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교
붉은 거울은 새의 어미이다
그녀는 날개가 없고
부리가 없다
그녀의 뼈는 허공을 갖고 있다
그녀는 별을 본다
그녀는 강을 본다
그녀의 긴 어미가
국지성호우로 내린다
찰랑이던 한때도
물빛이었고,
파문을 삼키던 한때도
물빛이었다 거울에 반사된 것 역시 물빛이었다 모든 것 흘려보낸
그녀는, 새의 어미다 기록되지 않는 것을 기록하는, 새의 눈이다 그녀는 바람으로 시를 쓰는, 어미다
그녀는 오늘도, 허공으로 지는 풍경을 가만 그리는, 눈 깊은
명사형 어미다
―『난 혼자지만, 혼밥이 좋아』(시인보호구역, 2020)
*
대구에서 시인보호구역을 운영하고 있는 정훈교 시인께서 신작 시집을 보내왔습니다.
그에게 간단한 답신 문자를 보낼까 하다가 그냥 제 페이스북에만 이렇게 올리기도 했지요.
"K, 만 년 후 어느 붉은 계절에 보낸 당신의 시집이 만 년의 시간을 거슬러 마침내 내게 당도했습니다...만 년 후의 언어를 읽어내려니 숨이 찬 저녁입니다... 별과 달이 바뀐 그곳으로 나도 곧 답신을 보내야겠지요..."
그림같기도 음악같기도... 몽환적인 어떤 뉘앙스가 먼저 시선을 끄는 독특한 시집입니다.
시집 상재를 축하하면서, 시집 속에서 한 편 띄웁니다.
<모모, 품지 않고 흘려보내는>
이 시를 읽기 위해서는 먼저 40여 년 전 김만준이 부른 <모모는 철부지>를 들어야 합니다.
"모모는 철부지 / 모모는 무지개 /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계 바늘이다 / 모모는 방랑자 / 모모는 외로운 그림자 / 너무 기뻐서 박수를 치듯이 날갯짓하며 /
날아가는 니스에 / 새들이 꿈꾸는 / 모모는 환상가 / 그런데 왜 / 모모 앞에 있는 생은 행복한가 /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 모모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서 영감을 얻은 줄 아는데, 사실은 에밀 아자르의 단편소설 <자기 앞의 생>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지요. 소설 속에 '모모'가 나오고 '니스'라는 해변 도시가 나옵니다.
그렇다면 오늘 소개하는 시는 과연 어디에서 영감을 얻은 걸까요?
이 시는 무척이나 모호하지요.
모모를 그냥 모모로 읽을 수도 있고, 아무개 모모某某로 읽을 수도 있고, 아무개 엄마 모모某母로 읽어도 되고 그밖에 그 어떤 모모로도 당신은 읽을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가령 걸그룹 트와이스의 멤버 모모로 읽거나, 복숭아를 뜻하는 일본어 모모桃(もも)로 읽거나 혹은 네팔식 만두 모모(MoMo)로 읽어도 되겠지요.
어미는 또 어떤가요. 어미를 어머니라는 뜻의 어미로 읽을 수도 있겠고, 용언 및 서술격 조사가 활용하여 변하는 부분을 뜻하는 그 어미(語尾)일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이제 시적 화자의 말을 들여다볼 차례입니다.
화자에 따르면
모모는 "붉은 거울"이고 "새의 어미"이지요.
모모는 "기록되지 않는 것을 기록하는, 새의 눈"이고 "바람으로 시를 쓰는, 어미"입니다.
모모는 "허공으로 지는 풍경을 가만 그리는, 눈 깊은 명사형 어미"이기도 하구요.
저는 어떻게 읽었냐구요?
처음에는
"한때는 여자였고 한때는 사람이었으나 / 모두 아궁이에 던져버리고 / 스스로 불이 된 족속"인 그 어미로 읽었고,
두 번째는
"이제는 순하고 명랑한 남자 만나서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있는" 順伊와 錦紅이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어떤 문장, 반드시 만나고 싶은 어떤 붉은 문장으로도 읽고 있네요.
참, 참 모호한, 모르스부호 같은, 모모를 읽는 아침이지요.
미래에서 온 문장이라 그런 모양입니다.
그러니 어쩌면 미래를 잠시 엿보는 그런 아침일 수도 있겠다 싶네요.
아닌가요?
지금은 새벽 네 시, 잠시 후면 저는 2박3일 동안 제주도로 출장을 다녀와야 합니다.
조금 이른 시간 당신의 잠을 깨운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2020. 6. 15.
달아실출판사
편집장 박제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