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무변한 하늘 아래 펼쳐진 협곡, 그랜드캐니언의 인상. (김병종, 대협곡, 33×58㎝, 한지에 먹과 채색, 2019)
그랜드캐니언, 신(神)의 골짜기
가끔씩 황량함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자
그곳은 지붕 없는 수도원
기둥 없는 사원 같으니
그 속에서 사랑과 죽음과
태어남과 소멸을 묵상해보자
무수한 세월
비와 바람이 다녀간 곳.
햇빛과 어둠이 머물다 간 곳
새로운 빛과 남아 있는 어둠 사이에 서서
골짜기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태양의 거친 숨소리와 화염
그리고 너무 고와 오히려 처연한 낙조를 바라보자
인생의 모든 승리는 그 앞에서 초라하고
모든 속죄 또한 남루하다.
모든 욕망은 비열하고 말고다.
흙과 바람과 모래의 소용돌이 속에 육신을 뉘어보자
가만히 누워 귀 기울이면 크게 우는 짐승의 소리 같은
땅울림이 들리는 것 같지 않은가
혹은 멀리서 들려오는 옛 인디언의 나팔소리도
그랜드캐니언
이곳은 창조의 여백
신은 바위와 흙 사이로 구멍을 내시고
물과 빛이 그 안으로 스며들게 하려다가
그리하여 뭔가 빚어내려 하시다가
문득 안식일의 아침이 되니
재료만 버무려 놓고 일어나시다.
그러나 그 솜씨 미완성이라 해도 위대하다
예상치 못한 네모, 부드러운 삼각
흙은 흙에 연이어 달리고
돌올한 암석과 절벽
그 속에서 물은 희게 빛난다.
인생의 모든 연약과 슬픔
남모르는 상처와 아픔
이곳에 서서 저 장엄하게 떠오르는 해를 마주하고
그 화염 속에 묻히다 보면
모든 시름과 덧없는 욕망
어느새 먼지처럼 우주 멀리로 날려가 버리려니
그러니 가끔씩
황량함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자
멀리 구슬픈 옛 인디언의 나팔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그곳으로
그리하여 황량함이 아름다울 수 있음을 배우지.
땅에서 솟아오른 저 많은 흙덩이 속에 서서
나도 작은 흙덩이 하나로 그렇게 잠시 솟아오르는 존재일 뿐임을
그러다 다시 육신의 흙집이 무너지면
가느다란 숨소리마저 끊겨져
본래의 흙으로 돌아갈 것임을 깨닫게 되리니
이곳은 지붕 없는 수도원
기둥 없는 사원
인생의 어렵고 슬프고 막막한 시간마다
이 황량함 속으로 찾아와
아침과 밤을 맞고 보낸 다음
다시 굳건히 일어서서
돌아갈 수 있기를.
■ (16) 그랜드캐니언
도시의 삶은 철저한 외로움
무리에 있어도 ‘고독’ 느껴
한번쯤은 사막·광야로 여행
스스로와 만나는 시간 필요
‘신의정원’ 자이언캐니언 등서
꿈틀대는 ‘북미의 위용’ 느껴
도시에서의 삶은 철저히 ‘홀로’의 삶이다. 함께 있어도 외롭다. 끊임없이 여러 온라인에 연결돼 있지만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외롭다. 트위터와 팔로어의 숫자는 늘어가도 제로섬 게임처럼 결국 ‘관계’는 부서지고 뒤틀리면서 절절한 외로움의 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이자 작가인 지그문트 바우만은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서 내과의처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의식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다. 한사코 외로움과 고독을 두려워하며 무리 속으로 들어가려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은 그 무리로부터 튕겨 나오거나 심지어 무리 속에 있을 때라도 엄습해오는 절절한 실존적 외로움과 고독에 대해 어찌할지 묻고 있다. 전자기기와 온갖 매체가 만들어내는 플라스틱 관계들이 기승을 부릴수록 인간은 외로움의 수렁으로 더 깊숙이 빠져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람들이 그 고독으로부터의 도피를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스스로 즐거움의 질을 디스하는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이라고 이른다.
