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가 오면 무조건 나가야죠.”
국내에서 뛰는 10대 선수 상당수가 가진 생각이다. 당연한 결과다. 축구선수가 큰 무대에서 좋은 대우를 받고 뛰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똑같기 때문이다. 국내 축구의 발전을 위해 잘하는 선수가 해외에 나가 역량을 발휘하며 시장을 넓힌다는 건 긍정적인 선순환이다. K리그 입장에선 조금 아쉬울 뿐이지 그들의 결정을 비판할 권리는 없다.
그런데 문제는 ‘대우가 비슷해도’, ‘실패확률이 커도’ 심지어 ‘더 낮은 조건을 제시 받아도’ 나가려는 선수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결정을 무작정 깎아내려선 안 된다. 근본적인 원인을 K리그 규정과 환경 속에서 찾아 보완하는 게 우선이다. 10대 선수들은 왜 K리그보다 해외를 선호하게 됐을까?
이청용과 기성용은 10대 시절 프로와 계약해 성공한 사실상 마지막 세대다
■ 계약도,등록도 어려운 10대…언제까지 방관?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10대 선수 계약’이 불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10대 선수(만 18세 미만)가 프로 구단에서 뛸 수 없는 구조라 실력이 좋은 선수더라도 한참을 아마추어 단계에서 기다려야 한다. 이때 해외에서 좋은 대우를 해주겠다는 제의가 오면 거절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10대 선수의 프로 계약은 불가능한 것일까? 일단 계약서는 쓸 수 있다. 10대 아이돌이 소속사와 계약을 하는 것과 똑같다. 만 17세의 A선수가 B고등학교 축구부에 소속됐다고 가정하자. 친권자 또는 후견인 동의를 받으면 B고등학교의 동의 하에 C구단과 계약서를 쓸 수 있다.
여기부터 문제다. 일단 프로축구연맹에 등록이 안 된다. 제 2장 11조 <신인선수 선발 대상> 항목의 ‘고졸예정자 또는 중고교 재학 중이 아닌 만 18세 이상자’라는 규정에 위반된다. 이 규정을 수정해 등록이 가능해진다 가정해도 최종 단계인 대한축구협회 선수 등록 과정에서 잡음이 예상된다. A선수가 프로가 된다면 해당 팀의 1군, 2군, 18세 리그 등을 옮겨가면서 뛸 수 있어야하는데, 여기에서 학원 축구계의 반발이 예상된다. ‘프로 선수가 고등학교 대회에 나오면 형평성에 어긋난다’라는 의견 때문이다. 반대로 프로 유스 팀의 경우 대부분 클럽 형식이 아니라 매탄고(수원), 오산고(서울)처럼 고등학교이기 때문에 동료 선수들의 대학 진학을 위해 A선수의 출전을 원할 것이다. 대한축구협회의 중재가 필요한 부분이 바로 여기다. 대한축구협회의 한 관계자는 “문제를 인지하고 있으나 학원 축구계의 반발이 너무 심해 손대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프로 유스팀과 학원 축구팀이 완벽하게 분리되거나 모든 팀이 클럽화 되면서 하나의 리그로 통합된다면 정리가 가능하다. 그러나 프로 유스팀, 학원 축구팀, 일반 클럽 축구팀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국내 구조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대한축구협회와 프로축구연맹 그리고 학원 축구계의 의견 일치가 필요한 대목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고민은 심도 있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에이전트사 FS코퍼레이션의 김성호 실장은 “중국에도 16세부터 계약할 수 있는 별도의 제도가 있다. 다른 유럽 리그도 마찬가지로 팀 소속으로 잡아둘 수 있는 계약서가 존재한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엔 10대 선수의 계약서가 없기 때문에 해외 팀이 훈련보상금만 주고 데려가면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 프로 유스선수 규정도 반쪽짜리
프로 산하 유스에서 자라고 있는 만 18세 미만 선수들도 자유계약 선수와 같은 입장이다. 계약서가 없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해외로 떠날 수 있다. 'K리그 복귀시 무조건 원 구단 동의 필요'라는 페널티만 감수하면 언제든지 나가는 게 가능하다. 훈련보상금이라는 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에 국제 법에도 위반될 게 없다. FIFA는 유스 선수들이 움직일 때 전 소속팀의 투자를 인정해주기 위해 훈련 보상금 제도를 만들었다. 첫 프로 계약 또는 23세까지 국제이적을 하게 되면,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일정 금액을 선수를 키운 팀이 받게 되는 제도다.
