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는 정비 정성왕후(貞聖王后)와 합장할 수릉(壽陵)인 홍릉(弘陵)을 영조 33년(1757) 조성하고 숙종때 방식으로 허우(虛右)를 만들고, 정성왕후 능 오른편에 난간지대석(掩石)를 설치하고 십자형 표석에 좌향(坐向), 분금(分金)을 새겨 혈처에 묻어두었다. •1776년 3월 5일 영조가 승하하고, 3월 13일 허우처(虛右處)에 봉심하였다. 그러나 이곳이 좋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길지를 찾으라는 정조의 명에 따라 건원릉 오른쪽 두 번째 언덕이 십전지원(十全之原), 천성지지(天成之地)의 길지로 보아 이곳으로 정해진다. 능역 중에 발굴된 효종(孝宗) 옛 영릉(寧陵) 석물 중 지대석 등은 다시 사용하고 나머지는 깨끗한 곳에 묻게했다. 정순왕후가 1805년에 승하한 후 영조와 동원(同原)에 모시면서 원릉(元陵)이라고 하였다. •원릉의 상설은 곡장 3면, 난간석, 혼유석 2좌, 장명등, 망주석, 문인석, 무인석은 각1쌍, 석마, 석양, 석호는 각2쌍이 있다. 능강 아래에는 비각, 정자각이 남아 있으며, 수라간, 수복방, 전사청, 제기고, 안향청, 재실 등은 사라지고 없다. •원릉 표석은 대자전문의 서사관은 영중추부사 김상복, 음기 서사관은 사직 윤동섬으로 정해졌으나 이후 정조가 직접 서사했다. 표석에 사용된 비신은 남포 오석(烏石)을 사용했으며, 개석과 대석은 산릉도감에서 제작했다. 석물은 난간석만 추가로 설치하고 표석을 건립했다. •표석의 전자는 판중추부사 이시수가 쓰고, 음기는 영돈녕부사 김조순이 짓고, 판중추부사 서용보가 썼다. 7월 27일 하현궁했으며, 8월 2일 능역이 완료되었다. •고종 27년(1890) 영종(英宗)이라는 묘호를 영조(英祖)로 고치는데 이때에 표석을 함께 설치했다. 이 역시 고종의 어필로 되어 있으며, 비각안에 1776년 영종 원릉 표석, 1890년 영조 원릉 표석, 1805년 정순왕후 원릉 표석이 순서대로 건립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