그러니 이즈음에서 하루 이틀 길, 홀로 사막이나 광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광대한 우주의 한 지점에 서서 스스로와 대면해보는 여행은 어떨까. 한밤중 하늘을 보며 대체 별들은 왜 저리도 총총하며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어디인지, 그리고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곳은 어디며 나는 장차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인지 창공에 대고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
때로는 문명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보다 광대한 우주의 한 켠에 서서 홀로 묻고 답을 기다리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광야에서 예수를 만난 바울은 사람을 찾아다니는 대신 홀로 아라비아로 걸어갔을 것이다.
질문이 너무 크면 그 답은 왜소한 인간의 너머에 존재하고 있으리라는 것을 그는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 우주에 대고 직접 묻고 그 답을 기다리자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랜드캐니언, 유타주를 가로지르며 멀리 애리조나주까지 뻗어나간 대협곡. 억겁의 세월 동안 바람과 물과 공기가 만나고 틀어지며 만들어낸 장엄한 풍경. 고층빌딩의 숲을 이루며 단아한 유럽 도시 문명의 전통을 여지없이 깨트려버린 미국에서 그랜드캐니언은 반전도 그런 반전이 없다. 황토와 괴석 그리고 바위산을 돌아 흘러가는 콜로라도강의 천년 물길은 사람이 지어 올린 빌딩들에 비교될 수 없다. 문명과 원시가 한 나라 안에서 이렇게 제각기 존재의 유형을 달리하며 세월을 뚫고 가는 모습이라니.
‘신의 정원’이라 불리는 자이언캐니언, 살아 있는 동안 꼭 가봐야 한다는 브라이트 에인절 트레일(Bright Angel Trail). 이곳에 오면 비로소 전설 같았던 북아프리카의 위용과 위시가 꿈틀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파블로 네루다는 ‘모두의 노래’ 중 ‘나무꾼이여 깨어나라’에서 아슴푸레한 그 땅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다.
아름답고 광대하도다. 북아메리카여/ 너의 조상은 세탁하는 여인처럼 한미한데/ 너를 적시는 강가/ 새하얀 그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만들어진 너의 벌꿀집의 평화가 너의 달콤함. 우리는 사랑하노라./ 오레곤의 진흙으로 손이 붉은 너의 사랑을 너의 검은 아이./ 상아의 땅에서 태어난 음악을 네게 가져다준 아이를,/ 우리는 사랑하노라…….
그랜드캐니언에 와서 한밤중 와르르 쏟아질 듯한 별들을 보면서 비로소 ‘행복하려면 많이 가질수록 좋다’는 논리야말로 빈자(貧者)의 철학에서 나온 것임을 알게 된다. 행복의 원인에 대해 전혀 다른 방향에서 잘못 생각하고 출발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랜드캐니언의 밤에는 다른 무엇보다 별빛들을 모아 스스로 내면을 비추어 볼 일이다.
덧없는 것을 영원한 것으로 잘못 알고 한사코 붙잡으려 했던 마음. 강박적 쾌락과 가짜 기쁨에 목마르던 나날…. 그랜드캐니언에서는 시작과 끝이 없다. 심지어 죽음도 삶의 한 형태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엄습하는 알 수 없는 충만과 평온, 도시로 돌아가서도 제발 이 느낌만은 지속되기를.
김병종 화가·서울대 명예교수
콜로라도강 따라 형성된 거대 협곡… 지구의 ‘20억년 세월’ 그대로
그랜드캐니언은 미국 애리조나주 북서부 고원지대가 약 7000만 년 전 시작된 융기 현상에 의해 해안지대였던 지층이 3000m 이상 상승했고 콜로라도(Colorado)강에 의해 침식된 협곡이다. 콜로라도강 유역을 따라 형성된 거대한 협곡인 그랜드캐니언은 세계 7대 자연경관 중 하나로 꼽힌다.
앤털로프캐니언(Antelope Canyon)에 가면 유수의 힘이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고 곧바로 물결이 살아 움직일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 외에도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 호스슈밴드, 토로윕 오버룩(Toroweap Overlook) 등은 사진가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아름답고 장엄한 그랜드캐니언은 20억 년 지질학 역사의 산증인이며 7000m의 바위 절벽은 지구의 역사를 고대부터 최근까지 차례로 보여준다. 이 계곡이 아름다워서 유명한 것도 있지만, 지질학적으로 지구의 역사를 알리는 본고장이라는 이유로도 유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