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보리행론, 행복수업 합본] 6-13,14
1) 종진 거사님
달라이 라마의 입보리행론 강의
빼마까라 번역 그룹 편역 /이종복 옮김
2563. 12. 4
제 6 장 인욕(忍辱)의 실천
괴로움을 싫어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역경을 참을 수 있는 의지력을 키울 수 있다면, 인내심은 점점 더 튼튼하게 우리 마음속에 뿌리내릴 것이다. 산띠데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14.
모든 것은 익숙해지면
[견디기]쉬워진다.
그러니 작은 고통에 익숙해짐으로써
큰 고통을 견뎌낼 수 있게 된다.
宗眞 寫經 合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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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연성 불자님
입보리행론
샨띠데바 지음
청전 스님 옮김
2563. 12. 4
제6장
인욕품
13
어떤 고행자들과 까르나빠 사람들은
잘리고 지지는 고통을
쓸데없이 감수한다. 해탈을 위한다는
나는 어찌하여 겁쟁이인가?
14
익숙해지면 쉽지 않은 대상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므로 작은 해로움에 익숙해져
큰 해로움을 참도록 하라.
수연성 사경 합장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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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법전 거사님
입보리행론 역주
샨티데바 著
최로덴 역주
2563.12.4.
제6장 인욕품(忍辱品)
6-13
고행을 믿는 까르빠는
불타고 잘리는 [난행의] 고통을
의미 없이 [잘도] 참는데 해탈을
바라는 나는 무엇을 두려워 하는가.
6-14
익숙해지면 쉽지 않은
대상은 아무 데도 없으니
따라서 작은 어려움에 익숙해져서
큰 어려움도 참을 수 있게 해야 하리라.
사경자 법전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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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법귀의 불자님
입보리 행론
샨띠데바 지음
청전스님 옮김
2563. 12. 4
제6장 인욕품
6-13
어떤 고행자들과 까르나빠 사람들은 잘리고 지지는 고통을 쓸데없이 감수한다. 해탈을 위한다는 나는 어찌하여 겁쟁이인가?
6-14
익숙해지면 쉽지 않은 대상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므로 작은 해로움에 익숙해져 큰 해로움을 참도록 하라.
법귀의 사경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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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지원 불자님
샨티데바의 행복수업
김영로 옮김
2563.12.04.
제 6 장 인욕(忍辱)바라밀
6-13
힌두교의 여신 두르가(Durga)를 믿는 사람들은
불에 타거나 칼로 베이는 고통을 쓸데없이
견디는데, 최고의 깨달음을 얻겠다는 사람들이
어째서 이렇게 용기가 없을까요?
6-14
습관을 들여도
쉬워지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작은 고통에 익숙해지면
우리는 큰 고통을 견딜 수 있습니다.
지원(智源) 사경 합장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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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묵인 불자님
입보살행론광석 (上)
적천보살 게송 / 수다지 켄뽀 강해 / 지엄 편역
2563. 12. 04
제6품 인욕
2. 인욕을 닦는 법
(4) 화내는 원인을 찾아내 힘써 끊음
② 화냄을 제거함
A. 내가 손해입음을 인하여 화냄을 막아 제거함
a. 마땅히 몸의 고통을 참음
6: 13
苦行伽那巴 無端忍燒割
五今求解脫 何故反畏怯
고행하는 외도 자나빠는 의미 없이 신체를 태우거나 베는 고통을 참는다. 나는 해탈의 큰 이익을 구하면서 어째서 도리어 고통 받기를 두려워하는가?
6: 14
久習不成易 此事定非有
漸習小害敵 大難亦能忍
긴 시간 익혔는데도 적응하기 쉽게 변하지 않는 것, 이러한 일들은 절대 없다. 점점 작은 손해부터 참는 것을 닦으면 큰 고난이 닥쳐도 충분히 참을 수 있다.
* 자나빠는 고인도의 고행을 신앙으로 하는 남인도 자나빠 지방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고행을 신앙으로 하는 자나빠의 외도들은 매년 가을 초9일에 시작하여 삼일동안 자신의 신체를 태우거나 신체 일부를 베어서 그들이 신봉하는 신령에게 진리를 구걸하였다. 자나빠인들은 월식 때 또한 온갖 방법으로 신체를 찢고 불태운다. 인도에서 이러한 외도의 고행은 결코 단지 고대의 전설일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여전히 존재한다.