한 팀이 선수를 13세부터 18세까지 키워냈다면 최대 30만 유로(약 4억원, 협상 가능) 정도를 받게 된다. 해외 구단들은 이 금액을 ‘유스 선수의 이적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K리그 구단은 ‘훈련보상금’과 별도로 ‘추가 이적료’를 원한다. 여기서 충돌이 일어난다. 하지만 국제 법에서는 K리그 측의 주장이 큰 효력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최근에는 괜한 분쟁을 피하면서 해외로 쉽게 나가기 위해 프로 유스팀이 아닌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물론 예외는 있다. 최근 독일 최강팀 바이에른뮌헨은 인천유나이티드 유스인 대건고 소속의 측면 공격수 정우영을 이적료를 지불하면서 영입했다. 바이에른뮌헨은 이적료를 주지 않고 훈련 보상금만 지불해도 데려갈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유스 계약서가 없는 K리그 사정을 이해하고 선수의 가치를 인정했다. 이 건은 인천과 정우영 측 그리고 바이에른뮌헨 사이에 활발한 소통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라 일반화하기엔 무리가 있다.
정우영의 바이에른뮌헨 이적은 특수 케이스로 봐야 한다
독일, 프랑스, 잉글랜드 등에서 활동하는 한 한국인 에이전트는 “해외 구단의 대부분이 경우 국내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유스 계약서가 없는데 왜 이적료를 내야하냐고 묻는다. 설명하는 게 쉽지 않다. 한국 선수와 인연이 있는 아우크스부르크, 함부르크, 잘츠부르크 등과 같은 팀 정도만 국내 사정을 이해를 하고 있는 편이다”고 밝했다.
10대 선수는 아니지만, 우선지명을 받고 대학으로 향한 프로 유스 선수들의 입장도 알아볼 필요가 있다. 해외로 떠나는 선수들 상당수가 이 부류에 있어서다. 이 선수들이 3학년 안에 콜업이 돼 프로에서 뛰게 되면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3년 이상을 기다렸으나 프로 팀이 부르지 않았을 때가 문제다. 대학교 1~3학년 사이에 올 수 있는 해외 진출 기회를 모두 거부했는데, 결국 지명을 받지 못한 경우가 가장 안타깝다. '조금만 더 기다려라'는 구단의 말을 믿었다가 결국 갈 팀이 없는 상황에 놓인 선수도 있다. 그래서 일부 선수들은 3학년에 올라갈 때쯤 조심스럽게 해외 진출을 추진한다.
이 선수들에게 ‘배신’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까? 신중하게 지켜보려는 구단의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되지만, 다른 기회를 포기하면서 끝까지 기다렸던 선수들을 위한 안전장치가 없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이처럼 우선지명을 받고 대학에 진학한 선수 상당수가 축구판에서 사라진다. 규정의 사각지대에서 안타깝게 축구를 접는 선수들을 위한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 K리그 신인에게 ‘협상의 자유’는 없다
K리그 신인 선수는 수년간 혹독한 규정 안에서 연봉이 결정된다. 이 때문에 해외 진출을 결심하는 선수도 많다. 특히 K리그 규정을 꼼꼼히 살펴보고 해외와 비교하는 부모들은 ‘K리그에서는 원하는 수준의 대우를 받을 수 없다’라는 결론을 내리며 해외로 나간다. 선수 수명이 짧은데다가 군 문제까지 겹쳐 있어 돈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K리그 신인 최고 대우는 계약금 1억 5000만원에 연봉 3600만원까지다. 아무리 뛰어난 특급 신인이라도 이 금액을 넘어서진 못한다. 물론 수당 등 추가조항을 통해 더 받을 순 있지만, 기본 급여가 올라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 구단 관계자와 에이전트 등을 동시에 경험한 한 축구인은 “이 규정 때문에 구단은 매우 낮은 금액부터 협상을 시작한다. 한계를 정해놓고 협상을 시작하니 당연히 선수가 불리하다. 특히 계약금은 어떻게든 덜 주려고 한다. 신인은 약자이기 때문에 구단의 최초 제시액에서 크게 벗어난 제의를 하기 힘들다. 구단의 제안을 수긍하고 입단하는 선수도 있지만, 이에 반발해 해외로 눈을 돌리는 선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프로축구연맹 측의 설명에 따르면 신인 선수를 데려가는 과정에서 과열된 분위기를 막기 위해 이 규정을 도입했다고 한다. 이해가 아예 안 되는 건 아니다. 그런데 과연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규정인가에 대해선 의문이 생긴다. 좋은 선수가 있다면 다수의 팀이 달려들어 이 선수의 가치를 서로 인정해주려고 노력하는 게 프로세계다. 자금이 넉넉한 구단이 실력에 맞는 대우를 해주면서 데려가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이 규정은 오직 ‘구단만을’ 위한 내용이다. 10년 이상 K리그 구단에서 근무한 베테랑 구단관계자는 “솔직히 말하면 구단이 유리하게 협상하라고 만들어준 규정이다. 초특급 신인이 아니라면 구단은 이 규정을 앞세워 신인 선수에게 ‘갑질’을 할 수도 있다”고 털어놨다.
