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장 지옥에서 주선한 것
내가 결혼을 결심하자 데이빗은 더할 수 없이 기뻐했다. 몇 달 동안 거의 매일 결혼 이야기를
꺼냈는데 이제 소원이 풀리는 것이다. 나는 촬영이 끝난 뒤 크리스티와 통화하면서 아마 나도
모르게 그 얘기를 들먹였던 모양이다. '윌리시 쇼'에서 데이빗에 대한 내용을 7월 말쯤에 방영했
을 때 프로그램 진행자인 마이크 월리시가 전국방송에서 방금 들어온 소식이라며 우리의 결혼계
획을 방송하고 리카도 단골들을 모두 초대하기로 했다는 말을 덧붙인 것이다.
그보다 일찍 나는 우리가 내린 결정에 애해 크리스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크리스 역
시 데이빗이 자신의 사랑과 나에 대한 전적인 감정에 대해 확신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하면서
신랑 들러리가 되어 주겠다고 했다. 내 친구 바바라 브랙클리에게 얘기를 했더니 바바라는 그
자리에서 "우리집에 와서 해" 하고 제안했고, 데이빗과 나는 바바라의 친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식을 올릴 완벽한 날을 잡을 필요가 있었다. 점성학 표를 뒤져 조짐이 제일 좋은 때를
찾았다. 결혼식을 올릴 날짜뿐 아니라 정확한 시간까지도 찾았다. 내가 찾은 시각은 8월 26일
11시 57분이었다.
초대할 사람들을 정하면서 데이빗은 이제까지 한 번도 들려준 적이 없는 사람들을 언급하기 시
작했다. 그는 늘 이런 식으로 말을 꺼냈다. "아, 달링. 그리고... " 이렇게 운을 뗀 다음 전적으로
혼자만 아는 사건을 들먹이며 자신이 만들어 낸 별명이나 아니면 이상한 호칭을 들먹이는 것이
다. 그러면 나는 질문을 했고, 마침내는 새로운 사람과 그에 연결된 이야기가 나오고, 그와 관련
된 갖가지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 이야기에서는 충격을 받았고 또 어떤 이
야기에서는 슬픔을 느꼈지만, 데이빗이 가장 암울하게 보낸 지난 10년 동안 그를 보살펴 준 친구
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등장인물은 주로 웨스트 오스트레일리아 오페라단에서 나타났다. 70년대 초에 데이빗이 전속
으로 음악지도를 맡아 일했던 오페라단이었다. 그 가운데는 소프라노 일레인 플린트와 '조지'가
있었다. '조지'는 알고 보니 오페라단의 전임 감독이었던 조르그 틴트너였다.
나는 그 무렵에는 조르그를 만날 수 없었지만 - 퀸즈랜드로 이사가 퀸즈랜드 극장 관현악단 음
악감독이 되었으므로 - 그와 데이빗이 주고받는 수많은 편지에 내 편지도 끼여들었고 차차 친해
지게 되었다. 데이빗은 '조지'를 따뜻하고 고마운 사람이라고 했다. 데이빗에 대한 그의 지속
적
인 보살핌과 호의는 데이빗에 대해 나에게 써서 보내는 편지에서뿐 아니라 데이빗이 병원에 드나
들기를 되풀이하던 시기 내내 퀸즈랜드에서 데이빗에게 보낸 수많은 편지에서 잘 알 수 있었다.
조르그는 퀸즈랜드로 이사가기로 하여 퍼스에서 데이빗을 보살펴 줄 수 없게 된 것을 늘 마음에
걸려 했다.
편지는 모두 '내 소중한 친구 데이빗에게'로 시작하여, 더 일찍 홀은 더 자주 편지를 쓰지 못해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내용이 그 뒤를 이었다. 이 부분이 특히 감동적이었다. 데이빗과 편지를 주
고받은 사람이 그 말고도 두엇 더 있었지만 충실히 정기적으로 편지를 보낸 사람은 조르그뿐이었
기 때문이다. 일 때문에 조르그는 매년 며칠 정도만 데이빗과 함께 지낼 수 있을 뿐이었지만, 그
는 데이빗이 정신적으로 계속 그와 함께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 주었다. 편지에서 그는 데이빗
이 연습을 잘 하고 있는지에 대해 물었는데, 마치 병원이 아니라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편안한
집에 자리잡고 사는 사람에게 묻는 듯한 투였다. 그런 한편으로 이런 구절도 있었다. "저네가
거기 (병원에)있는 동안 세상은 많은 걸 맛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네. 낫도록 애를 많이 써야 될
걸세. 자넨 세상에 보태 줄 게 많잖나!" 그리고 "물론 자네가 병원에 있을 필요가 없다면 더 좋
겠지. 금방 거길 떠날 수 있기를 바라자구."
