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온 한의사
2001년 8월 30일 이탈리아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분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현재 18년째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흥미있는 내용도 있어 여기에 그 요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글을 정리하면서 화자를 그 분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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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80년대초에 경희대 한의대를 졸업하였다. 학교 다닐 때 한의학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한의대생인데도 '음양' '동의보감' '내경' 이런 말만 들어도 싫었다. '내경에서 말하기를' 또는 '동의보감에는 이렇게 나오는데' 식의 말은 사고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 같아 너무 싫었다. 학창시절을 돌아볼 때 노는 측면에서는 후회스럽지 않고 공부한 측면에서는 후회스럽다.
한의대를 졸업하였으나 한의학에 자신이 없어 이탈리아로 의학공부를 하러 갔다. 거기서 6년동안 의대를 다녔고, 졸업 후 4년간 내분비과 수련의를 마쳤다. 의대에 다닐 때 한국에서 학교 다닌 것이 인정이 되어서 해부학 등의 과목을 면제받았기 때문에 실제로는 4년과정을 6년에 마친 것이다. 거기서는 6년과정을 6년만에 마치면 '천재'에 해당한다.
박사과정을 마친 뒤 현재 자유전문의(뒤에 설명 나옴)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은 양의학을 공부한 것을 후회한다. 차라리 그 시간에 동의보감을 읽었으면 훨씬 나았을 것이다.
이탈리아 의대는 과목당 지정된 책 10권을 읽어야 하는데, 강의하는 교수와 시험출제하는 교수가 서로 다르다. 대부분의 강의가 영상으로 이루어지고, 필기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 시험출제 교수와 강의하는 교수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특정한 강의내용을 따로 필기할 필요성도 없다. 시험출제는 주로 학과장 등이 한다.
시험은 텍스트 전체 내용을 충분히 소화해야 가능하다. 각 단원별로 미리 출제된 여러 문제들을 각 단원별로 응시자가 직접 뽑아서 시험을 보기 때문이다.(아마 구술시험인 듯.) 시험내용은 거의 개념과 생리 병리에 대한 것이다. 어느 날은 유방암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해
갔는데 '암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아 당황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 생물시간에 들은 내용을 기억해내 겨우 대답했다. 증상이나 치료법을 물어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양방은 치료법이 없기 때문에 시험에서 중시하지 않는 것 같다.
이탈리아는 의학수업과정은 실습할 수 있는 여건이 좋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 수련의가 되면 오전에 환자 1명을 본다. 1명의 환자를 놓고 몇시간 진료를 한 다음 치료방침을 정해 담당 교수에게 가서 의견을 발표한다. 이 때는 주로 담당 교수에게 호되게 당하는 시간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의사가 3가지 형태로 존재한다. 가정의, 병원의 피고용의, 자유전문의가 그것이다. 가정의는 500명 단위로 수익이 달라진다. 500까지 관리하면 월 150만원의 수입이 국가의 보험재정에서 나온다. 최대 1500명까지 관리할 수 있다. 자유전문의는 수가의 제한이 없다. 다시 말해 세금만 정당하게 내면 치료비를 마음대로 책정하여 받을 수 있다. 특별의료보험이 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의료보험이 안된다. 자유전문의는 주로 병원에서 퇴임한 의사 등 경험이 많고 실력이 있는 의사들이 한다. 자유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으려면 한국의 명의(?)처럼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건강과 관련하여 최근 동양에서 서양에 영향을 크게 미친 세가지는, 요가, 기공, 침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내가 나온 의과대학의 침구과에는 20명이 있다(학생을 말하는 것인지 의사를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음).