예를 들면, 대자재천을 신앙하는 외도 신도들은 종종 소위 ‘신의 은총’을 얻기 위하여 갖가지 방법으로 자아 학대를 진행하고 어떤 외도들은 범천을 닦기 위하여 자신의 머리를 베며, 어떤 외도는 철사, 철 갈고리로 신체를 뚫고 찢어 자신의 피로 신에게 제사지내는 등,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온갖 자아 학대 행위가 있다.
그들은 이러한 소위 고행이 그들에게 무슨 선법 성취를 가져다 줄 수 없고 그들을 위해 업장을 없앨 수도 없다. 오직 자해만 있을 뿐 근본에 진실한 의미가 없으나 그들은 모두 끝없이 이러한 고통을 참을 수 있다.
우리가 불법을 닦는 목적은 자타 일체중생의 궁극 해탈이고 모든 부모 중생이 최종의 안락을 얻게 하기 위함이니, 이렇게 위대하고 숭고한 사업을 위하여 무슨 이유가 있어 고통 받는 것을 두려워하겠는가? 불법을 닦는 과정에서 추위 · 질병 · 피곤 등을 직면하는 것을 우리는 조금의 나약함도 없이 참아야 하며 성불 사업은 공중누각, 수중월영처럼 허황된 것이 아니다.
지난날의 고승 대덕들을 돌이켜보면 그들은 생생한 사실을 가지고 우리에게 알려주며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선지식의 가르침과 인도에 의지하여 수행한다면 자리이타의 사업은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
나는 고승전에서 당 현장법사가 인도에 경을 구하려 가는 부분을 보았는데 늘 그것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우리 후대의 법을 배우는 사람들은 왜 본받을 수 없으며 무슨 이유로 수행중의 작은 고통과 해로움들을 참을 수 없는가?
6: 14. 중생들이 집착하고 아끼는 모든 법은 오랜 시간 습관이 되어 이루어진 것이므로,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습관이 되기만 하면 천천히 적응하기 쉽게 변하고 변하면 자연 어떤 곤란도 없어지며 이 점을 우리 각자는 생활 속에서 아마 경험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막 티베트어를 배웠을 때는 낯설고 매우 어려우며, 발음, 쓰기, 문법 등 모두 자기에게 골칫거리가 되나 진정으로 공부를 하면 천천히 마음먹은 대로 되어 더 이상 힘들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며, 아주 긴 진언을 염송할 때 우리는 목을 길게 빼고 머리를 흔들며 말을 더듬지만 일단의 시간이 지나 익숙해진 뒤에는 또한 유창하게 외울 수 있으며 어떤 곤란함도 없다.
상사 여의보는, ‘듣고 사유하고 수행하는 것들이 모두 이와 같다. 반드시 익숙해지는 과정이 있어야만 한다. 습관이 된 뒤에는 더 이상 어떤 곤란도 겪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어떤 일을 할 적에 만약 오랜 시간을 거쳐 연습했다면 습관으로 변하여 자연스러운 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습관의 역량은 불가사의하여 틀림없이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다.
샤꺄빤디따가 말하되, “어떠한 일을 막론하고 만약 사람이 습관이 되어 작은 어려움도 없는 것은 마치 학습이 뛰어나고 밝아진 것과 같아 불법을 닦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말하였다. 인욕을 닦을 때 만약 오랫 동안 닦을 수 있다면 우선 미세하고 작은 손해를 참도록 습관을 들인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의 자신에 대한 차가운 말, 희롱, 모욕, 주먹으로 치는 것 등, 아주 작은 손해들을 날마다 참는 것을 견지한다.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 이러한 인욕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습관으로 변하여 점차 비교적 큰 손해에 대해서도 감당할 능력이 생길 것이며, 인욕의 역량이 습관화되어 성숙해진 뒤에는 타인의 온갖 손해의 고뇌 내지는 살해를 직면하더라도 태산처럼 평안하게 참을 수 있어 어떤 곤란함도 없게 된다.
용수 보살은 말하되, “유정의 공덕과 잘못은 바로 습관을 이루고 습관은 또한 자신에 의지한다. 그러므로 힘써 선법 공덕을 닦아야 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모두 해탈을 바라는 사람으로 이 때문에 악업의 습관을 버리고 선법 공덕을 쌓는 방면을 향하여 노력해야 하며, 만약 작은 부분에서부터 착수하여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연습할 수 있다면 장래 반드시 인욕선인 같은 그러한 인욕 역량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이로써 신속하게 거대한 복덕 자량을 쌓을 수 있다.
