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세 편의 명시|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감상)
화자는 부서지기 쉬운, 부서지기도 했을 지난한 타인의 생에 대해 바람처럼 갈피를 잡아 더듬어 볼 수만이라도 있다면 그것이 필경 '환대'라고 한다.
'환대'라는 시어에서 철학자 레비나스 타자의 윤리학이 떠오른다. 그는 타자의 고유성, 절대성으로 존재론적으로 우리는 타자를 영원히 모른다고 한다. 즉, 타자를 객체가 아닌 나와 다른 또 다른 주체로 본다. 주체(나) 중심은 타자를 선이해나 선입견으로 함부로 제단하고 폭력성과 전체주의를 나을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붓다와 같이 타자를 우위에 두고 특히, 소외된 자, 연약한 자를 배제하지 말고 아픔에 귀 기울이고 환대하고 섬겨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렇게 했을 때 나의 존재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고 더욱 깊어진다.
시 '방문객'은 모든 것을 알 수 없는 타자에 대해 존중하고 환대하고 관심을 두는 '사랑의 시'로 읽힌다. 레비나스의 타자 개념은 넓다. 타인도 되고, 나 자신의 무의식도 될 수 있고, 신도 될 수 있다.
트로트 가수 김국환의 ‘타타타’를 불러 본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별
임보
어둠을 탓하지 말라
모든 빛나는 것들은
어둠의 어깨를 짚고
비로소 일어선다
어둠이 깊을수록
별들이 더 반짝이듯
그렇게
한 시대의 별들도
어둠의 수렁에서 솟아오른다
감상)
시를 감상하고 허무와 절망에 부딪혔을 때, 긍정을 노래하는 니체적인‘힘에의 의지’가 느껴졌다. 니체는 난관(難關)은 오히려 자기를 더 단단하게 고양하고, 우아하고 고귀한 인간으로 상승시키는 촉매제의 역할로 본다. 그래서 니체는 어려움을 어린이처럼 놀이로 흔쾌히 받아들이고 주인의식을 갖고 창조적으로 삶을 늘 새롭게 살아가라고 한다.
어둠이라는 시련 속에서 시인처럼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의지를 갖고 어깨를 짚고 일어서면 별처럼 반짝이는 존재,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쉬가 되지 않을까?
영진설비 돈 갖다주기
박철
막힌 하수도 뚫은 노임 4만원을 들고
영진설비 다녀오라는 아내의 심부름으로
두 번이나 길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삼거리를 지나는데 굵은 비가 내려
럭키슈퍼 앞에 섰다가 후두둑 비를 피하다가
그대로 앉아 병맥주를 마셨다
멀리 쑥국쑥국 쑥국새처럼 비는 그치지 않고
나는 벌컥벌컥 술을 마셨다
다시 한번 자전거를 타고 영진설비에 가다가
화원 앞을 지나다가 문밖 동그마니 홀로 섰는
자스민 한 그루를 샀다
내 마음에 심은 향기 나는 나무 한 그루
마침내 영진설비 아저씨가 찾아오고
거친 몇 마디가 아내 앞에 쏟아지고
아내는 돌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나는 웃었고 아내의 손을 잡고 섰는
아이의 고운 눈썹을 보았다
어느 한쪽,
아직 뚫지 못한 그 무엇이 있기에
오늘도 숲속 깊은 곳에서 쑥국새는 울고 비는 내리고
홀로 향기 잃은 나무 한 그루 문밖에 섰나
아내는 설거지를 하고 아이는 숙제를 하고
내겐 아직 멀고 먼
영진설비 돈 갖다주기
감상)
시는 일상에서 일상 너머를 노래한다. 라캉의 욕망 이론에서 시를 한번 분석 해 보았다. 일상의 논리와 시의 논리를 구분한다면. 나는 라캉의 3계(상상계, 상징계, 실재계) 중 일상의 논리를 상징계, 시의 논리를 실재계에 등치시키고 싶다. (물론, 상상계도 영향을 주지만)
아내는 일상의 논리인 상징계에 충실하며 가정을 돌보며 살고 있다. 화자는 작은 일탈을 통해 그 무엇인가 타자의 욕망이 아닌 자기 본연의 욕망을 보여 주고 있다. 그 욕망은 즉흥적인 행위로 나타난다. 이 시는 직설과 비유적인 표현을 잘 배치해서 시가 부드러우면서 해학적이다. 본연의 나를 찾아가는 화자의 작은 일탈에 미소 짓게 하는 따뜻한 시라는 생각이 든다.
-시집, 『먼 산 』 (교보문고 퍼플,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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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식 시인
1968년 경북 문경에서 출생
서울교대 초등수학교육 및 동 대학원 졸업
2020년 월간《우리詩》신인상으로 등단
제 20회 공무원문예대전 은상 외 공모전 4회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