얼마전 제노바에서 침과 관련한 모임을 가졌는데 500명이 모였다. 현재 각 혈자리에 대한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혈자리에 대한 연구는 예를 들면 '기침을 하는 일정수의 환자에게 풍문에 침을 놓았을 때 몇명에게는 효과가 있었고 몇명에게는 효과가 없었으며 치료가 되지 않고 사망한 케이스는 몇 건이 있다.' 이런 식이다. 또 동일한 상황에서 풍문과 중부의 비교, 혈자리에 약을 주입했을 때와 주입하지 않았을 때의 차이 등의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서양인들에게 약보다는 침이 쉽게 받아들여지는 사실이 재미있다. 이걸 들으면서 권선생님의 일기론을 생각했다. 약은 음양으로 이해해야 하지만, 침은 태극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 의미있게 느껴졌다.서양의학은 기본적으로 통치방적인 관점에서 발달해 왔다. 일정수의 사람에게 투여해서 일정비율의 효과를 얻고 일정 정도 이하의 부작용이 있으면 약으로 채택하는 것이 그들의 방식이다. 그들에게는 허실 한열 표리 등을 이해할만한 개념이 없다. 다시말해 한의학의 기본개념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다. 한열을 대사과정의 항진과 침체라고 표현할 수 있을라나?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이것도 아니다. 따라서 그들은 한약조차도 생약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일기론의 관점에서 볼 때 침치료는 통치방적인 성격이 있다. - 정리자)
또 보중익기탕 등을 타블릿으로 만들어 복용하기 쉽게 했다. 이것은 중국에서 만든 것인데 복용법이 한국어를 포함한 각종 언어로 기술되어 있다. 중국은 한의학의 국제화에 노력하고 있다. 탕약형태의 약은 서양인들에게 친숙하지 않지만, 타블릿 형태의 약은 서양인들에게는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장기복용할 약에 대해서는 고려해 보야야 한다. 피곤하다고 할 때이 타블릿 보중익기탕을 먹으라고 하면 잘 먹는다.
서양의학은 생리학와 병리학은 발달해 있어도 치료법은 없다. 시험볼 때 증상이나 치료법을 거의 묻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내가 수련의로 근무하고 있을 때 내분비이상으로 유즙분비가 있는 환자가 있었다. 4개월간 병원에서 치료를 계속하여도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 담당과장이 한번 한의학적으로 치료해볼 수 있겠느냐고 물어서 일단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 환자는 위경을 사해주면 될 것 같아서 사암침법 중 위승격을 놓았다. 2회 자침으로 유즙분비가 그쳤다.
또 당뇨병을 앓은 환자가 있었는데 아무리 혈당강하제를 써도 혈당이 300이상이나 되었다. 그래서 비정격을 썼더니 300에서 180으로 또 130으로 떨어지다가 정상치까지 떨어졌다.
쉐그렌증후군도 서양의학에서는 특별한 치료법이 없다. 명문 등에 침을 놓으면 이 경우에도 눈이 촉촉해진다.(참고 : 쉐그렌증후군은 자가면역질환으로 난치이다. 눈물샘과 타액선의 파괴로 구강내건조증 안구건조증 비인후두염 등의 증상을 특징으로 한다. 50대 여성에서 많이 나타나는 만성염증질환으로 건조복합체 또는 타액선염이라고도 한다. 원발성과 류마티스관절염에 동반하는 속발성이 있다. - 정리자)
나는 사상의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음식을 가려먹으라는 것이 싫다. 나는 불교신자다. 뭘 나누고 뭘 하지 말라는 식의 분별심을 갖게 하는 것은 나의 신앙과도 맞지않는다(뭐라고 뭐라고 했는데, 본 정리자가 관심이 없어서 제대로 요약할 수 없음). 무슨 특정한 음식을 먹으면 탈나는 사람을 먹을 수 있게 하는게 의학이 아닌가?. 또 빵을 주식으로 하는 서양인에게 밀가루 음식을 못먹게 하면 뭘 먹으라고 할 것인가? 그 엄청난 세포분열을 거친 인간들을 어떻게 4가지로 나눌 수 있겠는가?
이제 말을 마칠 시간이다. 서양사람들은 옛날에는 '보이지 않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많이 바뀌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는 .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치료법도 인정해 주는 분위기이다. 또 동양인은 숲을 보되 나무를 보지 못하고, 서양인은 나무를 보되 숲을 보지 못하는 것 같다. 다시 말해 동양인은 철학적이고 서양인은 과학적이다. 그러나 서양인들이 나무를 하나하나 보아가다보면 언젠가는 숲을 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동양인들도 숲을 보는데 만족하지 말고 나무를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이상 간단하게 줄이고 이하 몇가지 말이 더 있었으나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생략함)
후일담 : 그분의 지인에게서 전해들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해 보여도 외국생활이 힘들어 보인다고 했다. 외국에 그냥 있을까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까 고민중이라면서, 외국에 있으면 외롭다고 했다.
그 때문인지 2년전부터 고혈압약을 복용한다고 했다. 난 사실 약간 실망스러웠다. 한약으로 또는 침으로 서양의학의 온갖 난치질환이 잘 다스려진다는 투로 말했는데, 정작 본인은 고혈압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하니.... 사실 초기 고혈압은 한약으로 조절 가능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고쳐 쓴 날 :2006년 7월 23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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