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를 할 때가 한 참 지났건만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미 등교해서 친구들과 재잘거리고 있어야 할 혜석이 나타나지 않자, 반 아이들 모두 비어있는 혜석의 자리를 한 번쯤은 가리키거나 쳐다보면서 소근 거리는 모습들이다.
개중에 몇 몇은 아예 맨 뒷자리에 앉아 있는 나를 힐끗거렸고.
하긴, 만약 내가 소문의 당사자가 아니면서 다른 아이들의 연애소문을 들었다면, 나 역시 엄청난 호기심을 발휘해서 소문에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생각해보라.
TV는 어쩌다가 한 번씩 누구네 집에 있더라는 소문으로나 듣던 희귀템이었고 트랜지스터 라디오조차 부자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아직도 남녀가 유별했던 그런 시절에 벌어진 연애 스캔들이었으니 얼마나 재미있고 또 흥미진진한 사건이었겠는지.
하물며, 그 스캔들의 주인공이 다른 사람도 아닌 같은 반의 아이들이었으니......
그 관심이 오죽했겠는가!
나는 그런 사실을 어느 정도 인식하면서 사람들의 호기심어린 시선들을 감수하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으나, 그래도 가능한 한 다른 친구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주의하면서 혜석이 늦게라도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교실 문을 힐끗거렸다.
하나, 그렇다고 내가 어찌 눈치가 남다른 여자아이들까지 다 속일 수 있었겠는가.
그렇게 내가 자꾸 교실 문을 힐끗거리니, 내 짝인 상옥이가 앞자리 주환의 짝인 필옥이를 쿡쿡.....찔러 교실 밖으로 데려나가며 내 눈치를 본다.
물론 나는 그녀의 행동이 혜석을 애타게 기다리는 내 뒷담화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녀들의 입을 억지로 막을 순 없지 않은가.
더욱이 오래전 할배들을 통해 옛 조선시대 때도 언로는 나랏님도 마음대로 막지 못했었다고 들어온 난데.
심지어 그 때는 나라에서 삼사라는 기관까지 만들어 언로를 보장해주면서, 왕의 그릇된 정치를 비판하고 올바른 정치로 이끌기 위해서라면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대지 않아도 좋다는’ 불문언근(不問言根)이란 원칙까지 허용해 주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결국 선생님께서 아침조회를 할 때까지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랬다.
그 날. 혜석은 결석을 했다.
선생님께서 혜석이 아파서 결석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마치 내가 그녀를 아프게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콱! 막혔다.
그러면서 어제 내가 그녀는 괜히 바다로 데려 갔다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어제 그냥, 바로 집으로 데려갔어야 했는데......’
그렇게 내가 고개를 푹 숙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그러면서 누가 볼세라 얼른 소매로 훔쳤는데, 그걸 선생님께서 보셨던 것 같다.
그리고 입이 거친 만큼 눈치도 빠른 짝꿍 상옥이 가시나도.
학급조회를 끝내고 선생님께서 교무실로 돌아가기 전, 잠깐 다녀 올 곳이 있으니 1교시는 조용히 자습을 하고 기다리라고 하시면서 나가셨다.
당연히 그 즉시 학급은 시끌벅적 해졌고, 나는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며 얼굴을 씻고 돌아오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물론 그 이상한 분위기가 나로 인해서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만큼 내가 민감한 인간이 아니라서, 그저 ‘또 무슨 일이 생겼나보다’ 하며 혜석을 걱정하며 책상에 엎드리려는 찰나, 뭔가 생소한 느낌을 주는 누군가가 비어있는 상옥이 자리에 털썩 앉으며 아는 척을 했다.
“할배, 니, 울었다매?”
“......”
“새끼~ 애인이 아파서 결석 했다니까 그래 섧더나? 눈물이 나올 만큼......”
“......?”
