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唐) 시인 이백은
하늘이 나를 낳은 것은 반드시
그 재주를 쓸 때가 있어서다(天生我材必有用)’라 했다.
아무리 평범한 사람이라도 반드시 남과 다른 한 가지 재주는 있다.
그는 당대부터 지금까지 유명한 시인이지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보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다.
이 세상에는 똑같이 닮은 것이 한 가지도 없다.
모두가 각각 유일(唯一)한 존재다.
그러니 그 존재하는 자체로 귀하다.
풀 한 포기, 작은 곤충 하나라도 어디엔가는
무엇엔가는 조화를 이루고 필요하여 있게 된 것이다.
하물며 사람이야 더 말하여 무엇하랴.
사람이 활동하는 범위를 두 가지 유형으로 볼 수 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독보적인 사람과
특출한 것을 추구하지 않고 무리 속에서 유유상종하는 사람이다.
누구나 안전한 생활을 원하지만
독보적인 사람은 안전한 것에 머무르지 않고
무언가를 추진하여 실패도 맛보며
새로운 시스템이나 도구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하는 것에 재미를 들여 다른 사람이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고 대가로 즐거움과 풍요로움을 즐긴다.
평범한 삶을 산다고 하여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사회 구조는 안정을 추구하여
그 구조가 대부분 사다리꼴 모양을 유지한다.
맨 밑에는 구조상 위쪽보다 더 많은 수를 차지하는 다수가 있다.
위로 올라가며 그 숫자는 급격히 줄어든다.
이 모양이 벽돌을 쌓아 만든 구조라고 볼 때
벽돌 하나하나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전체적 모습을 만들 수 있다.
중간 중간 빠지거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이 하나라도 빠지면
그 균형이 조금씩 무너지다가 결국엔 주저앉게 된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은 싫건 좋건
이 구조에서 어느 한 부분에 위치한다.
독불장군은 없다.
독보적인 사람일수록 이 구조를 더 잘 이해한다.
그러니 그 조직을 적절히 이용할 줄을 알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할 줄도 안다.
옷 한 벌이라도 고가의 옷이라면 허투루 관리할 사람이 없다.
아껴 잘 관리하고 조심스럽게 입는 것은 당연하다.
이 옷이 귀하다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편히 입을 수 있는 평상복이 있으니 좋은 옷이 그 가치를 갖는 것이다.
그런데 여러 옷들 중에 그 옷 한 벌은 귀하게 여기면서도
현실에 처한 상황만 보고 그 옷을 입는
자기 자신은 소중하게 대하기가 쉽지 않다.
귀한 것을 귀하게 보는 것이 심력(心力)이고 안력(眼力)이다.
‘금(재물)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말이 있다.
욕심을 과하게 갖지 말라는 말이지만 다른 의미로는,
금을 금으로 볼 줄 아는 능력 있는 자신이 더 소중함을 알라는 말이다.
금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얼마나 필요한 물건인가?
이것을 돌로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인생이 살아가는데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아는 것이 더 가치 있는 것임을 말하고자 함이다.
숙맥불변(菽麥不辨)이란 콩과 보리도 구분하지 못하는 바보를 이른다.
항상 먹고 사는 곡식을 모른대서야 말이 안 된다.
진주를 진주로 보지 못하는 구정물만 좋아하는 돼지와 무엇이 다른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가치’를 모른다면
억만금이 있다 하더라도 불쌍한 인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결과가 허무에 묻혀 버리기 때문이다.
자기 배만 불리는 자는 돼지 같은 결국이 된다.
자기를 위한 행위의 결과만 남기 때문에
적당히 살이 오르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 같은 인생이 되고 만다.
그런데 같은 동물이면서도 먹이를 함께 나누는 사슴도 있다.
사슴은 비만한 사슴이 없다.
너무 살이 많이 찌면 도망가기가 어려워 맹수에게 잡아먹히는 이유도 있으나,
더 큰 이유는 혼자 과식하지 않는 습성이 있어서다.
사슴은 먹이를 발견하면 동류를 불러 함께 풀을 뜯는다.
이때 내는 울음소리를 록명(鹿鳴)이라 하여
동류를 부르는 이 울음은 동물 울음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꼽는다.
초원에서 약자로 살아가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먹이 나눔’을 하며
위험으로부터 여럿의 힘을 모아 생존률을 더 높이는 방법으로도 사용한다.
자기만 위하고 자기만 사랑하고
옆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심도 갖지 않는다면
자신 스스로 존귀함에서 멀어지게 하는 결과가 된다.
오늘은 해진 옷을 입고 거친 음식을 먹을지라도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행동하는 것을 최고가치로 여기는 것이 하늘 불문율이다.
이것저것이 없다고 걱정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 것에 감사하고 그 태어나게 만든
‘목적 가치’를 이루어 가는 자의 결국이 아름다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