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안방 화장실 옆 파우더 룸이 그 당시 그의 공간이었고, 4, 6주가 되면 최소 1kg 이상의 몸무게를 유지해야 하는데 이 아이는 영양실조로 겨우 200g 미만이었다. 인생 여정에 함께하는 인연은 사람과 사람으로만 한정됨이 아니듯이 우주 만물 생명, 무생명을 차치하고도 어느 날 우연히 맞닥뜨린 한 번의 만남이 훗날, 인연이란 이름으로 자리한 내 경험의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한다. 차고도 넘치는 세상 잡사 에 나는 가여운 한 생명의 지친 소리를 듣게 된다. 작년 7월 더위가 한창 기승일 때 예약된 병원 진료로 지하 주차장으로 내 려와 차 문을 열려는데 어디선가 새끼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반사적으로 뒤돌아보나 고양이는 보이지 않고 연이어 들 리는 울음소리가 예사롭지않은 생명이 일각에 놓였다는 직감이 든다. 몹시 지친 새끼 고양이 울음에도 예약 시간이 조급해 차 문을 열지만 찌는 듯한 더위가 다시 내 발목을 잡는다. 그날따라 최정점의 폭서에 지하 주차장은 열기로 가득했다. 그런 공간에 기운이 다한 듯한 새끼 고양이 울음은 누군가의 도 움이 없다면 죽음도 예측함에 소리 나는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평소 애완이니 반려니 하는 동물들과 십수 년을 함께한 힘든 경험에 손주들이 소원을 해도 허락하지 않은 것이 애완동물 키우기였다. 특히 고양이는 내겐 기피 동물이었다.그러나 이 긴 박한 울음소리에 누군들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귀를 세우니 소리 난 곳이 바로 우리 아들 차 아래인 듯했다. 급한 마음에 몸을 숙여 차 아래쪽을 훑었으나 어둡기도 했지만, 내 시력으론 감당되지 않았다. 예약 시간을 놓칠 거 같아 일단 차에 올라 시동을 걸며 마침 휴가 중인 아들에게 전화한다. 고양이 상황을 대충 설명하며 빨리 내려와 고양이를 찾아 지상에 있을 어미를 찾아주라는 명령 아닌 부탁 후 병원으로 박차 를 가했다. 그날따라 여러가지 검사로 여러 클리닉을 전전하다 보니 모든 걸 마치고 귀가하니 저녁 7시가 훌쩍 넘었다. 나는 두 손주의 저녁식사가 궁금해 안방 문을 여니 아이들이 상기된 얼굴로 병원에서 언제 오셨냐며 인사를 하는데 두 아이가 무 언가에 상당히 고무된 표정이 평소 같지 않았다.최상의 선물과 즐거움을 손에 쥔 듯한 흥감되고 들썽거리는 방 안 분위기가 매우 낯설었고 귀에 걸린 손주들의 입이 도무지 난해했다. 계속 싱글벙글 벙실벙실이 수상해 의아한 눈빛으로 무슨 일이냐 고 되묻지만 두 녀석 다 아무것도 아니라며 안방 화장실 쪽 파우더룸으로 몸을 피한다.분명 입이 귀에걸린 반대급부가 존재 하련만, 내겐 익숙하지 않은 스무고개 놀이는 고문임에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방을 나와 문을 막 닫는데 방안에서 낮에 들었 던 야옹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너무나 놀라 "아니, 이 고양이가 왜 여기에," 라는 외침과 동시에 방문을 세차게 밀고 들어 가 어찌 된 영문인지 다그치는 나의 고조된 언성에 멈짓하는 두 아이의 표정이 들어왔다. 평소같지 않은 할미의 소스라친 기세에 위축되어 쭈뼛쭈뼛 머뭇거리다 여전히 입은 귀에 걸린 채로 아이들 입이 열린다. (사 실 난 낮에 있었던 고양이 사건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여름휴가 중인 그네들 아버지와 고양이를 찾아서 집으로 데리고 왔 다는 것이다. 고양이 엄마를 찾아주지 않고 왜 데려왔으며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어떤 질병을 지녔는지도 모르는 동물을 집에 함부로 데려오면 되느냐고 호통을 치는데, 어느새 내 아들이 방으로 슬며시 들어오며 하는 말은 내가 더 까무러칠 소리였다. 당연히 병원 가서 모든 검사를 끝냈고 허약하고 질병에 노출된 새끼가 엄마를 잃은게 아니고 어미에게 버림받은 상황이라고 수의사가 말했다고 한다. 그제야 손녀 팔에 안겨 오는 고양이를 보니 그야말로 내 손바닥보다 작은 볼품없는 아이었다. 수의 사의 이야기는 태어난 지는 한 4주에서 6주이고 질병이 있어 엄마에게 제대로 돌봄도 받지 못한 버림받은 새끼이고. 오늘 우 리 손에 발견되지 않았으면 하루의 생명력도 희미한 상태라서 비록 응급 상황은 모면했지만 생존 확률은 반반이라며 우선은 약물로 치료해 보고 살아 있다면 3일 후 후속 진료를 당부했다고 한다. 