어느 날 조르그에게서 편지가 왔을 때 데이빗은 편지를 읽은 뒤 한 시간쯤 지나 편지를 손에
들고 나를 찾아 부엌으로 왔다.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 여잔 그 사람의 배짱이 미웠던 거
예요."
"무슨 얘기예요, 달링?"
"그녀는 조지를 샘냈어요. 알아요? 클라라는 술수를 썼어요. 내게 턱수염을 기르게 했거든
요. 알아요? 내가 스무 살 정도 나이가 더 들어 보이면 조지가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걸
로 생각한 거예요. 비열한 술수였죠. 클라라는 독한 여자였거든요. 세상에서 제일 가는 독종이
에요. 제일 지독한 여자였어요."
나는 클라라가 데이빗의 첫 번째 부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리가 만난 다음 날 나
에게 청혼한 지 몇 분이 지난 뒤 데이빗은 결혼 경력에 대해 나에게 '고백'할 필요가 있다고 생
각
했다. 그러면서 나를 안심시키기 위한 마음에서인지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뜻으로 이렇게 말했
다. "내가 청혼한 건 아니었어요. 날 나꿔채서 결혼해 버렸으니까요."
그 당시에는 겨우 몇 시간 전에 만난 남자에게서 청혼을 받은 상황이었으므로 나는 그런 모든
이야기가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중에 우리가 함께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데이빗이 마음이
내키는 부분만 입에 올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일생에서 특히 힘들었던 70년대 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데이빗이 정말로 기분 나빠 할 것으로 생각되
는 부분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려고 신경을 많이 썼다. 언젠가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 내 추측이 맞았다. 지금이 바로 클라라와 또 당시 데이빗의 주변에 대한 이야기
가 나올 때였다. 물론 전후상황이 완전히 이해되기까지는 몇 달이라는 시간과 여러 사람들의 이
야기가 더 필요했다.
모든 일은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처음으로 입원했던 퍼스의 찰스 가디너 병원에서 넉
달만에 퇴원한 데이빗은 상당히 건강했고 자립심도 강해져 있었다. 루버 스미스 여사는 다시 호
의를 베풀어 그를 받아 주었지만, 몇 주가 지난 뒤 데이빗은 그 집에서 나와 앨리스 여사의 친한
친구인 해리스 부부 집으로 들어갔다.
클리프 해리스는 그 때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주 음악협의회 의장이었고, 부인 레이가 데이빗
에게 특히 관심이 많았다. 두 사람은 데이빗이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자신감이 붙을
때까지 데이고 있기로 하고는 자기 집과 가까운 곳에 셋집을 얻어 주었다. 데이빗이 날마다 자
기네 집으로 찾아와 거기 있는 그랜드 피아노로 연습하고 함께 식사도 할 수 있는 거리여서 잘
보살펴 줄 수 있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클리프는 데이빗이 다시 한 번 음악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기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변함없
이 데이빗을 밀어 주는 제임스 펜버티는 (선데이 타임즈)에 데이빗과 모금에 대해 기사를 썼고
그 결과 기금이 무이기 시작했다. 해리스 부부는 또 데이빗이 연주할 수 있도록 자그마한 음악
행사도 주선했다. 데이빗이 클라라를 만난 것은 이런 행사에서였다.
나이 든 이혼녀로서 아이가 - 그 가운데에는 데이빗과 나이가 비슷한 아이도 있었는데 - 넷
딸린 클라라는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꽤 잘 알려진 사람이었고 앨리스 여사와도 가깝게 지내는 사
이였다. 아름다웠던 그녀는 부유했으나 제2차세계대전 동안 모든 것을 잃어버린 헝가리인 가족
에서 태어났다. 십대 시절에 수용소에 갇혔지만 결국 러시아 군대가 구해 주었고, 곡절 끝에 오
스트레일리아에 와서 정착했다.