“근데 니가 작년에 그랬다 아이가. 대장부가 꼬추를 달고 태어났음 딱 세 번만 울어야 한다고. 태어날 때하고 부모님 돌아갔을 때 그라고 또 뭐라캤는데......?”
젠장 그 사이에 소문을 다 퍼트렸나 보다.
그 결과 난데 없이 멀리 떨어진 분단의 평소 별로 가깝게 지내 본적이 없는 석경이란 녀석이 상옥이 자리를 차지하고는, 특유의 거만한 눈빛과 은근히 깔보는 말투로 비아냥 거렸다.
그게 신호라는 되는 듯 평소 그와 어울려 다니며 약한 애들을 괴롭혀대던, 이웃 6감에 사는 진규라는 녀석이 끼어들며 충청도어가 섞인 사투리로 말했다.
“깔치(애인)가 아파서 결석을 했는데 안 울고 싶겠어? 할배야, 그 자(그렇지)? 낄낄낄”
‘하아~“
나는 속으로 한 숨을 쉬고 말았다.
물론 나는 이 녀석들이 갑자기 내게 와서 왜 이러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가난하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나름 먹고 살만한 집의 아이들인데다, 성적도 괜찮은 편이고, 입성(차림새) 역시 깔끔한데다, 남자애들 사이에서 운동능력(싸움실력)도 인정받아선지, 선생님과 여자애들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 인기는 있던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마음 씀씀이와 행실이 유치했고 질투까지 심한 양아치같은 놈들이었다.
3학년 때만 해도, 내가 가끔 엉뚱한 표현으로 여학생들을 웃기거나 주목을 끌면, 그런 내 말을 엉터리라고 폄하하거나 거짓말쟁이로 매도하면서 비아냥거려, 그나마 어울리던 아이들마저 떨어져 나가게 만들었던 녀석들이기도 했다.
그런데 저희들 눈에 그렇게 하찮게 보였던 내가, 4학년이 되면서 서서히 선생님의 눈에 드는가 싶더니 성적도 월등해지면서, 마침내 눈에 번쩍 뛸 만큼 예쁜 여자 전학생까지 홀애비 과부 보쌈하듯 냉큼 자기 여자 친구로 만들어 버렸다.
당연히 그걸 보면서 질투는 났겠지만 차마 겉으로 드러내진 못했을 것이다.
하나 그 밴댕이 소갈딱지같은 속으로 자신들의 마음을 언제까지 숨기고만 있을 수는 없었겠지.
그렇다고 그 열패감을 이렇듯 유치하게 표출해 내는 것이야 말로, 자신들이 그동안 여자애들 앞에서 허세를 부리면서 쌓아올린 명성에(무슨 명예가 있었겠느냐마는) 큰 먹칠을 하는 것이라는 걸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이런 시시껄렁한 녀석들과 드잡이 할 생각일랑 추호도 없었기에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녀석들은 찾아올 때부터 뭔가 단단히 배알이 꼴려 있었던 듯, 작정하고 시비를 걸려고 노골적으로 비아냥대기 시작했다.
“씨바, 할배 많이 컸네. 이잔(이젠) 우리 같은 촌놈은 눈에 들어오도 않는갑네.”
“와(왜) 아이겠노. 애인이 존나 예쁜 서울 가시나 아이가? 벌써 손도 잡고 뽀뽀도 했다카는데, 맞나?”
그런 시시껄렁한 소릴 한 귀로 흘리면서 교실 밖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얼굴이 눈에 많이 익은 한 녀석이 앞을 가로막았다.
“오~ 씨발~ 싸움도 겁나게 잘 해서 영복이한테도 이겼다며? 동네에선 나한테도 지는 겁쟁이새끼가......”
“.......”
내가 멈칫 그 놈을 쳐다보며 얼굴을 찌푸리자, 녀석은 두 주먹을 쥔 권투선수의 흉내를 내면서 폴짝폴짝~ 뛰면서 까불어 댔다.