만약 능동적으로 습관을 들일 수 없고 현재의 아주 작은 고뇌에 대해서 참을 수 없다면, 장래 큰 악연의 고통을 만나면 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참지 못하고 성을 내는 잘못은 앞에서 이미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인욕행 닦는 것을 «입중론» 에서 “인욕행으로 원만한 상호를 이루어 선지식이 반기며, 보살의 방편으로 남의 잘못을 내 것으로 삼는다.
이 공덕으로 죽은 뒤 인천에 태어나 지은 바 중죄는 모두 다한다.”고 말하였다. 우리 불법을 닦는 사람들은 모두 이 공덕에 대하여 마땅히 힘써 추구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아마도 “비록 오랜 기간 습관이 되어 고뇌를 참을 수 있을지라도, 어찌되었건 간에 그러한 악연 고통을 직면하였을 적에 자신의 내면은 틀림없이 여전히 고통스런 느낌이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할 것이며, 이 때문에 인욕을 닦는 용기를 잃는다면 이것은 사람의 비이성적인 생각이고 만약 오랫동안 인욕에 습관이 들어 일정한 정도에 도달한 뒤라면 모든 크고 작은 고통이 더이상 우리에게 고통을 생기게 하지 않고 안락을 느끼게 할 것이다.
«부자상회경»에서, “세존에게는 모든 법 안락행이라 불리는 삼매가 있다. 만약 누군가 저 삼매를 증득하면 저 보살은 일체법에 따라 즐거움을 느낄 뿐 고통을 받지 않는다.”고 하며 또, “만약 지옥의 고통을 가지고 저에게 핍박해도 항상 안락의 생각에 안주한다.”고 말하였다.
인욕은 오랜 수행에 의지하여 자연적으로 습관화되어 이루어질 수 있다. 기왕에 이와 같다면 우리들은 또 어째서 환희의 마음으로 수행에 노력하지 않는가? 수행인들은 모두 인욕도가 원만하지 않으면 대수인91),
대원만92)의 현생 성취와 자리이타의 과위는 자신과 현저하게 멀어진다는 것을 알며, 인욕을 행함이 결코 크게 곤란함이 있는 것은 아니므로 반드시 최선을 다해 수행해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인욕을 닦을 기회는 매우 많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고 자신의 마음을 관찰한다면 마음의 흐름 중에 고통을 감수하며 참기를 원하지 않는 생각이 많음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가 겨울 아침에 추워서 일어나기 싫어하며, 강당에 오래 앉아 있어 허리 아픈 고통을 받기 싫어하며, 여기저기 마구 돌아다니고 싶어 하는 등, 이때가 바로 인욕을 닦을 기회이며, 특히 단체생활 시는 평상시 사람이 많기 때문에 아주 작은 충돌들을 피하기 어려운 때에 만약 참을 수 없다면 우리의 소위 수행이라는 것이 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비록 범부에게 모든 부처님 보살처럼 인욕바라밀을 성취할 능력은 없을지라도, 우리는 결국 보리심을 낸 불자이며 부모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불과를 증득하려는 서원을 세웠으므로 이를 위하여 반드시 일상생활에서 모든 크고 작은 곤란에 직면하여 아주 성실하게 자신의 인욕 수행을 실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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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티베트 불교 까규파의 수행요결이며, 인도 후기 대승불교 유가행 성취자들이 직접 전한 바이며, 일불승의 견수행과를 총섭한다.
그 교의는 선종의 심지법문과 가까우며 티베트 불교의 정법안장이라 일컬어진다.
92) 티베트 불교 닝마파의 최상의 수행방법, 마음의 체가 순진무구함을 깨달아 마음이 비어 밝고 깨끗한 하나의 도리에 안주함에 설하며 중국 선종의 심지법문에 가까움.
묵인 사경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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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심인덕 불자님
입보살행론
샨티데바 보살 지음
석혜능 편역
2563. 12. 4
제6장 인욕바라밀
6-13
힌두교의 두르가 여신을 믿는
까르나빠 외도는 쓸데없이 몸을 태우고 칼로 베이는 고통도 견디는데, 최고의 깨달음이라는 큰 이익을 얻기를 바라면서 인내하지 않고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6-14
익숙하게 습관을 들이면
쉽게 되지 않는 일은 아무 것도 없나니, 그러므로 작은 어려움을 참는 것에 익숛새지면 큰 어려움도 참을 수 있게 된다네.
심인덕 사경 합장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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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편집 법전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