클라라는 데이빗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나이가 좀더 들어가면서 데이빗은 점점 더 '생쥐'
쪽에 가까워졌으므로 클라라는 데이빗이 더할 나위 없이 다루기 쉬운 성격임을 알아차렸다. 데
이빗은 클라라의 관심이 기분 좋았고 얼마 안 가 클라라가 이끄는 대로 내버려두게 되었다. 해
리스 부부와 루버 스미스 부부는 두 사람의 친분관계를 깊이 염려했지만 그들로서는 어찌 할 도
리가 없었다.
몇 달 뒤 데이빗은 다시 ABC경연대회에 참가하여 Bb장조 협주곡을 연주했고, 다시금 주 결승
에서 우승했다. 클라라가 데이빗에게 청혼한 것은 이 무렵이었다.
"강요당한 셈이었어요." 데이빗이 털어놓았다. "어르고 달래고 꼬드긴 셈이었죠. 사실 나한테
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어요. 앨리스 여사가 결혼하라고 했거든요. 물론 앨리스 여사도 속
아 넘어갔던 거죠. 클라라는 두 얼굴이었어요. 클라라는 앨리스 여사를 속였고, 나는 앨리스 여
사가 시키는 대로 한 거죠."
그 당시 앨리스 여사는 데이빗에게 정식 동반자가 있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머
지 사람들은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다. "루버 아줌마와 남편은 나를 설득하면서 그만두라고 했
어요." 데이빗이 말했다. "루버 아줌마를 계속 이렇게 말했어요. '난 클라라를 알아.' 해리스 부
부도 같은 말을 했어요. 후회하게 될 거라고요. 다들 세상에서 제일 큰 실수를 하는 거라 했
죠." 그 때 데이빗은 가족과는 가깝게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 계획을 알리지도 않았다.
71년 7월에 클라라와 결혼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데이빗은 실수라는 것을 깨달았다. "크나
큰 실수를 했죠. 그렇지만 무슨 수가 있겠어요? 물은 이미 엎질러져 버렸는데."
해리스 부부가 친절하게 대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분들에게 연락해서 만날 것을 청했다.
만난 자리에서 그들은 클라라와 데이빗의 결혼에 대해 더욱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
은 클라라와 데이빗의 결혼으로 마음이 많이 상했었다고 했다. 결혼하자마자 데이빗은 두 사람
이 마련해 준 셋집에서 곧바로 떠나가 버렸고, 그 날 이후로 거의 연락을 끊고 지냈던 것이다.
나중에 정작 그들을 찾아왔을 때 데이빗은 혼자가 아니었다. 곁에는 클라라가 서 있었는데, 클
라라는 해리스 부부에게 데이빗을 위해 모은 기금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몇 년 동안 편안히
지내면서 연습할 수 있을 만큼 꽤 많은 액수였다. 해리스 부부는 그 돈은 데이빗 혼자 쓰도록
모은 것이라면서 거절했다.
그 날 데이빗도 평소와는 달리 용기를 그러모아 클라라에게 잘라 말했다. "그건 당신 돈이 아
녜요. 꿈도 꾸지 말아요."
데이빗이 아내의 본색을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해리스 씨네 집에서 그런 일이 있
기 몇 주 전 클라라는 데이빗이 ABC경연대회의 전국 결승에 선발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크
게 화를 냈다. 당시 자신감이 넘쳐 나는 상태가 아니었던 데이빗은 아내와 아이들에게 상금을
벌어다 주지 못한 일에 대해 심하게 당혹감을 느꼈다.
해리스 부부와 거리를 둔 때문에 데이빗에게는 또다른 문제가 생겼다. 연습할 피아노가 없는
것이다. 의회 의원이자 노인들을 위해 스완 오두막촌을 설립한 리처드 클리버가 데이빗의 사정
을 전해 듣고는 스완 오두막촌 사람들이 돈을 모아 데이빗에게 직립형 피아노를 사 줄 수 있도록
일을 주선했다. 피아노가 배달되자 데이빗은 다시 연습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겨우 며칠
동안 만이었다. 어느 날 데이빗이 집에 돌아와 보니 피아노가 없었다.
