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등정기
** 몇 회에 걸쳐 2006년 3월28일부터 4월9일까지, 13박14일간의“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까지
“트레킹”한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범초 **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신경림 시인의 <갈대> 전문)
****
살다보면 인생의 허망함을 느낄 때가 그 누군들 없겠는가,
돌이켜 보면 절망과 허망의 밑바닥에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추슬러 나갈지를 몰라 방황했던
시간이 60여 평생 나에게도 여러 번 있었던 것 같다.
이런 때를 인생의 고빗길이라 하는 것일 게다.
그러다 인생의 의미를 다른 각도에서 다시 발견하는 순간부터,
세상은 또 달리 보이기도,
자신의 삶이 달라지는 순간이기도 할 것이다.
신경림 선생도 이 비슷한 느낌으로 위와 같은 갈대라는 시를 쓴 것이 아닐까.
1997년 IMF금융위기로 웬만한 직장 정년이 대폭 단축되어
나도 예기치 않게 2003년에 조기퇴직하게 되었다.
한 5년은 더 일하리라 생각했던 것이 느닷없는 정년단축으로
졸지에 출근할 데가 없어지는 허망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3-40대라면 무엇이든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를 하겠지만,
60대 문턱에 접어들라치면,
아무리 능력 있다 하더라도 어떤 일감이 주어지기에는 늦은 나이,
이미 그런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항간에는 사오정(45세 정년)이란 유행어가 회자될 때였다.
이렇게 돈벌이 한다는 면에서는 갑작스레 무능한 시절이 성큼 다가온 것이다.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는 법,
벌어놓은 게 시원찮으면 욕심을 줄이자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자연 산에 가는 날이 많아지고 술 마시는 날이 많아 질 수밖에 없었다.
허나 정년의 허망함이 어찌 술 마신다고,
모든 걸 체념한다고 사라질 리가 있겠는가.
무언가 전기를 마련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신경림 시인이 회장으로 있는 무명산악회 회원들 사이에서 몇 달 전부터
<안나푸르나-트레킹>가자는 얘기가 나와 희망자가 점차 불어나기 시작했다.
마침내 신경림 회장도 가기로 결단을 내리고
나를 13박14일 동안의“룸메이트”로 지명까지 해버렸다.
오지여행으로 유명한 T&C 여행사에서 요청하는 최소한의 인원은 15명인데,
우리 산악회의 최종 확정 "멤버"는 13명,
나머지 두 분은 우리 무명산악회와는 무관한 경북00에서 올라온 "커플"이 채워주었다.
70세가 넘은 신경림 시인,
그가 해발4130미터의 <안나푸르나 - 베이스캠프>(Annapurna Base Camp, 이하 ABC라 약칭)를 오르겠다는데,
젊은 축들이 따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나는 경비나 체력, 사전지식 등 부족하고 모자라는 면이 많아 부담스러웠지만,
세월이 더 가면 도저히 체력이 감당이 안 될 거라는 앞날을 생각하니,
더 나이 들기 전에 가야겠다는 조급증까지 났었다.
인생최대의 모험으로 생각하고 무리를 해서라도 가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내가“히말라야”산록을 처음 밟아본 것은 20여 년 전(1980년대 중반),
세상 넓은 줄만 알고 마냥 돌아다니다 높은 곳에도 한 번 가보고 싶어,
해외출장 중 잠시 짬을 내 들린 곳이 인도의 서북부“카슈미르”지역이다.
영화 <인도로 가는 길>로 유명해진“스리나가”(Srinagar)에서 군용“찝”차를 교섭해 타고
"히말라야”중턱“굴마그”(Gulmarg,해발2730미터, "스키”장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곳)에 올라
멀리 아스라이 펼쳐지는 만년설을 덮어쓴“히말라야”를 처음 보았었다.
"낭가파르바트"(Nanga Parbat, 해발8126미터)를 눈높이에서 바라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때 처음 만나본 만년설, 만년설 녹인 시리디시린 눈물을 데워 목욕한 기억이 오래도 갔었다.
지나온 세월을 알 수 없는 낙락장송들,
저지대는 열대 더위지만
고지대에서는 설한풍에 누더기 모포를 걸치고 부들부들 떨고 있던 인도병사들,
가끔 멀리서 은은하게 들려오던 대포소리,
길 아닌 곳으로 헛디뎌 한 길이나 푹 파묻히던 눈 속의 공포,
설산 속에서만 산다는 <거인 "에티"(YETI)>의 전설. . .
"히말라야"의 한 점이나 될까, 그런 낯 설은 설경지대를 처음 밟아 보았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676B7224BD3539F10)
꿈결 같은 "스리나가"풍경들
***
당시 인도-파키스탄 간“카슈미르”분쟁이 한창 때였고 또 "쉬크”교도가 폭동을 일으켜
그 주력부대가 쫓겨 다니다가“쉬크”교도의 聖地“암릿싸”(Amritsar)시내의
황금사원(Golden temple)에 농성하며 마지막까지 저항하다 천명 가까운“쉬크”교도들이
전원 사살 당한 끔직한 사건이 보도되던 때였다.
