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교선 가브리엘 신부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에제키엘 47,1-2.8-9.12
1코린토 3,9ㄴ-11.16-17
요한 2,13-22
나를 필요로 하시는 주님
어느날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선 이사야는 날개달린 천사들에 둘러싸여
찬미 받으시는 주 하느님을 뵙는 영적 체험을 합니다.
바로 그 체험 현장에서 이사야는 주님으로부터 예언자로 부르심 받아 파견됩니다(이사 6, 1-10).
한편 예언자 에제키엘은 일찍이 성전 밖으로 나오는 하느님 영광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에제 10, 18-22; 11, 22-23).
그로부터 얼마 후 그는 주 하느님의 영광이 새로 지은 성전 안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43, 1-9; 44, 2).
오늘 1독서에서 에제키엘은 주 하느님이 당신 백성에게 어떤 모습으로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지를
그려줍니다.
여기서 에제키엘은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사 8, 6-8)과
물이 풍부한 에덴동산의 모습(창세 2, 10-14)을 연관시킵니다.
한마디로 모든 풍요로움과 축복은 다 주 하느님으로부터 유래한다는 뜻입니다.
오늘 독서의 끝 구절이 이 모든 말씀을 잘 요약해줍니다.
“이 강가 이쪽저쪽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잎도 시들지 않으며 과일도 끊이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는다.
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일은 양식이 되고 잎은 약이 된다.”(에제 47, 12)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뒤 요한은 묵시록에서 에제키엘 예언자가 그리던 구원받은 이들의 세상,
곧 하늘나라로 독자들을 초대합니다.
“목마른 사람은 오너라. 원하는 사람은 생명수를 거저 받아라.”(묵시 22, 17ㄷ)
신구약에서 물은 삶과 기쁨의 상징이며 성령을 뜻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
이는 당신을 믿는 이들이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요한 7, 37-39ㄱ).
한편 사도 바오로는 오늘 2독서에서 ‘하느님의 성전’은 다름 아니라
‘모든 믿는 이들’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1코린 3, 16)
본디 이사야는 하느님 백성에게 타락한 삶을 떠나 주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쳤습니다.
백성은 예언자의 외침에 귀 기울이지 않아 결국 바빌론으로 유배를 떠나게 됩니다.
유배생활에 힘겨워하는 백성에게 에제키엘은 ‘주님의 입’이 되어 희망을 일깨웠습니다.
요즘처럼 살기 힘든 때일수록 주님은 우리와 가까이 계십니다.
“내가 하느님을 필요로 하는 그만큼 그분도 나를 필요로 하십니다.
God needs me as much as I need God.”( J. H. Nouwen).
열심히 살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거룩하게 되어
이사야나 에제키엘처럼 주님을 체험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인천교구 신교선 가브리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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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진교 요셉 신부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에제키엘 47,1-2.8-9.12
1코린토 3,9ㄴ-11.16-17
요한 2,13-22
성전 정화 = 단순한 삶
지난 2008년 9월 2일 진사리 성당으로 이동하는 날, 내 눈을 의심케 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1톤 트럭을 가득 채우다 못해, 넘쳐 흐르려는 내 짐들이었다.
‘언제 저렇게 많아진 거지? 내가 워낙 키가 큰 까닭에 맞는 침대가 없어
침대도 가져가야 하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짐이 많다고는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너무 많네’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이동 하는 내내 ‘과연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주님을 따르는데 필요한가?’라는 자문을 했다.
‘그 많은 짐들이 주님이 아닌 내 편리함만을 위한 것은 아닌가?’하는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소와 양, 비둘기를 파는 상인들과 환전꾼들로 더럽혀진 성전을 정화하신다.
복음 말씀을 묵상하는 내게 소와 양, 비둘기를 파는 상인의 모습이 다가왔다.
소, 양, 비둘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때 봉헌하는 제물이다.
성경에서도 드러나듯이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이 키운 가축 중에서
그것도 가장 좋은 것을 골라 하느님께 제물로 바쳤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대신해서 바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정성을 다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을 방해하는 소와 양, 비둘기를 파는 상인들과 상인들 옆에서
돈을 바꿔주는 환전꾼들이 예수님 눈에 띈 것이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그들은 하느님께 참된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방해꾼들로 보였을 것이다.