"팔아 버린 거예요! 나한테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생각해 보세요! 애초에 누구 피아노였는
데!" 데이빗은 지금도 그같은 클라라의 행동에 놀라워하며 그 때 겪은 상실감과 그 때 받은 부당
한 대접에 아찔해 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나는 기가 막혔다. 1985년 리처드 클리버가 우리에게 편지를 보내 스완 오
두막촌에 와서 연주회를 열어 달라고 부탁했을 때 우리는 기꺼이 무료로 연주해 주었다. 데이빗
은 그 뒤로도 여러 번 스완 오두막촌에서 연주했다. 그 정도는 보답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우리 두 사람 모두의 생각이었다.
클라라와의 결혼생활에 곡절을 겪으면서 살림 형편도 어려워져 갔다. 몇 번 독주회를 하기는
했지만 일자리를 구해야만 할 상황이 되었다. 데이빗의 연주를 여러 번 들어 그의 재능을 깊이
존경하던 조르그가 오페라단에 와서 일해 달라고 청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일레인 플린트는 베르디의 (가면무도회)를 연출할 때 데이빗과 클라라를 만났는데, 내가 나중에
그녀에게 연락했을 때 일레인은 데이빗에 관한 그 무렵의 기억은 슬픈 것들뿐이라고 했다. 클라
라는 사람들 앞에서도 데이빗을 조롱하며 괴롭혔고, 오페라 단원들과 데이빗 사이의 친분을 혐오
하여 강한 소유욕을 드러냈다.
클라라는 특히 데이빗과 조르그 사이의 우정을 견딜 수 없어 했다. 급기야 데이빗에게 턱수염
까지 기르게 했다. 데이빗은 두 사람사이의 우정에다 '파괴공작'을 하기 위해서 클라라가 그랬다
면서 늘 이해할 수 없어했다.
데이빗의 친구들을 클라라가 싫어한 때문에 생긴 문제는 또 있었다. 데이빗이 오페라 공연을
보러 가고 싶을 때에는 늘 몰래 집을 빠져나왔다가 다시 몰래 들어가야 했다. 어떨 때에는 입장
권 조각을 주머니에 넣어 둔 채 깜박 잊고 그대로 집에 들어갔다가 낭패를 당하기도 했다. 클라
라가 데이빗의 주머니를 뒤지다가 입장권 조각을 발견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데이빗은 이렇
게 말했다. "그러면 길길이 뛰었죠! 헝가리 사람들은 성격이 불 같아요! 세상에, 벌을 얼마나
심하게 받았는지! 맙소사! 얼마나 지독하게 벌을 받았는지! 그 욕설, 그 욕설하며! 그 부분은
상상에 맡기겠어요. 입에 담고 싶지도 않아요... " 데이빗은 그 때 일을 떠올리면서 부르르 떨었
다.
어느 날 몇몇 사람들이 리카도에서 나에게 말하기를 70년대 초의 데이빗을 기억하고 있다고 했
다. 그 때 데이빗과 클라라 집 근처에 살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데이빗이 종종 뒤뜰에서 네
발로 엉금엉금 기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들려주었다. 1972년 무렵에 들어 데이빗의 연주활동은
거의 전무한 수준으로 떨어졌고 건강도 극도로 악화되었다. 1973년에는 침대에서 거의 일어날
수가 없었고 나락으로 치닫고 있었다.
1974년 초에 클라라는 수술을 받게 되었다. 데이빗을 집에 홀로 남겨 둘 수가 없어서 클라라
는 그레이랜드 정신병원에 그를 두 주 동안 입원시켰다. 집으로 데려가려고 클라라가 병원에 나
타났을 때 데이빗은 클라라를 퇴원하지 않고 병원에 계속 남아 있기로 작정했다.
피터는 그레이랜드 병원으로 가끔씩 아들을 찾아갔는데, 데이빗은 피터에게 클라라와 이혼하고
싶다고 하면서 클라라 집에 있는 자기 악보와 갖가지 경연대회에서 받은 메달을 찾아 달라고 부
탁했다. 피터는 클라라를 찾아가서 돌려 달라고 애원했지만 클라라는 없다면서 거절했다.
"그건 지옥에서 주선하고 악마가 축복하고 주례를 선 결혼이었어요." 두 사람의 결혼생활에 대
해 데이빗이 궁극적으로 내린 결론이었다.
그 무렵에는 데이빗이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배려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점은 알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해리스 부부가 받은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해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결혼 주례로도 활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클리프에게 우리 결혼식에서 주례를 서 달라고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