신인선수 연봉 인상폭도 문제가 된다. 가장 높은 등급의 신인은 계약기간이 5년이다. 그 안에 뛰어난 활약을 해도 계약기간이 1~2년이 남기 전까지는 웬만해서는 계약 연장을 제안하지 않는다. 이 경우 4년차까지의 연봉 인상폭은 매년 100%가 한계다. 연봉 3600만원 선수가 첫 시즌에 맹활약해도 다음해 최대 7200만원 밖에 받지 못한다. 애초부터 계약 연장 없이 연봉만 매해 협상을 통해 조정한다는 자체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지만, 그걸 인정하더라도 불합리한 규정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나마 100%를 올려주면 다행이다. 취재 결과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라도 ‘구단 역사상 아무리 잘해도 100% 인상은 없었다’라며 거부하는 구단이 많다. 한 지방 구단 관계자는 “좋은 활약을 한 선수의 연봉을 100% 올려줬다가 소문이 나면 너도나도 100%를 주장할 것이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쉽게 말해 100% 인상이라는 선례를 만들기 싫다는 의미다.
이곳은 연차가 쌓일수록 연봉이 조금씩 올라가는 일반 회사가 아니다. 실력이 곧 돈이 되는 프로세계다. ‘넌 신인이니까 당분간은 그것 밖에 못줘’라는 논리라면 이해하기 힘들다. 3000만원→4500만원→7000만원→1억2000만원. K리그에서 나름 좋은 활약을 펼치며 2년차부터 주전급으로 떠오른 젊은 선수의 실제 4년치 연봉 변동 폭이다. 그 사이 계약 연장을 하지 못한 탓에 규정의 제한 안에 있었다. 그래서 매해 100% 인상폭 안에서 협상을 해야만 했다. 이 선수는 1년 후에 군 입대를 한다.
에이전트사 월스포츠의 장민석 이사는 “우리나라에서는 선수들이 돈을 벌기가 힘든 구조다. 만 27세에는 군 입대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졸 선수는 3~4년 더 뛸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대졸 선수는 프로에서 몇 년 뛰다 연봉 1억 원 대가 되면 입대를 한다. 차라리 실패를 감수하더라도 외국에서 시작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드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선수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K리그 규정 '제 2장 선수'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다
K리그 규정은 어린 선수를 지키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나가게 만드는 요소가 됐다. 이제는 뛰어난 선수가 정당하게 해외로 나가고, 훗날 편하게 들어올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규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어린 선수들의 자유를 무작정 제한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국제 법과 궤를 함께 하면서 리그 특성을 고려한 안정장치만 만들어 둔다면 K리그도 건강하게 흐르는 축구시장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구단 중심의 사고를 바탕으로 태어난 기존 규정을 고수한다면, 이곳은 기피하는 시장으로 급변할 것이다.
K리그 규정집을 보면 ‘2015년 4월 14일 이후 국내 팀과 계약하지 않고 해외로 떠난 경우 5년 안에 국내 복귀시 S등급이 아닌 A등급(계약금 미지급, 연봉 2400~3600만원)으로밖에 계약할 수 없다’라는 규정이 있다. 국내 팀과 의도적으로 계약을 하지 않고 해외로 떠났다는 걸 밑바탕에 깔면서 급여를 제한하겠다는 일종의 페널티다. 그런데 만약 이 선수가 국내 팀과 계약을 ‘안 한’ 게 아니라 ‘아무도 안 불러줘서’ 어쩔 수 없이 해외로 나가 2~3년을 뛰었다면 어떻게 봐야할까. 그래도 '어쨌든 해외로 나갔으니까 돌아오려면 A등급으로 받아라'고 설명을 해줘야할까. 이 선수가 5년 안에 K리그에 돌아오고 싶은 생각이 들지 의문이다. K리그 규정 안에는 ‘선수’ 그리고 ‘소수’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K리그 규정에서 선수는 철저히 ‘약자’다. 게다가 세계 축구의 흐름과 맞지 않는 규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제 법을 반드시 따라갈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현재 로컬룰이 합리적이지도 않다. 당장 눈앞에 있는 이득을 위해 이러한 규정을 만들었다면 다시 한 번 고려할 필요가 있다. 더 큰 문제는 규정을 만드는 구성원 중에 선수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이 단 한명도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선수 입장에서 어떤 선택을 내리겠는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없고, 권리를 보호해주는 제도도 없다면 선수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떠나는 방법뿐이다.
::[Y-파일]은 Why(왜)라는 단어의 발음에서 따왔습니다. 국내외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안에 대해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신규 코너입니다. 문제점에 대해 공감은 하지만 선뜻 어느 누구도 나서지 않는 주제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규정편 ②부에서는 ‘선택의 자유’가 없는 K리그 선수들에 대해 조명합니다.
※기사 안에 삽입된 사진 속 인물은 대부분 내용과 무관한 자료사진임을 알려드립니다.
글=김환
사진=프로축구연맹 및 구단 보도자료, 연합뉴스, 저스트풋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