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모의고사에서 외국어 영역은 EBS 지문을 2~3개 활용하는 정도였습니다. 아마 앞으로 EBS와 더 비슷하게 출제하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6일 서울 센트럴시티 밀레니엄홀, 3300 여 명의 학부모와 학생들의 눈과 귀가 연단 위 강사의 말 힌마디 한마디에 집중됐다. 매년 입추의 여지가 없는 종로학원의 입시설명회이지만 올해는 특히 더 열기가 뜨거웠다. 그도 그럴 것이 EBS에 출연하는 이 학원 강사들이 직접 나와 출제 경향을 분석하는 자리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EBS 강의 내용 중에서도 출제하겠다는 정부의 방침 대로라면 EBS 수능 강사들은 수험생들에게 ‘준출제위원’이나 다름없다.
유명 학원 강사들의 강의를 인터넷으로 볼 수 있도록 한다는 EBS 수능 강의는 이처럼 사교육에 더 쉽게 접근하도록 했을 뿐 공교육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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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교사들은 교육인적자원부의 EBS를 통한 사교육 근절 대책에 대해 “비참하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서울 ㅅ 고등학교 김모 교사는 “교사가 EBS 안내 보조자로 전락한 것 같아 힘이 빠진다”며 “교육부 자체가 학교와 교사를 신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토론 중심 7차 교육과정에 어긋나”
서울 ㄷ 여고 조모 교사는 “토론을 지향하는 7차 교육과정에서 교육부가 나서서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교육을 조장하고 있다”며 “EBS를 강조하는 정책은 지극히 이율배반적”이라고 비난했다. 조교사는 “쓰기, 토론 등 학교 수업을 통해 길러야 하는 부분이 있음에도 EBS 문제 풀이만 강요하는 것은 학교 수업 경시 풍토만 불러 올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의 ㅈ 교사는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입시 결과에 자유로울 수 없고, 교육당국이 강력히 추진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이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지난 2일 보도자료를 통해 “EBS 수능강의 내용을 중요한 ‘국가고시’ 가운데 하나인 대학 수능시험에 그대로 반영려는 것은 EBS에게 우리나라 공교육에 대한 평가권을 독점적으로 부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EBS 강의가 우리나라 공교육의 기준과 내용을 사실상 좌지우지하게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인터넷으로 보는 EBS 수능 강의에서 학원 강사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절대적이다. 외국어영역의 경우 초급, 고급 강의를 가르치는 강사 5명 중에 현직 교사는 한 명도 없다. 수리영역도 여섯 명 중 현직 교사는 단 한 명에 불과하다. 서울 ㄱ 여고에 근무하는 한 영어교사는 “EBS 교재 제작이나 중급 과정 강의에는 현직 교사들이 상당수 참여하는데 고급 과정 강의에는 왜 현직 교사들이 적은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하반기부터 시도교육청 추천을 받은 28명의 현직 교사들을 프로그램 제작과 교재개발 과정에 참여케 할 예정이다.
e-러닝으로 사이버가정학습 갖춘다
EBS 인터넷 수능강의 첫날인 지난 4월 1일 서울의 한 고등학교 멀티미디어실에서 인터넷으로 다운받은 동영상 수능강의를 학생들이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공부하고 있다. [사진=연합]
한편 교육부는 지난달 27일 ‘사교육비 경감대책’을 보완하고 공교육의 내실화를 꾀하기 위해 ‘e-러닝 지원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교사, 학생, 학부모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계한 쌍방향 시스템을 통해 ‘수준별 맞춤 학습’을 실현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교육부는 오는 8월말까지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 다섯 과목의 수준별 수업자료 6000여 건을 서비스할 예정이다. 교육부는 또 희망하는 시도부터 사이버가정학습을 실시할 계획이다. 교육청의 교수학습센터를 통해 원하는 학생은 사이버 학급에 등록할 수 있도록 하고, 사이버 선생님으로부터 교과, 진로, 진학상담 등을 받게 된다. 여기에 투입되는 예산은 221억 원. EBS 수능 방송이 인터넷을 통한 사교육 근절 대책이었다면 ‘e-러닝 지원체제’는 공교육 살리기를 위한 정책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서울대 임철일 교수(교육학)은 “주로 산업 현장에서 활용돼 온 원격 강의 방식이 교육 현장에서 얼마나 효과를 보일 지 의문”이라며 “EBS에서부터 e-러닝 체제까지 정부가 나서서 원격 강의를 획일적으로 강요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사교육은 오히려 ‘EBS 마케팅’
유명 입시학원이나 온라인 강의 업체들은 지난 2일 실시된 수능 모의고사에서 EBS와 비슷한 유형의 문제가 많이 출제되었다고 판단하고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EBS 강의에 출강하는 강사를 많이 확보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업체도 있다.
종로학원 김용근 실장은 “토요일을 활용해 강좌별로 EBS 강의를 틀어주며 자율학습을 실시하고 있다”며 “수능 모의고사 결과를 토대로 EBS 강좌와의 연관성을 분석해 교재 제작에 참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사 6명이 EBS에 출강하는 종로학원으로서는 발빠르게 대응하기 유리한 입장이다.
대성학원 측도 2일 모의고사 이후 모의고사 이후 주요 학원들의 강의 커리큘럼이 EBS처럼 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EBS 방송교재를 해설하는 강의를 신설할 방침이다.
온라인 교육 업체로는 가장 많은 다섯 명의 EBS 강사를 확보하고 있는 ㅅ 사 관계자는 “우리 강사들이 EBS 강의를 통해 무료로 강의하는 것이 당장은 손해인 것처럼 보이지만 EBS 강의가 날로 중시되는 분위기에서 교재나 강의내용에 신뢰도를 높일 수 있어 이를 충분히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부 온라인 업체에서는 모바일 핸드폰으로도 강의를 듣거나 질문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다음 이름 지혜님은 EBS 토론 게시판에 “학교에 ‘EBS강사들이 직접 쓴 책과, 직접 녹화한 강의로 EBS를 잘 요약했다’는 광고 전단지를 돌리는 사람을 봤다”며 “가격이 24만원이나 하는 것을 보고 씁쓸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