“어때? 할배, 오랜 만에 함 뛸까(한판 싸워볼까)!”
“하아~”
“씨발 놈, 한 숨은...... 또 겁먹고 이상한 공갈로 때울라고? 서울 가시나도 그래(그렇게) 공갈치서 꼬시가지고 니 깔치로 만들었재!”
나는 한숨을 쉬며 가능하면 싸움을 피하려고 모색하던 찰나, 놈의 마지막 깔치라는 말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당시 우리가 사용하던 ’깔치‘란 표현은, 주로 ‘남자와 사귀는 여자애인’ 이란 의미의 비속어로 쓰이고 있었지만, 그 저변에는 성적으로 부도덕한 여자일 것이라는 예단이 깔려있었다.
나는 벌써 두 번이나 놈들에게서 혜석을 그렇게 저열한 여자로 취급하는 표현을 들었기에 참기가 힘들었고, 순간적으로 놈의 방심을 틈타 콰악~ 멱살을 잡아서 내 눈 앞으로 당기며 욕설을 내 뱉었다.
“어, 어......컥!”
“호종아~ 이 개XX야!”
“캐액~ 캑~”
“느구 큰 헤임(형님) 기종이가 더 이상 감천에 살기 싫다고 몰래 튓다매(도망쳤다며).”
“......!”
그런 내 말에, 호종이란 녀석은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듯 눈에 지진을 일으켰다.
내가 녀석에게 이야기하는 녀석의 큰 형인 기종이란 사람(인간)은, 내가 8살 무렵 처음 감천2동 정착과정에서, 터줏대감을 자처하던 또래들이 걸어오던 싸움에서 승승장구 할 때, 이유도 물어보지 않고 달려와 제 동생을 때렸다며 내게 주먹질과 협박을 가한 무자비한 인간이었다.
그 이후로도 그런 일을 여러 번 더 겪으면서 대항을 해 봤지만, 오로지 제 동생의 말만 듣고 주먹질부터 해 대던 다섯 살이나 더 먹은 무식한 덩치를 나로선 도저히 당해 낼 수가 없었다.
그덕에 나는 언제부턴지 이 호종이란 놈이 시비를 걸어도 그저 모르는 척 외면해 왔는데, 어느새 놈은 마치 제 힘으로 나를 이긴 것 인양 행세해 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 무식한 기종이란 자를 언제부턴가 동네에서 보질 못했는데, 어느 날 공중변소에서 똥을 누던 중에 남녀를 가르는 담 건너편에서 들려오던 동네 아주머니들의 이바구를 통해 집에서 도망쳐 버렸다는 걸 알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런 내 말에 놀라서 눈치를 보는 호종이에게 한 마디 더했다.
“그람 이자는(이제부터), 구종이 헤임(형님)을 믿고 까불끼가?”
그리고 지금 내가 이야기하는 호종이의 두 살 더 먹은 형인 박구종이란 인물은, 그 각다귀 같은 녀석들 가족 가운데서 유일하게 마음이 여리고 책을 좋아하는 동생인 이 녀석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거기다 지병을 가지고 있어, 언제나 얼굴은 새하얗고 수시로 기침을 해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폐병쟁이라고 불렸는데, 나는 가끔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엄마에게 들켜 병이 옮는다고 혼이 나기도 했다.
“어이(응)?”
“아, 아.......”
“앞으로 조심해라! 알겠제! 이 자슥아~”
내가 순간적으로 눈에 힘을 주면서 작지만 강하게 주의를 주자, 놈은 제 멱살을 잡은 내 손을 붙잡았던 두 손에서 힘을 뺐다.
나는 그런 놈을 으름장을 주며 내려주고선 교실 뒷문으로 나갔다.
말이 길어서 그렇지 그 일이 시작되면서 걸린 시간은 아주 짧았다.
하지만 그 상황을 제대로 이해 할 수 없었던 진규와 석경이란 녀석은 자리를 피하는 나에게 비아냥거리다가, 일순 입을 닫아 버렸다.
