이 흐르고 있었다,
참사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처음 1~2년은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유난히 책 읽기를 좋아했던 저자의 눈에 어느 순간 책이 읽혀지지 않았다.
‘다들 혼자 있으면 심적으로 더 안 좋았기 때문에 항상 함께 모여 있었어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지내려고 했어요. 세월호 참사 이후로 얼마 동안은 정말 아무렇지 않았어요, 우리에게 벌어진 사고를 인정할 수 없어 회피했던 건지도 모르죠’
트라우마는 스멀스멀 그들을 덮쳤다. 저자는 수없이 자해까지 시도하다 대학에 간 뒤에 정신병원 폐쇄병동에까지 입원했다. 여전히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는 그는 이겨내려는 노력을 쉬지 않았다.
저자가 고심 끝에 고른 책의 제목도 ‘살아내다’이다. 주어진 시간을 살아 견뎌내는 삶. 책에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겪으면서도 평범한 삶을 꿈꾸며 치열하게 살아온 치열하면서도 담담한 일사의 기록이 담겨 있다.
‘ 저는 세상이 변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 다음세대인 아이들도, 더 성장해 나갈 저의 세대 사람들도 우리 앞에 벌어진 참사에 두 눈을 뜨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남겨진 사람 중 한 명으로서, 이 나라에 사는 사람으로서, 많은 노력을 할 거예요, 부디 관심을 거두지 않기를 생각을 멈추지 말기를 바랍니다. ’
<다시 봄이 올거예요>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세월호참사 이후, 두 번째 봄을 맞이했다.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을 담은 <금요일엔 돌아오렴>에 이어 또 다른 참사의 기록, <다시 봄이 올 거예요>가 출간되었다. 책은 세월호참사를 온몸으로 겪어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의 생생한 육성으로 우리가 듣지 못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월호에서 생존한 단원고 학생11명은 이제 스물 살이 되었고, 어린 나이에 형제자매를 잃고 유가족이 된 15명은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되었다. ‘생존학생’과 ‘유가족’이란 이름으로 지난 2년을 보내온 이들이 마음의 경계를 풀고 그날 이후 어떻게 슬픔의 시간들을 견뎌내었는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각각의 사연과 살아낸 시간들은 달랐지만, 한 가지만큼은 같은 마음으로 고백했다.
‘ 사람들이 함께 기억해주었으면 좋겠어요’
무엇이 회복을 가로막는가
누구에게나 그러하듯 어린 피해자에게도 상실을 온전히 겪어낼 시간이, 상실을 어떻게 통과할 것인지를 결정할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어리니까 잘 모르겠지.’ ‘어서 훌훌 털고 잊어버리는 게 상책이야.’ 어린 피해자의 감정은 가볍게 취급되곤 한다. ‘애들은 어디로 튈지 몰라요.’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한 어린 피해자의 다양한 시도들은 대개 충동적이거나 미숙하거나 본분을 벗어난 것으로 여겨진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그들은 미래의 주인공이라는 틀을 강요받으며 서둘러 학생의 본분으로 복귀할 것을 요구받는다.
어린 피해자의 상처를 보듬고 상실의 의미를 공유하는 데는 무능한 학교가, 그들에게 공부하는 본분을 강요하는 데는 놀라운 유능함을 보인다. 학교는 ‘슬픔의 전파’를 막기 위해서도 열심이다. 단원고에서 ‘기억교실’을 재빨리 걷어내려는 어른들의 이야기 속에서도 어린 존재들은 대개 명분으로만 등장한다. 그들에겐 어떠한 결정 권한도, 결정에 앞선 충분한 숙고의 시간도 제공되지 않았다. (중략)
상실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자율성을 발휘할 수 없기에 그들의 상처는 더 곪기 쉽다. ‘회복력 혹은 회복탄력성(resillence)에 관한 연구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피해자가 외상 후 성장을 이루어내려면 관계의 응집력, 사회적으로 구성된 사건의 의미, 사회적 지지, 접근할 수 있는 자원의 정도 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10대들이 살아낸 시간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생존학생과 형제자매들의 이야기는 고통과 피해의 서사로만 축소될 수 없다.(중략)
이들은 위급한 탈출의 순간에 서로를 보살폈고 가족 안에서의 역할을 조정했다. ‘생존자들은 더 힘들겠죠’, 저도 이런데 친구 부모님은 마음은 얼마나...‘ 이들에게는 타인의 상처에 감응하는 힘이 있었다. ’오래 걸릴 것 같아요‘ 이 슬픈 말 뒤에 따라붙은 말, ’그래도 할 수 있는 걸 해야죠‘ 지금껏 할 수 있는 걸 해왔던 이들이 또다시 할수 있는 걸 찾아 나서고 있었다. 어린 피해자들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는 무능하고 미성숙했지만, 이들이 보내온 시간은 성숙했다.
우리는 4월 16일 그날의 충격과 상처로만 이들이 보내온 시간을 이해해서는 안된다. 그날과 그날 이후, 이들이 어떤 조건에 놓이게 되었는지, 슬픔의 시간을 통과 하면서 어디까지 왔는지를 함께 주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