몸무게가 200그램도 되지 않아 영양실조부터 다양한 질병을 몸에 지니고 있다는 것을 수의사가 아닌 내 눈으로 보아도 짐작 이 가고도 남을 몰골이었다. 나는 더 할 말이 없어 깊은 한숨을 쉬며 밖으로 나왔지만 저 새끼 고양이를 집안에서, 하는 생각 까지 미치자 내 삶에 또 하나의 큰 걱정거리가 자리했다.걱정의 걱정으로 하도 답답해서 아들의 생각과 마음을 떠보나 (치료 후 고양이 가족에게 돌려주자는) 아들의 반응은 너무도 엉뚱하고 냉담하고 단호했다. 일언지하에 그럴 순 없다는 것이다. 이 유인즉슨 설령 어미와 가족을 찾는다고 해도 그들이 가족으로 수용하지 않음에 위험 상황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아울러 우 리 집에서 내치는 순간 아기 고양이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고 결국 우리가 그를 사지로 몰아내는 격이라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정말 아득했다. 돌보지 않으면 죽는다는데 이거야말로 진퇴양난이 아닌가. 지금껏 내 허락없인 집에선 어떤 애완동물도 기를 수 없다는 철칙을 고수해 옴을 손주들도 선명하게 꿰고 있는데. 어디 그뿐인가, 어느 하굣길에 손녀가 조심 스럽게 부탁한 고양이 한 마리 키우고 싶다는 간절함을 이런저런 핑계와 이유를들어 거절하고 달래며 할미가 부재하면 이란 가혹한 대답으로 갈무리하자 마지못해 네~~ 하는 힘없는 손녀의 대답과 소리 없는 눈믈을 본 적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 런 난처하고 가슴 아픈 애절한 상황도 깨지 못했던 내 불변의 법칙이 아뿔싸,경각에 달린 듯한 새끼 고양이 울음소리에(거기 까진 생각 못하고) 아들에게 구조 요청한 것이 빌미를 준 화근이었다. 난감하게도 그들은 고양이를 확실히 구조해 우리 집에 입성하게 한 할미 말 잘 듣는 손주 가족의 실행에 난 유구무언일 수밖 에 없었다. 철옹성의 법칙이 한 작은 생명의 지친 소리에 여지없이 무너진 날이 버림받은 고양이, 이름하여 올리버가 재탄생 한 날이었다. 손주들의 흥분도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성별이 여성임에 이름도 올리버라고 지었다며 함박꽃 같은 웃음으로 할머니도 고양이 이름을 제발 한 번 불러 봐 달라고 애원하는 재라가 팔에 안긴 올리버를 내 가슴으로 들이미는데 순간 기겁 하며 뒷걸음친 반사적인 움직임이 자칫 뼈도 못 추리는 상황을 맞을 뻔했다. 놀란 가슴 진정하며 "에구야~~내 심정도 모르는 이 녀석들아" 참지 못한 원망의 소리가 목구멍에서 터져 나왔던 볼품없는 할미로 추락게 한 실로 희비가 엇갈리는 날이었다. 하기야 아이들이 어찌 할미의 복잡미묘한 심정을 이해할까.경각에 달린 듯한 목숨에 살려야 한다는 마음만 급급했지 사후 절 차는 전혀 생각지 못한 나의 불찰이 아닌가.그들에게 절묘한 기회를 제공해 버린 내 탓임에 당연히 묘책을 쓸 수도 없는 내 입 장이었다. 새로운 식구의 생존으로 앞으로 환경이 달라질 주변 양상을 다각도로 고심하다 보니 하얗게 밤을 짓 샌다. 결국 애 완이니 반려니 하는 동식물은 실내에서 동거하는 조건 중 첫 번째가 상호, 청결 위생 즉, 그들의 생리적 현상까지 책임져야 하 는 현실에 내 이성적 감성적 고난의 예고를 성토하자 듣고있던 아들 가족이 이구동성으로 올리버 평생의 모든 문제는 그들이 책임진다는 약속을 야무지게 하는 듯했지만 그건 승자의 임시 대응으로만 들릴 뿐, 내가 어찌 그들을 모르겠는가. 딱히 비유하자면 한 마리 동물의 실내 보살핌은 바로 갓난아기 돌보는 정성이다.천성이 동물을 좋아하지도 부지런하지도 않 은 자신임을 너무도 잘 알기에 고양이와 함께하는 미래가 어찌 편할 수만 있겠는가. 올리버의 존재가 내 한숨을 끌어내던 이 틀 후 그날 저녁 아들의 가족이 하나씩 현관을 빠져나가는 기이한 현상에, 부근에 산책하러 나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밤늦은 시간에도 식구들이 보이지 않아 며느리에게 전화하니 뭔가 다급한 음성으로 병원 수납 창구에 있다는 대답만 하고 전화를 끊 는다.이 밤에 아들 가족 중 누가 응급상황인가 하며 기겁해 지속적으로 번호를 누르지만 묵묵부답임에 궁금증을넘어 순간 극 도의 불안감이 엄습한다. 다급한 마음에 작은 아들에게 전화하나 거기도 무슨 영문인지 모른다는 대답에 가슴을 부여잡고 숨 죽이고 기다리는 한참 후 며느리의 전화가 울린다. (To be countinued) Whispering a love song - Tony O`Cnno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