그들은 주님께 봉헌할 제물을 정성 다해 키우지 않더라도,
편리하게 돈만 가지고 오면 충분히 제사를 드릴 수 있다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이는 ‘어떻게 해서든 하느님께 제사만 드리면 내 의무는 다한 것이다.’라는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왜곡되고 더럽혀진 성전을 하느님을 사랑하는 열정에서 몸소 정화하신다.
이제 우리 자신을 바라보자.
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하느님께서 몸소 거하시는 성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성전을 성전답게 가꿀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하느님께 온전히 향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과 맺은 관계에서 편리함만을 찾을 때가 있다.
아마도 한 번쯤은 경험했을 텐데, 우리는 기도할 때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기보다는
내 바람만을 하느님께 요청할 때가 많다.
내 바람을 하느님께 말씀드리고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 얼마나 편한 일인가?
마치 종에게 일을 시킨 주인처럼, 일이 완성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하느님께 드리는 참된 기도가 아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는 오히려 단순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하듯 정성껏 키운 소와 양을 제물로 봉헌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 각자의 삶 전체를 봉헌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 삶을 봉헌하고 하느님의 뜻을 기다리는 것,
이것이 하느님께 드리는 참된 기도가 아닌가?
하느님 앞에서 단순한 삶을 살아가는 것,
언제나 하느님의 성전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길이다.
수원교구 인진교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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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벽 신부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에제키엘 47,1-2.8-9.12
1코린토 3,9ㄴ-11.16-17
요한 2,13-22
신축중인 성당에서 본당 사목을 처음으로 시작하였는데,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구나 신자 수도 작고 본당 재정도 빈약했기에 건축비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성전 지붕을 값비싼 재질인 동판으로 해야 하느냐는 문제로 몇 달을
성전 건축위원회에서 씨름을 해야 했고
성전바닥을 값싸고 튼튼한 재질을 찾느라고 한 달 이상 백화점과 호텔 건물 바닥만
보고 다녀야했습니다.
4년 간의 우여곡절 끝에 성전 공사를 마무리했고
그즈음에 주교님께서 이탈리아로 피정을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성전 공사를 막 끝내고 온지라 제 눈에는 로마에 있는 성당 건물만 눈에 들어왔습니다.
피렌체의 어느 성당에 갔을 때 제 눈을 의심했는데
성전 내부가 온통 금으로 장식되어 있고 성전 바닥은 마치 화가가 붓으로 그려 놓은 듯이
그 비싼 대리석으로 장식해 놓은 것이 아닙니까?
그 화려함과 웅장함에 성전 바닥에 발을 딛고 서 있기가 부담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신학자 본회퍼가 다음과 같은 심오한 말을 남겼습니다.
"오로지 고통 받는 하느님만이 봉사하는 하느님만이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비참함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부족함과 욕망의 실천을 보장해 줄만한
하느님을 만들어내려 노력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가난하기에 부요한 하느님을 상상했고,
부요한 성전을 건축했었고, 인간이 빈약했기 때문에 강한 하느님을 모시려했고
웅장한 성전건축에 매달렸습니다.
인간의 변덕스럽고 의존적인 모습과 달리 하느님은 언제나 홀로 자립적이고
변하지 않는 강인한 하느님이어야 했기에
백 년, 천 년 가도 허물어지지 않는 하느님의 거처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교적 계시는 겸손하고 온화한 하느님,
가난하고 상처받은 하느님, 자비로운 하느님의 계시를 통해
우리 인간을 해방시키고 구원하려 하신 구세주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탐욕과 사심으로 가득 찬 유다인들을 채찍으로 내려치시며
유다인들이 마흔 여섯 해나 걸려 지은 웅장하고 화려한 성전을 허물라고,
인간의 왜곡된 생각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당신께서 우리의 깨끗한 손을 빌려 손수 하느님의 집을 지어 만들라고 하십니다.
사도 바오로도 에페소서에서 참된 성전에 대해서 한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이돌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부산교구 이윤벽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첫댓글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