“아~ 할배, 저 빙시~ 또 튄다(피한다)! 어디가노 새끼야, 이리 온나.”
“고마(그만), 새끼 히야시(겁) 잔뜩 묵은 거 안 보이나......엇!”
“와?”
그렇게 그 둘이 쳐다보는 곳으로 어느새 장영복이 나타나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지각을 했음에도 아주 당당한 모습으로.
“어? 영복아......”
“왔나......”
“빙신 새끼들, 느구 다 디질(죽을) 라고 약 묵웃제.”
“......”
“씨바...... 와?”
석경이란 녀석이 영복을 향해 살짝 불만을 표하면서 되물었다. 그러자 영복은 코웃음 치면서 놈이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
“니 지금, 느그(너희) 형, 석태 믿고 영감한테 까분 기재(거지)?”
“......”
석경이 불만스런 눈빛으로 영복을 노려보자, 녀석이 이야기했다.
“씨바~ 빙시야. 그제(그저께) 내가 그런 우사스러운 꼴을 당하고도 이 학굘 와(왜) 온지 아나?”
“......?”
“???”
영복의 말에 석경 패거리 뿐 아니라 구경하던 아이들까지 궁금해 했다.
“누그 성(너희 형) 석태도 꼼짝 못하는 6학년에서 쌈(싸움) 최고 인 창덕이가, 방금 니가 시비 걸던 영감한테 얻어 터져 반쯤 죽었다 살았다는 이야길 듣다보이 쪽이 쫌 덜 팔리서다. 창덕이 그 성(형)이 중학교 다니는 영감 누야(누나)한테 욕하면서 궁디 한 번 잘못 건드렸다가 완전 병신이 될 뻔하다 겨우 살았다더라......”
그런 영복의 이야기에 모두들 표정이 새파래졌는데, 영복은 자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쌈을 본 놈이 그카더라. 한 달 전에 영감 누야가 창덕이 그 새끼가 5감 골목에서 꼬바리(담배꽁초) 태우는 걸 보고 뭐라 카니까 대뜸 쌍욕을 하고 침을 뱉았다더라. 그래서 누야가 화가 나 때릴라 그래(그래서) 피하면서 궁디를 발로 찾는데...... 씨발, 누야가 울고 가자마자 영감 저 새끼가 몽둥이를 들고 와서 창덕이 성을 완전 개잡듯이 잡았다 카던데...... 와~ 그 쌈 잘하는 창덕이가 꼼짝도 못하고 얻어터지기만 했다더라. 그 소문이 나선지 요샌 동네 놈팽이들도 영감 누야한텐 눈도 못 돌린다 칸다......근데 겨우 느구 성, 석태를 믿고?”
그 이야기에 석경일당의 얼굴은 샛노래졌고, 영복은 십년감수했다는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씨발, 그라고 보니 그 새끼...... 일곱 살 때 아미동에 처음 왔을 때도 즈구(저희) 엄마랑 누이한테 욕하면 가만있지 않던 놈이었제! 씨발~ 나도 영감 금마(그 놈이)가 전학 온 가시나하고 연애하는 걸 몰라 다행이었지. 그걸 알았으면 영감 성질을 돋꿀라고, 그 가시나 욕을 엄청 했을 텐데.......”
1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릴 때쯤 담임 선생님은 교실로 복귀를 했다.
그리곤 점심시간이 되면서 나를 따로 불러 이야기를 하셨다.
수업이 끝나면 혜석의 집으로 같이 문병을 가자고.
그녀의 엄마가 선생님께 나를 데려오면 좋겠다고, 직접 학교로 전화까지 해 왔었다면서......
첫댓글 접종 후 대상포진이 왔네요.
원채 심하게 아파봐선지 그리 힘들거나 한 건 없는데 약만 먹으면 졸음이......
양해 바랍니다.