"네루”수상의 딸“인디라-깐디”수상이 여러 번 투항권고 끝에 내린 결단의 종말은 너무나 비참했었다.
이 사건으로 우리의 광주학살보다 더 많은 생명이 사라졌고 결국 그 후유증으로“인디라-깐디”수상도
얼마 뒤 측근경비를 서던“쉬크”교도경호원에게 보복암살당했었다.
이런 살벌한 때에“카슈미르”로 들어가는 길목인“암릿사”로 날아가
피의 황금사원을 먼빛으로 바라보고, <천국의 호수>라 불리는“달”호수(Dal Lake)로 유명한
“스리나가”에 가 하루 묵어“굴마그”까지 올랐었다.
또 한 번은 그 다음해“델리”출장 중,
잠시“카트만두”로 날아가 시내관광을 하다
구름에 가린 하얀“히말라야”연봉 능선을 먼빛으로 언뜻 보았었다.
그때“안나푸르나-호텔”투숙객 중 한국인은 나 혼자뿐이었다.
일본인남녀“트레커”들이 지도를 펴놓고 등정여정을 짜고 있는 모습이 한없이 부러웠었다.
그 중에는 신혼여행 겸해서 온“커플”도 있었다.
그 행복해 하는 모습, 조금은 두려운듯하면서도 호기심에 가득 찬 그 눈매들,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한창 일에 파묻혀 꿈도 못 꿀“히말라야-트레킹”이라,
미국인 Stan Armington이라는“히말라야”전문가가 쓴
<Trekking in the Himalayas(영문)>와 일본인 Tomoya Iozawa가 쓴
<Trekking in the Himalayas(영문,“히말라야”사진, 등산“루트”를 곁들인 상세한 안내서)>
두 권을, 당시로서는 선뜻 손이 나가지 않는 거금을 주고 손에 넣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었다.
이렇게“히말라야”에 대한 상식을 조금씩 늘려가면서 언젠가는
<저들처럼“히말라야-트레킹”을 내 생전에 꼭 실현시키리라!>고 굳게 다짐했었다.
이제 시간도 많겠다, 이런 대망의 20년래의 꿈을 마침내 실현시킬 때가 온 것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57CA90B49F33D37B7)
필자는 멀리 "안나푸르나"南峰을 바라보며 어떤 고난도 이겨내리라는 결의를 다졌다.
모자의 꽃은 "네팔"민중이 國花라 부르는 "랄리굴라스"(공식적인 國花는 <진달래>).
"히말라야" 지대는 구들장으로 쓰면 그만일 납작한 편무암들이 지천으로 깔려있다.
이렇게 쌓아올려 집도 짓고, 지붕도 잇고,
또 "쉐르파"들이 쉬어가는 "쩌우따다"도 곳곳에 만들어 놓았다("쩌우따다"는 현지어 발음,
<쉼 돌>이란 뜻. 쉬었다가 짐을 들어 올리지 않아도 쉽게 다시 멜 수 있도록 허리 높이만치
쌓았다. 우리나라 제주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다음 회에. . . .)
범초.
첫댓글 트레킹 얘기 다음편을 기대합니다,저도 최초 해외 여행나들이가 안나푸르나 네팔 트레킹이었는데 그 때 본 설산의 위용이 너무 선명합니다,밤이면 쏟아져 내리던 별빛의 향연도요~
산을 워낙 좋아하시는 수향님, 대단한 일을 해내셨습니다.
부산답사 때 뵙고. . . 오랜만에 반갑습니다. 범초.
기대합니다 (__)
<모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게다가 제 글까지 읽어주시니 반갑습니다. 범초.
답사때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선생님 칼럼은 워낙 깊이가있어 잘 들어오지 않아 몰라뵈었습니다. 진작 알았더라면 좋은 말씀 들었을텐데 후회가됩니다. 늘 건강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진주님, 영동답사 때 미국"애틀란타"에서 오신 분이던가요? 감사합니다.
대단하십니다! 저도 얼마전 다른 동호회에서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아들과 함께 배낭여행으로 다녀오신분이 후기를 읽으면서....언감생심 당치도 않는 꿈을 꾸어보고 있는 중이지요^^ 그런데 오래전에 벌써 그 여신의 품에 안겼다 오시었군요! 존경스럽습니다 ㅎ ㅎ ㅎ
天地不仁 女神不仁에 人能不忍 非夢似夢이었습니다.
대부분 "푼힐"전망대까지 다녀오는데, 추천할만 합니다.
허나 ABC까지는 대단한 준비와 각오가 필요합니다. 범초.
이제 안나푸르나에 동행합니다. 늦게 올라탔지만 여초님의 글과 함께 안나푸르나 트레킹 꿈을 꿔 봅니다.
오랫만에 범초님 칼럼방에 들르니 좋은 글을 많이 올려주셨는데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있었네요. 20년만에 이루신 안나푸르나 등정기 찬찬히 돌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건안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