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에서 안과 병원을 운영하는 이모(45)씨는 최근 라식·라섹 등 시력교정 수술비를 인상할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수술에 사용되는 의료용 ‘엑시머 레이저(Excimer Laser) 가스’ 가격이 끝을 모르고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최근 엑시머 가스 값이 폭등하면서 안과 병원들이 수술비를 올릴지 서로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며 “환자들이 떠나갈까 봐 우리가 먼저 수술비를 인상할 수도 없어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라식·라섹 등 시력교정 수술에 사용되는 엑시머 레이저 가스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전국 안과 병원에 비상이 걸렸다. 엑시머 레이저 가스 한 통 가격은 지난해 평균 1200달러(약 135만원) 수준에서 현재 2만5000달러(약 2800만원)로 20배 넘게 올랐다.
엑시머 레이저 가스 값 폭등은 크림반도 일대와 우크라이나의 정세 불안 탓이다. 우크라이나가 엑시머 레이저 가스의 주원료인 네온 가스의 주요 생산지이기 때문이다. 엑시머 레이저 가스는 네온 가스 95%에 불소·아르곤 등 특수 가스를 혼합해 생산한다.
하지만 지난해 3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자치공화국이었던 크림공화국을 강제 합병하면서 네온 가스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반군 사이에 교전이 수시로 벌어지면서 가스 생산을 멈추는 공장들이 속출했다. 올 2월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 휴전 협정이 체결됐지만 최근까지도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산발적인 교전이 이어지는 등 불안한 정세가 계속되고 있다.
수입업체들은 엑시머 레이저 가스 한 통당 가격이 5만5000달러(약 6200만원) 수준으로 현재보다 2배 이상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상원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3억 달러(약 3470억원)대 군사 지원을 승인하면서 우크라이나 일대에 군사적 긴장감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한 수입업체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현지에선 내전으로 아예 가동을 멈춘 공장도 적지 않다”며 “미국 상원의 결정이 반군을 자극해 정세가 더 불안해질 경우 엑시머 레이저 가스 값이 지속적으로 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라식·라섹 등 시력교정 수술은 1990년대 초반 국내에 도입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한 해에 20만 명가량이 시력교정 수술을 받고 있다. 병원이나 눈 상태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수술비용은 보통 150만~250만원 수준이다. 엑시머 레이저 가스 값이 계속 오를 경우 수술비용 역시 인상될 수밖에 없다. 서울에서 안과를 운영하는 강모(43) 원장은 “안과 의사들 사이에 ‘라식·라섹 시술을 하면 오히려 손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며 “가스 값이 안정되지 않을 경우 수술비 인상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망막박리치료 수술에 사용되는 C3F8(과불화프로판) 가스 역시 러시아산 가스 물량이 부족해지면서 문제를 겪고 있다. 망막박리치료는 라식·라섹처럼 보편적인 수술은 아니다. 그러나 일부 병원에서 러시아산 가스 대신 중국산 C3F8 가스를 사용하면서 의료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지난 1~2월 제주도 지역의 한 병원에서 망막박리 증상으로 중국산 가스 주입 수술을 받은 지모(60)씨와 이모(40)씨가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고, 홍모(62)씨는 시력저하 증상이 나타났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엑시머 레이저=네온·불소·아르곤 등을 혼합해 만든 가스에서 나오는 193나노미터(nm)의 파장을 가진 방출광. 1995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공식 승인하면서 라식·라섹 등 시력교정용 수술에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라식·라섹 수술 시엔 시력 자료가 입력된 컴퓨터가 레이저를 조절해 각막 부위를 절제·연마하는 방식으로 사용된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첨단 제품 제조에도 쓰인다.
손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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