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기하라 경술망국''
한국인은
8·15 광복절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망국의 국치일은 거의 모른다.
설혹 안다 하더라도 경술망국의 원인을 단순히 일제의 침략
때문이라고만 생각할 뿐 내적 원인을 묻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아무리 강대한 국가라도 멸망할 때는 자체 붕괴의
요인이 내부에 조성된 후 외적의 침입에 따라 멸망한다 게 역사의
법칙이다. 저 강대했던 로마제국이나 대당제국 또는 일본제국의
멸망 과정이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한말의 대한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청, 일, 로, 미,
영 등 선진열강의 각축이 날로 치열해가고 있었음에도 국제정세에
무지했던 위정자들은 파당 위주의 정쟁에 영일(寧日)이 없어
한말 우리사회는 난마(亂麻)와 같은 혼란상태였다. 한말과
비교하여 오늘날 우리 사회의 실태는 과연 어떠한가. 그동안
한국이 농업사회에서 공업사회로 변화되었다는 점 이외에는
그 당시 와 별 차이가 없다.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국제정세는
한말과 매 우 비슷한 데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는 국토분열이라는
비경에 처해 있다. 우리 사회 내부의 실태 또한 1백년 전과
유사하며 30여년 간에 걸친 군사정권 치하에서 조장된 사회적
폐해는 더욱 심각하다. 권위주의와 비리, 부패 현상은 사회를
뿌리 채 오염시켰으며 심지어 젊은 세대까지 이에 감염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평범한
교훈을 다시 한번 되 새겨야 한다. 사회에 누적된 폐해를 청소하기
위하여 정부가 '제2의 건 국'을 표방한 이 시점을 계기로 사회
각 부분에 걸쳐 잠재해 있는 문제점을 적출하여 이에 관한 개혁방법을
정밀하게 검토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물론
범국민적인 의식개혁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도층사회가
자체 정화로 상실된 국민의 신뢰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1941년 12월8일 일본이 하와이의 미국 군사기지를 공격해 태평양
전쟁을 발발(勃發)시킨 후 미국민들은 '상기하라 진주만'(Remember
Pearl Harbor) 이라는 구호를 마음속에 새겼다. 우리도 경술망국을
국민교육의 일환으로서 전국민의 뇌리에 깊이 각인(刻印)시켜야
될 것이다.
[기고] 국치일 88주년,
망국교훈 잊었는가...정병학 (1998년 8월 28일 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